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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삼국유사(三國遺事) - 북부여(北夫餘)와 동부여(東夫餘)

※ '북부여(北夫餘)와 동부여(東夫餘)'는 '삼국유사' 제1권에 실려 있다.

 

  기원전 5948일 천제(天帝)가 지금의 요동 땅인 흘승골성에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내려왔다. 천제는 그 곳에 나라를 세워 국호를 북부여라고 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해모수(解慕漱)라고 지었다.

  뒤에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解夫婁)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어느 날 밤 재상 아란불(阿蘭弗)이 꿈을 꾸었는데, 천제가 나타나 아란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내 자손으로 하여금 장차 여기에 나라를 세우게 하겠다. 그러나 너희는 다른 곳으로 피해 가거라. 동쪽 바닷가에 가섭원(迦葉原)이라는 기름진 땅이 있어 도읍을 삼을만하느니라.”

  아란불은 꿈 이야기를 해부루왕에게 하였다. 해부루는 아란불의 말을 듣고 가섭원으로 나라를 옮기고 국호를 동부여라고 하였다.

  해부루에게는 늦도록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유명한 산천을 찾아다니며 제사를 지내 아들 얻기를 빌었다. 하루는 말을 타고 곤연(鯤淵)이라는 곳에 닿았는데, 말이 그 곳의 큰 바위 앞에 이르자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왕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신하들을 시켜 바위를 들도록 하였다.

  바위 밑에는 금빛 찬란한 개구리처럼 생긴 아이가 있었다. 그것을 본 왕은 하늘이 자기에게 내려 준 아들로 생각되어 기뻤다. 왕은 아이가 금빛 개구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하였으며 금와가 자라자 태자로 삼았다.

  그 후, 해부루의 뒤를 이어 금와가 왕이 되었으며 금와왕은 죽으면서 왕위를 태자 대소(帶素)에게 전하였다. 그러다가 동부여는 서기 22년에 고구려의 대무신왕(大武神王)에게 멸망되고, 대소 역시 죽임을 당했다.

  앞서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북부여를 동부여로 옮기게 한 것은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에게 나라를 일으키게 하려 함이었다는 것이다.

  동명성왕은 이 나라를 세워 북부여를 기반으로 해서 졸본부여(卒本)에 도읍을 정하였다. 따라서, 졸본은 고구려의 발상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