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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삼국유사(三國遺事) - 만파식적(萬波息笛)

※ '만파식적(萬波息笛)'은 '삼국유사' 제2권에 실려 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30대 문무왕(文武王)의 아들 신문왕(神文王) 때의 일이다.

  문무왕은 죽으면서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자신의 유골을 바다에 묻으라는 유언을 남겼었다.

  이에 신문왕은 부왕의 해저 능이 있는 동해 가까운 곳에 감은사를 지어 명복을 빌었는데 이듬해 5, 박숙청(朴夙淸)이라는 신하가 이상한 일을 보았다. 동해에서 작은 산 하나가 감은사를 향해 떠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신문왕은 그 말을 듣고 일관(日官) 김춘질(金春質)에게 점을 치게 하였다. 그는 문무왕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있으며, 김유신(金庾信) 장군 역시 문무왕을 돕고 있는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보물을 왕에게 전하려 한다고 말하였다.

  신문왕이 그해 7월 바닷가로 나가 보니 멀리서도 그 산이 보였다. 왕은 신하를 보내 자세히 살펴 보게 하였다. 마치 거북의 머리처럼 생긴 산 위에 대나무 한 그루가 있어, 낮에는 두 쪽으로 갈라졌다가 밤이 되면 하나로 합쳐지는데 산 역시 그랬다.

  이튿날 정오에, 갈라졌던 대가 갑자기 합쳐지면서 천지가 진동하더니 하늘이 캄캄해졌다. 7일이 지난 후에야 겨우 바람이 걷히고 파도가 잠잠해져 왕이 그 산에 오르니, 용 한 마리가 와서 검은 옥대 하나를 바쳤다. 그때 왕이 용에게 대나무가 갈라졌다 합쳐졌다 하는 까닭을 물었더니, 용의 대답은 이러했다.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대나무도 두 쪽이 합쳐져야 소리를 낼 수 있으므로 그 대나무가 합쳐졌을 때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옥대는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이 보냈다는 것이다.

  옥대의 구멍에는 모두 용이 들어 있었다. 옥대를 물에 담갔더니 왼쪽 두 번째 구멍에 있던 용이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그 못을 용연(龍淵)’이라 불렀다고 한다.

  신문왕은 베어 온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에 있는 천존고(天存庫)에 보관했는데, 적군이 침입할 때 그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갔다. 그리고 전염병이 돌 때 그 피리를 불면 병자들이 완치되고, 가뭄에는 비를 내리게 하고, 장마가 지면 날씨를 개게 했으며, 파도가 심할 때 불면 파도가 잠잠해졌다. 그래서 피리의 이름을 만파식적이라 하여 국보로 삼았다. 만파식적이란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