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어의 정수/고전산문의 정수

삼국유사(三國遺事) - 민장사(敏藏寺)

※ '민장사(敏藏寺)'는 '삼국유사' 제3권에 실려 있다.

 

  신라 우금리(禹金里)보개(寶開)’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보개에게는 장춘(長春)’이라는 아들 하나가 있었다장춘은 항상 바닷길을 왕래하면서 장사를 해야 했고, 한번 장삿길을 떠나면 며칠씩이 걸려 보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근처에 있는 민장사라는 절에 가 기도를 올렸다. 민장사는 각간 민장(敏藏)이 희사(어떤 목적을 위하여 기꺼이 돈이나 물건을 내놓음)한 집을 절로 삼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번은 장사를 떠난 장춘이 몇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보개는 하루도 빠짐 없이 민장사 관음보살상 앞에 나아가 아들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까지 소식이 없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장춘이 들려 준 그 동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날도 장삿배를 타고 가는데 바다 가운데 이르러 갑자기 태풍을 만났다. 너무 강한 태풍이어서 배가 뒤집혀 함께 탔던 사람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다.

  장춘 역시 바다에 빠졌으나 마침 바다 위에 떠 있던 널빤지에 기댄 채 떠내려 가다 중국 남쪽 해안에 닿게 되었다. 장춘은 그곳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그 집에 머물면서 농사일을 도와 주었다.

  하루는 신라 사람으로 보이는 스님이 나타나 장춘의 입장을 위로하고는 집으로 보내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장춘은 스님을 따라 나섰다. 도중에 깊은 개울이 나오자 스님은 장춘을 옆구리에 끼고 개울을 건너뛰는 것이었다.

  장춘은 그만 기절을 하였고, 정신이 희미한 가운데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신라 사람의 말이 분명했다. 눈을 떠 보니 틀림없는 고향의 장터였다. 날이 저물 무렵에 중국 남쪽의 마을에서 출발했는데 고향에 도착한 시각이 겨우 밤 8시였다.

  이때는 당나라 현종(玄宗) 33, 신라 경덕왕(景德王) 4(745) 48일이었다.

  경덕왕은 장춘의 이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민장사 부처가 영검(사람의 기원대로 되는 신기한 징험)스러워 그렇게 된 것이라 여기고, 그 절에 많은 전답과 재물을 시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