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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삼국유사(三國遺事) - 김현감호(金現感虎) ※ '김현감호(金現感虎)'은 '삼국유사' 제5권에 실려 있다. 신라 원성왕(元聖王) 때 김현(金現)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신라에서는 2월 8일부터 2월 15일까지 도시 사람들이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는 풍속이 있었다. 하루는 김현도 밤늦도록 쉬지 않고 탑돌이를 하였는데 한 처녀가 염불을 외면서 김현의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곧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까지 약속하였다. 새벽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절을 내려왔다. 김현은 처녀가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처녀의 집으로 따라갔다. 처녀의 집은 산기슭에 있는 오두막이었다. 집에는 늙은 어머니가 혼자 있었다. 결혼 약속을 했다는 처녀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난색을 띠며 김현을 벽장 속에 숨기라고 하였다. 얼마 뒤 호랑이 세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 ..
삼국유사(三國遺事) - 보양이목(寶壤梨木) ※ '보양이목(寶壤梨木)'은 '삼국유사' 제4권에 실려 있다. 신라의 보양(寶壤) 스님이 당나라에 가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해(西海)에 이르자, 용이 나와 맞으면서 불경(佛經)을 청했다. 보양 스님은 용궁에 들어가 염불을 했다. 그랬더니 용은 금빛 가사(袈裟)* 한 벌을 주고, 또 스님을 모시라고 그의 아들 이목(螭目)*을 딸려 보냈다. 용은 보양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국 가운데 불법을 믿는 임금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국에 돌아가거든 작갑사(鵲岬寺)를 지어 그곳에서 피난하고 있으면, 수년 내에 불교를 숭봉하는 임금이 나와 삼국을 통일할 것입니다.” 이목의 안내로 보양 스님이 한 골짜기에 이르자 자칭 ‘원광(圓光)’이라는 스님이 나와 상자 하나를 주고는 사라졌다. 상자 안에는 도장이..
삼국유사(三國遺事) -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은 '삼국유사' 제1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4년에 있었던 일이다. 연오랑 부부는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해초를 뜯으며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날도 연오랑은 바다에 나가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다 위에서 큰 바위 하나가 떠 내려오고 있었다. - 일설에는 바위가 아니고 큰 물고기라고 한다 – 연오랑이 호기심에 그 바위 위에 올라 탔더니 바위는 큰 바다로 흘러들어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이었다. 바위는 일본의 어느 해안에 닿았다. 일본 사람들은 바위를 타고 온 연오랑이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 하여 자기들의 왕으로 추대했다. 한편, 집에 있던 세오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바닷가로 나갔다. 바닷가 어떤 바위 위에 남편의 신발이..
삼국유사(三國遺事) - 백월산(白月山)의 두 성인(聖人) 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 ※ '백월산(白月山)의 두 성인(聖人) 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은 '삼국유사' 제3권에 실려 있다. 옛날 당(唐) 나라의 황제가 연못 하나를 팠다. 그런데 매월 보름 전 달 밝은 날이면 그 연못 속에 아름다운 산 그림자 하나가 비치는 것이었다. 산에는 사자처럼 생긴 바위 하나가 꽃 사이로 은은하게 보였다. 이상하게 여긴 황제는 화공(畫工)을 시켜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신하들을 시켜 찾아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한 신하는 신라까지 오게 되었다. 그림과 같은 산은 구사군(仇史郡) 북쪽에 있는 화산(花山)이었다. 사신은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아 자기의 신발 한 짝을 벗어 사자 바위 꼭대기에 걸어 놓고 당나라로 돌아가 그런 사실을 아뢰었다. 황제는 그 산을 ‘백월산(白月山)’이라고 ..
삼국유사(三國遺事) - 염촉(厭髑)이 순교하다/이차돈(異次頓) ※ '탈해왕(脫解王)'은 '삼국유사' 제1권에 실려 있다. 신라 눌지왕(訥祗王) 때 고구려로부터 묵호자(墨胡子)*가 신라 일선군(一善郡)에 있는 모례(毛禮)란 사람의 집에 왔다. 이때 중국 양(梁) 나라에서 사신이 향을 가지고 왔는데 신라에서는 그때까지 향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를 몰랐다. 그래서 묵호자가 이를 가르쳐 주었다. “이것은 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태우면 향기가 피어 올라 신(神)에게 통할 수가 있는데, 부처님을 섬기는 데 사용합니다.” 그때 마침 공주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왕은 묵호자에게 향을 피워 낫게 해 보라고 했다. 묵호자가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리자 공주의 병은 깨끗이 나았다. 이때부터 신라에 불교가 조금씩 전래된 것이다. 불교가 전래되기는 했지만, 당시의 무속(巫俗)과 배치되는 ..
삼국유사(三國遺事) - 탈해왕(脫解王) ※ '탈해왕(脫解王)'은 '삼국유사' 제1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2대 남해왕(南解王) 때의 일이다. 가락국(駕洛國) 해변에 낯선 배 한 척이 떠내려 왔다. 수로왕과 신하들이 나가 맞으려 하였는데 그 배는 쏜살같이 떠내려가 신라 계림의 ‘아진포(阿珍浦)’라는 곳에 닿았다. 아진포에는 고기잡이를 하는 노파 한 분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바닷가에서 까치들이 떼를 지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곳으로 가 보았더니, 배 한 척이 닿아 있고 그 안에는 큼직한 궤짝 하나가 있었다. 뚜껑을 열어 보니 거기에는 잘생긴 남자 아이 하나와 금은 보화 및 하인들이 들어 있었다. 아이는 7일 후에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본래 용성국(龍城國) 사람이며 함달파왕(含達婆王)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 무왕(武王)/서동요(薯童謠) ※ '무왕(武王)'은 '삼국유사' 제2권에 실려 있다. 백제 제30대 무왕의 어머니는 일찍 과부가 되어 혼자 살고 있었는데, 못에 사는 용과의 사이에서 무왕을 낳았다.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인데 항상 마를 캐서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善花公主)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신라로 갔다. 서라벌에 도착한 서동은 아이들을 불러 모아 선화공주가 서동과 밤이면 만나 사통(私通)한다는 내용의 ‘서동요’를 가르쳐 부르게 했다. 이 노래는 금방 온 나라에 퍼지게 되어 마침내,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성 밖 먼 곳으로 유배를 보냈는데 왕후는 공주를 떠나보내면서 노자로 황금 한 말을 주었다.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기대했던 서동은 도중에서 공주를 기다려 동행을 하면서 공주..
삼국유사(三國遺事) - 만파식적(萬波息笛) ※ '만파식적(萬波息笛)'은 '삼국유사' 제2권에 실려 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30대 문무왕(文武王)의 아들 신문왕(神文王) 때의 일이다. 문무왕은 죽으면서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자신의 유골을 바다에 묻으라는 유언을 남겼었다. 이에 신문왕은 부왕의 해저 능이 있는 동해 가까운 곳에 감은사를 지어 명복을 빌었는데 이듬해 5월, 박숙청(朴夙淸)이라는 신하가 이상한 일을 보았다. 동해에서 작은 산 하나가 감은사를 향해 떠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신문왕은 그 말을 듣고 일관(日官) 김춘질(金春質)에게 점을 치게 하였다. 그는 문무왕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있으며, 김유신(金庾信) 장군 역시 문무왕을 돕고 있는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보물을 왕에게 전하려 한다고 말하였다. 신문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