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空中)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여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졌네
초산(楚山) 지나 적유령(狄踰嶺)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동아일보』, 1925.1.1.)
* 김소월 :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1902), 오산학교 중학부 입학(1915), 배재고보 졸업(1923), 『영대(靈臺)』 동인 활동(1924), 자살(1934).
◈ 해석
소월은 소박한 전원시 또는 동시적 경향(‘엄마야 누나야’), 애틋한 사랑시(‘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향토적 서정시(‘삭주구성, 길’), 가족주의시(‘부모’), 설화적 민속시(‘접동새’) 등 넓은 시 세계를 보여준다. ‘서도 여운 - 옷과 밥과 자유’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나 저항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경향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 시는 ‘새, 곡식, 나귀’를 바라보는 관찰자(화자)가 ‘옷과 밥과 자유’를 상실한 채 절망하고 탄식하고 있다. 제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시어의 선택으로 인해 다소 모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은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을 통해 ‘새’에서 ‘옷’을, ‘곡식’에서 ‘밥’을, ‘나귀’에서 ‘자유’를 유추시키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새에게는 ‘털 있고 깃이 있’어 마음대로 ‘공중에 떠다니’지만,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화자는 ‘옷’ 한 벌 갖고 있지 못한 곤궁한 처지이다.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진 ‘밭곡식’과 ‘물벼’는 일제의 토지 수탈 정책으로 인해 농토를 빼앗긴 화자, 즉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초산 지나 적유령 / 넘어서’의 ‘나귀’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화자의 고통스런 모습을 상징한다. ‘너는 왜 넘니?’라는 반문의 마지막 시행에서 굴레와 같은 코뚜레와 ‘짐’으로 표상되는 ‘나귀’를 통해 ‘자유’를 잃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비극적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옷’과 ‘밥’과 ‘자유’라는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빼앗기고 살아가던 당시의 식민지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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