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嶺) 넘어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三水甲山)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은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개벽』 40호, 1923.10.)
* 시메 : 깊은 산골
* 불귀(不歸) :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뜻. 또는 죽음을 의미.
* 김소월 :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1902), 오산학교 중학부 입학(1915), 배재고보 졸업(1923), 『영대(靈臺)』 동인 활동(1924), 자살(1934).
◈ 해석
이 시는 후일 발표한 ‘길’의 전편에 속하는 작품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며 낯선 타향에서 유랑의 길을 걷는 화자의 비애감을 표출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자기와 비슷한 정황의 ‘오리나무 위의 산새’를 바라보며 산새와 일체화된다. 새는 평화롭게 살았던 ‘시메 산골’을 그리워하나 높은 고개가 있어 울고, 화자는 ‘삼수갑산’을 그리워하나 ‘고개’로 인해 운다. ‘삼수갑산’을 떠나 눈길을 뚫고 ‘오늘도 하룻길 / 칠팔십 리’를 걸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곳을 향해 ‘육십 리’를 되돌아갈 뿐이다. ‘시메 산골’을 향한 새에게 놓여 있는 ‘영(嶺)’이나, ‘삼수갑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화자에게 놓여 있는 ‘고개’는 모두 장애의 대상이다. 그리움을 잊고자 ‘사나이 속’으로 다짐해 보지만, ‘십오 년 정분’의 ‘삼수갑산’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객관적 상관물인 ‘산새’는 냉혹하고 차가운 ‘눈’ 위에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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