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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현대시의 정수

진달래꽃 - 김소월 (전문/해석/원문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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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개벽25, 1922.7.)

 

 

* 김소월 :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1902), 오산학교 중학부 입학(1915), 배재고보 졸업(1923), 영대(靈臺)동인 활동(1924), 자살(1934).

 

 

해석

소월의 시는 전통적 민요조 가락과 한국 고유의 정서 으로 유명하다. 소월이 남긴 150여 편의 시는 생전에 간행한 시집 진달래꽃으로 묶였고, 사후에 김억이 소월시초(1939)를 엮었다. 소월의 작품 속에는 민족 고유 정서와 맞닿아 흐르는 소박하고 진솔한 정감이 있다. 시의 요소로 구체화하자면 간결하고 소박한 가락,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구어체를 활용한 7·5조의 대중적 리듬, 이별·그리움·체념 등으로 대표되는 민중적 주제 의식 등이다.

진달래꽃은 이별의 슬픔을 인종의 의지력으로 극복해 내는 여인을 화자로 하여 전통적 정한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 정한의 세계는 공무도하가’, ‘가시리’, ‘서경별곡’, ‘아리랑으로 계승되어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우리 민족 전통 정서와 그 맥을 같이한다. 간결한 시 형식 속에 임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헌신, 체념과 극기의 정신이 드러난다. 떠나는 임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동양적인 체념과 나 보기가 역겨워떠나는 임을 위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절대적 사랑, 임의 가시는 걸음 걸음이 꽃을 사뿐히 즈려밟을 때 이별의 슬픔을 도리어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비애, 아픔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인고가 그것이다. ‘진달래꽃은 화자의 아름답고 강렬한 표상이요, 떠나는 임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임에게 자신을 헌신하려는 정성과 순종의 상징이다. 떠나는 임을 위해 꽃을 뿌리는 행위가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까닭은 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시적 자아의 사랑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꽃을 뿌리는 행위의 표면적 의미는 불가에서 말하는 산화공덕이다. 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임의 앞날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임을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만류의 뜻이 숨겨져 있다.

설화적 모티프(여성의 인종과 남성의 유랑 및 잠적)를 원형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여성적 어조를 통해 애절하고 간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화자가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마지막 시행과 걸음 걸음’,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 말하는 것을 통해, 그저 눈물만 보이며 인종하는 나약한 여성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꽃을 밟을 때마다 자신이 가학자임을 스스로 확인하게 될 것을 아는 화자는 떠나는 사랑을 붙잡아두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