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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삼국유사(三國遺事) - 미륵선화(彌勒仙花) 미시랑(未尸郞)과 진자사(眞慈師)

※ '미륵선화(彌勒仙花) 미시랑(未尸郞)과 진자사(眞慈師)'는 '삼국유사' 제3권에 실려 있다.

 

  신라 제24대 진흥왕은 불교를 부흥시킨 임금으로 천성이 풍류와 신선(神仙)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아름다운 처녀를 뽑아 원화(源花)’라 하고 무리를 거느리게 하여 그들에게 효제충신(孝弟忠信)을 가르쳤다.

  남모랑(南毛娘)과 교정랑(峧貞娘)[삼국사기에는 교정을 준정(俊貞)이라 함]은 무리 3~4백 명을 거느린 원화였는데, 교정랑이 남모랑을 질투한 나머지 남모랑에게 술을 먹인 다음 사람을 시켜 죽이고 북천(北川)의 바위 밑에 시체를 숨기었다.

  그런데 교정랑의 처사를 아는 사람이 있어 거리의 아이들을 불러 그런 사실을 노래로써 퍼뜨렸다. 때마침 우두머리를 잃고 슬퍼하던 남모랑의 낭도들도 그 노래를 듣게 되어 북천에 가서 시체를 찾아 내고는 돌아와 교정랑을 죽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원화 제도는 폐지되었다.

  그 뒤, 진흥왕은 다시 양갓집 소년으로 덕행이 있는 자를 뽑아 화랑(花郞)을 조직하였다.

  진흥왕의 뒤를 이은 진지왕(眞智王) 때의 일이다. 흥륜사(興輪寺)의 진자(眞慈) 스님은 항상 미륵 부처 앞에 나가 빌었다.

  “대성(大聖)이시여! 부디 나타나시어 화랑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한 중이 나타나 웅진(熊津)의 수원사(水源寺)로 가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꿈을 깬 진자 스님은 바로 그 곳으로 향했는데,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합장 배례를 하며 열흘 만에 도착했다.

  수원사 문에는 잘생긴 소년 하나가 서 있다가 진자 스님을 보자 반갑게 맞아 주었다. 소년은 자기도 서울 사람이라며 스님을 절 안으로 친절하게 인도하였다.

  스님이 절 안을 구경하고 나와 보니 소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절에 있는 다른 스님들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그들은 모르는 일이라며 남쪽에 있는 천산(千山)으로 가 보라는 것이었다.

  천산으로 가자, 산신령이 나타나 아까 수원사에서 본 소년이 바로 미륵 부처라고 알려 주었다.

  다시 흥륜사로 돌아온 진자 스님은 어느 날 나무 밑에서 놀고 있는 그 소년을 발견했다. 그 소년은 전에 만났던 친절한 소년으로 이름은 미시(未尸)’라고 하였다. 스님은 미륵 부처인 소년을 가마에 태워 궁궐로 데려갔다. 왕은 소년을 화랑으로 삼았다.

  미시 화랑은 매우 영리해 많은 소년들이 따랐는데 7년째 되던 해에 조용히 종적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