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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삼국유사(三國遺事) - 신무왕(神武王)

※ '신무왕(神武王)'은 '삼국유사' 제2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45대 신무왕의 아버지 김균정(金均貞)은 흥덕왕(興德王)이 죽자 종질인 김제륭(金悌隆)과 왕위 다툼을 벌이다가 살해되었는데, 이 때 김명(金明)은 김제륭을 도왔다. 그 후, 김명은 희강왕(喜康王 : 김제륭)을 협박하여 자살케 하고 자신이 왕이 되니, 이가 민애왕(閔哀王)이다.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金祐徵 : 신무왕)은 아버지를 죽게 한 민애왕을 제거하기 위해 장보고(張保皐)의 힘을 빌었다[삼국사기에는 궁파(弓巴)라고 되어 있음].

  “자네의 도움을 받아 내가 왕이 되면 자네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겠네.”

  장보고는 그 약속을 믿고 김우징을 도왔다. 민애왕을 죽이고 왕이 된 신무왕은 장보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딸을 왕비로 맞으려고 하였으나 신하들이 반대했다. 가문이 한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왕은 신하들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였다.

  이때 장보고는 청해진(淸海鎭 : 완도)을 지키고 있었는데, 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이것을 원망하면서 난을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장보고가 난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들은 신무왕은 장군 염장(閻長)을 청해진에 보내 염탐을 하게 했다.

  청해진에 도착한 염장은 왕에게 미움을 받아 피신을 왔다고 속였다. 그러자 장보고는 염장을 꾸짖었다.

  “네 놈들이 내 딸을 맞아들이지 말라고 권해 놓고는 무슨 낯으로 나를 찾아왔느냐?”

  이에 대해 염장은 이렇게 변명했다.

  “그것은 백관(百官)들이 한 일이지 나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공에게 전혀 유감이 없습니다.”

  그 말을 믿은 장보고는 염장을 안으로 불러들여 잔치를 베풀고 위로해 주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공의 막하에 머물면서 힘껏 돕겠습니다.”

  “고맙소.”

  두 사람은 마음을 터 놓고 실컷 술을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되었을 때, 갑자기 염장이 일어나 장보고가 차고 있던 칼을 뽑아들고 장보고의 목을 찔렀다. 장보고는 삽시간의 일이어서 꼼짝 못하고 당한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본 장보고의 부하들은 겁에 질려 모두 땅에 엎드려 염장의 처분을 기다렸다. 염장은 그 부하들을 이끌고 서울로 와 장보고의 목을 벤 상황을 아뢰었다.

  신무왕은 기뻐하면서 큰상을 내리고 염장에게 아간(阿干)이란 벼슬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