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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삼국유사(三國遺事) - 이혜동진(二惠同塵)

※ '이혜동진(二惠同塵)'은 '삼국유사' 제4권에 실려 있다.

 

  혜공 스님은 천진공(天眞公)의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는 노파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어렸을 적 이름이 우조(憂助)였다

  어느날, 주인 천진공이 종기를 앓는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들은 우조는 자기가 그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는 이 사실을 주인에게 알렸다. 다급했던 주인은 우조를 불러들였다. 그래서 우조는 주인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우조가 주인 앞에서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으니 종기는 저절로 터져 나았는데 주인은 우연한 일로 생각하였다.

  우조가 자라서 소년이 되었을 때 그는 주인을 위해 매를 길렀다. 어느날, 주인의 동생이 지방관(地方官)으로 부임하면서 매 가운데서 제일 좋은 놈을 골라 가지고 떠났다.

  며칠 뒤 주인은 동생이 가지고 간 매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튿날 우조를 시켜 매를 찾아오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주인이 아침에 일어나니 우조는 벌써 그 매를 가지고 와 바치는 것이었다. 그제어야 주인은 지난 번 자기의 종기가 나은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조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우조에게 사과하고 잘 이끌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 후 우조는 출가하여 중이 되었는데 이름을 혜공이라 하였고, 항상 술에 취하여 망태기를 등에 짊어지고 거리에서 춤을 추어서, 그가 거처하는 절 이름을 부개사(負蓋寺)’라고 하였다.

  구참공이란 사람이 산놀이를 갔다가 산길에 놓여진 혜공의 시체를 보았는데 시체는 이미 썩어서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한참 동안 탄식을 하다가 산을 내려온 구참공은 깜짝 놀랐다. 술에 잔뜩 취한 혜공 스님이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명랑법사(明朗法師)가 금강사(金剛寺)를 새로 짓고 낙성식을 거행하는데 초청된 다른 스님들은 모두 참석하였으나 오직 혜공 스님만이 참석하지 않았다. 명랑 법사는 기다리다 못해 향을 피우고 법회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혜공 스님이 갑자기 나타났다. 이 때 밖에서는 큰 비가 오고 있었는데 그의 옷은 전혀 젖지 않았다.

  혜공 스님은 이 외에도 많은 이적(異蹟)을 남겼다. 죽을 때에도 공중에 뜬 채로 입적하였고 죽은 후에 나온 사리(舍利)는 너무 많아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