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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삼국유사(三國遺事) - 김현감호(金現感虎)

※ '김현감호(金現感虎)'은 '삼국유사' 제5권에 실려 있다.

 

  신라 원성왕(元聖王) 때 김현(金現)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신라에서는 28일부터 215일까지 도시 사람들이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는 풍속이 있었다.

  하루는 김현도 밤늦도록 쉬지 않고 탑돌이를 하였는데 한 처녀가 염불을 외면서 김현의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곧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까지 약속하였다.

  새벽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절을 내려왔다. 김현은 처녀가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처녀의 집으로 따라갔다. 처녀의 집은 산기슭에 있는 오두막이었다. 집에는 늙은 어머니가 혼자 있었다. 결혼 약속을 했다는 처녀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난색을 띠며 김현을 벽장 속에 숨기라고 하였다.

  얼마 뒤 호랑이 세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 왔다. 처녀의 오빠들이었다. 호랑이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어디선가 사람 냄새가 난다며 소란을 피웠다. 어머니와 처녀는 쓸데없는 소리라고 그들을 나무랐다.

그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 왔다.

  “너희들은 많은 생명을 해쳤다. 그래서 너희들 가운데 하나를 죽여 죄과를 다스리겠다.”

  그 말을 들은 호랑이들은 두려워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자 처녀는 김현을 보호하기 위한 좋은 기회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빠들 대신 벌을 받겠다며 호랑이들을 멀리 보냈다.

  처녀는 김현과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내일 시장으로 나가 소란을 피울 터이니 도련님께서 저를 잡으세요. 그러면 낭군께서는 많은 상과 벼슬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김현은 그럴 수 없다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천명(天命)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며, 대신 자기가 죽은 후에 절을 하나 지어 명복을 빌어 주면 고맙겠다고 하였다.

  이튿날, 과연 시장에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사람을 해쳤다. 김현이 나갔더니 호랑이는 숲속으로 달아나 처녀로 변신해 기다리고 있었다. 처녀는 다친 사람들의 상처에 흥륜사의 간장을 바르고, 또 그 절의 종소리를 들으면 낫는다고 일러 준 다음, 김현의 칼을 뽑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후에 귀하게 된 김현은 처녀의 소원대로 호원사(虎願寺)’라는 절을 지어 명복을 빌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