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너를 기다리는 동안 着語 - 황지우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두부 장수의 핑경 소리가 요즘은 없어졌다. 타이탄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온 사람이 핸드 마이크로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어디선가 병원에서 또 아이가 하나 태어난 모양이다. 젖소가 제 젖꼭지로 그 아이를 키우리라. 너도 이 녹 같은 기다림을 네 삶에 물들게 하리라 ㅡ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着語 中 기다리는 삶은 초조하고 눈물겹다. 더 빠르게, 더 높이 경쟁하듯 달리는 삶들 속에서 가만히 기다리는 삶은 쉽게 지친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지금껏 오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 기다려봐야 별 것 없으니 갈 수 있는 길로 가라는 말. 그런 말들을 뒤로 하고 너를 기다린다. 불안과 간절함으로 너를 기다린다. 내가 선택.. 먼후일 - 김소월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ㅡ 김소월, 먼후일 中 사랑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청소년에게는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뜨거움이자 정열이고, 어른들에게는 요새 애들은 모르는 애틋함이자 아련함이다. 이성애자들에게는 많은 대안들 중에 내가 선택한 특별함이고, 동성애자들에게는 적은 가능성 속에서 이어진 소중함이다. 특별한 것들은 공존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존한다. 그래서 또다시 특별하다.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화가 L을 위하여 ㅡ 함형수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ㅡ 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화가 L을 위하여 中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이 유명하다. 면면히 이어져 오던 문화를 정말 멋지게, 후배들이 완성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각자의 빛을 내면서도 하나의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낸다. 그 눈부심 앞에서 늘 감동받는다. 우리에게 전승되는, 한글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들과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할 적이면 가슴이 벅찬다. 정신은 죽음을 초월한다. 그렇게 계속 이어진다. 죽음을 초월한 정신들을 우리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익히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배운다. 졸업 후 몇 해가 지나서 의정부는..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밤하늘이 없어도 별은 뜨나니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ㅡ 정호승, 부치지 않은 편지 中 외모, 몸매, 키, 학벌, 재력 등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는 잣대는 참 많다. 그렇게 순위를 매기고 매기다 보면, 단 한 명을 제외하고 72억 가까이 되는 지구촌 사람들 모두가 가치가 없어진다. 서로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을 보다보면, 어느새 자신도 그 잣대로 남들을 바라보고, 마침내 스스로에게도 그 잣대를 들이댄다. 그렇게 우리는 열등감을 조금씩 키워 간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는 현대 사회다. 그래도 너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가운 잣대로 남을 평가하지 않는 사람. 네 곁에는 그런 사람들이 가득하길 바란다. 나 역시 그런 사람으로 .. 어떤 사람 - 신동집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별을 돌아보고늦은 밤의 창문을 나는 닫는다어디선가 지구의 저쪽켠에서말 없이 문을 여는 사람이 있다차겁고 뜨거운 그의 얼굴은그러나 너그러이 나를 대한다나직이 나는 묵례를 보낸다혹시는 나의 밤을 헤매일 사람인가그의 정체를 나는 알 수가 없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창문을 열면또 한번 나의 눈을 대하게 된다어디선가 지구의 저쪽켠에서말 없이 문을 닫는 그의 모습을나직이 나는 묵례를 보낸다그의 잠을 이번은 내가 지킬 차롄가그의 밤을 내가 지향없이 헤매일 차롄가차겁고 뜨거운 어진 사람은언제나 이렇게 나를 만난다언제나 이렇게 나와 헤어진다 ㅡ 신동집, 어떤 사람 난 새벽을 좋아한다. 너의 아침을 준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너의 하루, 그 시작을 위해 나는 무언가 준비를 하고 싶다. 그렇게 준.. 겨울 편지 - 이해인 친구야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산 위에바다 위에장독대 위에하얗게 내려 쌓이는 눈만큼이나너를 향한 그리움이눈사람 되어 눈 오는 날 눈처럼 부드러운 네 목소리가조용히 내리는 것만 같아눈처럼 깨끗한 네 마음이하얀 눈송이로 날리는 것만 같아나는 자꾸만네 이름을 불러본다 ㅡ 이해인, 겨울 편지 숨을 쉬기 어려울 때가 있다. 숨을 몰아 쉬어보기도 하고, 한숨을 크게 쉬어보기도 한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사방이 답답하게 날 옥죄고 구석으로 몰아붙일 때, 남들은 가족이 응원해주고 격려해준다는데 내겐 그것마저 없을 때, 아니 없기만 하면 다행이지, 온갖 트집·조소·비아냥·명령·비난·저주가 날 휘감을 때, 숨을 쉬기 어렵다. 화생방실에 갇혀 있을 때만큼이나 신선한 공기에 목마르다. 너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을 거란.. 겨울의 환 - 김채원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돌아온 것은 거슬러 올라가 그 원인이 결혼 예물 때문이려니 했습니다. 어려운 인생의 관문인 결혼이 출발부터 잘못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차츰, 그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런 지엽적인 것이 아니고 더 근원적인 것, 딸이 어머니 운명을 닮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어떤 것, 다시 말해 그것은 운명의 손길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버려 두었듯, 즉 어머니가 남편을 섬기며 사는 여자이지 못했듯 저 역시 그런 것입니다. 그럴 때면 남편이 꼭두각시처럼 느껴져 멀리 떠나 있는 그에게 미안감과 아울러 차라리 측은한 애정까지 드는 것입니다. 그는 사우디에서 몇 통인가의 엽서-햇빛이 너무 살인적이어서 옆 건.. 찰밥 - 윤오영 오늘도 친구들과 들놀이를 약속한 까닭에 예와 같이 이 찰밥을 싸서 손에 들고 나선 것이다. 밥을 들고 퇴를 내려서며 문득 부엌문 쪽을 둘러봤다. 새벽에 숯불을 피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다가는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슬픈 일이다. 손에 밥은 들려 있건만 그 어머니가 없다. 어머니께서는 새벽녘에 손수 숯불을 불어 가며 찰밥을 싸 주고 기대하며 기다리던 그 아들에게서 과연 무엇을 얻으셨던가? 그는 매일매일 그래도 당신 아들만이 무엇인가 남다른 출세를 하리라고 믿고 그의 구차한 여생을 한 줄기 희망으로 살아왔건만 그의 아들은 좀처럼 출세하지 않았다.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걷고만 있지 아니하였던가. 어머니는 운명하시는 순간에도 그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먼 길을 떠나던 그 순간에도 아들에 대한 희망.. 이전 1 ··· 34 35 36 37 38 3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