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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가짜신선타령 (전문/해석/원문파일) 1. 요점 정리 • 연대 : 미상 • 작자 : 미상 • 내용 : 부전 • 기타 :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 觀優戱〉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나 곧 소멸되어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 朝鮮唱劇史≫에서 이 작품 대신에 〈숙영낭자전 淑英娘子傳〉이 소개된 것으로 보아서, 〈가짜신선타령〉은 판소리의 열두마당에 들어 있다가 〈숙영낭자전〉으로 대치되어 소멸된 것으로 추측된다. 2. 이해와 감상 소리는 물론 가사도 전하지 않는다. 가신선타령(假神仙打令) 사설이나 소리가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고, 1810년 경 송만재(宋晩載)라는 사람이 쓴 '관우희(觀優戱)'에 등장하는데, '관우희'에 '光風癡骨願成仙路入金剛問老禪千歲海挑千日酒見欺何物假喬..
삼국유사(三國遺事) - 민장사(敏藏寺) ※ '민장사(敏藏寺)'는 '삼국유사' 제3권에 실려 있다. 신라 우금리(禹金里)에 ‘보개(寶開)’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보개에게는 ‘장춘(長春)’이라는 아들 하나가 있었다. 장춘은 항상 바닷길을 왕래하면서 장사를 해야 했고, 한번 장삿길을 떠나면 며칠씩이 걸려 보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근처에 있는 ‘민장사’라는 절에 가 기도를 올렸다. 민장사는 각간 민장(敏藏)이 희사(어떤 목적을 위하여 기꺼이 돈이나 물건을 내놓음)한 집을 절로 삼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번은 장사를 떠난 장춘이 몇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보개는 하루도 빠짐 없이 민장사 관음보살상 앞에 나아가 아들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까지 소식이 없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장춘이..
삼국유사(三國遺事) - 삼소관음중생사(三所觀音衆生寺) ※ '삼소관음중생사(三所觀音衆生寺)'는 '삼국유사' 제3권에 실려 있다. 중국 어떤 천자(天子)에게 아름다운 총희(寵姬)가 있어 천자의 이름난 화가를 불러 그 미녀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시켰다. 천자의 명을 받은 화가가 그림을 거의 완성했을 때 그만 잘못하여 그림 위에 붙을 떨어뜨리니, 화상의 배꼽 밑에 붉은 점이 찍히게 되었다. 지워 보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자 화가는, 혹시 그 여자의 배꼽 아래에 정말로 그런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그림을 천자에게 바쳤다. 그림을 본 천자는 화를 냈다. 모습은 아주 잘 그렸는데 옷 속에 감추어진 점을 어떻게 알고 그렸냐는 것이다. 총희에게는 정말 배꼽 밑에 붉은 점이 있었던 것이다. 천자는 화가를 옥에 가두고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한 승상이 화..
삼국유사(三國遺事) - 처용랑(處容郞)과 망해사(望海寺) ※ '처용랑(處容郞)과 망해사(望海寺)'는 '삼국유사' 제2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때 신라는 매우 태평하고 번화하여 초가집이 한 채도 없었다. 거리에는 항상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철의 기후는 순조로워 매년 풍년이 들었다. 어느 날, 왕은 신하들을 데리고 개운포(開雲浦)로 뱃놀이를 나갔다. 개운포는 지금의 울산이다. 왕과 신하들이 놀이를 마치고 환궁하려는데 갑자기 날씨가 어두워져 행차할 수가 없었다. 감작스런 변괴에 놀란 왕은 일관(日官)을 불러 까닭을 물었더니 동해에 있는 용의 장난이니 좋은 일을 해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헌강왕이 그 말을 듣고 즉시 근처에 절을 지으라는 명을 내렸더니 구름과 안개가 걷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곳 지명을 개운포라 한 것이다. 왕이 절을..
삼국유사(三國遺事) - 밀본최사(密本摧邪) ※ '밀본최사(密本摧邪)'는 '삼국유사' 제5권에 실려 있다. 한번은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병이 나 흥륜사의 중 법척(法惕)을 불러 병을 치료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때 밀본 법사란 분이 덕행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들려 신하들은 법척 대신 밀본 법사를 불러 치료하자고 아뢰었다. 궁중으로 불려온 밀본 법사가 여왕의 침실 밖에서 ‘약사경(藥師經)’을 한 번 다 읽고 나니 법사의 육환장(六環杖)이 침실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여왕의 침실로 가 보니 거기에는 늙은 여우 한 마리와 법척이 쓰러져 있었다. 이 여왕의 병은 씻은 듯이 깨끗이 나았다. 이때 밀본 법사의 머리 위에는 오색 찬란한 광채가 뻗어, 보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승상(丞相) 김양도(金良圖)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입이 붙어..
삼국유사(三國遺事) - 심지계조(心地繼祖) ※ '심지계조(心地繼祖)'는 '삼국유사' 제4권에 실려 있다. 심지 스님은 신라 제41대 헌덕대왕(憲德大王)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고 천성이 지혜로웠다. 15세 때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오로지 불도 닦는 데에만 정진하였다. 심지 스님이 중악(中岳 : 팔공산)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속리산에 있는 영심공(永深公)이 진표율사(眞表律師)의 불골간자(佛骨簡子)를 받아 법회를 연다는 말을 들었다. 간자란 대쪽에 쓰인 글을 말하는데, 이 간자는 미륵 보살의 손가락뼈로 된 것이기 때문에 불골간자라 한다. 심지 스님도 거기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났으나 기일 내에 도착하지 못해 참여할 수가 없었다. 심지 스님은 절 마당에 꿇어앉아 7일 동안 참회하는 예배를 올렸다. 이때 큰 눈이 내렸는데 심지 스..
삼국유사(三國遺事) - 수로부인(水路夫人) ※ '수로부인(水路夫人)'은 '삼국유사' 제2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 때의 일이다.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로 부임하면서 그의 아내 수로부인(水路夫人)을 함께 데리고 갔다. 일행은 바닷가에 이르러 점심을 먹게 되었다. 주위에는 천 길 절벽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그 낭떠러지에 마침 철쭉꽃이 한창 만발해 있었다. 철쭉꽃을 본 수로부인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한 송이 꺾어 주기를 부탁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암소를 끌고 가던 노인[견우노옹 : 牽牛老翁]이,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는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다 바치면서 ‘헌화가(獻花歌)’란 노래를 지어 바쳤다. 자줏빛 바윗가에 암소를 놓아 두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리라. ..
삼국유사(三國遺事) - 미륵선화(彌勒仙花) 미시랑(未尸郞)과 진자사(眞慈師) ※ '미륵선화(彌勒仙花) 미시랑(未尸郞)과 진자사(眞慈師)'는 '삼국유사' 제3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24대 진흥왕은 불교를 부흥시킨 임금으로 천성이 풍류와 신선(神仙)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아름다운 처녀를 뽑아 ‘원화(源花)’라 하고 무리를 거느리게 하여 그들에게 효제충신(孝弟忠信)을 가르쳤다. 남모랑(南毛娘)과 교정랑(峧貞娘)[삼국사기에는 교정을 준정(俊貞)이라 함]은 무리 3~4백 명을 거느린 원화였는데, 교정랑이 남모랑을 질투한 나머지 남모랑에게 술을 먹인 다음 사람을 시켜 죽이고 북천(北川)의 바위 밑에 시체를 숨기었다. 그런데 교정랑의 처사를 아는 사람이 있어 거리의 아이들을 불러 그런 사실을 노래로써 퍼뜨렸다. 때마침 우두머리를 잃고 슬퍼하던 남모랑의 낭도들도 그 노래를 듣게 되어 북천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