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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삼국유사(三國遺事) - 문무왕(文武王)

※ '문무왕(文武王)'은 '삼국유사' 제2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영매한 임금이었다. 문무왕은 당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는데, 당나라는 군사들을 물리지 않고 신라를 삼킬 야심을 품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문무왕은 군사를 내 당나라 군사와 싸웠다. 그러자 당나라 고종(高宗)은 당나라에 있던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金仁問)을 불러 신라의 배신 행위를 꾸짖고는 옥에 가두어 버렸다.

  당나라 고종은 설방(薛邦)이란 장수를 시켜 군사 50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김인문은 당나라에 와 있던 의상법사(義湘法師)를 불러 이런 사실을 본국에 알리도록 했다.

  이 보고를 듣고 난 문무왕은 신하들을 불러 대비책을 강구하는데 김천존(金天尊)이란 신하가 명랑법사(明朗法師)를 천거했다. 법사는 용궁에 들어가 많은 비법(秘法)을 배워 왔다는 것이다.

  명랑 법사는 신유림(神遊林)이란 곳에다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우라고 권했으나 절을 지을 틈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 비단 포장으로 절을 짓고 풀로 다섯 방위에다 신상(神像)을 만들어 세웠다. 그리고는 명랑 법사를 상수(上首)로 삼아 법회(法會)를 베풀었더니, 갑자기 바다에 거센 풍랑이 일어 신라로 쳐들어오던 당나라 군사 배들이 모조리 바닷속으로 침몰되어 버렸다.

  그 후, 당나라는 다시 5만의 군사를 보냈으나 먼저와 마찬가지로 침몰해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당나라 고종은 신라 사람 박문준(朴文俊)을 불러 이렇게 물었다.

  “너희 나라는 무슨 비법이 있기에 두 번씩이나 보낸 우리 당나라 군사가 하나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느냐?”

  이에 대해 박문준은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신라에서는 당나라의 은혜를 고맙게 여겨 사천왕사를 지어 황제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습니다.”

  당 고종은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분이 좋아 더 이상 신라를 괴롭히지 않았다.

  문무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21년 만에 승하하였다. 승하하면서 신하들을 불러 이렇게 유언했다.

  “나를 동해 바다의 바위 밑에다 장사 지내 다오. 나는 죽어서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

  유언에 따라 문무왕의 시신은 화장(火葬)되어 대왕암(大王巖) 아래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