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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현대시의 정수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었었더면 - 김소월 (전문/해석/원문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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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즈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손에

새라 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나가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의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 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느른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시집 진달래꽃, 1925.)

 

 

* 벌가 : 벌판가.

* 보습 : 쟁기 끝에 달아 땅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

* 저물손에 : 저물녘에.

* 가느른 : 가는.

* 산경 : 산에 있는 경작지.

* 김소월 :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1902), 오산학교 중학부 입학(1915), 배재고보 졸업(1923), 영대(靈臺)동인 활동(1924), 자살(1934).

 

해석

이 시는 국권 상실이라는 비극적 현실 인식과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저항 의지가 잘 드러난다. 소월은 임의 부재에서 비롯된 한과 체념, 정한과 비애의 전통적 정서를 드러내는 시 세계로 유명하지만 이 시는 그와 달리 현실 인식을 투영한 시 세계를 보여준다.

1연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꿈의 모습과 2연의 땅을 빼앗기고 떠돌며 살아가는 현실을 대조시킴으로써 현실의 고통과 비극을 더욱 극명히 드러낸다.

땅의 상실이라는 상징을 통해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냈으며, ‘우리에게’, ‘우리의와 같은 시어를 통해 민족 모두의 문제로 시적 인식의 폭을 확대하였다. ‘보습 대일 땅’, 즉 농토를 빼앗겨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1920년대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그들에게 희망은 별빛처럼 아득할 뿐이고 가슴에 팔다리에는 희망의 빛이 아닌 물결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러나 화자는 새벽부터 열심히 산비탈을 경작하는 이웃들을 목격하는 순간,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일지도 모르는 절망적 심경을 떨쳐 버리고, ‘나는 나아가리라 / 한 걸음, 또 한 걸음이라 힘차게 외치며 밝은 내일을 향한 미래 지향적 의지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