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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삼국유사(三國遺事) - 심지계조(心地繼祖)

※ '심지계조(心地繼祖)'는 '삼국유사' 제4권에 실려 있다.

 

  심지 스님은 신라 제41대 헌덕대왕(憲德大王)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고 천성이 지혜로웠다. 15세 때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오로지 불도 닦는 데에만 정진하였다.

  심지 스님이 중악(中岳 : 팔공산)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속리산에 있는 영심공(永深公)이 진표율사(眞表律師)의 불골간자(佛骨簡子)를 받아 법회를 연다는 말을 들었다. 간자란 대쪽에 쓰인 글을 말하는데, 이 간자는 미륵 보살의 손가락뼈로 된 것이기 때문에 불골간자라 한다.

  심지 스님도 거기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났으나 기일 내에 도착하지 못해 참여할 수가 없었다. 심지 스님은 절 마당에 꿇어앉아 7일 동안 참회하는 예배를 올렸다. 이때 큰 눈이 내렸는데 심지 스님이 앉아 있는 주위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 그 절에 있는 스님들은 이상하게 여겼다. 법회가 끝나고 다시 팔공산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였다. 심지 스님은 자기의 옷섶 사이에 끼어 있는 두 개의 간자를 발견했다. 그 간자는 바로 영심스님이 진표 율사에게서 전해 받은 불골간자였다.

  심지 스님은 다시 돌아가 간자를 돌려 주었다. 영심 스님은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 했느나 간자를 간직해 둔 함을 열어 보니 과연 간자가 없었다. 간자를 받은 영심 스님은 꼭꼭 싸매어 간직했다. 그러나 얼마를 가다보니 간자는 다시 심지 스님의 옷깃 사이에 들어 있었다. 영심 스님은 그제서야 부처님의 뜻을 깨닫고는 간자를 심지 스님에게 주고 말았다.

  심지 스님은 그 간자를 가지고 중악으로 돌아오니 산신(山神)이 두 선사(禪師)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스님을 산꼭대기로 인도하였다.

  “이제 마땅히 땅을 가려 불타의 간자를 모셔야 하오. 이는 우리들 마음대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니 간자를 멀리 던져 떨어지는 곳에다 안치해야 하오.”

  심지 스님은 서쪽을 향해 간자를 멀리 던졌다. 간자는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이때 산신령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막혔던 바위 멀리 물러가 숫돌처럼 편편해지고

낙엽이 날아가 흩어지니 앞이 밝아지누나.

불골간자를 찾아 내어

정결한 곳에 모시고 정성껏 바치리.

 

  간자는 숲속에 있는 우물 속에 떨어졌다. 그래서 그 곳에다 집을 지어 간자를 모셨는데, 지금의 동화사(桐華寺) 북쪽에 있는 작은 우물이 그곳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