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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삼국유사(三國遺事) - 이혜동진(二惠同塵) ※ '이혜동진(二惠同塵)'은 '삼국유사' 제4권에 실려 있다. 혜공 스님은 천진공(天眞公)의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는 노파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어렸을 적 이름이 우조(憂助)였다. 어느날, 주인 천진공이 종기를 앓는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들은 우조는 자기가 그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는 이 사실을 주인에게 알렸다. 다급했던 주인은 우조를 불러들였다. 그래서 우조는 주인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우조가 주인 앞에서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으니 종기는 저절로 터져 나았는데 주인은 우연한 일로 생각하였다. 우조가 자라서 소년이 되었을 때 그는 주인을 위해 매를 길렀다. 어느날, 주인의 동생이 지방관(地方官)으로 부임하면서 매 가운데서 제일 좋은 놈을 골라 가지고 떠났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 문무왕(文武王) ※ '문무왕(文武王)'은 '삼국유사' 제2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영매한 임금이었다. 문무왕은 당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는데, 당나라는 군사들을 물리지 않고 신라를 삼킬 야심을 품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문무왕은 군사를 내 당나라 군사와 싸웠다. 그러자 당나라 고종(高宗)은 당나라에 있던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金仁問)을 불러 신라의 배신 행위를 꾸짖고는 옥에 가두어 버렸다. 당나라 고종은 설방(薛邦)이란 장수를 시켜 군사 50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김인문은 당나라에 와 있던 의상법사(義湘法師)를 불러 이런 사실을 본국에 알리도록 했다. 이 보고를 듣고 난 문무왕은 신하들을 불러 대비책을 강구하는데 김천존(金天尊)이란 신하가 명랑법사(明朗..
삼국유사(三國遺事) - 진성여왕(眞聖女王) ※ '진성여왕(眞聖女王)'은 '삼국유사' 제2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51대 진성 여왕이 즉위하자 유모인 부호부인(鳧好夫人)과 그의 남편 위홍(魏弘) 등이 정권을 쥐고 흔들어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그래서 사방에서 도적이 일어나 인심이 흉흉하게 되었다. 어느 날, 거리에서 왕과 권신(權臣) 등을 비난하는 투서(投書)가 발견되었다. 권신들은 이를 평소 강직하기로 이름난 왕거인(王巨人)의 짓으로 돌렸다. 그래서 무고한 왕거인은 옥에 갇히고 말았다. 왕거인은 자기의 억울한 심정을 시로 써서 하늘에 호소하였다. 그러자 벼락이 옥을 부수어 왕거인은 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때, 아찬(阿飡) 양패(良貝)는 왕의 막내아들이었다. 양패를 당나라에 사신으로 보내면서 왕은 활 잘 쏘는 사람 50명을 딸려 보냈다. 그것은 ..
삼국유사(三國遺事) - 신무왕(神武王) ※ '신무왕(神武王)'은 '삼국유사' 제2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45대 신무왕의 아버지 김균정(金均貞)은 흥덕왕(興德王)이 죽자 종질인 김제륭(金悌隆)과 왕위 다툼을 벌이다가 살해되었는데, 이 때 김명(金明)은 김제륭을 도왔다. 그 후, 김명은 희강왕(喜康王 : 김제륭)을 협박하여 자살케 하고 자신이 왕이 되니, 이가 민애왕(閔哀王)이다.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金祐徵 : 신무왕)은 아버지를 죽게 한 민애왕을 제거하기 위해 장보고(張保皐)의 힘을 빌었다[삼국사기에는 궁파(弓巴)라고 되어 있음]. “자네의 도움을 받아 내가 왕이 되면 자네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겠네.” 장보고는 그 약속을 믿고 김우징을 도왔다. 민애왕을 죽이고 왕이 된 신무왕은 장보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딸을 왕비로 맞으려고 하였으..
삼국유사(三國遺事) - 김알지(金閼智) ※ '김알지(金閼智)'는 '삼국유사' 제1권에 실려 있다. ※ 이 설화 역시 박혁거세 설화나 고주몽 설화와 같은 천손강림(天孫降臨) 설화이다. 신라 탈해왕 4년 8월 4일의 일이었다[삼국사기에는 탈해왕 9년으로 되어 있음]. 대신인 호공(瓠公)이 월성(月城) 서쪽 마을을 지나다가 시림(始林) 숲 가운데 환한 빛이 비추고 하늘에서 자줏빛의 상서로운 기운이 땅까지 뻗쳐 있는 것을 보았다. 호공은 탈해왕에게 살던 집을 빼앗긴 사람이다. 탈해가 아직 왕이 되기 전 토함산에 올라가 서라벌 장안을 살펴보니 눈에 뜨이는 좋은 명당 자리가 하나 있었다. 찾아가 보니 바로 호공의 집이었다. 탈해는 몰래 그 집 마당에 숯과 숫돌을 묻어 놓은 다음 호공을 불러 이 집이 바로 자기 조상이 살던 집이니 비워 달라고 억지를 썼다..
삼국유사(三國遺事) - 경문대왕(景文大王) ※ '경문대왕(景文大王)'은 '삼국유사' 제2권에 실려 있다. 신라 48대 경문왕의 이름은 응렴(膺廉)이다. 18세에 화랑이 되었다. 20세 때 헌안왕(憲安王)이 궁중으로 불러 잔치를 베풀어 주면서 물었다. “화랑으로서 사방을 유람하며 특이한 일을 본 것이 없는가?” “행실이 아름다운 세 사람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인가?” “한 사람은 남의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항상 겸손하였으며, 다음 한 사람은 부자인데도 검소하였으며, 마지막 사람은 귀족인데도 위세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헌안왕은 그 말을 듣고 김응렴이 현명한 사람임을 알았다. 그래서 두 공주 가운데 하나를 김응렴에게 하가(下嫁)시키고자 했다. 궁궐에서 물러나온 김응렴은 집안 사람들과 그 문제를 의논했다. 가족들의 의견은 아름다운 작은 공주를 아..
삼국유사(三國遺事) - 선덕여왕지기삼사(善德女王知幾三事) ※ '선덕여왕지기삼사(善德女王知幾三事)'는 '삼국유사' 제1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은 진평왕(眞平王)의 딸로서 선견지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세 가지 일을 예견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한 번은 당 태종(唐太宗)이 붉은색, 자색, 흰색의 빛깔을 가진 모란꽃 그림과 함께 꽃씨 세 되를 보내 왔다. 그 그림을 본 선덕여왕이 ‘이 모란꽃에는 향기가 없을 것이다.’ 하였다. 이듬해 꽃씨를 뿌려 늦봄에 꽃이 피었는데 과연 향기가 없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신하들에게 여왕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란꽃 그림을 자세히 보면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다. 꽃에 향기가 있다면 어찌 나비가 모여들지 않겠느냐? 이는 당 태종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나를 조롱하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
삼국유사(三國遺事) - 북부여(北夫餘)와 동부여(東夫餘) ※ '북부여(北夫餘)와 동부여(東夫餘)'는 '삼국유사' 제1권에 실려 있다. 기원전 59년 4월 8일 천제(天帝)가 지금의 요동 땅인 흘승골성에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내려왔다. 천제는 그 곳에 나라를 세워 국호를 북부여라고 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해모수(解慕漱)라고 지었다. 뒤에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解夫婁)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어느 날 밤 재상 아란불(阿蘭弗)이 꿈을 꾸었는데, 천제가 나타나 아란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내 자손으로 하여금 장차 여기에 나라를 세우게 하겠다. 그러나 너희는 다른 곳으로 피해 가거라. 동쪽 바닷가에 가섭원(迦葉原)이라는 기름진 땅이 있어 도읍을 삼을만하느니라.” 아란불은 꿈 이야기를 해부루왕에게 하였다. 해부루는 아란불의 말을 듣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