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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현대시의 정수

길 - 김소월 (전문/해석/원문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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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였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定州) 곽산(郭山)

()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고,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고,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문명창간호, 1925.12.)

 

 

* 바이 : 전혀. 전연.

* 김소월 :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1902), 오산학교 중학부 입학(1915), 배재고보 졸업(1923), 영대(靈臺)동인 활동(1924), 자살(1934).

 

해석

전통적인 3음보 율격과 자문자답의 독백 속에서 정처 없이 유랑하는 화자의 서글픈 심정과 고독을 형상화했다.

화자의 암담한 마음을 가마귀, 향수의 정감을 기러기, 방향성을 잃은 모습을 열십자 복판으로, 끝없는 유랑의 인생을 로 제시하여 서러운 마음과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희망과 자유의 공간인 공중과 달리 절망과 부자유의 갈림길인 열십자 복판에 서서 갈 길 하나 없는 화자는 고통스러운 삶에 서러워한다. 삶의 터전인 고향을 상실하고 유랑하는 화자는 오늘은 / 또 몇 십 리 / 어디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등의 시행에서처럼 실제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다.

반영론적 관점으로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으로 인해 농토를 빼앗기고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나 북간도로, 도회지로 떠났던 우리 민중의 삶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표현론적 관점으로는 이곳저곳을 유랑하고 살았던 소월 자신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