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어의 정수/현대시의 정수

왕십리 - 김소월 (전문/해석/원문파일)

왕십리.hwp
0.02MB
왕십리.pdf
0.06MB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天安)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데.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신천지, 1923.8.)

 

 

* 삭망 :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을 아울러 이르는 말.

* 김소월 :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1902), 오산학교 중학부 입학(1915), 배재고보 졸업(1923), 영대(靈臺)동인 활동(1924), 자살(1934).

 

해석

1연에서는 비가 온다는 사실에 화자의 서글픈 심정을 기대어 노래한다. ‘온다’, ‘오누나’, ‘오는’, ‘올지라도의 연쇄적 수법에 의하여 비가 계속 내리는 이미지와 자신의 떠돌이의 비애가 서로 맞물려 표현되고 있다.

2연에서는 화자가 비에 관한 관습적 표현을 떠올린다. 조금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를 이르는 말- 때인 음력 여드레와 스무날(정확히는 23)에는 오지 않았으면 좋을 비가 오고, 사리 -음력 보름과 그믐 무렵에 밀물이 가장 높은 때- 때인 초하루와 보름에는 와도 좋은 비가 내리지 않고 간다는 관습적 표현은 갯벌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바닷가 주민들의 생활사와 연관되어 생겨난 것이다. 조금 때에는 비가 오면 조개 채취에 지장을 준다. 반대로 사리 때에는 어차피 작업을 쉬어야 하니 비가 와도 좋다. 관습적 표현처럼, 비마저도 우리네 살림살이와는 동떨어지게 빗나가는 현실을 생각하니 화자는 한결 서글퍼진다. 그런데 오늘따라 가도 가도비가 내리는 것이다.

3연에서는 화자의 비애가 벌새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드러난다. 벌새는 비 맞아 나른해서울고 있다. 온몸이 비에 젖어 무거운 몸으로 울고 있는 벌새는 세상사에 지친 화자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화자는 여로(旅路)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 여유가 없다.

4연에서는 비는 천안에도 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실버들 역시 객관적 상관물로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대상이다. 천안에서 왕십리까지 비가 내리고 있고 이는 장대비라기보다는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의 이미지를 띤다. 무릅쓰고 가기에도 적당치 않고 주저앉아 쉬기에는 갈 길이 먼 안타까운 비라는 이미지를 지닌다.

마지막 행에서 구름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마루에 걸려서 울고 있다. 우는 구름 역시 객관적 상관물로서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대상이다. 나그네에게 비란 갈 길을 가로막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이다. 그러나 4연에서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라고 생각한 이유는 며칠을 두고 내리는 비는 그 비를 핑계로 쉴 수 있어 차라리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비의 이미지와 떠돌 수밖에 없는 유랑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있다. 시인의 다른 시 ’, ‘가는 길’, ‘등과 같이 유랑의 비애를 읊고 있는 작품이다. ‘왕십리는 화자가 안주하고 싶어 하는 세계와의 정서적 거리를 의미한다.

이 시를 반영론적으로 해석한다면, 1920년대 초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비애가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