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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현대시의 정수

초혼(招魂) - 김소월 (전문/해석/원문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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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시집 진달래꽃, 1925.)

 

 

* 서산마루 : 서쪽에 있는 산의 꼭대기.

* 김소월 :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1902), 오산학교 중학부 입학(1915), 배재고보 졸업(1923), 영대(靈臺)동인 활동(1924), 자살(1934).

 

해석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혼()이 몸을 떠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혼을 불러들여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내려는 간절한 소망이 의례화된 것을 고복 의식 또는 초혼이라 한다. 사람이 죽은 직후 그가 생시에 입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지붕이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죽은 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초혼은 죽은 이를 소생시키려는 의지를 표현한 부름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초혼이라는 전통 의식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극한적 슬픔을 말하고 있다. 1연에서는 산산이 부서진 / 허공중에 헤어진 / 불러도 주인 없는이름을 부르는 슬픔을 드러낸다. 2연에서는 미처 고백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애달픔을 말하고 있다. 3·4연에서는 허무하고 광막한 시적 공간을 제시하여 서럽고 슬픈 화자의 내면을 표현한다. 5연에서는 망부석 모티프를 통해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한을 노래하고 있다.

이름이여’, ‘그 사람이여’, ‘부르노라와 같은 호칭적 진술을 반복하는 부름의 형식을 통해 사랑하던 그 사람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고복 의식에 투영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월의 시가 임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비탄감을 체념적·수동적 어조로 분출해 내는 나약함을 보여주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격정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보여 준다.

임의 갑작스런 죽음을 대하는 화자는 사랑한다는 말도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한한을 가슴속에 새겨 넣고 붉은 해가 걸린 서산마루에 올라 앉아 슬피 우는 사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허탈한 모습으로 그대의 이름을 부른다.’ 임과 나는 결코 이어질 수 없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의 절망적 거리로 멀어져 있다는 현실에 체념하지만, 곧바로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임의 이름을 부르며 임을 그리워하고 있다. ‘은 백제의 가요 정읍사나 박제상의 처가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모티프와 관련이 있다. 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염원, 한의 응결체인 것이다. 시간적 배경으로 제시된 해질 무렵은 밝음(삶의 세계)과 어둠(죽음의 세계)의 경계에 해당한다. 공간적 배경인 은 땅(현실의 세계)과 하늘(영원의 세계)의 경계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계에서 화자는 죽음으로 인한 임과의 이별로 인한 절망적 한계를 인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