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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시가의 정수

흥부가, 흥보가, 박타령 (전문/해석/원문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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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가(=박타령)

- 신재효본 -

 

아동방(我東邦)이 군자지국이요, 예의지방이라. 십실지읍(十室之邑)에도, 충신이 있고, 칠세지아도, 효제를 일삼으니, 무슨 불량한 사람이 있것느냐마는,순임금 세상에도 사흉(四凶)이 있었으며 요임금 당년에도, 도척()이 있었으니 아마도 일종(一宗) 여기는 어찌할 수 있것느냐.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 월품에 사는 박가 두 사람이 있었으니 놀보는 형이요 흥보는 아우인데 동부동모 소산이되 성정은 아주 달라 풍마우지 불상급(風馬牛之不相及)이라.

 

사람마다 오장육부로되 놀보는 오장칠부인 것이 심사부(心思腑) 하나가, 왼편 갈비 밑에 병부주머니를 찬 듯하여 밖에서 보아도 알기 쉽게 달리어서 심사가 무론(毋論) 사절하고, 일망무제(一望無際)로 나오는데 똑 이렇게 나오것다.

 

본명방(本命方)에 벌목하고 잠사각(蠶絲角)에 집짓기와 오귀방(五鬼方)에 이사권코, 삼재든 데 혼인하기 동네 주산을 팔아먹고 남의 선산에 투장(偸葬)하기 길 가는 과객 양반 재울 듯이 붙들었다 해가 지면 내어쫓고, 일년고로(一年苦勞) 외상 사경(私耕) 농사지어 추수하면 옷을 벗겨 내어쫓기, 초상난 데 노래하고 역신 든데 개 잡기와 남의 노적에 불지르고 가뭄 농사 물꼬 베기 불붙은 데 부채질, 야장(夜葬)할 때 왜장 치기 혼인뻘에 바람 넣고 시앗 싸움에 부동(符同)하기, 길 가운데 허방놓고 외상 술값 억지 쓰기 전동(顫動)다리 딴죽치고 소경 의복에 똥칠하기 배 앓이 난놈 살구 주고 잠든 놈에 뜸질하기 닫는 놈에 발 내치고 곱사등이 잦혀놓기, 맺은 호박 덩굴 끊고 패는 곡식 모가지 뽑기 술 먹으면 후욕(逅辱)하고 장시간(場市間)에 억매하기 좋은 망건 편자 끊고 새 갓 보면 땀대 떼기 궁반 보면 관을 찢고 걸인 보면 자루 찢기 상인을 잡고 춤추기와 여승보면 겁탈하기 새 초빈(草殯)에 불지르고 소대상에 제청치기, 애 밴 계집의 배통 차고 우는 아이 똥 먹이기 원로행인의 노비 도둑, 급주군(急走軍) 잡고 실랑이질, 관차사의 전령 도둑 진영교졸(鎭營校卒) 막대 뺏기 지관을 보면 패철(佩鐵)깨고 의원 보면 침 도둑질 물 인 계집 입맞추고 상여 멘 놈 형문 치기 만만한 놈 뺨 치기와 고단한 놈 험담하기 채소반에 물똥 싸고 수박밭에 외손질과 소목장(小木匠)이의 대패 뺏고 초라니패 떨잠 도둑 옹기짐의 작대기 차고 장독간에 돌 던지기, 소매치기 도자속금(盜者贖金) 고무도적의 끝돈 먹기와 다담상에 흙 던지기 계골(計骨)할 때 뼈 감추기 어린애의 불알을 발라 말총으로 호아매고 약한 노인 엎드러뜨리고 마른 항문 생짜로 하기 제주병(祭酒甁)에 개똥 넣고 사주병(蛇酒甁)에 비상(砒霜)넣기 곡식밭에 우마 몰고 부형 연갑에 벗질하기 귀먹은 이더러 욕하기와 소리할 때 잔말하기, 날이 새면 행악질 밤이 들면 도둑질을 평생에 일삼으니 제 어미 붙을 놈이 삼강을 아느냐 오륜을 아느냐. 굳기가 돌덩이요 욕심이 족제비라 네모진 소로()로 이마를 비비어도 진물 한 점 아니나고 대장의 불집게로 불알을 꽉 집어도 눈도 아니 깜짝인다.

 

흥보의 마음씨는 저의 형과 아주 달라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존경하며 인리간에 화목하고 친구에게 신의 있어 굶어서 죽게 된 사람에게 먹던 밥을 덜어주고 얼어서 병든 사람 입었던 옷 벗어주기 늙은이의 짊어진 짐 자정하여 저다주고 장마 때 큰물가에 삯 안 받고 월천(越川)하기 남의 집에 불이 나면 세간 지켜주고 길에 보물이 빠졌으면 지켜 섰다 임자 주기 청산에서 백골을 보면 깊이 파고 묻어주며 수절과부 보쌈하면 쫓아가서 빼어 놓기 어진 사람 모함하면 대로 나서 발명하고 애잔한 놈 횡액 보면 달려들어 구원하기 길 잃은 어린아이 저의 부모를 찾아주고 주막에서 병든 사람 본가에 기별하기 계칩불살(啓蟄不殺) 방장부절(方長不折),남의 일만 하느라고 한 푼 돈도 못 버니 놀보 오죽 미워하랴.

 

하루는 놀보가 흥보를 불러,

 

"흥보야 네 듣거라, 사람이라 하는 것이 믿는데가 있으면 아무 일도 안 된다. 너도 나이 장성하여 계집 자식이 있는 놈이 사람 생애 어려운 줄은 조금도 모르고서 나 하나만 바라보고 유의유식(遊衣遊食) 하는 거동을 보기 싫어 못 하것다. 부모의 세간 아무리 많아도 장손의 차지인데, 하물며 이 세간은 나 혼자 장만했으니 네게는 부당이라. 네 처자를 데리고서 속거천리(速去千里) 떠나거라. 만일 지체하여서는 살육지환(殺戮之患)이 날 것이니 어서 급히 나가거라."

 

가련한 흥보 신세 지성으로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전에 비나이다. 형제는 일신이라 한 조각을 베면 둘다 병신 될것이니 외어기모(外禦其侮)를 어이 하리. 동생 신세 고사하고 젊은 아내 어린 자식 뉘 집에 의탁하여 무엇 먹여 살리리까. 장공예(張公藝)는 어떤 사람인고 하니 구세(九世) 동거 하였는데 아우 하나 있는 것을 나가라 하나이까. 척령(鶺鴒)은 짐승이나 금란지의(金蘭之誼)를 알았고 상체()는 꽃이로되, 탐락지정을 품었으니 형님 어찌 모르시오. 오륜지의를 생각하여 십분 통촉하옵소서."

 

놀보가 분이 상투 끝까지 치밀어 그런 야단이 없구나.

 

"아버지 계실적에 나는 생판 일만 시키고서 작은 아들이 사랑옵다 글공부만 시키더니 너 매우 유식하다. 당 태종은 성주로되 천하를 다투어서 그 동생을 죽였으며 조비(曹丕)는 영웅이나 재조를 시기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나 같은 초야 농부가 우애지정(友愛之情)을 알것느냐."

 

구박 출문 쫓아내니 가련하다 흥보 신세 개구 다시 못 하고서 빈손으로 쫓겨나니 광대한 이 천지에 무가객(無家客)이 되었구나.

 

불쌍한 흥보댁이 부자의 며느리로 먼 길 걸어 보았것나. 어린 자식 업고 안고 울며불며 따라갈 제 아무리 시장하나 밥줄 사람 뉘 있으며 밤이 점점 깊어 간들 잠잘 집이 어디 있나. 저물도록 빳빳이 굶고 풀밭에서 자고 나니 죽을 밖에 수가 없어 염치가 차차 없어 가네. 이곳저곳 빌어먹어 한두 달이 지나가니 발바닥이 단단하여 부르틀 법 아예 없고 낯가죽이 두꺼워서 부끄러움 하나 없네. 일년 이년 넘어가니 빌어먹기 수가 터져 흥보는 읍내에 가면 객사에나 사정(射亭)에나 죄기(坐起)를 높이 하고, 외촌을 갈 양이면 물방아집이든지 당산 정자 밑에든지 사처(舍處)를 정하고서 어린 것을 옆에 놓고 긴 담뱃대 붙여 물고 솥솔을 매든지 또아리를 겯든지 냇가나 방죽이나 가까우면 낚시질을 앉아 할 제 흥보의 마누라는 어린 것을 등에 붙여 새끼로 꽉 동이고 바가지엔 밥을 빌고 호박잎에 건건이 얻어 허위허위 찾아오면 염치없는 흥보 소견에 가장태(家長態)를 하느라고 가속이 늦게 왔다고 짚었던 지팡이로 매질도 하여 보고 입에 맞는 반찬 없다 앉았던 물방아집에 불도 놓아 보려 하고 별수를 매양 부려 하루는 이 식구가 양달 쪽에 늘어앉아 헌 옷에 이 잡으며 흥보가 하는 말이,

 

"우리 신세 이리되어 이왕 빌어먹을 테면 전곡(錢穀)이 많은 데로 가볼밖에 수 없으니 포구(浦口) 도방(道傍) 찾아가세 ."

 

일 원산 이 강경 삼 포주 사 법성리 악안 부원다리 부안 줄내 근방을 다 찾아다녀 보니 비린내에 속 뒤집혀 암만해도 할 수 없다. 산중으로 다녀 볼까 우복동 수인성 청학동 백학동 두류산 속리산 순창 복흥 태인 산안 한다는 좋은 데를 다 찾아다녀 봐도 소금 없어 살 수 없다. 고향 근처로 도로 찾아 한 곳을 당도하니 촌명은 복덕이요 인심은 순후한데 빈집 한 칸이 서 있거늘 잠시 주접하여 살아보니 집 꼴이 말 아니어 집 마루에 이슬이 오면 천장에 큰 빗방울. 부엌에 불을 때면 방안은 굴뚝이요 흙 떨어진 욋대 구멍에 바람은 살 쏜 듯이.틀만 남은 헌 문짝에 공석(空石)으로 창호하고 방에 반 듯 드러누워 천장을 망견하면 개천도(開天圖)를 붙인 듯이 이십팔 수를 세어 보고 일하고 곤한 잠에 기지개를 불끈 켜면 상투는 허물없이 앞 토방에 쑥 나가고 발목은 어느새에 뒤안에 가 놓였구나. 밥을 하도 자주 않으니 아궁이 풀을 뽑았으면 한 마지기 못자리는 넉넉히 할 테어든 그렁저렁 여러 해에 자식은 더럭더럭 풀풀이 생겨나고 가난은 버쩍버쩍 나날이 심해 가니 여거 식구 굶어 내기 초상 난 집 개 같구나.

 

흥보의 마누라가 견디다 못하여 가난 타령 섧게 울 제,

 

"가난이야 가난이야 천만고에 있는 가난 아무리 헤아려도 내 위에는 다시없네. 환도소연(環堵蕭然) 불폐풍일(不蔽風日) 도정절(陶靖節)의 가난하기, 내 집보단 대궐이요 삼순구식(三旬九食) 십년일관(十年一冠) 정광문(鄭廣文)의 가난하기 내게 대면 부자로세. 어릉중자(於陵仲子)는 주렸으나 오얏이나 얻어먹고 소중랑(蘇中郞)은 굶을 적에 방석 털을 삼켰으니 오얏을 어디서 보며 방석이 어디 있나. 선산 해()로 이러한가 파묘나 하자 하되 종손이 말릴 테요 귀신이 저희(沮戱)한가 점이나 하자 한들 쌀 한 줌이 없었으니 복채를 낼 수 있나. 애고애고 설운지고 기한이 이러하니 불고염치(不顧廉恥)가 저절로 되네. 여보시오 아기 압시, 형님 댁에 건너가서 전곡간에 얻어다가 굶은 자식을 살려냅세."

 

흥보가 걱정하여,

 

"형님 댁에 건너갓 애긍히 사정하여 돈이되나 쌀이 되나 주시면 좋거니와 어려운 그 성정에 만일 아니 주시옵고 호령만 하시오면 근래 같은 세상 인심에 형님이 실덕될 터이니 안 가는 수가 옳으이"

 

"주시고 안 주시기 천부에 계시오니 청하다가 못되면 한이나 없을 테니 수인사(修人事) 대천명(待天命)에 길을 두고 산으로 갈까 되든지 안 되든지 허사 삼아 가 보시오."

 

흥보가 하릴없어 형의집에 건너갈 제,의관을 한참 차려 모자 터진 헌 갓에다 철대를 술로 감아 노갓끈 달아쓰고 편자는 좀이 먹고 앞춤에 구멍이 중중, 관자 떨어진 헌 망건을 물렛줄로 얽어 쓰고 깃만 남은 베 중치막을 열두 도막 이은 술띠로 시장찮게 눌러 매고 헐고 헌 고의 적삼에 살점이 울긋불긋, 목만 남은 길버선에 짚대님이 별자로다. 구멍뚫린 나막신을 두 발에 잘잘 끌고 똑 얻어 올 걸로 큼직한 오쟁이를 평양 가는 어떤이 모양으로 관뼈 위에 짊어지고 벌벌 떨며 지나갈 제, 저 혼자 돌탄( )하여,

 

"아무리 생각하나 되리란 말 아니 난다. 모진 목숨 아니 죽고 이 고생을 하는구나."

 

형의 문전에 당도하니 그새 성세(聲勢)더 늘어서 가사(家舍)가 장히 웅장하다. 삼십여 칸 줄행랑을 일자로 지었는데 한 가운데 솟을대문 표연히 날아갈 듯. 대문 안에 중문이요 중문 안에 벽문이라 거장한 종놈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쇠털 벙거지 청창()옷에 문문에 수직타가 그 중에 늙은 종은 흥보를 아는구나. 깜짝 놀라 절을 하며 손을 잡고 낙루하며,

 

"서방님 어디 가셔 저 경상이 웬일이요. 수직방에 들어앉아 어한(禦寒)조금 하옵시다."

 

방으로 들어가서 담배를 붙여 주며,

 

"서방님이 저리 될 제 아씨야 오죽하며 그새에 아기는 몇 분이나 더 낳으시고 어찌하여 저꼴이오. 서방님이 나가실 제 우리들 공론한 말이 군자같은 그 심덕에 어디 가면 못 살것나 암데 가도 부자 되지 그럴 줄만 알았더니 세상이 공도(公道)없소."

 

끌끌 혀를 차며 화로의 불을 뒤져 가까이 놓아주니 흥보가 불 쬐고 눈물을 흘리면서 목맺힌 소리로 ,

 

"복 없으면 할 수없네. 아들은 스물다섯, 아씨야 말할게 있나 나 차리고 온 의복은 게다 대면 장갓길. 이 식구 스물일곱 똑 죽게 되었기에 형님전에 고간하여 얻어 가지 왔네마는 문안 일향하옵시고 성정 조금 풀리셨나?"

 

"문안이사 그 앞에가 무슨 병이 얼른하며 좀체 귀신이 꼼짝할까 일생 태평하시옵고 성정 말씀이야 , 서방님 계실 제와 장리(長利)나 더 독하오 두 말씀 할 것 있소. 이번 제사때에 음식장만 아니하고 대전(代錢)으로 놓았다가 도로 쏟아 내옵는데 지난달 대감 제사에 놓았던 돈 한 푼이 제상 밑에 빠졌던지 몇 사람이 죽을 뻔 , 이번은 의사가 또 생겨 싸돈으로 아니 놓고 꿰미채 놓았습죠."

 

흥보가 방에 안장 담배 먹고 불 쬐니 몸이 조금 녹았다가 이 말을 들어보니 등골이 썬득썬득 찬물을 끼얹고 가슴이 두근두근 쥐덫이 내려진 듯하고 머리끝이 꼿꼿하여 하늘로 치솟은 듯 온 몸을 벌벌 떨면서 하는 말이,

 

"저기 들어가지 말고 바로 가는 수가 옳지. 이럴 줄 아는 고로 아예 아니 오쟀더니 아씨에 못 견디어 부득이 왔네그려."

 

그 종이 하는말이,

 

"이 추위에 저 꼴하고 예까지 왔삽다가 못 얻으면 그만이지 무슨 탈이 있으리까. 어서 들어가 보시오."

 

"전일에 계시던 방에 그저 계신가?"

 

"아니오 그 방 옆에 화계(花階)를 꾸며 놓고 화계 앞 굽은 길에 방석이 깔렸으니 그리 휘돌아 가면 외밀이 쌍창을 열고 화류(樺榴)틀 완자영창(卍字映窓) 양편체경 붙인 창에 비슥이 누워 계시오다."

 

" 함께 가서 가르치소."

 

"아니요 못하지요. 이런 위태한 일 만일 아차 하게 되면 나더러 데려왔다 둘이 다 탈이오니 혼자 들어가 보시오."

 

흥보가 하릴없어 이를 꽉 아드득 물고 팔짱을 되게 끼고 죽을 판 살 판으로 가만가만 자주 걸어 초당앞을 당도하니 과연 놀보가 영창문을 반쯤 열고 잘돈피 두루마기 우단 왜단은 무겁다고 양색 단의를 하고 청모관(靑茅冠)비껴쓰고 십상 백통 오동수복(烏銅壽福) 부산장인 맞춤대에 팔장생 별각죽(別刻竹)을 기장 길게 맞추어서 양초(洋草)피워 입에 물고 안석에 비스듬히 누었구나.

 

흥보가 아주 죽기로 자처하고 툇마루에 올라서서 곡진히 절을 하고 떨며 유무를 드려,

 

"떠나온 지 적년(積年)이니 기체 안녕 하옵신지."

 

놀보가 한 손으로 안석을 잡고 배 앓는 말 머리들 듯 비슥이 들어본다. 한어미 배로 나와 함께 커서 장가들고 자식 낳고 함께 살다 쫓아낸 동생이니 아무리 오래되고 형용이 변했던들 모를 리가 있겄나만, 우애하는 사람이라 아주 모르는 체하여

 

"뉘신지요."

 

흥보는 정말 모르고 묻는 줄 알고 갔던 연조(年條)까지 고하여

 

"갑술년에 나간 흥보요."

 

놀보가 무수히 되씹으며 의심하여,

 

"흥보 흥보 일년 새경 먼저 받고 모 심을 때 도망한 놈 그놈은 황보렸다. 쟁기질 보냈더니 소 가지고 도망한 놈 그 놈은 숭보렸다. 흥보 흥보 암만 해도 기억치 못하겄다."

 

흥보가 의사 있는 사람이면 수작이 이러하니 무슨 일이 되겄느냐 썩 일어서서 나왔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을 저 농판 숫한 마음에 참 모르고 그러하니 자세히 일러주면 무엇을 줄 줄 알고 본사를 다 고하여,

 

"동부동모 친형제로 이름자 항렬하여 형님 함자 놀보자 아우 이름 흥보라 하온줄을 그다지 잊으셨소."

 

놀보가 생각하니 다시 의뭉을 떨자 한들 흥보의 하는 말이 밤송이 까놓듯 하였으니 의뭉집이 없었구나. 맞설 밖에 수 없거든,

 

"그래서 동부동모나 이부이모나 친형제나 때린 형제나 어찌 왔는고?"

 

운판 미련키는 흥보 같은 사람 없어 얻으러 왔단 말을 그 말 끝에 할 것이랴. 엔간한 제 구변에 놀보 감동시킬 줄로 목소리 섧게 하고 눈물을 훌쩍이며 고픈 배 틀어쥐고 애긍히 빌어 본다.

 

"형님 나를 내보낸 건 미워함이 아니오라 형님 덕에 유의유식 사람 될 수 없었으니 각 살이 고생하면 행여나 사람될까 생각하여 하였으니 그 뜻 어찌 모르리까." 놀보가 저 추는 말은 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 말은 썩 대답하여,

 

"아무렴."

 

"형님 댁을 떠날 때 부부 손목 서로 잡고 언약을 하옵기를 밤낮으로 놀지말고 착실히 품을 팔아 돈 관이나 모으거든 흰떡치고 찰떡 치고 연계(軟鷄)삶아 위에 얹어 내 등에 짊어지고 찹쌀 청주 웃국 질러 병에 넣어 자네가 들고 형님 댁에 둘이 가서 형님 부처 잡숫는 것 기어이 보고 오세."

 

놀보가 음식 말을 듣더니 침을 삼키며 추어,

 

"그렇지."

 

"단단 약속하였더니 어찌 그리 무복하여 밤낮으로 벌려 해도 돈 한 푼을 못 모으고 원찮은 자식들은 아들이 스물다섯."

 

놀보가 뒤로 물러앉으며 군소리로,

 

"박살할 놈 그 노릇을 해도 밤이면 대고 파니 다른 일 할 틈 있어야지 계집년 생긴 것이 눈이 벌써 음녀거든."

 

"식구가 이러하니 아무런들 할 수 있소 빌어도 많이 먹으니 다시는 빌 데 없고 굶은 지도 원 오래니 더 굶으면 죽겄으니 예 형님전에 왔사오니 전곡간에 조금 주면 스물일곱 죽는 못숨 여상(呂尙)의 일단사(一簞食)요 학철( )의 일두수(一斗水)니 적선을 하옵소서."

 

두손을 비비면서 꿇엎디어 섧게 우니 놀보가 생각한즉 저놈의 쪼된법이 빌어먹기 투가 나서 달래서는 안갈테요 주어서는 또 올테니 죽으면 굶어죽지 맞아죽을 생각을 없게 하는 수가 옳다 하고 부잣집 바람벽에 도적 방비하려 하고 철퇴 철편 마상도며 단단한 몽둥이를 오죽 많이 걸었겄나. 그 중에 단단하고 손잡이 좋은 몽둥이 하나를 내려 손에 들고 엎드려 우는 볼기짝을 에후루쳐 딱 때리고 추상같이 호령한다.

 

"하늘이 사람 낼제 정한 분복 각기 있어 잘난 놈은 부자 되고 못난 놈은 가난하니 내가 이리 잘살기 네 복을 빼앗느냐 뉘게 다가 떼쓰자고 이 흉년에 전곡 주소 목 안으로 소리하며 눈물 방울 흩뿌리면 네 잔꾀에 내 속으랴. 조금 지체 하다가는 잔뼈 찾지 못할 테니 속속 출문 어서 가라."

 

몽둥이를 또 들메니 불쌍한 저 흥보가 제 형 성정을 아는구나 눈물 씻고 절을 하며,

 

"과연 잘못하였으니 너무 진념 마옵시고 평안히 계십소서. 동생은 가옵니다."

 

하직하고 나올적에, 남들은 놀보 가속이 거렁이 에 밥 싸주네 밀가루 퍼서 주고 공알답인 한다 해도 모두 거짓말. 이년의 마음씨는 놀보보다 더 독하여 낭자하고 긴 담뱃대를 물고 안 중문에 비껴 서서 시종을 구경타가 흥보가 나간 것을 보고 제 서방을 나무라,

 

"저러한 떼군놈을 단단히 쳐줘야 다시는 안올텐제 어떻게 때렸길래 여상(如常)으로 걸어가네. 계집은 잘 잡죄지. 다리칼 공알주먹 하면서도 동생은 우애하여 사정을 보았구만."

 

흥보가 형의집에 전곡타러 왔다가 몽둥이만 잔뜩 타고 비틀걸음으로 걸어간다.

 

이때에 흥보 아내는, 여러날 굶은 가장을 형의 집에 보내고서 전곡간에 얻어 오면 굶은 자식 먹일 걸로 여()에 나서 기다린다. 스물다섯 되는 자식 다른 사람 자식 낳듯 한 배에 하나 낳아 삼사 세 된 연후에 낳고 낳고 했어야 사십이 못다 되어 그리 많이 낳겄느냐. 한 해에 한 배씩 한 배에 두셋씩 대고 낳아 놓았구나. 그래도 아이들은 칠칠 일이 지나면은 안기도 하여보고 백 일이 지나면은 업기도 해보고 첫돌이 지나면 손 잡고 걸어보고 삼사 세가 되면 의복 입고 다녔어야 다리에 골이 오르고 몸이 활발할 터인데 이 집 자식 기르는 법은 덕석을 결때에 세 줄로 구멍을 내어 한 줄에 열 구멍씩 첫 구멍은 조그맣고 차차 구멍이 커간다. 한 배에 낳은 자식 둘이 되나 셋이 되나 앉혀 보아 앉으면은 첫 구멍에 목을 넣고 하루 몇 때씩을 암죽만 떠 넣으면 불쌍한 이것들이 울어도 앉아 울고 자도 앉아 자고 똥 오줌이 마려우면 덕석 쓴 채 앉아 누워 세상에 난 연후에 실오라기 하나라도 몸에 걸쳐 본 일 없고 한 번도 문턱 밖에 발 디뎌 본 일 없고 다른 사람 얼굴 보아 소리 들어본 일 없고 그저 앉아 큰 것이라 때묻은 여윈 낯이 터럭이 거칠거칠. 동지섣달 강아지가 아궁에서 자고 난 듯 덕석 쓴 채 새고나면 빼빼 마른 몸뚱이가 대강이를 엮어 놓은 듯 못 먹고 앉아 크니 원 무르게 되어서 큰 놈들은 스무 살 씩 작은 놈들은 열칠팔 세, 남의 자식 같으면 농사하네 나무하네 한창들 벌이를 하련마는 원 늦되어서 부르는게 어메 아비 음식 이름, 아는 것이 밥뿐이로구나. 다른 음식 알려 한들 세상에 난 연후에 먹기는 고사하고 보거나 듣거나 하였어야지. 밥 갖다 줄 때가 조금만 지나면 뭇 놈이 그저 각청으로 ,

 

"어메 밥 어메 밥"

 

하는 소리 비 오렬 제 방죽 개구리 소리도 같고 석양천에 떼매미 소리도 같고 언제라도 밥 들고 들어가도록,

 

"어메 밥 어메 밥"

 

하는구나.

 

이날도 흥보 댁이 여러 자식놈들의 어메 밥 소리에 정신을 못 차려서 벗은 발에 두 손을 불고 이문(里門)밖에 나서보니 흥보가 방장 건너올 제, 지지도 메도 아니하고 빈손 치고 정신 없이 비틀비틀 오는 거동 조창(漕創)배 격졸로서 일천 석 실은 곡식 풍랑에 파선하고 십 차 형신(刑訊) 삼 년 체수(滯囚)의 고생을 걲고 오는 모양. 다섯 바리 고마 마부 관가 봉물을 싣고 갔다 백 냥짜리 말 죽이고 주막 주막 빌어먹어 빈 채 들고 오는 모양 정색이 말 아니어 흥보 댁이 깜짝 놀라 손목을 잡으면서 ,

 

"어찌 그리 지체하고 어찌 그리 심란한가. 오죽 시장하며 오죽 춥겄는가."

 

자세히 살펴보니 쑥 들어간 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간신히 살 가리운 고의 뒤폭 툭 미어져 빳빳 마른 볼기짝에 몽둥이 맞은 자리 구렁이가 감겼는 듯. 흥보 아내 대경하여,

 

"애겨, 이게 웬일인가 저 몹쓸 독한 사람, 굶은 사람을 쳤네 그려."

 

가슴 탕탕 발 구르니 흥보가 달래어,

 

"자네 그게 웬 소린가 형님 댁에 건너가니 형님이 반기시고 좋은 술 더운 밥을 착실히 먹인 후에 쌀 닷 말 돈 석냥을 썩 내어 주시기에 쌀 속에 돈을 넣어 오쟁이에 묶어지고 한출첨배(汗出沾背)오노라니 이 너머 깊은 골짜기에 설금찬 두 사람이 몽둥이 갈라 쥐고 솔밭에서 왈칵 나와 볼기짝을 때리면서, '이놈, 목숨이 크냐 재물이 크냐.' 한 번 호통에 정신 놓아 졌던 것 벗어 주고 겨우 살아 오느라고 서러워서 울었으니 형님은 원망 마소."

 

흥보 댁이 아니 믿고 손뼉을 딱딱치며,

 

"그래도 내가 알고 저래도 내가 아네 몹쓸래라 몹쓸래라 시아주비도 몹쓸래라 하나있는 그 동생을 못 본 지가 몇 해런고. 오늘같이 추운 아침 형 보자고 간 동생의 관망을 보거드면 오려논에 새 볼 터요 의복을 보거드면 구럭 속에 황육(黃肉)든 듯, 얼굴은 부황채색(浮黃菜色) 말소리 기진 함함( ) 여러 해 굶은 줄과 조금하면 죽을 정색 번연히 알 터인데 구완하긴 고사하고 저리 몹시 때렸으니 사람이 할 일인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옛사람의 어우 생각 구름 보면 낮졸은 수유(茱萸)꽃 꺾어 꽂고 소일탄(少一歎)을 한다는데 우리 집 시아주비는 어찌 그리 영독한고 남의 원망 쓸데 없네 모두 다 내 죄로세 국난에 사양상(思良相) 가빈에 사현처(思賢妻). 내 설마 음전하면 불쌍한 우리 가장 못 먹이고 못 입힐까 가장은 처복 없어 나 까닭에 굶거니와 철 모르는 자식 정경 더구나 못 보겠네 짐승은 미물이나 입으로 밥을 물어 자식을 먹여 주며 추우면 날개 벌려 자식을 덮는 것을 나는 어찌 사람으로 수다한 자식들을 굶기고 벗기는고. 각결(却缺)의 아내 같이 밭이나 매어 볼가 양홍(梁鴻)의 아내 같이 물이나 길어볼까 직녀성에 걸교(乞巧)하여 침자품을 팔아 볼까 탁문군의 본을 받아 술장수를 하여 볼까."

 

흥보가 깜짝 놀라,

 

"자네 그게 웬 소린가. 죽었으면 그저 죽지 자네 시켜 술 팔겄나 가사는 임장(任長)이니 내 나서서 품을 팔 터이니 자네는 집에 있어 채전이나 가꾸고 자식들을 길러 내소."

 

흥보가 품을 팔 제, 매우 부지런히 서둘러 상평하평(上平下平)김매기 원산근산 시초베기 먹고 닷 돈 받고 장서두리 십리에 돈 반 승교 메기 신산(新産)석어(石漁) 밤짐 지기 시 매긴 공사 급주 가기 방 뜯는데 조역꾼 담 쌓는데 자갈 줍기 봉산 가서 모내기 품팔기 대구령에 약태전 초상 난 집 부고 전키 출상할 제 명정(銘旌)들기 공관되면 상직하기 대장간에 풀무불기 멋있는 기생 아씨 타관애부(他官愛夫) 편지 전키 부잣집 어린 신랑 장가 들 제 안부(雁夫)서기 들병장수 술짐 지기 초라니 판에 무투 놓기 아무리 벌어도 시골서는 할 수 없다. 서울로 올라가서 군치리집 종노릇 하다가 소주 가마 눌려 놓고 뺨 맞고 쫓겨 와서 매품 팔러 병영에 갔다가는 배교 밀리어서 태장 한 개 못 맞고서 빈 손 쥐고 돌아오니 흥보 아내가 품을 판다. 오뉴월 밭매기와 구시월 김장하기 한 말 받고 벼 훑기와 입만 먹고 방아찧기 삼 삶기 보 막기와 물레질 베짜기와 머슴의 헌 옷 짓기 상고에 빨래하기 혼장가에 진일 하기 채소밭에 오줌 주기 소주 고고 장 달이기 물방아에 쌀 까불기 밀 맷돌 갈 제 집어 넣기 보리 갈 제 망웃 놓기 못자리 때 망초 뜯기 아이 낳고 첫국밥을 제 손으로 해 먹고 운기(運氣)를 방통(放通)하되 절구질로 땀을 내니 한 때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벌어도 늘 굶는구나.

 

항보 댁이 할 수 없어 죽기로 자처하고 복을 못 탄 신세 자탄을 진양조로 섧게 울 제, 맘 있는 사람들은 귀에서도 눈물 난다.

 

"애고 애고 설운지고 복이라 하는 것을 어쩌면 잘 타는고. 북두칠성님이 마련하시는가 제왕 산신님이 점지하신가. 생년 생월 생일 생시 팔자에 매였눈가. 승금상수(乘金相水) 혈토인목(穴土印木) 묘쓰기에 매였는고 이목구비 오악으로 생기기에 매였는가. 적선행인(積善行人) 은악앙선(隱惡仰善) 마음씨에 매였는가. 어찌하면 잘사는지 세상에 난 연후에 불의행사 아니하고 밤낮으로 벌어도 삼순구식(三旬九食) 할 수 없고 일년 사철 헌 옷이라. 내 몸은 고사하고 가장은 부황 나고 자식들은 아사지경(餓死之境) 사람 차마 못보겠네 차라리 자결하여 이런 꼴 안 보고저 애고애고 설운지고."

 

치마끈으로 목을 매니 흥보가 울며 말려,

 

"여보소 아기 어멈 이것이 웬일인가. 자네가 살았어도 내 신세 이러할 제 자네가 죽으면 내 신세는 어떠하고 자식들이 어찌 될까. 부인의 백년신세는 가장에게 매였는데 박복한 나를 얻어 이 고생을 하게 하니 내가 먼저 죽으려네."

 

허리띠로 목을 매니 흥보 아내 겁을 내어 가장 손목 붙들고서 둘이 서로 통곡하니 아주 초상 난 집 되었구나.

 

이때에 중 하나가 촌중으로 지나는데, 행색을 알 수 없어 연년 묵은 중 헐디헌 중 초의불침 부불선(草衣不侵復不線) 양이수견미복면(兩耳垂肩眉覆面) 다 떨어진 청올치 송낙 이리총총 저리 총총 헝겊으로 지은 것을 흠뻑 눌러 쓰고 누덕누덕 헌 베 장삼 율무 염주를 목에 걸고 한 손에는 절로 굽은 철쭉장 한 손에는 다 깨진 목탁을 들고 동냥을 얻으면은 무엇에 받아 갈지 목기짝 바랑 등물 하나도 안 가지고 개미가 안 밟히게 가만가만 가려 디디며 촌중으로 들어올 제 개가 쾅쾅 짖고 나면 두 손을 합장하며 ,

 

"나무아미타불."

 

사람이 말 물으면 허리를 굽히면서

 

"나무아미타불."

 

이집 저집 다 지나고 흥보 문전에 당도터니 양구히 주저하여 울음소리 한참 듣다 목탁을 두드리며 목소리 내어 하는 말이,

 

"거룩하신 댁 문전에 걸승 하나 왔사오니 동냥 조금 주옵소서."

 

목탁을 연해 치니 흥보가 눈물 씻고 애긍히 대답하되,

 

"굶은 지 여러 날에 전곡이 없사오니 아무리 섭섭하나 다른 데나 가보시오."

 

그 중이 대답하되,

 

"주인의 처분이니 그저는 가려니와 통곡은 웬일이오."

 

"자식은 여럿인데 가세가 철빈하여 굶다굶다 못하여서 가련한 부부가 목숨 먼저 죽기 다투어서 서로 잡고 우나이다."

 

저 승이 탄식하여,

 

"어허 신세 가련하오. 부귀가 임자없어 적선하면 오나니 무지한 중의 말을 만일 듣고 믿을 테면, 집터 하나 가르칠게 소승 뒤를 따르시오."

 

흥보가 대희하여 천번 만번 치하하며 대사 뒤를 따라가니 배산임수(背山臨水) 개국하고 무림수죽(茂林修竹) 두른 곳에 집터를 재혈(栽穴)할 제 명당수법(名堂手法)이 완연하다.

 

"감계룡(坎癸龍) 간좌곤향(艮坐坤向) 탐랑득거문파(貪狼得巨門破)며 반월형 일자안(一字案)에 문필봉 창고사(倉庫砂)가 죄우에 높았으니 이 터에 집을 짓고 안빈하고 지내오면 가세가 속발하여 도주(陶朱) 의돈( )에 비길 테요 자손이 영귀하여 만세 유전하오리다."

 

정간에 입주 자리 막대기 넷 박아주고 한 두 걸음 나가더니 인홀불견(人忽不見)이라.

 

도승인 줄 짐작하고 있던 집 헐어다가 그 자리에 의지하고 간신히 지낼 적에 백설한풍 깊은 겨울 벌거벗고 텅 빈 배로 아니 죽고 살아나서 정월 이월 해빙하니 산수경개 장히 좋다. 유색황금눈(柳色黃金嫩)에 꾀꼬리 노래하고 이화백설향(梨花白雪香)에 나비가 춤을 춘다.유작유소(維鵲有巢) 짓는 재주 내 집보다 단단하고 산량자치(山梁雌雉) 유는 소리 너는 때를 얻었도다. 집은 방장 새려는데 소쩍새는 비오비오. 쌀 한 줌이 없는 것을 저 새 소리 '솥 적다' 포곡(布穀)은 운다마는 논이 있어야 농사하지. 대승(戴勝)아 날지마라 누에 쳐야 뽕 따겄다. 배가 저리 고프거든 이것 먹소 쑥국새 목이 저리 갈하거든 술을 줄까 제호조( ) 먹을 것이 없으니 계견을 기르겄나 살해를 아니하니 미록( 鹿)이 벗이로다. 삼월동풍 방춘화시(方春和詩) 비금주수(飛禽走獸) 즐길적에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 비입심상 백성가(飛入尋常百姓家)라 흥보의 움막에 날아드니 흥보가 좋아라고 제비보고 치하한다.

 

"소박한 세상 인심 부귀를 추세하여 적막한 이 산중에 찾아올 이 없건마는 연불부빈가(燕不負貧家)라 주란화각(朱蘭畵閣)은 다 버리고 말만한 이내 집을 찾아오니 반갑도다."

 

저 제비 거동보소 그래도 성조(成造)라고 남남지성( 之聲) 하례하고 좋은 진흙 물어다가 처마 안에 집을 짓고 웅비종자(雄飛從雌) 힐지항지(署之 之) 알을 낳아 새끼 까서 밥 물어다 먹이면서 자모구구(子母 ) 즐기더니 천만 의외 대망()이가 제비 집에 들었거늘 흥보가 깜짝 놀라 정설하며 쫓는구나.

 

"무상한 저 대망아 너 먹을 것 많구나 청초지당(靑草池塘)에 처처와(處處蛙) 춘면불각 처처조(春眠不覺處處鳥)며 허다한 것 다 버리고 구태여 내 집에 와서 제비 새끼 잡아먹노. 한 고조 과대택(過大澤)에 적소검(赤小劒) 드는 칼로 네 허리를 베고지고 남악사(南嶽詞)에 원정하여 신병을 몰아다가 네 큰 목을 자르고저."

 

급급히 쫓고 보니 제비 새끼 여섯에서 다섯 먹고 하나 남아 혈혈히 아니 죽고 날기를 공부타가 대발틈에 발이 빠져 거의 죽게 되었거늘 흥보가 보고 대경하여 제비 새끼를 손에 놓고 무한히 탄식한다.

 

"가긍한 네 목숨 대망에게 안 죽기에 완명으로 알았더니 절각지환(折脚之患)이 웬일이냐 전생의 죄악이냐 잠시의 횡액이냐 삼백 우족(羽族) 많은 중에 죄 없는게 제비로다.네 알이 아니던들 은나라가 없으렷다. 네 턱이 아니면은 만리봉후(萬里封侯) 어찌하리 백곡에 해가 없고 사람을 별로 따라 공량락연니(空梁落燕泥) 문장의 수단이요 연어조량만(燕語雕粱晩)은 정부의 수심이라. 네 경색이 가긍하니 기어이 살리리라."

 

칠산 조기 껍질 벗겨 두 다리를 돌돌 말고 오색 당사로 찬찬 감아 제 집에 넣었더니 십여일 지난 후에 양각이 완고하여 비거비래(飛去飛來) 노는 거동 보기가 장히 좋다. 구만 리 장공에 높이높이 날아 보고 일대 장천 맑은 물을 배로 씩 스쳐 보고 평판한 넓은 뜰에 아장아장 걸어 보고 길게 맨 빨랫줄에 한들한들 앉아 보고 바람에 떨어진 꽃 또기또기 차도 보고 세우에 젖은 날개 슬근슬근 다듬으며 아로새긴 들보 위에 고운 말로 하례하고 해당화 그늘 속에 오락가락 놀아 보니 흥보가 좋아라고 ,집안에 있을 제는 제비하고 소일하고 나갔다 돌아오면 제비 집을 보아 다정히 지내더니 칠월유화(七月流火) 팔월환위(八月환위) 이슬이 서리 되고 금풍이 삽삽하여 수의(授衣) 구월 되어 오니 동방(洞房)에 실솔( )이 울어 깊은 수심을 자아내고 장공에 홍안성은 먼데 소식 띄워 온다.

 

용산에서 술 마시고 망향대(望鄕臺)에 손 보낼 제 섭섭다 우리 제비 고향 강남에 가려 하고 하직을 하는구나. 흥보가 탄식하여 ,

 

"사랑옵다 우리 제비 날 버리고 가려느냐 강남이 멀다 하니 며칠이면 당도할꼬. 명춘에 돌아오거든 부디 내 집 찾아 오라."

 

제비 자도 못 잊어서 나갔다 돌아와서 아리따운 말소리로 이별을 아끼는 듯. 흥보는 본래 서러운 사람이라 눈물보씩이나 흘리고 이별을 하였구나.

 

십이제국(十二諸國)에 갔던 제비 구월 그믐에 돌아와서 시월 초 하룻날 제 장수에게 현신하고 새끼 수를 점고하여 문서 치부(置簿)하는구나. 노나라에 갔던 제비 첫째로 들어가고 조선에 왔던 제비 둘째로 들어갈 제 흥보의 제비가 현신하니 장수가 묻는 말이,

 

"어찌 새끼 하나 까고 두 다리가 봉통졌나?"

 

제비가 여짜오되,

 

"새끼 여섯을 깠삽는데 대망이가 다 먹삽고 다만 하나 남은 것이 대발 틈에 발이 빠져 거의 죽게 되었더니 주인 흥보의 힘을 입어 간산히 갈렸으니 흥보의 어진 덕은 백골난망(白骨難忘) 되나이다."

 

제비 장수 분부하되,

 

"장령을 어기면 번번 탈이 있느니라. 금춘 이월 나갈 적에 그날이 을사일 사불원행(巳不遠行)이니 가지 마라 만류해도 고집으로 나가더니 뱀날 떠났기로 뱀환을 만났구나. 흥보 한 일 생각하니 금세의 군자로다. 보배 하나 갖다 주어 그 운혜를 갚아라. 명춘에 나갈 적에 내게 다시 고하여라."

 

삼동을 다 지내고 이월 초에 행발할 제 흥보가 살린 제비 장수전에 하직하니 보물 하나를 내어 주며,

 

"이것을 물어다가 흥보에게 신전하라."

 

제비가 받아 물고 조선으로 나올 적에 무인 지경 누만 리에 인가를 볼 수 있나. 춘연이 소림목(巢林木) 밤이면 나무에서 자고 날이 새면 다시 날아 삼월 삼일 원정일에 흥보 집 찾아드니.

 

이때에 주인 흥보 제비를 보내고서 일념으로 못 잊어서 왕왕 생각타가 삼삼일이 돌아오니 그 제비가 다시 올까 품팔러도 아니 가고 기다리고 앉았더니 반갑다 저 제비 처마 안에 날아들제 봉통이진 두 다리가 구시용(舊視容)이 완연쿠나.

 

"아지주지."

 

고운 소리로 그린 회포 말하는 듯 흥보가 좋아라고 무한히 정설한다.

 

"너 왔느냐 너 왔느냐 내 제비 너 왔느내 행진강남 수천리 자거자래 너 왔느냐 강남은 가려지(佳麗地)라 어찌하여 내버리고 누추한 이내 집을 허위허위 찾아왔나. 인심은 교사(巧詐)하여 한 번 가면 잊건마는 너는 어찌 신()이 있어 옛 주인을 찾아왔나. "

 

한참 이리 반길 적에 제비 입에 물었던 것을 흥보 앞에 떠 어치니 흥보가 집어 들고 제 아내를 급히 불러,

 

"여보소 아기 어멈, 어서와서 이것 보소. 제비가 물어 왔네."

 

흥보 잭이 들고 보며,

 

"애겨 이게 무슨 씨 아닌가."

 

여인네 소견이라 당찮게 대어 보아,

 

"그것 아마 외씨지."

 

"아닐세. 옛날에 소평(召平)이가 벼슬이 무섭다고 외 심어서 팔았으나 그 땅이 관중(關中)이라 강남은 부당하고 외씨가 이렇게 크겄는가."

 

"그러면 여지( )씬가."

 

"아닐세 양귀비의 고운 얼굴 회색을 내려고 여지만 먹었으나 서촉(西蜀)에서 공 바치니 강남 소산 아니었고 여지씨는 우툴두툴 벌레 먹은 형상이니 옳아 그것이로구나. 약방에서는 백편두(白扁豆)라 한다던가."

 

"그것 강낭콩 아닌가."

 

"아닐세 강낭콩은 휠씬 넓고 가에 흰 테 둘렀나니."

 

"애겨 무슨 글자 있네."

 

"일 주소 어디 보세. 갚을 보() 은혜 은() 박 포() 보은포. 보은포 보은은 충청도 땅 옥천 옆에 , 그러니까 이 제비가 올 적에 공주로 노성으로 은진으로 온 것이 아니라 보은으로 옥천으로 연산으로 dhikTsk. 여러 고을 지나오면 어찌 똑 보은 박씨를 무엇하러 물어 왔나. 보은 대추 좋다 하되, 박 좋단 말 못 들었지. 그러나저러나 강남 것이든지 보은 것이든지 저 먹을 것 아닌 것을 물어 오기 괴이하고 내 앞에다 떨치기 더욱 괴이하니 아무튼 심어 보세."

 

을불재종(乙不裁種) 날을 보아 대장군 안선방을 둥그렇게 깊이 파고 오줌독에 담근 신짝 여러 죽을 쟁이고서 흙과 재를 잘 버무려 단단히 심었더니 입묘(入苗)하는 것을 보니 박은 정녕 박이어든 순이 차차 뻗어 나니 산나무 가지 찍어 드문드문 손을 주어 지붕 위로 올렸더니 화풍감우(和風甘雨) 호시절에 밤낮으로 무성하여 삿갓 같은 넓은 잎이 온 집을 덮었으니 비가 와도 걱정 없고 닻줄 같은 큰 넌출이 온 집을 얽었으니 바람 불어도 걱정 없어 흥보가 벌써부터 박의 힘을 입는구나. 마디마디 핀꽃이 노인의 기상처럼 조촐하다. 박 세 통이 열었는데 처음엔 까마귀 머리만 종자만 보아(甫兒)만 화로만 장단 북통만 폐문(閉門) 북통만 밤낮으로 차차 크니 약한 집이 무너질까 흥보가 걱정하여 단단한 장목으로 박통 놓인 데마다 천장을 괴었더니 그렁저렁 상풍(霜楓) 팔월 단호절(斷壺節)이 당도하니 흥보가 저의 처와 의논을 하는구나.

 

"여보소 아이 어멈 이 아니 좋은 땐가. 우리 동네 사람들은 오례 잡아 서릿쌀 풋돔부 풋콩 까서 밥을 짓네 송편하네 창 앞에 대추 따고 뒤꼍에 알밤 줍고 논귀에서 붕어 잡고 두엄에 집장() 띄워 먹을 것 많건마는 가련한 우리 신세 먹을 것 바이 없네. 세상에 죽는 목숨 밥 한 덩이 누가 주며 찬 부엌에 굶은 아내 조강(糟糠)인들 볼 수 있나. 철모르고 우는 자식 배를 달라 밥을 달라 무엇으로 달래 볼까. 우리는 저 박을 타서 박속은 지져 먹고 박적은 팔아다가 한 끼 구급하여 보세."

 

동네 도끼 얻어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박꼭지는 찍었으나 내릴 수가 없다. 정월 보름에 끌었던 줄 당산 나무에 감겼거늘 그 줄을 풀어다가 박통을 동이고서 흥보는 뒷줄 잡고 처자는 잡아당겨 간신히 내려놓고 박 목수의 큰 톱 얻어 박통을 켜려는데,흥보 꼴 이러하나 속멋은담뿍 들어,

 

"여보소 아이 어멈 평지에 지어도 절은 절이요 성복(成服)술에도 권주가 한다네. 우리의 일년 농사 논을 한가 밭을 한가. 모 심을 제 상사 소리 밭 맬 제 메나리를 불러 볼 수 없었으니 우리는 이 박 타며 박소래나 해보세."

 

"무슨 노래 사설을 알아야 하지."

 

"묵은 사설은 때 묻으니 박 내력을 가지고서 사설 지어 메기거든 자네는 뒤만 맡소."

 

"그럽세."

 

흥보가, 톱질 소리를 메긴다.

 

"어기여라 톱질이야 당겨 주소 톱질이야. 성인이 풍류 질 제 금 석 사 죽 포 토 혁 목 이 박이 아니면은 팔음이 어찌 되리."

 

"일표음(一瓢飮)을 어찌하며,소부(巢父)의 둔세고절(遁世孤節), 이 박이 아니면은, 기산괘표(箕山掛瓢)를 어이하리."

 

"어기여라 톱질이야."

 

"군자의 말 없기는 ,무구포(無口匏)가 그 아닌가. 남화경(南華經)에 있는 박은, 대이무용(大而無用) 아깝도다."

 

" 어기여라 톱질이야."

 

"인간 대사 혼인할 제, 표배(瓢盃)로 행주(行酒)하고,강산의 시주객(施酒客), 거포준이상속(擧匏樽以相屬)이라."

 

"어기여라 톱질이야."

 

" 우리도 이 박 타서, 쌀도 일고 물도 떠서, 가지가지 잘 써보세."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근 슬근 탁 타 놓니, 청의 입은 동자 한 쌍이, 박통 밖에 썩 나서며,

 

"이것이 흥보 씨 댁이요.?"

 

흥보가 깜짝 놀라, 뒤꼭지를 탁탁 치며,

 

"이런 재변(災變)을 보았나. 초나라 유자(柚子)속에, 노인이 바둑 둔다 하되, 박통 속에 동자들이, 찬만고에 처음이라. 내 이름을 어찌 알고, 무엇 하자 와 묻는지.허 참 이 노릇이, 도망케 되었나. 죽자 원 내가 흥보다. 이 사이 풀밭에 누워도, 진드기 한 마리, 붙을 데 없는 사람을, 찾아 무엇 하겄느냐."

 

저 동자가 소매에서, 대모(玳瑁) 쟁반을 내 놓는데,병과 접시 종이봉지, 드문드문 놓였구나. 눈 위에 높이 들어, 흥보 앞에 드리면서, 절하고 여짜오되,

 

"삼신산 열위(列位) 선관이, 모여 앉아 공론 하되, 흥보 씨의 지극덕화(至極德化),금수 까지 미쳤으니, 그저 있지 못하리라. 수종 약을 보냈으니, 백옥병에 넣은 것은, 죽은 사람 혼을 불러, 돌아오는 환혼주(還魂酒),밀화 접시에 놓은 것은, 소경이 먹으면, 눈이 밝는 개안주(開眼酒), 호박 접시에 담은 것은, 벙어리가 먹으면, 말 잘하는 개언초(開言草), 산호 접시에 담은 것은, 귀먹은 이가 먹으면, 귀 열리는 벽이롱(闢耳聾), 설화지(雪花紙)로 묶은 것은, 아니 죽는 불사약(不死藥), 금화지로 묶은 것은, 아니 늙는 불로초(不老草),가지가지 있삽는데, 약 이름과 쓰는 데를, 그 옆에 썼사오니, 그리 알아 쓰옵소서. 가다가 동정(洞庭) 용궁에, 전할 편지 있삽기로, 총총히 갑니다."

 

사흘 굶은 흥보가, 헛인사를 한 번 하여,

 

"저러하신 선동네가, 나 같은 사람을 보려고, 그 먼데서 오셨다가, 아무리 염반(鹽飯)이나, 점심 요기해야지."

 

동자 웃고 대답하되,

 

"세상 사람이 아니기로, 시장하면 구전단, 목마르면 감로수, 연화식(煙火食)을 못 하오니, 염려치 마옵소서."

 

인홀불견이라.

 

흥보가 의사를 내어, 허소(虛疎)한 집구석에, 선약을 혹 잃을까, 조그마한 오쟁이에 모두 넣어 꽉 동여서, 움막방 들보 위에, 씻나락 모양으로, 단단히 얹었구나. 동자를 보낸 후에,

 

"어허 괴이하다."

 

속을 또 굽어보니, 목물(木物)들이 놓였는데, 하나는 반닫이 농만하고 하나는 벼룻집만한데, 주홍 외챌(倭漆)을 곱게 하고, 용 거북 자물쇠를, 단단히 채고서, 초록 당사 벌매듭에, 열쇠 달아 옆에 걸고, 둘 다 뚜껑 위에, 황금 정자가 쓰였는데, '박흥보 개탁(開坼)' 이라.

 

흥보가 보고 장담하여,

 

"내가 비록 산중에 사나, 이름은 멀리 났지. 봉래산 선동들도, 내 이름을 부르더니, 목물 위에 썼구나."

 

돌 다 열고 보니, 하나는 쌀이 가득, 하나는 돈이 가득, 부어 내고 되고 세니, 동서반(東西班) 생성수(生成數), 쌀 은 서 말 여덟되, 돈은 넉 냥 아홉돈, 온 집안이 대희하여,그 쌀로 밥을 짓고, 그 돈으로 반찬 사서 ,바로 먹기로 드는데, 흥보의 마누라가, 살림살이 약게 하나,양식 두고 먹었느냐. 부자 아씨 같으면, 식구가 스물 일곱, 모두 칠 홉을 낼지라도, 이필이 십사 칠칠은 사십구,말 여덟 되 구 홉이니, 채워 두 말 하였으면, 오죽 푼푼하련마는, 평생에 양식이 부족하여, 생긴 대로 다 먹는다. 부부가 품판 삯을, 양식으로 받으나, 돈으로 받아 오나, 한 돈어치 팔아 오나, 두 돈어치 서 돈어치, 사온대로 하여도, 모자라만 보았기로, 서 말 여덟 되를, 생긴 대로 다할 적에, 솥이 적어 할 수 있나. 쇠죽솥 그 중 큰 집을, 찾아가서 밥을 짓고, 넉냥 아홉 돈은, 쇠고기를 모두 사서, 반찬을 하려 할 제, 식칼 도마가 어디있나.

 

여러 자식놈들, 고기를 붙들고서, 낫으로 자를 적에, 고기 결을 알 수 있나. 가로 잘라 놓은 모양, 연목(椽木)머리 잘라 놓은 듯, 기둥 밑 잘라 놓은 듯, 건건이와 양념 등물, 별로 수가 많잖아,소금 흩고 맹물 쳐서, 토정(土鼎)에 삶아 내고, 그릇 없어 밥 푸겄나, 씻도 않은 헌 쇠죽통에, 밥 두 통을 퍼다 놓고, 숟가락은 근본에 없어, 있더라도 찾겄는가, 적연(的然) 물기 안 한 손으로 질통 가에 늘어앉아, 서로 주워먹을 적에, 이 여러 자식들이, 노상 밥이 부족하여, 서로 뺏어 먹었구나. 그리 많은 밥이로되, 큰놈 입에 넣는 것을, 작은 놈이 뺏어 훔쳐, 큰놈도 빼앗기고, 새로 지어 먹었으면, 싸움 아니하련마는 ,악을 쓰며 주먹 쥐어, 작은 놈 볼때기를, 이 빠지게 찧으면서 개 아들놈 쇠 아들놈, 밥통이 엎어지고, 살벌(殺伐)이 일어나되, 무지한 저 흥보는, 밥먹기에 윤기(倫紀) 잊어, 자식 몇 놈이 뒈져도, 살릴 생각은 아예 않고, 그 뜨거운 밥이로되, 두 손으로 서로 쥐어, 세죽(細竹) 방울 놀리는 양, 크나큰 밥덩이가 손에서 떨어지면, 목구멍을 바로 넘어, 턱도 별로 안 놀리고, 어깨춤 눈 번득여, 거의 한 말어치를, 처치한 연후에,왼편 팔 땅에 짚고, 두 다리 쭉 뻗치고, 오른편 손목으로,뱃가죽을 문지르며, 밥더러 농담하기로 들어,

 

"여봐라 밥아, 내가 하도 시장키에, 너를 조금 먹었으나, 네 소위를 생각하면, 대면할 것 아니지야. 세상 인심 간사하여, 추세(趨勢)를 한다 한들, 너같이 심히 하랴. 세도집과 부잣집만, 기어이 찾아가서, 먹다먹다 못다 먹어, 개를 주며 돝을 주며, 학 두루미 때거우를, 모두 다 먹이고도, 그래도 많이 남아, 쉬네 썩네 하는 것을 나와 무슨 원수 있어, 사흘 나흘 예상 굶어, 뱃가죽이 등에 붙고 갈빗대가 따로 나서 두 눈이 캄캄하고,두 귀가 먹먹하여, 누웠다 일어나면, 정신이 어질어질, 앉았다 일어서면, 다리가 벌렁벌렁, 말라 죽게 되었으되, 찾는 일 전혀 없고, 냄새도 안 맡히니, 그럴 도리가 있단 말인가. 예라, 이 괴이한 것, 그런 법이 없느니라."

 

아주 한참 준책(峻責)터니 ,도로 슬쩍 달래어,

 

"내가 그런다고 노여워 안 오려느냐. 어여뻐서 한 말이지, 미워 한 말 아니로다. 친고(親故)가 조만(早晩) 없어,정지후박(情地厚薄) 매였으니, 하상견지 만야(何相見之晩也), 원불상리(願不相離) 지내보세. 애겨애겨 내 밥이야, 옥을 주고 바꿀쏘냐, 금을 주고 바꿀쏘냐. 애겨애겨 내 밥이야."

 

밥이 더럭더럭 오도록, 새 정을 붙이려고, 이런 야단이 없구나.

 

밥하고 수작할 제, 흥보의 열일곱째 아들놈이, 장난을 하느라고 쌀궤를 열어보고,깜짝 놀라 아비를 불러,

 

"애겨 아비 이것 보오. 이 궤 속에 쌀 또 있네."

 

흥보가 의심하여,

 

"그 말이 웬 말이냐 돈 든 궤를 또 보아라."

 

"애겨 돈 또 들었네."

 

"어 그것 맹랑하다."

 

쌀과 돈을 또 부어 내고, 덮었다 열고 보면, 돈과 쌀이 도로 가득가득.

 

"어허 그것 장히 좋다. 그 많은 자식들이, 팔갈아 달려들어, 종일을 부어 내니, 원 전곡이 가량(假量)없다. 자식들은 그 노릇 하라 하고, 뱃심이 든든할 제, 둘째 통을 또 켜는데, 장 굶던 흥보 신세, 뜻밖에 밥 보더니, 아주 밥에 골몰하여, 톱질하던 사설을, 밥으로 메기겄다.

 

"어기여라 톱질이야, 좋을씨고 좋을씨고. 밥 먹으니 좋을씨고. 수인씨(燧人氏)의 교인화식(敎人火食), 날 위하여 가르쳤네."

 

어기여라 톱질이야."

 

"강구노인(康衢老人) 함포고복(含哺鼓腹),나만치나 먹었던가. 엽피남표( 彼南) 전준지희(田畯至喜),나만치나 즐기던가.."

 

"어기여차 톱질이야."

 

"만고에 영웅들도 밥 없으면 살 수 있나. 오자서 도망할 제, 오시(吳市)에 걸식하고, 한신이 궁곤할 제, 표모(漂母)에게 기식(寄食)이라."

 

"어기여라 톱질이야."

 

"진 문공 전간득식(田間得食), 한 광무(光武) 호타맥반( 麥飯), 중한 것이 밥뿐이라."

 

"어기여라 톱질이야."

 

"이 박통을 또 타거든, 은금보패(銀金寶貝) 내사 싫의, 더럭더럭 밥 나오소."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근 슬근 탁 타 놓으니, 온갖 보물이 다 나온다.

 

비단으로 볼작시면, 천문일사황금방(天門日射黃金 ), 번뜻 돋아 일광단, 재도중천만국명(裳到中天萬國明) 산하영자(山下影子) 월광단, 평치수토(平治水土) 하우공덕(夏禹功德)구주토산(九州土産) 공단, 금성옥진(金聲玉振) 높은 도덕, 공부자의 대단, 진시황이 안 무섭네,입이 바른 모초단, 남궁연(南宮宴) 대풍가(大風歌, 금도천지 한단, 팔년간과 지은 죄로, 공 바치던 왜단, 훈금어 삼군무늬, 노들십진 영초단, 나는 짐승 우단, 기는 짐승 모단, 쥐털 모아 짜내니, 불에 씻는 화한단, 일조 낭군(郞君) 이별 후에, 독수공방 상사단, 월중단계(月中丹桂) 꺾었으니, 낙수청운(落水靑雲) 장원주, 가련금야 숙창가(可憐今夜宿娼家), 옥빈홍안(玉 紅顔) 가기주, 팽조(彭祖)와 동방삭이, 오래 사는 수주(壽紬),만동묘(萬東廟) 대보단에, 만세불망(萬世不忘) 명주, 만경창파 바람결에, 번뜻번뜻 낭릉(浪陵)이며, 삼월방춘 좋을씨고, 송이송이 화릉, 성자(姓字)도 좋을씨고. 세세초장(世世楚將) 항라(亢羅),황국단풍 구경 가세,소소금풍(簫簫金風) 추라(秋羅), 천간 열을 세어 보니, 그중 거수(居首) 갑사, 남월북호(南越北胡) 멀다 마소, 주먹 쥐고 뒤쥐사,만물지리무궁(萬物地理無窮)하니,천지대덕(天地大德) 생초, 상풍구월(霜風九月) 축장포(築場圃), 백곡등풍(百穀登豊) 숙초, 뭉게뭉게 구름문 두리두리 대접문,이견대인(利見大人) 용문이며, 낙서 짓던 구문(龜文)이요. 한수춘색(漢水春色) 포도문, 용산축신(龍山逐臣) 국화문, 팔짝팔짝 새발문, 투덕투덕 말굽문, 북포 저포, 항저포 세목, 중목 상목이며, 마포 문포 갈포 등물, 꾸역꾸역 다 나오고, 온갖 보패 다 나온다.

 

금패 호박 밀화며, 산호진주 청강석 유리, 진옥 수만호(水曼胡),대모 서각 고래 수염, 사향 용뇌 우황이며, 용주 한충 이궁전이, 꾸역꾸역 다 나오고, 온갖 쇠가 다 나온다. 황금 적금 백통이며, 오동 주석 놋쇠며, 유납 구리 맑은 쇠, 생동 무쇠 시우쇠. 안방 세간 볼작시면, 삼층 이층 외층장,오합 삼합 자드리, 상자 지롱 목롱 자개 함롱, 뒤주장 앞닫이 혼합경대 쌍룡 그린, 빗접고비 바느질 상자, 반닫이 선반 횃대, 장목 키 큰 병풍 작은 병풍, 온갖 그림 황홀하고, 핫이불 누비이불, 각색 비단 좋을씨고. 화문 보료,우단 요와 녹전 처네, 원앙침을 한데, 모두 괴어 놓고, 왜단 보료 덮었으며, 왕골 세석 쌍봉화문 홍수주(紅水紬)로 꾸몄으며, 지도서로 꾸민 족자, 산호구에 거는 주렴, 방장 휘장 모기장과, 순금 반상 천은 반상, 놋쇠 반상 화기 반상, 시저(匙箸) 주걱 국자며, 밥소래 놋동이 양푼 유합, 탕기 쟁반 열구자 전골판과, 노구솥 냄비 대화로며, 대야 요강 놋광명두 촉대 함께 놓았으며, 사랑 세간 다 나온다.

 

문갑 책상 가께수리, 필연 퇴침 찬합 등물, 사서삼경(四書三經) 백가어를 가득가득 담은 책롱, 오음육률 묘한 잡이, 가지가지 풍류 기계. 흑각장궁(黑角長弓) 유엽전(柳葉箭), 궁대 전동 각기 넣고, 조총 철편 등채 환도, 호반 기계 좋을씨고. 금분(金盆)에 매화 피고, 옥병에 붕어 떴다. 요지반도(瑤池蟠桃) 동정귤을,대화 접시에 담아 놓고, 감로수 천일주를, 유리병에 넣었으며, 당판책(唐板冊)을 보아 가다, 안경 벗어 거기 놓고, 귤즁선(橘中仙) 두던 판에, 바돌 그저 벌였구나. 풍로에 얹은 다관, 붉은 내가 일어나고, 필통 옆에 놓인 부채, 흰 것이 조촐하다.

 

질요강, 침 타구(唾具), 담배 서랍 재떨이며, 오동(烏銅) 빨주 천은 수복, 호박통 각색 연통, 수락 화락 별각죽에, 맵시 있게 맞추어서, 댓 쌈이나 놓았으며, 부엌 세간 헛간 기물, 농사 연장 길쌈 기계, 가지가지 다 나온다. 밥솥 국솥 대철이며, 가마 두멍 쇠소댕 개수통, 구유 살강발과, 물항아리 옹배기며, 소래 시루 항아리, 소반 모반 채반이며, 대소쿠리 나무 함지, 나무 함박 솥솥 조리 쪽박이며, 사기 그릇 사판때기, 재글겅이 부등가리, 부지깽이 부엌비며, 공석 멍석 맷방석, 짚소쿠리 멱서리며, 삿갓 도롱이 접사리며, 쟁기 따비 써레 발판, 괭이 가래 호미 살포,자게 도끼 낫 자귀며, 벼훑이 갈퀴 도리깨 물레, 돌껏 씨아 베틀에, 따른 각색 기계, 빨랫 방망이 다듬잇돌, 홍두깨 방망이며, 심지어 뒷간가래, 다른 나무는 무겁다고, 오동으로 정히 깎아, 나주칠(羅州漆)을 곱게하여, 꾸역꾸역 다 나오니, 이러한 많은 기물, 방이 좁아 놀수 없고, 뜰 좁아 쌀 수 없어, 스물 다섯 자식 중에, 둘은 어려 못 시키고, 스물 세 명 데리고서, 크나큰 동학(洞壑)에다, 비단 따로 포목 따로, 철물 따로 목물 따로, 보패 따로 기명(器皿) 따로, 환부곡식(還付穀食) 다발 짓듯, 각기각기 쌓아 놓으니,적막한 이 산중이, 불시에 종로 되어, 육주비전(六注比廛) 동상전(東床廛), 마상전(馬床廛) 박물판이, 정녕히 되었구나.

 

흥보 아내 그 안목에, 전후에 하나나 본 것이냐. 그래도 가장 네는, 서울에도 갔다 오고, 병영도 다녀오고, 읍내 장에도 다녔으니,매우 박람한 줄 알고, 청한단(靑漢緞) 통말이를, 집어 들고 하는 말이,

 

"애겨, 그것 장히 좋소. 무명보다 광도 넓으이. 이렇게 긴 바디를, 어디서 얻었으며, 짠 여인네 팔뜩도 길던가베. 이 편으로 북을 던지고, 이 편에서 제가 받아, 물은 우리 치맛물, 청대(靑黛)인지 쪽물인지, 청물이 채() 더 곱거든,짜가지고 들여을 텐데, 반들반들한 데하고, 얼룽얼룽한 떼하고, 빛이 어찌 같잖으니."

 

그 껄껄한 두 손으로, 비단무늬 만지거든, 오죽이 붙겄느냐.

 

"애겨, 그것 이상하다. 손가락을 안 놓네."

 

흥보가 문견(聞見) 있어. 수 터진 사람이면,

 

"선전시정( 廛市井) 들도, 비단 짤 줄 모른다네, 어찌 알 것인가."

 

쉽게 대답하련마는, 여편네께 추졸(醜拙)될까, 곧 본 듯이 대답하여,

 

"비단 짜는 여인네는,팔뚝이 훨씬 길지. 그렇기에 대국에서는, 며느리 선볼 적에, 팔뜩을 먼저 보지. 물은 그게 청대물, 청 곱고 안 곱기는, 사회(死灰) 넣기 매였지. 얼릉얼릉한 것들은, 물들여 가지고서 갖풀로 붙였기로, 손가락이 딱딱 붙지."

 

흥보 댁이 딱 돌리어,

 

"애겨 그렇거든, 우리 부부 평생 한이, 의식 없어 한하다가, 먼저 통에 밥 나와서, 양대로 먹었더니,다행히 이 통에서, 옷감이 하 많으니, 눈에 드는 대로, 옷 한 벌씩 해 입세."

 

"내 소견도 그러하네, 언제 바빠 옷 짓겄나. 우리 식구대로, 한 필씩 가지고서 우에서 아래까지, 우선 휘감아 보세."

 

"그럴 일이요. 무슨 비단 가지고서 ,당신부터 감으시오."

 

"우리가 넉넉터면, 큰자식을 성취(成娶)시켜, 전가를 벌써 하고, 건방(乾方)으로 갈 터이니, 제 방위색 찾아, 흑공단으로 감을테세."

 

"나는 무슨 색을 감고."

 

"자네는 곤방(坤方) 차지, 흰 비단을 감을 테지."

 

"옛소 백여우 같게, 4은 비단 감을라네."

 

", 딸이 없으니, 아무렇게나 하소."

 

"큰놈은 박부득이(迫不得已),진방(震方) 차지 청색이요, 그 남은 자식들은, 제 소견에 좋은 대로, 한 필씩 다 감알."

 

흥보 댁이 또 말하여,

 

"저 두 말쨋놈은, 온 필로 감아선,ㄴ 숨막혀 죽을 테니,까치 저고리 뽄으로, 각색 비단 찢어 내어, 어깨에서 손목까지, 잡아매어 드리우세."

 

", 좋으이. 그리 하소."

 

흑공단을 한 필 빼어, 흥보 먼저 감을 적에, 상투에서 시작하여, 뺨과 턱을 휘둘러서, 목덜미 감은 후에, 왼쪽 어깨서 시작하여, 손목까지 내려 감고, 도로 감아 올라와서, 오른쪽 어깨 손목까지 내려 감고,도로 감아 올라와서, 오른쪽 어깨 손목까지, 빈틈없이 감아 올라, 겨드랑에서 불두덩에, 차차 감아 내려와서, 두 다리 갈라 감고, 두 발은 발감개하듯이, 디디고 나서니, 여인네와 자식들은, 상투가 없으니까, 머리 동여 시작하여, 똑같이 감은 후에, 항렬 차례대로, 뜰 가운데 늘어서니, 흥보가 보고 재담하여,

 

"이게 어디 호사냐, 늘어선 조(調)를 보면, 대촌 당산 법수 같고,휘감아 놓은 품은, 진상 가는 청대 죽물, 색을 의논하면, 내 조는 까마귀. 아이 어멈은 고추잠자리. 큰 놈은 쇠새,여러 놈들은 꾀꼬리, 해오라기 새 한 떼가, 늘어선 곳에, 저 두 말쨋놈은, 비단 장수 다니는 길,성황당의 나무로다."

 

온 집안이 대소하고, 흥보가 하는 말이,

 

"이번 호사 다했으니, 이 통 하나 마저 탑세."

 

흥보의 마누라가, 박통을 타갈수록, 밥도 나고 옷도 나니, 마음이 장히 좋아, 이 통을 탈 소리는, 내 사설로 메길 테니, 당신은 뒤만 맡소."

 

흥보가 추어,

 

"가화만사성이라니, 자네 그리 좋아하니, 참 기물이 나오겄네. 어디 보세 잘 메기소."

 

흥보 댁이, 메나리 목청으로, 제법 메겨 ,

 

"여보소 세상 사람, 내 노래 들어보소. 세상에 좋은 것이, 붑밖에 또 있는가."

 

"어기여라 톱질이야."

 

"우리 부부 만난 후에, 서런 고생 많이 했네. 여러 날 밥을 굶고, 엄동에 옷이 없어, 신세를 생각하면, 벌써 아니 죽었을까."

 

"어기여라 톱질이야."

 

"가장 하나 못 잊어서, 이때까지 살았더니, 천신(天神)이 감동하사, 박통 속에 옷밥 났네. 만복 좋은 우리 부부, 호의호식 즐겨 보세."

 

"어기여라 톱질이야."

 

"한 상에서 밥을 먹고, 한 방에서 잠을 잘 제, 부자 서방 좋다하고, 욕심 낼 년 많으리라. 암캐라도 얼른 하면, 내 솜씨에 결딴 나지."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슬 탁 타 놓으니, 천만 뜻밖에, 미인 하나 함교함태(含嬌含態)로 나오는데, 구름 같은 머리털로, 낭자를 곱게 하여, 쌍룡새김 밀화(蜜花)비녀, 느직하게 질렀으며, 매미머리 나비눈썹, 추파 같은 고운 모자(眸子),흑백이 분명하고, 연지뺨 앵도순에, 박씨같이 고운 잇속, 삘기 같은 두 손길, 세류(細柳)같이 가는 허리 응장성식(凝粧盛飾) 금수의상(錦繡衣裳),외씨같이 고운 발씨, 보보생련(步步生蓮) 나오는 양, 해당화 조으는 듯, 모란화 말하는 듯, 쇄옥성(碎玉聲) 으로 묻는 말이,

 

"흥보 씨 댁이요?"

 

흥보가 깜짝 놀라,

 

"하 괴이하여, 당찮은 세간, 그리 많이 나올적에, 만단 의심하였더니 ,임자 아씨 오셨구나."

 

납작 엎드려 절을 하며,

 

"() 좁은 박통 속에, 평안히 오시니까. 이 세간 임자시면, 모두 가져가옵시오. 쌀 서 말 여덟 되와 돈 넉 냥 아홉 돈은, 한끼 양찬하였삽고, 몸에 감던 비단가지 도로 풀어 놓았으니, 한 가지 것 속였으면, 벗긴 쇠자식이요."

 

그 여인이 대답하되,

 

"놀라지 마옵시고, 내 말씀 들으시오. 당 명황(明皇) 천보간(天寶間), 회모일소백미생(回眸一笑百媚生),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하던, 양귀비를 모르시오. 어양비고동지래(漁陽 鼓動地來),서촉으로 가옵다가, 완전아미 마전사(宛轉蛾眉馬前死), 마외역(馬嵬驛)에 죽은 향혼, 천하에 주류하여, 임자를 구하더니, 제비 편에 듣자온즉, 흥보 씨의 적선행인이, 부자가 되었다니 ,천자 서방 내사 소맇의. 육군분발(六軍分發)할 수 없데. 각선강남 부가옹(却羨江南富家翁), 부자의 첩이 되어, 춘종춘유 야전야(春從春遊夜專夜), 무궁행락(無窮行樂)하여 보세."

 

흥보가 저의 가속의 흑각(黑角)발톱, 다목다리만 보았다가, 이런 일색을 보아 놓으니 ,오죽 좋겄느냐. 손목을 덤벅 쥐다, 깜짝 놀라 탁 놓으며,

 

"어디 그것 다루겄냐, 살이 아니고 우무로다. 저런 것 한창 좋을제, 잔뜩 안고 채겼으면, 뭉크러질 텐데 어찌할까."

 

서로 보며 농탕치니, 흥보의 마누라가, 좋은 보물 나올 줄로, 소리까지 메긴 것이, 못 볼 꼴을 보았구나. 부정탄 손님같이, 불시에 틀리는데, 손가락을 입에 넣고, 고개를 외로 틀고, 뒤로 돌아앉으면서,

 

"저것들 지랄하지. 박통 속에서 나온 세간 뉘 것인 줄 채 모르고, 양귀비와 농탕친고. 당 명황은 천자로되, 양구비께 정신 놓아, 망국을 했다는데, 박통 세간 무엇이냐. 나는 열끼 곧 굶어도 시앗 꼴은 못 보겄다. 나는 지금 곧 나가니, 양귀비와 잘 살아라. "

 

흥보가 가난하여, 계집 손에 얻어먹어, 가장 값을 못 했으니, 호령이나 할 수 있나. 곧 빌어,

 

"여보소 아기 어멈. 이것이 웬일인가. 자네 방에 열흘 자면, 첩의 방에 하루 자지. 그렇다고 양귀비가 나 같은 사람 보려 하고, 만리 타국에 나왔으니, 도로 쫓아 보내겄나."

 

처첩하고 수작할 제, 박통 속 우근우근, 무수한 사람들이 꾸역꾸역 나오는데, 남녀 종이 백여 구, 석수 목수 와수 토수, 각색장인 수백 명이, 각기 연장 짊어지고, 돌과 나무 기와들을, 수레에 싣고 썰매에 싣고, 소에 싣고 말에 싣고, 지게도 지고 더미로 메고, 줄로 끌며 지레로 밀며, 방아타령 산타령, 굿 치며 나오는데, 이런 야단이 있느냐. 마른 담배 서너너덧 참, 뚝딱뚝딱 서둘더니, 기와집 수천 칸을, 동학이 가득하게, 경각에 지어놓고,참으로 이상하여, 벽 붙인 그 진흙을, 어느새에 다 말리어, 도배까지 하였구나.

 

원채에 본처 두고, 별당에 양귀비요. 안팎 사랑 십여 채며, 사면 행랑 노속이요. 사랑 사랑 굽어보면, 좌상에 객상만(客常滿),사죽(絲竹)이 낭자하며, 시부(詩賦)로 소일하고,곳간마다 열고 보면, 전곡이 가득가득, 남은 곡식은 노적하고, 흥보는 심심하면, 양귀비 데리고서, 후원의 화초 구경, 옥란간 밝은 달에, 둘이 마주 비껴 앉아,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 한가히 의논하니, 이러한 지상선(地上仙), 어디가 있겄느냐.

 

흥보가, 졸부(猝富)되었단 말이, 사면에 퍼지니, 놀보가 듣고 생각하여,

 

'그것 모두 뺏어다가, 부익부를 하면 좋되, 이놈이 잘 안주면, 어떻게 작처할꼬. 만일 아니 주걸랑, 흥보가 부자로서, 제형을 박대한다고,몹쓸 아전 뒤를 대어, 영문(營門) 염문(廉問) 적어 주고, 출패를 돈 백 먹여, 향중에 발통(發通)하고, 도회까지 붙였으면, 이놈의 살림살이, 단참에 떨어 엎지.'

 

흥보가 사는 동네,급히 물어 찾아가니, 고루거각(高樓巨閣) 오간팔작(午間八作),봉방수와(蜂房水渦) 천문만호(千門萬戶), 즐비하고 웅장하다.

 

대문을 여럿 지나, 안사랑 앞 당도하니, 흥보가 제 형을 보고, 버선발로 내려와서, 공손히 절을 하고, 반기어 하는 말이,

 

"형님이 오십니까. 어서 올라갑시다."

 

방으로 들어가서 상좌에 앉힌 후에, 흥보가 두 손 잡고, 고개를 숙이고서,조용히 사죄한다.

 

"박복한 이놈 신세, 자분필사(自憤必死)하였더니, 선영의 음덕이며, 형님의 덕택으로, 부자가 되었기에, 자식들을 데리옵고, 형님 댁에 건너가서 형님을 뵈온 후에, 형님을 모시옵고, 선산에 성묘하자, 일자를 받았더니, 형님이 먼저 오셨으니, 하정(下情)에 황송하오."

 

놀보의 하는 어조, 좋게 하는 말이라도, 평생 남을 잡아 뜯어,

 

"저러한 부자들이, 우리같이 가난한 놈, 찾아오기 쉽겄는가. 어찌하여 부자가 됐는고.?"

 

흥보가 제비 살려, 박씨 얻어 부자가 된 내력을, 종두지미(從頭至尾) 다 고하고,

 

"한퇴지(韓退之), 취식강남(取食江南)이라 하더니, 나는 좌식강남(坐食江南)이오. 밥이나 옷이나 기물이 다 강남 것이요."

 

놀보가 바로 가기로 들어,

 

"내가 집 일이 많은데, 부득이 나왔더니, 어서 가야 하겄고."

 

흥보가 만류하여,

 

"안으로 들어가서, 처자나 보옵시고, 무엇 조금 잡수어야, 환행차를 하시지요."

 

놀보가 어서 가서, 제비를 청할 테나, 양귀비 구경키로, 흥보따라 들어가니, 제수가 나와서 연접하여, 이놈이 양귀비를 찾느라고, 눈을 휘휘 내둘러, 수숙(嫂叔)이 절한 후에, 제수 먼저 문후하여,

 

"아주버님 뵈온 지가, 여러 해 되었으니, 기체 안녕하십니까."

 

놀보놈의 평생 행세, 제수 보기 종 같아서, 아주머니 고사하고, 하오도 안하더니, 오늘은 전과 달라, 앉은 방 차린 의복, 새 눈이 왈칵 띄어, 홀대(忽待)를 하여서는, 탈이 정녕 날 듯하고, 경대를 하자 하니, 혀가 아니 돌아가서, 매운 것 먹은 듯이, 입을 불며 얼버무려,

 

"허 평안하오."

 

흥보가 종을 불러,

 

"도령님네 게시느냐. 들어들 와 뵈오래라."

 

이것들이 멍석 구멍에, 근본 길이 들었구나. 세 줄로 늘엎디어, 절하고 꿇안으니, 소위 백부 되는 놈이,

 

"모시고들 잘 있더냐." 하든지,

 

"선영의 음덕이다. 좀 잘들 생겼느냐."

 

하든지, 할 말이 좀 많을새, 저 때려 죽일 놈이, 흥보를 돌아보며,

 

"너 닮은 놈 몇 되느냐."

 

흥보 부처의 넓은 소견, 개 같은 놈 탄컸느냐. 묵묵무어(黙黙無語)하는구나.

 

자식들 나간 후에, 또 종을 불러,

 

"일 오너라."

 

이것들이 강남에서 나와서, 아주 열쇠 같지.

 

""

 

"강남 아씨께 여쭈어라."

 

아이(俄而)오 미인 하나가, 들어오는데, 당 명황 같은 풍류 천자도, 정신을 놓았는데, 놀보 같은 상놈 눈에, 오죽 놀랐겄나. 보더니 턱을 채고, 일어서 절 받기를, 큰 제수께 비하면, 갑절이나 공순하다. 양귀비 거동 보소. 옥수를 땅에 짚고, 청산미(靑山眉) 나직하고, 양도순을 반개하여, 옥반낙주성(玉盤落珠聲)으로, 문후를 하는데,

 

289

"먼데 살고 천한 몸이, 이 댁 문하에 의탁한 지, 오래지 않삽기로, 처음 문후 드립니다."

 

놀보놈 제 생전, 처음 보는 미색이요, 처음 듣는 옥음이라, 넉넉잖은 제 언사에, 어찌 대답할 수 없고, 턱 들입다 안고 싶어, 정신을 놓겄구나. 벌벌 떨며 대답하되,

 

"오시는 줄 알았더면, 내가 와서 박 타지요."

 

앵무 같은 아이 종이, 주물상을 올리는데, 소반 기명 음식 등물, 생전에 못 보던 것. 형제 함께 상을 받고, 종년이 옆에 앉아, 술을 연해 권하는데, 놀보가 좋은 술을, 십여배 먹어 놓으니, 취중에 광심이 나서, 참다가 못 견디어, 양귀비의 고운 손목, 썩 들입다 쥐면서,

 

"술 한 잔 잡수시오."

 

다른 계집 같거드면, 뺨을 치며 욕을 하며, 오죽하겄느냐. 안색이 천연하여, 좋게 대답하는 말이,

 

"왜 내가 물에 빠지오."

 

놀보놈이 깜짝 놀라, 손목을 썩 놓으며,

 

"일색뿐 아니시라, [맹자] 많이 읽었구나"

 

양귀비가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가니,흥보 마누라가, 그 뒤 따라 가는구나. 놀보놈이 무안하여, 술상을 물리고서 , 무슨 심사를 부리려고, 사면을 살펴보니, 좋은 비단 붉은 보로, 이불을 덮었거든, 일어서서 쑥 빼내어, 청동 화로 백탄 불에, 비비어 던지면서, 부담을 하는 말이,

 

"계집년은 내외하여, 안으로 가려니와, 이불도 내외하나."

 

저 비단이 불 붙더니, 재 되기는 어림없고, 빛이 더욱 고와 간다. 놀보가 물어,

 

"그게 무슨 비단이냐."

 

"화한단(火漢緞)이오. 불쥐 털로 짠 것이라, 불에 타면 더 곱지요."

 

", 그것 날 다오."

 

"그럽지요."

 

"또 무엇을 가져갈꼬., 너 그 첫 통 속에, 쌀 들고 돈 들었던 궤 둘 다 주려느냐?"

 

"부자 된 밑천이니, 둘 다 어찌 드리겄소, 하나씩 나눕시다. 어떤 것을 가지시려우."

 

"돈궤를 가질란다."

 

"그럽시오. 또 무엇 생각 있소."

 

"다 주면 좋건마는, 내가 바빠 가겄기로, 그것만 가져가니, 다시 생각나는대로,연해 와서 가져가지. 내가 번번이 올 수 없어, 기별을 하는 대로, 칭탁 말고 보내어라."

 

"그리 하오리다."

 

벼룻집 같은 궤를, 화한단 보에 싸서, 제 손수 옆에 끼고 제 집으로 급히 가서 문 안데 들어서며, 종 불러 하는 말이,

 

"짚 댓 뭇 급히 축여, 돈꿰미 한 천 발을, 어서어서 꼬아 오라."

 

안으로 들어가서, 제 계집께 자랑하여,

 

"여보소 흥보놈이, 참 부자가 되었거든. 그놈의 재산 밑천 ,내가 여기 뺏어 왔네."

 

화한단 보를 풀며,

 

"이것은 불에 타면, 더 고운 것이로세."

 

돈궤를 내놓으며,

 

"이것은 돈이 생겨, 비워 내면 또 생기지."

 

궤 문을 열어 놓으니, 돈은 나전돈(신이나 부처께 복을 빌 때 그 삶의 나이 수효대로 놓는돈), 몸뚱이는 구전(舊錢) 꿴 듯, 구부려 누운 길이, 넉냥 아홉 돈만한, 샛누런 구렁이가, 고개를 꼿꼿이 들고, 긴 혀를 널름널름. 놀부부처가 대경하여 ,궤 문을 급히 닫고, 노속을 바삐 불러,

 

"이것을 갖다가, 문 열어 보지 말고, 짚불에 바로 태워라."

 

놀보 계집이 말려,

 

"애겨 그것 사르지 맙쇼. 인제 그런 흉한 것들, 돈 나는 궤 주었다고 자세(藉勢)하면 어쩌게. 구렁이 쌌던 보를, 두어서 무엇 하게. 그 보로 도로 싸서, 급급 환송하소."

 

놀보가 추어,

 

"자네 말이 똑 옳으네."

 

사환을 급히 시켜, 흥보 집에 환송커늘, 흥보가 받아 열고 보니, 거렁이는 웬 구렁이, 돈이 한나 가득하지. 제 복이 아니면은, 할 수 없는 법이었다.

 

욕심 없는 놀보놈이, 제비를 청하기로, 차비를 장만할 제, 이런 야단이 없구나. 신 잘 삼는 사람들을,십여 명 골라다가, 메일에서 돈 공가(工價),삼시 먹고 술 담배를, 착실히 대접하고, 외양간 더그매(지붕 밑과 천장과의 빈 공간), 신 삼을 찰벼 짚을, 여남은 짐 내어놓고,제비받기 수백 짐을, 밤낮으로 걸어 내어, 안채 사랑 행랑이며, 곳간 사당 뒷간채에, 앞되 처마 다 지르고, 제 대가리 상투 밑에, 풍잠(風簪)지른 모양으로, 앞뒤로 갈라 꽂고, 제비 몰러 나갈 적에,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한산석경(寒山石俓)에 올라가고, 설청운산 북풍한(雪靑雲散北風寒),초수오산(楚水吳山)을 다 찾아도, 제비 소식 알 수 없다. 놀보가 제비에, 상사병이 달려들어, 길짐승은 족제비를 사랑하고, 마른 그릇은 모제비('모집'이라고 하는 '고리'의 사투리)만 사고, 음식은 칼제비,수제비만 하여 먹고, 종이 보면 간제비를 접고, 화가 나면 목제비(목접이의 사투리)를 하는구나.

 

그렁저렁 과동하여, 정월 이월 삼월 된, 강남에서 오는 제비, 각 집을 날아들제, 신수 불길한 제비 한 쌍이, 놀보 집에 들어 가니, 놀보가 제비 보고, 집짓기에 수고된다 제가 손수 흙을 이겨, 메주 덩이만씩 뭉쳐, 처마 안에 집을 짓고, 검불을 많이 긁어, 소 외양간 짚 깔 듯이, 담뿍 넣어 주었더니, 미친 제비 아니면은, 게다 알을 낳겄느냐.

 

위가상치(違家相値:깃들일 집을 그릇 듦) 하였기로, 알 여섯을 낳았더니, 마음 비쁜 놀보놈이, 삼시로 만져 보아, 다섯은 곯고 하나 까서, 날기 공부 익힐 적에, 이 흉녕한 놀보 소견, 구렁이가 먹으렬 제, 쫓았으면 저리 될까. 축문 지어 제사하되, 구렁이가 아니 와, 대발 틈에 절각하면, 제가 동여 살려 줄까, 밤낮으로 축수하되,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날기 공부하느라고 ,제 집가에 발 붙이고, 날개를 발발 떨면, 놀보 놈이 밑에 앉아,

 

"떨어지소 떨어지소" 두손 싹싹 비비어도 ,종시 아니 떨어지니, 그렁저렁 점점 커서, 날아가게 되었구나.

 

놀보가 망단(妄斷)하여,절로 절각되기 기다리면, 놓치기 가려(可慮)하니, 울려 놓고 달래리라, 제비 집에 손을 넣어, 제비 새끼 집어내어, 그 약한 두 다리를, 무릎에 대고 자끈 꺾어, 마웃 바닥에 선뜻 놓고, 천연히 모르는체, 뒷집 지고 걸으면서, 목소리를 크게 내여, 풍월을 읊는구나.

 

"황성허조 벽산월(荒城虛照碧山月)이요. 고목은 짖입창오운(盡入蒼梧雲)."

 

앞으로 돌아서며, 제비 새끼 얼른 보고, 생침 맞는 된 목소리로, 제 계집을 급히 불러,

 

"여보소 아이 어멈. 내가 아까 글 읊느라, 미처 보지 못했더니, 제비 새끼가 떨어져,절각이 되었으니, 불쌍해 보겄는가. 어서 감아 살려 주세."

 

저 몹쓸 놀보놈이, 제비 다리 감으렬 제, 흥보보다 더하려고, 대민어 껍질을 벗겨, 세 겹을 거듭 싸고, 당사실은 가늘다고,당팔사 주머니 끈으로, 단단히 동인 후에, 제 집에 도로 넣고,행여나 촉풍(觸風)할까. 섶 두껍고 큰 누더기를, 서너 겹 둘렀더니, 놀보 망칠 제비여든, 죽을 리가 있겄느냐. 십여 일이 지났더니, 절각이 완합하여, 비거비래 출입터니, 연지사일 사소거(燕知社日辭巢去),강남으로 들어갈 제, 놀보가 부탁하여,

 

"여봐라 제비야. 똑 죽을 네 목숨을, 내 재조로 살렸으니, 아무리 짐승인들, 재생지덕(再生之德) 잊겄느냐. 흥보 은혜 갚은 제비, 세 통 박씨를 주었으니, 너는 갑절 더 보태어, 여섯 통 열 박씨를, 부디 쉬이 물고 오라. 삼월까지 있지 말고, 과세 즉시 발행하여, 정월 망전에 당도하면, 기다리기 괴롭잖고, 오죽 좋겄느냐."

 

그 제비 들어가서, 놀보의 전후 내력을, 장수전에 고한 후에, 박씨 하나 얻어 두고, 명년 삼월 기다릴 제.

 

이때에 놀보놈은, 정월 보름에 제비 올까, 앉은 뱅이 삯군 얻어, 강남에 급주 보내 보고, 안질 난 놈 중가 주어, 제비 오는 망을 보아, 제비에게 드는 돈은, 아끼잖고 써낼 제, 그렁저렁 삼월 되어, 자거자래 당상연(自去自來堂上燕),놀보 집에 다시 오니, 놀보놈이 참으로 반겨,

 

"반갑다 내 제비야, 어디 갔다 이제 왔나. 금천씨이조기관(金天氏以鳥紀官),벼슬하러 네 갔더냐. 유소씨 구목위소(有巢氏構木爲巢),집짓기 배우러 네 갔더냐. 오의항구석양사(烏衣巷口夕陽斜),왕사당전(王社堂前)에 네 갔더냐. 기다홍분위황니(幾多紅紛委黃泥),미앙궁중(未央宮中)에 네 갔더냐. 어이 그리 더디 와서, 내 간장을 다 녹이냐. 박씨 물어 왔거들랑, 어서 급히 나를 다오."

 

손바닥을 딱 벌리니,저 제비 거동 보소. 물었던 박씨 하나, 놀보 손에 떨어치고, 두 날개 편편(翩翩)하여, 돌아도 안 보고, 백운간에 날아가니, 놀보 좋아 춤을 추며,

 

"얼씨구나 좋을씨고. 부익부를 하겄구나."

 

저의 가속을 급히 불러, 박씨 주며 자랑한다. 놀보 가속이 박씨 보고,

 

"애겨 이것 내버리소. 갚을 보()자 원수 구(), 바람 풍()자 쓰었으니, 원수 갚을 바람이니, 어디 그것 쓰겄는가."

 

놀보가 대답하되,

 

"자네가 어찌 알어. 원수구라 하는 글자, 군자호구(君子好逑), 짝 구()자와 통용하니, 어떠한 미인으로 내 짝 갚잔 말이로세."

 

놀보 가속이 들어 보니, 이런 죽을 말이 있나. 못 심을 말 연해 하여,

 

"만일 그러하면, 바람 풍자는 웬일인가."

 

"바람 풍자 더 좋지. 태호(太昊) 복희씨는, 풍성(風姓)으로 왕하시고, 순임금의 오현금(五絃琴),남풍시를 노래하고, 문왕 무왕의 장한 덕화는, 천무열풍(天無烈風)하였으며, 주공은 성인이라, 빈풍시( 風詩) 지으시고, 한 태조 수수풍(睡水風),광무황제 곤양풍(昆陽風),와룡선생 적벽풍(赤璧風),대풍이 삼조한(三助漢),장하다 하려니와, 백이숙제 고절충풍(高節淸風), 엄자릉(嚴子陵)의 선생지풍(先生之風),도정절(陶靖節)의 북창청풍(北窓淸風),만고에 맑았으니, 그 아니 좋을쏜가. 우리도 이 박 심어, 습습동풍(習習東風)d 입묘하여, 삼월 남풍에 점점 자라, 우순풍조(雨順風調) 호시절에, 꽃이 피고 박이 열어, 팔월 고풍에 따서 켜면, 보물이 풍풍 나와, 집안이 풍덩풍덩, 근래 풍속 좋은 호사, 갑사 풍차(風遮) 금패 풍잠, 학슬풍안(鶴膝風眼) 떠 괴고, 은안 백마 도춘풍(銀鞍白馬度春風), 풍호무호(風乎舞乎)하여 보고, 풍류랑(風流郞) 좋은 팔자, 밤낮 풍악으로 지낼 적에, 네 귀에 풍경 단 집, 방 안에 병풍 치고, 풍로에 차관(茶罐)얹고, 풍석(風席)없는 자네 배를, 선풍도골(仙風道骨) 내가 타고, 풍편수성침(風便數聲砧), 풍풍 찧었으면, 경수무풍야자파(鏡水無風也自波), 짤끔짤끔 날 것이니, 그만하면 풍족하지, 잔말 말고 심어 보세."

 

책력을 펴놓고, 재종일을 가려내어, 사랑 앞을 급히 파고, 못자리할 거름을, 모두 게다 퍼 쟁이고, 단단히 심었더니, 아침에 심은 것이, 오후가 겨우 되어, 솟아난 큰 박 순이, 수종(水腫)난 놈 다리 만큼.놀보 아내가 깜짝 놀라,

 

"여보시오 아이 압시, 이것 급히 빼 버리오. 은나라 상상곡(詳桑穀), 아침에 났던 것이, 저녁에 큰 아람, 요물이라 하였으니, 이것 정녕 재변이오."

 

놀보가 장담하여,

 

"나물이 되련 것은, 떡잎부터 알 것이니, 사오 삭이 지나가면, 억만금 세간, 그 덩굴에서 날 터이니, 일찌감치 잡죄겄나(잘 되지 않겄는가)."

 

이 박의 크는 법이, 날마다 갑절씩이, 더럭더럭 크는구나. 연거푸 순이 나고 순이 나고, 한 순이 커지기를, 한 아름이 넘는구나. 어디 가 턱 걸치면, 모두 다 무너질 제, 사당에 걸치더니, 사당이 무너져, 신주가 깨어지고, 곳간에 걸치더니, 곳간이 무너지고, 온 동네 집집마다, 부지불각 턱 걸치면,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지면 값을 물고, 무너지면 값을 물고. 그렁저렁 거기에 든 돈이, 삼 사천 냥 넘었으니,놀보가 벌써부터, 박의 해를 보는구나.

 

꽃이 피어 박 맺을 제, 처음에 바로 북통만씩, 십여 일이 지나더니, 나루의 거룻배만, 한 달이 되더니, 조창(漕倉) 세곡선(稅穀船). 여섯 통이 열었거든, 놀보가 좋아라고, 가리키며 국량(局量)하여,

 

"저 통 색이 노란 것이, 속에 정녕 금 들었지, 황금 적금이라니, 은도 누르겄다. 어느 통에 미인 있노. 그 통을 꼭 알면은, 포장으로 둘러 두게."

 

한참 아리 걱정할 제, 허망이라 하는 놈이, 성명 듣고 행사 보면, 명불허득(名不虛得)하였구나. 동네 사람들이 앉으면 놀보 공론.

 

"놀보 같이 약은 놈이, 박에다 쓰는 돈은, 아끼잖고 써 내니, 무슨 꾀를 냈으면, 돈 천이나 쓰게 할꼬."

 

허망이가 장담하여,

 

"나밖에 할 이 없지."

 

놀보 집에 건너가서,

 

"여보소 놀보씨, 박통일을 몰라, 걱정을 하신다니, 나를 어찌 안 찾는가."

 

놀보가 반가이 물어,

 

"자네가 알겄는가."

 

허망이 대답하되,

 

"모수자천(毛遂自薦)하는 말을, 남은 암만 웃더라도, 노형이야 속이겄나. 값 정해 주었다가, 박 타보아 안 맞거든, 그 돈 도로 찾아가소."

 

"그리 할 일일세."

 

맞히면 천 냥 결가(決價),삼백 냥 선폐하고, 박 속 일을 알려 할 제, 허망이 지닌 재조, 복구분법(卜龜分法)이었다. 박통 놓인 좌향(坐向), 복구분법으로 보아 가니, 신통히 맞히거든,

 

첫 통 보고 하는 말이,

 

"모두 다 생금인데, 누가 혹 가져갈까, 노인 한분 수직한다."

 

둘째 통을 한참 보다,

 

"사람이 많이 들었구나."

 

놀보가 옆에 앉아, 손수 장담이 더 우스워,

 

"집 지을 장인들과 종들이 들었나뵈."

 

셋째 통을 보더니,

 

"애겨 계집 많이 있다."

 

"서시(西施)가 나오는데, 계집종들이 따라오나."

 

넷째 통 또 보더니,

 

"풍류기계 많이 있다."

 

"내가 두고 행락하게."

 

다섯째 통을 가리키며,

 

"그 가마 장히 길다."

 

"나하고 서시 둘이 타게."

 

여섯째 통 가리키며,

 

"그 말 장히 좋다."

 

"타고도 다닐 테요, 바 늘여 매어 두지."

 

"대강만 볼지라도 들 것 다 들었으니, 어서 타고 보는 술세."

 

책력을 펴놓고, 납재일(納財日) 가려내어, 박통을 타려 할 제, ()술 빚고 섬밥 짓고, 소 잡히고 개 잡혀서, 먹이를 차린 후에, 팔 힘 세고 소리 좋은, 건장한 역군들을, 잔뜩 먹고 닷 냥 삯에, 삼십 명을 얻어다가, 생금 통을 먼저 탈 제, 놀보가 좋아라고, 제가 소리를 메기는데, 똑 금이 나올 줄로, 금으로 메겨 ,

 

"여보소 세상 사람, 금 내력을 들어 보소, 여수(麗水)에 생겨나고, 흙 속에 묻히어서, 소진(蘇秦)은 구변으로, 많이 얻어 실어 오고, 곽거(郭巨)는 효성으로 묻힌 것을 파내었네."

 

"어기여라 톱질이야."

 

"오행의 가운데요, 팔음의 머리로다. 아부(亞父)를 반간(反間)키로, 진평(陳平)은 흩었는데, 고인이 주는 것을, 양진(楊震)어이 마다 하고."

 

"어기야라 톱질이야."

 

"나는 제비 살렸더니,금 박통 씨 얻었으니, 이 통을 어서 타서, 금이 많이 나오면은, 석숭(石崇)을 부러워할까, 이 동네가 금곡(金谷) 되리."

 

"어기여라 톱질이야."

 

"서시 소군 앉히기로,황금옥을 지어 볼까 자류청총(紫 靑 ) 달리기로, 황금편을 만들고저."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근 슬근 거진 타니, 박통 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나,

 

"맹자 견양혜왕(孟子見梁惠王)하신데,왕왈수불원천리이래(王曰 不遠千里而來)하시니,역장유이이오국호(亦將有以利吾國乎)이까. 마상에 봉한식(逢寒食)하니, 도중에 송모춘(送暮春), 가련 놀보 망하니, 불견상전(不見上典)인가."

 

놀보가 듣고 하는 말이,

 

"어디 그게 박 속이냐, 정녕한 서당이지. 귀글은 당음(唐音)인데, 강포(江浦)가 놀보 되고, 낙교(洛橋)가 상전되니, 그것은 웬일인고."

 

한참 의심하노라니, 박통 문을 반만 열고, 노인 한 분이 나오는데, 차린 복색 제법이어, 헐고 헌 쳇불관(), 빈대 알이 따닥따닥, 생마포 적삼 위에, 개가죽 묵은 배자가, 무릎 밑에 털렁털렁, 구멍이 뻔뻔한 중치막, 아랫단에 황토 묻고, 세전지물(世傳之物) 묵은 바지, 오줌 싸서 얼룽이 지고, 석 자 가웃 홑베 주머니에, 일가산을 넣어 차고, 또닥또닥 기운 버선, 사날(네 날로 된 짚신) 초혜(草鞋)를 들메신고,곱돌조대 중동 쥐고, 개털 모선으로 차면하고, 놀보의 안방으로 제 집같이 들어가니, 놀보가 보고 장담하여,

 

"흥보는 첫 통 탈제, 동자가 왔다더니, 내 박은 첫 통에서, 노인이 나오시니, 그로만 볼지라도, 관동지분(冠童之分)이 있고, 저 주머니 속에 든게, 다 선약이지."

 

바삐바삐 따라가서, 자상히 살펴보니, 토끼 같은 낯에, 반대코가 맵시 있다. 뱁새 눈 병어 입에, 목소리는 장히 커,

 

"이놈 놀보야, 구상전(舊上典)을 모르느냐. 네 할아비 덜렁쇠, 네 할미 허튼 댁, 네 아비 껄덕놈이, 네 어미 허천네, 다 모두 댁 종이라. 병자 팔월에, 과거 보러 서울 가고, 댁 사랑이 비었을제, 흉녕한 네 아비놈, 가산 모두 도둑하여, 부지거처 도망했으니, 적년을 탐지하되, 종적을 모르더니, 조선에 왔던 제비 편에, 자세히 들어 보니, 네놈들이 이곳에서, 부자로 산다기로, 불원천리 나왔으니, 네 처자 네 세간을, 박통 속에 급히 담아, 강남 가서 드난하라."

 

놀보가 들어 보니, 정신이 캄캄하여, 아무렇다 못 하겄다. 아니라 하자 한들, 삼 대나 되었으니, 증인 설 사람없고, 싸워 보자해도, 이 양반 생긴 것이, 불에 넣어도 안 탈 테요, 송사를 하자하니, 좋잖은 그 근본을,읍촌이 다 알터니, 어찌하면 무사할꼬. 저 혼자 국량할 제, 저 양반의 호령 소리, 갈수록 무섭구나.

 

"이놈 놀보야, 구상전이 와 게신데, 네 계집 네 자식이, 문안을 아니하니, 이런 변이 있단 말고. 일 오너라."

 

박통 속이 관문같이,

 

"."

 

범강 장달, 허저 같은 설금찬(힘세고 무섭게 생긴),여러 놈이 몽치 들고, 올가미 바 들고, 꾸역꾸역 퍼나오니, 놀보가 이 광경을 본즉, 죽을밖에 수 없구나.

 

엎디어서 애걸한다.

 

"여보시오 상전님, 이 동네가 반촌이요, 아비 가세 요부(饒富)키로, 착관하고 지내오니, 이 고을 통경 내에, 모모한 양반 댁이, 다 모두 사돈이요. 이 소문이 나게 되면, 소인은 고사하고, 그 양반들 우세오니,방장부절(方長不折) 생각하와, 아무 말씀 마옵시고, 속전(贖錢)으로 바치옵게, 속량(贖良)하여 주옵소서."

 

"그새 여러 십 년, 네 놈의 아비 어미, 네놈과 계집 자식, 드난 아니하였으니, 공돈은 어찌할꼬."

 

"분부대로 하오리다."

 

"네놈 죄상을 생각하면, 기어이 잡아다가, 주야 악역시키면서, 만일 조금 잘못하면, 초당전(草堂前) 마줏대(말말뚝의 사투리), 거꾸로 매어 달고, 대추 나무 방망이로, 두 발목 복사뼈를, 꽝꽝 우려 때려 가며, 부려먹자 하였더니, 네 말이 그러하니, 차역인자(此亦人子),가선우지(可善遇之), 공돈 속전을 바칠 테면, 지체 말고 썩 들여라."

 

놀보가 물어,

 

"몇 냥이나 바치올지."

 

"너 같은 놈을 데리고서, 돈 다소를 다투겄나."

 

조그마한 주머니를, 허리에서 끌러 주며,

 

"아무것을 넣든지, 여기만 채워 오라."

 

놀보놈 제 소견에, ,저 양반 저 억지에, 많이 달라 하게 되면, 이 일을 어찌할꼬, 잔뜩 염려하였다가, 이 주머니 채우자면,얼마 안 들겄거든, 아주 좋아 못 견디어,

 

"예 그리 하오리다."

 

주머니를 가지고서, 제 방으로 들어가서, 돈 열 냥을 풀어 놓고, 한 줌 넣고 두 줌 넣어, 열 줌이 넘어가도, 아무 동정이 없었구나.싸돈이라 그러한가. 양돈으로 넣어 보아, 닷 냥 열 냥 스무 냥,얌만 넣어도 간데없다. 묶음 으로 넣어볼까, 스무 냥씩 묶음 묶음,백 묶음이 넘어가도, 형적이 없어 간다. 이 주머니 생긴 품이, 무엇을 넣으려 하면, 주둥이를 떡 벌려서, 산덩이도 들어갈 듯, 넣고 보면 딱 오무려, 전과 도로 같아진다.

 

"어허 이것 어찌할꼬."

 

돈 천 냥 쟁인 궤를, 궤째 모두 밀어 넣으니, 어디 간지 알 수 없다. 이대로 하다가는,묵은 상전 고사하고, 자신 방매하여, 새 상전 생기겄다. 부피가 많겄기로, 곡식을 넣어 보자, 쌀 백 석을 넣어 보아, 이백 석 삼백 석이, 곧 넣어도 그만이라.벼 천 석 쌓은 노적, 나무가리 짚가리,심지어 뒷간 거름을, 모두 쓸어 넣어도, 발름(볼록)도 아니한다.

 

놀보가 겁을 내어, 주머니를 들고 보아,

 

"이게 어디 구멍 났나."

 

혼솔(홈질한 솔기)밑을 다 보아도, 가죽으로 만든 것이, 바늘 찌를 틈이 없다.

 

"애겨 이것 어찌할꼬, 사람 죽일 것이로다."

 

주머니를 가지고서, 양반전에 다시 빌어,

 

"여보시오 상전님, 이게 무슨 주머니요."

 

"에라 이놈 간사하다. 그럴 리가 왜 있으리. 조그마한 주머니를, 채워 오라 하였더니, 아무것도 아니 넣고, 이 소리가 웬 소린고. 일 오너라 네 저놈 매달아라."

 

놀보가 황겁하여, 애긍히 빈다.

 

"비옵니다 상전님,덕택에 삽시다. 공돈 속전 또 바치지, 이 주머니 챌 수 없소."

 

"네 원이 그러하면, 네 할아비 네 할미, 네 아비 네 어미 네 아들 네 딸년, 네놈까지 일곱 구(),매구에 일천 냥씩, 칠천 냥을 바치라. 만일 잔말을 해서는,네놈을 여기에 넣으리라."

 

주머니를 떡 벌리니, 놀보가 황겁하여, 칠천 냥을 또 바친, 저 양반 그 돈 받아, 주머니에 들여치니, 경각에 간데없다.

 

놀보가 속량터니, 상전이라 아니하고, 생원으로 부르겄다.

 

"여보시오 생원님, 이왕 작처한 일인, 주머니 이름이나, 가르쳐 주옵소서."

 

속 얕은 저 양반이, 먹을 것을 다 먹더니, 마음이 낙락하여, 수작을 좋게 하여,

 

"이 주머니가 능천낭(凌天囊)이다. 천지 개벽한 연후에, 불충불효한 놈들, 무륜무의(無倫無義) 모든 재물을, 뺏어 오는 주머니다."

 

"뉘 것 뉘 것 뺏어 왔소."

 

"어찌 다 말해야. 한나라 양기(梁冀)의 세간, 한 편 귀도 못 차더라."

 

"그 세간은 얼마나 되더라우."

 

"돈 많아도 삼십여 만만이지. 당나라 원재(元載)의 세간, 한 편 귀도 못 차더라."

 

"그 세간은 얼마나 되더라우."

 

"호초(胡椒)만 해도, 팔천 석이지야."

 

"그렇게 뺏어다가, 다 어디다 쓰시오."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친구 구제하는 사람, 형세가 가난하면, 이 재물 노나 주어, 부자 되게 하였지야. 그것도 조선땅이지. 박흥보라 하는 사람, 마음이 인자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되, 형세가 가난키로, 이 주머니에 있는 세간, 절반 남짓 보냈지야."

 

놀보놈의 평생 성기(性氣), 다른 사람 하는 말을, 기어이 뒤받겄다.

 

"만일 그렇다면, 안자(顔子)같은 아성인(亞聖人), 단표누항하였으며, 동소남(董召南)의 출쳔지효,숙수공양(菽水供養) 못 하오니, 주머니에 있는 세간, 왜 아니 보내었소."

 

"그럴 리가 있겄느냐. 많이 많이 보냈더니, 염결(廉潔)하신 그 어른들, 무명지물(無名之物)이라고, 다 아니 받더구나. 누가 허물이 없으리요, 구치면 귀할 터니, 너도 이번 개과하여, 형제간에 우애하고, 인리(隣里)에 화목하면, 이 재물 더 보태어, 도로 갖다 줄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한 장()동안에 한 번씩을, 큰 비가 올지라도, 우장(雨裝)하고 올 것이니, 지질하게 알지 마라."

 

당하에 내리더니, 인홀불견이라.

 

박 타던 역군들이, 이 꼴을 보아 놓으니, 무색이 막심하여, 다시 탈 흥이 없어, 각기 귀가하려 하니, 놀보가 만류하여,

 

"아까 왔던 그 노인이, 상전인 게 아니시라, 은금이 변화하여, 내 지기(志氣)를 받자 하니, 만일 중지하여서는, 저 다섯 통에 있는 보화, 흥보 갖다 줄 것이니, 대명당(大明堂)을 쓰려 하면, 초년패(初年敗)가 똑 있나니, 무안히 알지 말고, 어서 어서 톱질하소."

 

놀보가 설 소리를 또 메기되, 부자만 원하겄다.

 

"어기야라 톱질이야."

 

"인간에 좋은 것이, 부자밖에 또 있는가. 요임금은 어찌하여, 다사(多事)타 마다시고,맹자는 어찌하여, 불인하면 된다신고.다사해도 내사 좋고, 불인해도 내사 좋으이."

 

"어기여라 톱질이야."

 

"범려()의 부자 되기,계연(計然)의 남은 꾀요. 백규의 치산하기, 손오(孫吳)의 병법이라. 재물이 없으면은, 잘난 사람 쓸데없네."

 

"어기여라 톱질이야."

 

"공자 같은 대성인도, 자공이 아니면은, 철환천하(轍環天下) 어찌 하며, 한 태조 영웅이나, 소하(蕭何) 곧 아니면은, 통일천하할 수 있나."

 

"어기여라 톱질이야."

 

"배금문입자달(排禁門入紫 ), 임금도 사랑하고, 일백금전 편반혼(一百金錢便返魂) 귀신도 안 무서워."

 

"어기여라 톱질이야."

 

"이 통을 어서 타서, 좋은 보물 다 나오면, 부익부 이내 형세, 무궁 행락하여 보세."

 

슬근슬근 거의 타니, 필채 꿰미가 박통 밖에, 뽀조록이. 놀보가 보고 좋아라고,

 

"애겨 이것 돈꿰미."

 

쑥 잡아빼어 놓으니, 줄봉사 오륙백 명이, 그 줄들을 서로 잡고, 꾸역꾸역 나오더니, 그 뒤에 나오는 놈, 곰배팔이 앉은뱅이, 새앙손이 반신불수, 지겟다리에 발 디딘 놈, 밀지(蜜紙)로 코 덮은 놈, 다리에 피칠한 놈,가슴에 구멍난 놈, 얼어 부푼 낯바닥에, 댕강댕강 물든 놈,입술이 하나 없어, 잇속이 앙상한 놈, 다리가 통통 부어, 모기둥만씩한 놈,등덜미가 쑥 내밀어, 큰 북통 진 듯한 놈, 키가 한 자 남짓한 놈, 입이 한쪽으로 돌아간 놈, 가죽 관을 쓴 놈, 쳇불관 쓴 놈, 패랭이 꼭지만 쓴 놈, 웅장건(熊掌巾) 끈 달아 쓴 놈, 물매 작대 멜빵만 진 놈, 감태(甘苔)한 줌, 헌 공석 진 놈, 온몸에 재 칠하여, 아궁에서 자고 난 놈,헐고 헌 고의 적삼, 등잔 그을음이 질음한 놈, 그저 꾸역꾸역 나오는데, 사람들 모은 수가 대구 시월령 만한데, 각청으로 "놀보 불러 놀보 불러." 이런 야단이 없구나. 그 중에도 영좌(領座) 고원(雇員) 있어, 영좌라 하는 영감, 나이 오십 남짓한데, 다년 과객질에 ,공것 먹는 수가 터져, 힘도 별로 안 들이고, 예상으로 하는 수작, 사람 조질 말이로다.

 

헌 갓에 벌이줄(물건을 버티어서 이리저리 얽어매는 줄),헌 중치막 방울띠, 휠씬 긴 담뱃대를, 한가운데 불끈 쥐고, 점잖게 나오더니, 동무들을 책망하여,

 

"왜 이리들 요란하냐. 한 달 두 달 내에, 끝날 일이 아닌 것을, 어찌 그리 성급한고. 아무 말도 다시 말고, 내 영대로 시행하지."

 

놀보 안채 대청 위에, 허물없이 올라앉아, 끝없는 반말 소리,

 

밖주인이 어디 있노. 이리 와서 내 말 듣지."

 

놀보가 전 같으면, 이러한 과객보고,오죽 호령할 터로되, 여러 걸인 호령 소리에, 정신을 놓았다가, 이분의 하는 것이, 잠잖아 보이거든, 원정(原情)을 하여보자,올라가 절한 후에, 공순히 묻삽기를,

 

"본댁은 어디온데, 무슨 일로 오셨으며, 저리 많은 동행 중에, 성한 사람 없사오니, 어찌하여 오셨나이까."

 

영좌가 대답하되,

 

"우리들 온 내력은, 오륙 일 쉰 후에, 종차(從此) 수작하려니와, 수다한 동행들이, 저 좁은 박통 속에서, 여러 날 고생하여, 기갈이 자심하니, 좋은 안주 술 대접과 ,갖은 반찬 더운 점심, 정결한 사처방에, 착실히 대접하지."

 

놀보가 깜짝 놀라, 애긍히 비는 말이,

 

"저 많으신 손님네들, 주식 대접할 수 있소. 대전(代錢) 차하(差下) 하옵시다."

 

영좌가 대답하되,

 

"손님 대접하는 법이, 밥상 하나 하자 하면, 접시 일곱 종자 둘, 조칫보(김칫그릇)에 갖은 반상, 반찬 값만 할지라도, 댓 냥이 넘을 테나, 주인의 폐를 보아, 댓 냥으로 작처하니, 손님 한 분에 매일의 식가 석 냥, 술 담배 값 한 돈씩, 파전(破錢) 소전(小錢) 섞이잖게, 착실히 차하하라."

 

놀보가 하릴없어, 삼천 냥을 내어 놓고, 한 끼식가 차하하니, 몇 냥 어니 남았구나.

 

놀보가 다시 빌어,

 

"귀하신 손님네를, 여러 날 만류하여, 쉬어가면 좋을 테나, 내 집 십 배 더 있어도, 못다 앉힐 터이오니, 오신 내력 말씀 쉽게, 작처하옵시다."

 

"주인 말이 그러하니, 아무렇게나 하여 볼까, 우리 나라 벼슬 중에, 활인서(活人署) 마름 있어, 관원 서리 고자(庫子)들이, 누만 냥 돈 식리하여, 수많은 우리 걸인, ()를 주어 먹이더니, 주인 조부 덜렁쇠가, 삼천 냥 보전(保錢)쓰고, 병자년에 도망하여, 부지거처되었으니, 매년 삼리 삼삼 구를, 본전에서 범용되어, 그렁저렁 수십 년에, 본전이 다 없어서, 우리 반료(頒料) 못 하더니, 조선 왔던 제비 편에, 주인 소식 자세히 듣고, 활인서에 백활(白活)한즉, 관원이 분부 내어, '만리타국에 있는 놈을 패문왕복(牌文往復) 번거로우니, 너희들이 모두 가서, 축년(蓄年) 변리(邊利) 받아 오되, 만일 완거(頑拒)하거들랑, 그놈의 안방에가, 먹고 반 듯 누었어라 .' 분부 모시고 나왔으니, 갚고 안 갚기는, 주인의 소견이지."

 

놀보가 기가 막혀, 공순히 다시 물어,

 

"우리 조부 그 돈 쓸제, 수표 착명(着名) 증인 있소."

 

"있지."

 

"여기 가져오셨습니까."

 

"안 가져왔지."

 

"수표가 있더라도, 신사면(信士面)이 중한데, 수표도 안 가지고 빚 받으러 오셨습니까."

 

"일년쯤 되면, 강남 왕래할 터이니, 우리 식구 예서 먹고, 동행 하나 보내어서, 수표를 가져 오지."

 

놀보가 들을수록, 사람 죽일 말이로다. 무한히 힐난하다, 갑절로 육천 냥에, 사화(私和)하여 보낼 적에, 영좌가 하는 말이,

 

"갖다가 바쳐 보아, 당상께서 적다 하면, 도로 찾아올 것이니, 홀홀(忽忽)히 떠난다고, 섭섭히 알지 마소."

 

일시에 간데없다.

 

걸인들을 보낸 후에, 셋째 통 또 타렬 제, 놀보 저도 무안하여, 아니리를 연해 짜,

 

"선흉후길(先凶後吉)이요,고진감래요, 삼령오신(三令五申) 이라니, 무한 좋은 보화, 이 통 속엔 꼭 들었지."

 

박 타는 역군 중에, 입바른 사람이 있어, 옆구리에 칼이 와도, 할 말은 똑하겄다.

 

"여보게 놀보 씨. 이 통 설소리는, 내가 메겨 어떤가."

 

놀보가 허락하니, 놀보를 꾸짖는, 박 사설로 메기겄다.

 

"요순우탕(堯舜禹湯) 태평시에, 인심들이 순박, 공맹안증(孔孟顔曾) 성인님은, 행실들이 검박, 밀화 늙어 호박, 구슬 발은 주박(珠箔)."

 

"어기여라 톱질이야."

 

"근래 풍속 그리 소박(疎薄),사람마다 모두 경박, 남의 말을 대고 타박, 형제간에 몹시 구박."

 

"어기여라 톱질이야."

 

"흥보의 심은 박, 제비 은혜 받는 박, 놀보의 심은 박, 제비 원수 갚는 박, 양반 나와 바로 결박, 결인 나와 무수 공박."

 

"어기여라 톱질이야."

 

"네 정경이 저리 민박(憫迫),네 사세가 하도 망박(忙迫),불의로 모은 재물, 부서지기 쪽박."

 

슬근 슬근 거의 타니, 사당(寺黨)의 법이란 게, 그 중에 연계사당이, 앞서는 법이었다.

 

허튼 낭자 때 묻은 옷, 박통 밖에 썩 나서니, 놀보가 깜짝 놀라,

 

"애겨 서시가 나오느라고, 하님 먼저 나온다."

 

내외를 시키려고,금잡인(禁雜人)이 대단하여, 울력꾼을 모두 다, 문 밖으로 보내고서 ,휘장이 모자라니, 홑이불 이불 안팎, 돗자리 문발이며, 심지어 공석까지,담뿍 둘러 막았더니, 그 뒤에 서시들이,꾸역꾸역 나오는데, 낭자도 했으며, 고방머리 곱게 빼고, 주사(紬絲) 수건 자지(紫地) 수건, 머리도 동였으며, 연두색 저고리에, 긴 담뱃대 물었으며, 따라오는 짐꾼들은, 곱게 결은 오쟁이에, 이불보 요강 망태, 기름병도 달아 지고, 꾸역꾸역 나오더니, 놀보 보고 절을 하며,

 

"소사(小寺) 문안이요, 소사 등은, 경기 안성 청룡사(靑龍寺), 영남 하동 목골이며, 전라도로 의론하면, 함열에 성불암(成佛菴),창평에 대주암, 담양 옥천 정읍 동복, 함평에 월량사, 여기 저기 있삽다가, 근래 흉년에 살 수 없어, 강남으로 갔삽더니, 강남 황제 분부 내어,

 

'네 나라 박놀보가, 삼국에 유명한 부자라니, 박통 타고 그리 가서, 수천 냥을 뜯어내되, 만일 적게 주거들랑, 다시 와서 아뢰어라.' 분부 모시고 나왔으니,후히 차하하옵소서."

 

놀보가 하릴없어, 제 손수 눅이겄다.

 

"나오던 중 상()이로다. 너희들 장기대로, 염불이나 잘하여라."

 

사당의 거사 좋아라고, 거사들은 소고 치고, 사당의 절차대로, 연계사당이 먼저 나서, 발림을 곱게 하고,

 

"산천초목이 다 성림한데, 구경 가기 즐겁도다. 어야여 장송은 낙락,기러기 훨훨, 낙락장송이 다 떨어진다. 성황당 어리궁 뻐꾸기야, 이 산으로 가며 어리궁 뻐꾹, 저 산으로 가며 어리궁 뻐꾹."

 

"야 잘 논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초월이오."

 

또 한 년이 나서면서,

 

"녹양방초(綠楊芳草) 녹양방초, 다 저문 날에, 해는 어찌 더디 가며, 오동야우(梧桐夜雨) 성긴 비에, 밤은 어찌 길었는고, 얼싸절싸 말 들어 보아라. 해당화 그늘 속에, 비 맞은 제비같이, 일 흔들 저리 흔들, 흔들흔들 넘논다. 이리 보아도 일색이요, 저리 보아도 절색이라."

 

"얘 잘 논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구광선이요."

 

또 한 년 나오더니,

 

"갈까 보다 갈까 보다, 잦힌 밥을 못 다 먹고, 임을 따라 갈까 보다. 경방산성(傾方山城) 빗근길로, 알배기 처자, 앙금 살살, 게게 돌아간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일점홍이오."

 

또 한 년이 나오면서,

 

"오독도기 춘향 춘향월에, 달은 밝고 명랑한데, 여기다 저기다 얹어 버리고, 말이 못 된 경()이로다. 만첩 청산에 쑥쑥 들어가서, 휘어진 버드나무 ,손으로 주르륵 훑어다가, 물에다 두둥두둥 실실실, 여기다 저기다 얹어 버리고, 말이 못 된 경이로다."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설중매요."

 

또 한 년 나오며, 방아타령을 하여,

 

"사신 행차 바쁜 길에, 마중참이 중화(中和)로다.산도 첩첩 물도 중중, 기자(箕子)왕성이 평양이라. 청천에 뜬 까마귀, 울고 가니 곽산(郭山),모닥불에 묻은 콩이, 튀어 나니 태천(泰川)이라, 찼던 칼 빼어 놓으니, 하릴 없는 용천검(龍泉劍),청총마를 칩떠(들입다) 타고, 돌아오니 의주(義州)로다."

 

"잘 논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월하선이요."

 

또 한 년 나오면서, 잦은 방아타령을 하여,

 

"유각골 처자는, 쌈지 장수 처녀, 왕십리 처자는, 미나리 장수 처녀, 순담양(淳潭陽) 처자는, 바구니 장수 처녀, 영암 강진 처자들은, 참빗 장수 처녀, 에라뒤야 방아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하옥이요."

 

한참 서로 농탕치니, 놀보 댁이 강짜가 났구나.

 

사양머리 동강치마, 속곳 가래 풀어 놓고, 버선발 평나막신, 왈칵 뛰어 냅다 서서, 놀보 앞에 앉으면서,

 

"나는 누구만 못하기에, 사당보고 미치느냐."

 

놀보가 전 같으면, 볼에 금이 곧 날 터나, 사당에게 우세될까, 미운 말로 별시(別視)하여,

 

"차린 의복 생긴 맵시, 정녕한 사달들이, 예쁘기도 하거니와, 강남 황제가 보냈으니, 홀대할 수 있겄느냐."

 

매명에 일백 냥씩, 후히 주어 보낸 후에, 설소리꾼에게다, 분을 모두 풀어,

 

"방정스런 저 자식이, 톱질 사설 잘못 메겨 ,떼 방정이 나왔으니, 물러가라 내 메길게."

 

놀보가 분을 내어, 통사설로 메기겄다.

 

"헌원씨(軒轅氏) 작주거(作舟車), 타고 나니 이제불통(以濟不通),공부자 교불권(敎不倦), 칠십 제자가 육예(六藝) 신통(身通)."

 

"어기여라 톱질이야."

 

"한나라 숙손통(叔孫通), 당나라 굴똘통, 옛글에 있는 통, 모두 다 좋은 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어찌하다 이내 박통, 모두 다 몹쓸 통, 첫 번 통 상전 통, 둘째 통 걸인 통, 셋째 통 사당 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세간을 다 빼앗기니, 온 집안이 아주 허통, 우세를 하도하니, 처자들이 모두 애통, 생각하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절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어서 썰세 넷째 통, 이는 분명 세간 통, 그렇지 않으면 미인 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내 신수가 아주 대통, 어찌 그리 신통, 뺏뜨려라 이내 죽 통, 흥보 보면 크게 호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근슬근 거의 타니, 열대여섯 살 된 아이가 노랑 머리 갈매 창옷, 박통 밖에 썩 나서니, 놀보가 장히 반겨,

 

" 애겨 이것 선동이지."

 

"삼십 넘은 노총각이, 그 뒤 따라 또 나오니, 볼보가 더 반겨,

 

"동자가 한 쌍이지."

 

"그 뒤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나오는디, 앞에 선 두 아이는, 검무(劍舞)쟁이 북잡아라,풍각쟁이 각설이패, 방정스런 외초라니 등물이, 짓끌어(지껄이며) 나오더니, 놀보의 안마당을, 장판으로 알았던지, 휠씬 넓게 자리잡고, 각 차비(差備)가 늘어서서,

 

가얏고 "둥덩둥덩."

 

통소 소리 "띠루띠루."

 

해적(奚笛)소리 "고깨고깨."

 

북 장단에 검무 추며, 번개 소고 벼락 소고 "동골동골."

 

한 편에서는 각설이패가 덤벙이는데, 배코(머리털을 밀어버린 자리) 밑 훨씬 돌려, 숭늉 쪽박 엎어 논 듯, 가로 약간 남은 머리, 개미 상투 얹듯 하여, 이마에 딱 붙이고, 전라도 장타령을 시작하여,

 

"뚤울울 돌아왔소. 각설이라 멱서리라, 동서리를 짊어지고, 뚤뚤 몰아 장타령, 흰 오얏꽃 옥과장, 노란 버들 김제장, 부창부수(夫唱婦隨) 화순장, 시화연풍 낙안장, 쑥 솟았다 고산장, 철철 흘러 장수장, 삼도 도회 금산장, 일색 춘향 남원장, 십리 오리 장성장, 애고애고 곡성장, 누릇누릇 황육전(黃肉廛),펄펄 뛰는 생선전, 울긋불긋 황화전(荒貨廛),파싹파싹 담배전, 얼걱덜걱 옹기전, 딸각딸각 나막신전."

 

한 놈은 옆에 서서, 두 다리를 벗디디고, 허릿짓 고갯짓, 살만 남은 헌 부채로, 뒤꼭지를 탁탁 치며,

 

"잘 한다 잘 한다, 초당 짓고 한 공부가, 실수 없이 잘한다. 동삼(童參)먹고 한 공부가, 진기(津氣)있게 잘도 한다. 기름 되나 먹었느냐, 미끈미끈 잘 나온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훤하게도 잘 한다 . 뱃가죽도 두껍다, 일망무제(一望無際)로 나온다. 내가 저리 잘할 적에, 네 선생이 오죽하랴. 네 선생이 나로구나. 잘 한다 잘 한다. 목 쉴라 목 쉴라, 대목장에 목 쉴라. 가만가만 섬겨라(종알거려라). 너 못하면 내가 하마."

 

한참 이리 덤벙일 제,

 

한 편에서는, 고사(告祀)초라니가 , 덤벙이는데, 구슬 상모(象毛) 담벙거지, 되게 맨 통 장고를, 턱밑에다 되게 매고,

 

"꽁그락공 꽁그락꽁."

 

"예 돌아왔소, 구름 같은 댁에, 신선 같은 나그네 왔소. 옥같은 입에, 구슬 같은 말이, 쏙쏙 나오."

 

"꽁그락 꽁."

 

"예 오노라 가노라 하니, 우리 집 마누라가, 아주머님전에, 문안 아홉 꼬장이,평안 아홉 꼬장이, 이구 십팔 열여덟 꼬장이, 낱낱이 전하라 하옵디다."

 

"꽁그락 꽁."

 

"허페."

 

"통영 칠한 도리반에,쌀이나 담아 놓고, 귀 가진 저고리, 단 가진 치마, 명실 명전 가진 꽃반,고사나 하여 보오."

 

"꽁구락 꽁꽁."

 

"허페페."

 

"정월 이월에 드는 액은, 삼월 삼일에 막아 내고, 사월 오월에 드는 액은, 유월 유두에 막아내고, 칠월 팔월에 드는 액은, 구월 구일에 막아 내고, 시월 동지 드는 액은, 납월(臘月) 납일에 막아 내고, 매월 매일에 드는 액은, 초라니 장구로 막아 내세."

 

"꽁그락 꽁 허페."

 

놀보가 보다 하는 말이,

 

"저런 되방정들, 집구석에 두었다는, 싸라기도 안 남겄다."

 

돈 관씩 후히 주어서 치송하였구나.

 

잡색꾼들 보낸 후에, 남은 통을 켜자 해도, 이 여러 박통 속이, 탈수록 잡것이라, 놀보 댁은 옆에 앉아,

 

"아이고 아이고"

 

통곡하고,삯 받은 역군들은, 무색하여 만집(挽執)한다.

 

"그만 타소 그만 타소,이 박통 그만 타소,삼도 유명 자네 성세를, 일조탕진(一朝蕩盡)하였으니, 만일 이 통 또 타다가, 무슨 재변 또 나오면, 무엇으로 방천(防川)할까, 필경 망신 될 것이니, 제발 덕분 그만 타소."

 

고집 많은 놀보놈이, 가세는 틀리어도, 성정은 안 풀리어,

 

"너의 말이 녹록(碌碌)하다, 천금산진 환부래(千金散盡還復來)가 옛 문장의 말씀이요, 빼던 칼 도로 꽂기, 장부의 할 일인가. 무엇이 나오든지, 기어이 타볼 테네."

 

톱소리를 아주 억지쓰기로 메겨 ,

 

"어기여라 톱질이야."

 

"초패왕이 장감(章邯) 칠 제, 삼일량(三日糧)만 가졌으며, 한신이 진여(陳餘) 칠 제,배수진이 영웅이라."

 

"어기여라 톱질이야."

 

"미불유초(靡不有初) 선극유종(鮮克有終),성인이 하신 경계, 자넨 어찌 모르는가. 나는 기어이 타볼 테세."

 

"어기여라 톱질이야."

 

"정녕한 좋은 보패, 이 두 통에 있을 테니, 일락 서산 덜 저물어, 한 힘 써서 당기어라."

 

슬근슬근 거의 타니, 큼직한 쌍교 대체, 거금도(居金島) 가시목(加時木), 네모 접어 곱게 깎아, 생가죽으로 단단히 감아, 철정(0을 걸었는데, 박통 밖에 뾰조록, 놀보가 대희하여,

 

"아무렴 그렇지. 아무리 박통 속이, 내와하기 좋다 한들, 천하백 그 얼굴이, 걸어올 리가 있나. 정녕한 쌍교 속에, 서시가 앉았으니, 쌍교째 모셔다가, 안채 대청에 놓을 테니, 휘장 칠 것 다시 없다."

 

장담하여 기다릴 제, 쌍교는 무슨 쌍교, 송장 실은 상여인데, 강남서 나오다가, 박통 가에 당도하여, 세상에 나올 테니, 상여를 정상(停喪)하여, 마목(馬木)틀 되어 놓고, 어동육서(魚東肉西) 좌포유혜(左脯右醯),제를 진설하느라고, 그새 종용하였구나.

 

불시에 나는 소리,

 

"영이기가(靈 旣駕) 왕즉유택(往卽幽宅),재진견례(載陳遣禮) 영걸종천(永訣終天)." 대고

 

"워허너허 워허너허."

 

"명정(銘旌) 공포(功布) 앞을 세고, 행자 곡비(哭婢0 곡을 하소."

 

"워허너허 워허너허."

 

"행진강남 수천리(行盡江南數千里), 고생도 하였더니, 박통문이 열렸으니, 안장처가 어디신고."

 

"워허너허 워허너허."

 

"금강 구월 지리 향산, 산운불합(山雲不合) 갈 수 없다."

 

"훠허너허."

 

"일침운중(日沈雲中) 우세 있다. 앙장(仰帳) 떼고 우비 껴라, 가다가 저물세라, 어서 가자 놀보 집에."

 

"워허너허 워허너허."

 

그 뒤에 상인들이, 각청으로 울고 올 제, 낳은 아들 하나요, 삯 상인이 여섯이니, 메기고 날 댓돈에,목청 좋은 놈만 얻었구나.

 

한 놈은 시조청으로 울고, 한 놈은 산타령으로 울고, 한 놈은 방아타령으로 울고, 한 놈은 하 울어서, 목이 조금 쉬었기로, 목은 아예 아니 쓰고 잦은모리 아니리로, 남을 일쑤 웃기겄다.

 

"애고애고 막동아, 기운 없어 못 살겄다. 놀보 집에 급히 가서,개 잡혀서 잘 고아라. 애고애고 오늘 저녁, 정상(停喪)을 얻다 할꼬, 놀보의 안방 치고, 포진(鋪陳)을 잘 하여라. 애고애고 좆 꼴리어, 암만해도 못 참겄다. 놀보 계집 뒷물시켜, 수청으로 대령하라. 애고애고 이 행차가, 초라하여 못 하겄다. 놀보 아들은 행자 세우고, 놀보 딸은 곡비 세워라. 애고애고 철야할 제, 심심하여 어찌할꼬. 글씨 잘 쓴 경()쇠 한 목, 쇠 좋은 놈 얻어 오라. 애고 애고 설운 지고, 가난이 원수로다. 삯 한 돈에 몸 팔리어, 헛울음에 목 쉬었다. 애고애고."

 

"훠허너허."

 

땡그랑 요란하게 나오더니, 놀보의 안방에 정구(停柩)하고, 허저(許楮)같은 상여꾼들, 벽력같이 외는 소리,

 

"주인 놀보 어디 갔나. 대병(大屛)치고 제상 놓고, 촉대에 밀초 켜고, 향로에 향 피워라. 제물 먼저 올린 후에, 상식상(上食床) 곧 차려라. 방 더울라 불 때지 말고, (고양이) 들어갈라, 구들을 막아라."

 

이런 야단이 없구나. 놀보가 넋을 잃어, 처자를 데리고서, 대강 거행한 연후에, 상제에 문안하고, 공순히 묻자오되,

 

"어떠하신 상 행차인지, 내력이나 아사이다."

 

상제가 대답하되,

 

"오 네가 박놀본가."

 

"."

 

"우리 댁 노 생원님이, 너를 찾아보시려고, 첫 박통에 행차하셔, 너를 속량해 주고, 환행차하신 후에, 네 정성이 극진하여, 자식보다 낫더라고, 매일 자랑하시더니, 노인의 병환이라, 병환 나신 하루내에, 별세를 하시는데, 박놀보의 안채 정간(井間),장히 좋은 명당이라, 내 말 하고 찾아가면, 반겨 허락할 것이니, 갈 길이 멀다 말고, 부디 게 가 장사하되, 만일 의심하거들랑, 이것을 보이면, 신적(信迹)이 되리라고, 재삼 유언하시기로, 상행차 모시고서, 불원천리 찾아왔다."

 

소매에서 능천낭을, 슬그미 내놓거든,, 놀보가 이것 보니, 송장 보다 더 밉구나. 꿇엎디어 섧게 빌어,

 

"상제님 상제님, 소인 살려 주옵소서, 노 생원님 하신 유언, 임종시에 하셨으니, 정신이 혼미하여, 난명(亂命)의 말씀이니, 위과(魏顆)의 하신 일을, 상제님이 모르시오. 산리(山理)로 할지라도, 이 집터가 명당이면, 일조 패가 하오리까. 운진(運盡)한 땅이오니, 상행(喪行) 부비(浮費) 산지가(山地價), 대전으로 바치올 제, 환향 안장하옵소서."

 

전답 문서 전당하고, 돈 삼만 냥 빚을 얻어, 상행 치송한 연후에, 남아 있는 여섯째 통, 타려고 달려드니, 제 계집이 옆에 앉아, 통곡하며 만류한다.

 

"맙쇼 맙쇼 타지 맙쇼. 그 박씨에 쓰인 글자, 갚을 보자 원수 구자, 원수 갚자 한 말이라, 탈수록 망할 테니, 간신히 모은 세간, 편한 꼴도 못 보고서, 잡것들게 다 뜯기니, 이럴 줄 알았더면 ,시아재 굶을 적에, 구완 아니하였을까. 만일 잡것 또 나오면, 적수공권(赤手空拳) 이 신세에, 무엇으로 감당할까. 가련한 우리 부부, 목숨까지 없앨 터니, 기어이 타려거든, 내 허리와 함께 켜소."

 

박통 위에 걸터 엎어져, 경상도 메나리조로, 한참을 울어 내니, 놀보가 하릴없어, 저도 그만 파의(罷意)하여,

 

"이 내 신세 된 조격(가락, 모양), 계집까지 덧내서는, 정녕 아사할 터이니, 여보소 톱질꾼들, 양줄 풀어 톱 지우고, 저 박통 들어다가, 대문 밖에 내버리소."

 

한참 소쇄하는 참에, 천만 의외 박통 속에,

 

"대포수(大砲手)."

 

""

 

"개문포(開門砲) 삼방(三放)하라."

 

"."

 

"뗑뗑뗑."

 

박통이 한가운데, 딱 벌어지며, 행군 호령을 똑, 병학지남조(兵學指南調)로 하겄다.

 

"행영시(行營時)에 여전면(如前面), 조수목(阻樹木)이거든, 개청기(開靑旗)하고, 조수택(阻水澤)이거든, 개혹기(開黑旗)하고, 조병마(阻兵馬)거든, 개백기(開白旗)하고, 조산험(阻山險)이거든, 개황기 하고, 조연화(阻煙火) 이거든, 개홍기(開紅旗)하고,과소견지물(過所見之物) 이거든,즉권(卽捲)하라. 여도가일로행(如道可一路行)이거든, 입고초일면(立高招一面)하고, 이로평행이거든, 입이면(立二面)하고,삼로평행이거든, 입삼면하고, 사로평행커든, 입사면하고, 대영행(擡營行) 이어든, 입오면하되, 후대체상구전(後隊遞相口傳)하여,전로에 수모색기기고초(樹某色旗畿高招)라 하여든, 중군이 즉거변영호포(卽擧變營號砲),() 제비( ) 호령하라."

 

"정수(鉦手)."

 

"."

 

"명금이하인(鳴金二下引),행취타(行吹打)하라."

 

"."

 

"쨍 나니나노 퉁 쾡."

 

천병만마 물 끓듯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나오는 장수, 신장은 팔 척이요, 얼굴은 먹빛 같고, 표범 머리 고래 눈과, 제비 턱 범의 수염, 형세는 닫는 말, 황금 투구 쇄자(鎖子) 갑옷, 심오마(深烏馬) 높이 타고, 장팔사모(丈八蛇矛) 비껴 들고, 거뢰(巨雷) 같은 큰 목소리,

 

"이놈 놀보야."

 

박 타던 삯꾼들, 이 소리에 깜짝 놀라, 창자가 터져 죽은 놈이, 여러 명이 되는구나. 놀보놈은 정신 잃고, 박통 가에 뒤쳤으니(기절하여 넘어짐),저 장수 거동 보소. 놀보의 안채 대청이, 쓸 만한 장대(將臺)인 줄로, 하마포(下馬砲)에 말을 내려, 승장포(升帳砲) 삼방하고, 오색 기치 방위 차려, 청동백서(靑東白西) 세워 놓고, 각영 장졸 벌여 서서, 명금 대취타에, 좌기(坐起) 취한 연후에, 대상에서 나는 호령,

 

"놀보놈 나입(拿入)하라."

 

비호 같은 군사들이, 놀보의 고추상투, 덤뻑 끌어 나입하니, 대장이 분부하되,

 

"네놈 수죄할 양이면 네가 놀라 죽겄기에, 조용히 분부하니, 자세히 들어 보라. 한나라가 말세되어, 천하가 분분할 제, () () () 세 영웅이, 도원(桃園)dpt 결의하고, 한실(漢室)을 흥복하자, 천하에 횡행하던, 삼 형제 중 말째 되고, 오호대장 둘째 되는 탁군( )서 살던, 성은 장이요 이름은 비요, 자는 익덕(益德)이라 하는 용맹을 들었느냐. 내가 그 장 장군이로다. 천지에 중한 의가, 형제밖에 또 있느냐. 한날 한시에 못 낳았어도, 한날 한시에 죽는 것이, 당연한 도리엔데, 네놈은 어이하여, 동기 박대 그리 하며, 비금(飛禽)중에 사람 따르고, 해 없는 게 제비로다. 내가 근본 생긴 모양, 제비 턱을 가졌기로,제비를 사랑터니, 제비 말을 들어 본즉, 생다리를 꺾었다니, 그러한 몹쓸 놈이, 어디가 있겄느냐. 내 평생 가진 성기(性氣),내게 이해 불고(不顧)하고, 몹쓸 놈 곧 얼른하면, 장팔사모 쑥 빼내어 ,푹 찌르는 성정인 고로, 안득쾌인 여익덕(安得快人如翼德) 진주세상 부심인(盡誅世上負心人),너도 혹 들었는가. 네놈의 흉녕(凶獰) 극악, 동생을 쫓아내고, 제비 절각시킨 죄를, 꼭 죽이려 나왔더니, 도리어 생각하니, 사자는 불가부생(不可復生) 형자(刑者)는 불가부속(不可復屬), 네 아무리 회과(悔過)하여, 형제 우애하자 한들, 목숨이 죽어지면, 어쩔 수가 없겄기에, 네 목숨을 빌려 주니, 이번은 개과하여, 형제 우애하겄는가."

 

놀보 엎어져 생각하니, 불의로 모은 재물, 허망히 다 나가니, 징계도 쾌히 되고, 장 장군의 그 성정이, 독우(督郵)도 편타(鞭打)하니, 저 같은 천한 목숨, 파리만도 못하구나. 악한 놈에 어진 마음,무서워야 나는구나. 복복사죄(伏伏謝罪) 울며 빈다.

 

"장군 분부 듣사오니, 소인의 전후 죄상, 굼수만도 못하오니, 목숨 살려 주옵시면, 전허물을 다 고치고, 군자의 본을 받아, 형제간에 우애하고, 인리에 화목하여, 사람 노릇 하올 테니, 제발 덕분 살려 주오."

 

장군이 분부하되,

 

"네 말이 그러하니, 알기 쉬운 수가 있다. 남원이나 고금도(古今島), 우리 중형(仲兄) 계신 곳에, 내가 가서 모셔 있어, 네 소문을 탐지하여, 개과를 하였으면, 재물을 다시 주어, 부자가 되게 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바로 와서 죽일 테니 ,군사나 호궤( )하라. 이제 곧 떠나겄다."

 

놀보가 감화하여, 양식 있는 대로 밥을 짓고, 소와 닭 개 많이 잡아, 군사를 먹이면서, 좋은 술을 연해 부어,장군전에 올리오니, 제 계집이 말려,

 

"애겨, 그만 합쇼. 그 장군님 술 취하면, 아무 죄 없는 놈도, 편타를 하신답네."

 

놀보가 웃으며,

 

"자네가 어찌 알아. 그 장군님 장한 의기, 의석(義釋) 엄안(嚴顔) 하셨나니."

 

장군이 회군하신 후에, 가산을 돌아보니, 일패도지(一敗塗地) 하였구나. 방성통곡(放聲痛哭) 하고, 흥보 집 찾아 나니, 흥보가 대경하여, 극진히 위로하고, 제 세간 반분하여, 형우제공(兄友弟恭) 지내는 양, 누가 아니 칭찬하리.

 

도원에 남은 의기, 천고에 유전하여, 이러한 하우불이(下愚不移), 감동하게 하시오니, 염완입나(廉頑入懦)하는 백이지풍(佰夷之風) 같은가 하노라.

 

 

 

 

 

흥보가(=박타령)

- 동편제 박록주바디 -

 

<아니리>

아동방이 군자지국이요, 예의 지방이라. 십실지읍에도 충신이 있고 칠세지아도 효도를 일삼으니 무슨 불량한 사람이 있으리요마는 요순시절에도 사흉이 났었고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있었으니 아마도 일종 여기야 어쩔수 없는 법이었다. 경상 전라 충청 삼도 어름에 놀보 형제가 살았는디 흥보는 아우요, 놀보는 형이라. 사람마다 오장이 육본디 놀보는 오장이 칠보라. 어찌허여 칠본고 허니 왼편 갈비밑에가 장기궁짝만허게 심술보 하나가 딱 붙어 있어 본디 심술이 많은 놈이라. 그 착한 동생을 쫓아낼 량으로 날마다 심술공부를 허는 디 꼭 이렇게 허든 것이었다.

 

<자진모리>

대장군방 벌목허고 삼살방에 이사권코 오구방에다 집을짓고 불붙는데 부채질 호박에다 말뚝박고 길가는 과객양반 재울듯기 붙들었다 해가지면은 내어쫓고 초란이 보면 딴낮짓고 거사보면은 소구도적 의원보면 침도적질 양반보면은 관을 찢고 다 큰 큰애기 겁탈, 수절과부는 모함잡고 우는 놈은 발가락 빨리고 똥누는 놈 주저앉히고 제주병에 오줌싸고 소주병 비상넣고 새망건 편자끊고 새갓보면은 땀때 띠고 앉은뱅이는 택견, 곱사동이는 되집어 놓고 봉사는 똥칠허고 애밴 부인은 배를 차고 길가에 허방놓고 옹기전에다 말달리기 비단전에다 물총놓고.

 

<무장단 창조>

이놈의 심사가 이래 놓니 삼강을 아느냐 오륜을 아느냐 이런 모지고 독한 놈이 세상 천지 어디가 있더란 말이냐.

 

<아니리>

이놈이 삼강도 모르고 오륜도 몰라노니 어찌 형제 윤기인들 알 리가 있겄느냐, 하루는 놀보가 심술이 나서 비오는 날 와가리 성음을 내어 "네 이놈 흥보야.! 너도 늙어가는 놈이 곁말에 손넣고 서리맞은 구랭이 모냥으로 슬슬 다니는 꼴 보기싫고 밤낮으로 내방출입만 하야 자식새끼만 도야지 이물돛 퍼낳듯 허고 날만 못살게 구니 보기싫어 살 수가 없다. 너도 나가 살어봐라 이놈!"

 

<무장단 창조>

"아이고 형님 한 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아니리>

"잔소리 말고 나가!"

 

<중모리>

나가란 말을 듣더니마는 "아이고, 여보 형님 동생을 나가라고허니 어느곳으로 가오리까? 이 엄동설한풍의 어느 곳으로 가면 살듯허오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백이숙제 주려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이놈 내가 너를 갈 곳까지 일러주랴 ? 잔소리 말고 나가거라!" 흥보가 기가 맥혀 안으로 들어가며 "아이고 여보 마누라! 형님이 나가라고 허니 어느 영이라 거역허며 어느 말씀이라고 안가겄소,자식들을 챙겨보오" "큰 자식아 어디갔나 둘째 놈아 이리 오너라" 이삿짐을 챙겨지고 놀보앞으가 늘어서서 "형님 갑니다. 부디 안녕히 계옵시오" "오냐 잘가거라!" 흥보신세 볼작시면 울며불며 나가면서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내신세는 왜 이런고 부모님이 살어계실 적으난 니것 내것이 다툼없이 평생의 호의호식 먹고 입고 쓰고 남고 쓰고 먹고도 입고 남어 세상 분별을 내가 모르더니마는 흥보놈의 신세가 일조에 이리 될 줄을 귀신인들 알것느냐. 여보게 마누라 어느 곳으로 갈까" 아서라 산중으로 살자 전라도난 지리산 경상도로난 태백산 산중으가 살자허니 백물이 없어서 살 수 없고 아서라 도방으로 가자 일월산 이강경이 삼포주 사백성이 도방으가 살자허니 비린내 찌우어 살 수 없고 아서라 서울가서 살자 서울가서 사자허니 경우를 모르니 따구만 맞고 충청도가 사자허니 양반들이 억시어서 살 수가 없으니 어느 곳으로 가면 살 듯 허오.

 

<아니리>

성현동 복덕촌을 당도허여 고생이 자심헐 제

 

<무장단 창조>

철모르는 자식들은 음식노래로 부모를 조르난 디, 떡 달라난 놈, 밥 달라난 놈, 엿을 사달라난 놈 각심으로 조를적의, 흥보 큰아들이 나앉으며 "아이고 어머니!" "이 자식아 너는 어찌허여 고등부살이 목성음이 나오느냐" "어머니 아버지 공론허고 날 장가좀 들여주오 내가 장가가 바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가만히 누워 생각허니 어머니 아버지 손자가 늦어 갑니다." 흥보 마누라가 이 말을 듣고 기가 맥혀

 

<진양>

"워따 이놈아 야 이놈아 말들어라 내가 형세가 있고 보면 니 장개가 여태 있으며 중한 가장을 못 맥이고 어린 자식을 뱃기것 느냐 못 맥이고 못 입히는 어미 간장이 다 녹는다. "

 

<아니리>

흥보가 들어오며 "여보 마누라! 거 없이 사는 살림에 밤낮 그렇게 눈물만 짜니 먼 재수가 있겄소? 나 오늘 읍내 좀 갔다 오리다." "읍내는 멋허로 가실라요?" "환자맡은 호방한테 환자섬이나 얻어냐 굶어가는 어린 자식들을 구환하지 않겠소" "내라도 안 줄테니 가지마오" "사구일생이제 누가 믿고 가나? 거 내 갓좀 내주오" "갓은 어디다 두었소?" "굴뚝속에 두었제" "아니 여보 영감! 갓을 어째 굴뚝속에 두었단 말이요?" "그런 것이 아니라 신묘년 조대비 국상시에 얻어쓴 백립이 갓냥이 단단하다고 하야 끄을음에 끄슬려 쓸라고 굴뚝속에 두었제. 거 내 도복 좀 내주오" "도복은 어디다 두었소?" "장안에 두었제" "아이고 여보 영감! 우리집에 무슨 장이 있단 말이요?" "허허 이사람 달구장은 장이 아니란 말인가?" 흥보가 치장을 채리고 칠청을 들어 가는디

 

<자진모리>

흥보가 들어간다. 흥보가 들어간다. 흥보치레를 볼작시면 철대떨어진 헌 파립 버릿줄 총총매여 조새갓끈을 달아서 떨어진 헌 망건 밥풀관자 종이당줄 뒤통나게 졸라매고 떨어진 헌 도포 실띠로 총총이어 고픈 배 눌러띠고 한 손에다가 곱돌조대를 들고 또 한손에다가는 떨어진 부채들고 죽어도 양반이라고 여덟 팔자 걸음으로 의식비식이 들어간다.

 

<아니리>

아 이러고 들어가다가 별안간 걱정이 하나 생겼지 '내가 아무리 궁수남아가 되었을망정 발남박가 양반인디 호방을 보고 허겔허나 총격을 허나 아서라 말은 허되 끝은 짓지 말고 그냥 웃음으로 닦을 수 밖에 없구나.' 흥보가 질청을 들어가니 호방이 문을 열고 "박생원 오시었소, 어찌 오시었소 ?" "양도가 부족하야 환자 한 섬난 꿔주면 가을에 착실히 갚을 터이니 호방생각은 어떨는지? 허 허 허!" "박생원 그리말고 들어온짐에 품이나 한 번 팔아볼라요? " "아 돈생길 품이면 팔고 말고 해 " "우리골 좌수가 영문에 잡혔는디 대신가서 곤장 열 대만 맞으면 한 대에 석냥씩 서른 냥은 꼽아놓은 돈이요, 마삯까지 닷냥 제지했으니 그 품 하나 팔아보오" "매맞으러 가는 놈이 말타고 갈 것 없고 정강말로 다녀올 것이니 그돈 닷 냥을 나를 내어 주지"

 

<중모리>

저 아전 거동을 보아라 궤문을 떨껑 열고 돈 닷냥을 내어주니 흥보가 받아들고 "다녀오리다" "평안히 다녀오오" 박흥보 좋아라고 칠청밖으로 썩 나서서 얼씨구나 좋구나 돈 봐라 돈 돈 봐라 돈 돈 돈 돈 돈봐라 돈, 이 돈을 눈에 대고 보면 삼강오륜이 다 보이고 조금있다가 나는 지환을 손에다 쥐고 보면 삼강오륜이 끊어 지니 보이난 것 돈밖의 또 있느냐 돈 돈 돈 돈봐라 돈, 떡국집으로 들어가서 떡국 한 푼어치를 사서 먹고 막걸리 집으로 들어가서 막걸리 두 푼어치를 사서 먹고 어깨를 느리우고 죽통을 빼트리고 대장부 한 걸음에 옆전 서른 닷냥이 들어를 간다. 얼씨구나 좋구나 저의 집으로 들어가서 "여보게 마누라! 집안 어른이 어디 갔다고 집안이라고서 들어오면 우루루루 쫓아나와 영접 허는게 도리옳지, 계집이 이 사람아 당돌이 앉아서 좌이부동이 웬일인가 에라 이사람 몹쓸사람!"

 

<중중모리>

흥보 마누래 나온다. 흥보 마누래 나온다. "어디 돈 어디 돈 돈봅시다 돈봐!" "놓아두어라 이 사람아 이 돈 근본을 자네 아나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수레 바퀴 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봐라"

 

<아니리>

흥보가 들어오며 "여보 마누라! 이 돈 가지고 쌀 팔고 고기 사서 육죽을 누구름허게 열 한 통만 쑤소!" 아이도 한 통 어른도 한 통 각기 한통씩 먹여노니 식곤증이 나서 앉은 자리에서 고자백이 잠을 자는 디 죽말국이 코끝에서 소주 후주 내리 듯 댕강댕강 허것다. 이 틈을 타서 막내 하나를 또 맹글었지 "여보 영감 이 돈이 웬돈이요? 이 돈 속이나 좀 압시다." "이 돈 속 알면 큰 일낼 돈일세, 우리골 좌수가 영문에 잽혔는디 대신가서 곤장 열대만 맞으면 한 대에 석 냥씩 서른 냥을 준다기에 삯전으로 받어왔으니 아무 누설 내지말소이 옆집 꾀쇠 애비란놈이 알면 영락없이 발등거리 허기 쉽네"

 

<창조>

"아이고 여보 영감 중한 가장 매품 팔어먹고 산단 말은 고금 천지 어디가 보았소"

 

<진양>

"가지마오 가지마오 불쌍한 영감아 가지를 마오 천불생 무륵지인이요 지보장 무명지초라 하날이 무너져도 솟아날 궁기가 있는 법이니 설마헌들 죽사리까 제발 덕분에 가지마오 병영영문 곤장 한 대를 맞고 보면 종신 골병이 든답디다 영감 불쌍한 우리영감 가지를 마오"

 

<아니리>

이 놈들이 저의 어머니 울음소리를 듣더니 물소리들은 거위모양으로 고개를 들고 "아버지 병영 가십니까?" "오냐 병영간다." "아버지 병영갔다 오실 때 나 담뱃대 긴 것 하나 사다 주시오" "에이 나쁜놈 같으니라고!" 또 한 놈이 나앉으며 "아버지 나는 투전 한목만 사다 주시오" "투전은 뭣 허게?" "아버지 재산없어 고생하시니 놀음해서 돈 많이 벌어오리다" 그때여 흥보 큰 아들이 나 앉으며

 

<창조>

"아이고 아버지 !" "이자식아 너는 또 왜불러 ?"

 

<창조>

"아버지 병영갔다 오실 때 나 각시 하나만 사다 주오!" "각시는 뭣허게?"

 

<창조>

"아버지 재산없어 날 못여우니 다리고 막걸리장사 할라요"

 

<중중모리>

아침 밥을 지어먹고 병영길을 나려간다. 허유 허유 나려를 가며 신세자탄 울음을 운다.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어떤 사람 팔자좋아 부귀영화로 잘 사는디 내 신세는 어이허여 이 지경이 웬일이냐?" 병영골을 당도허여 치어다 보느냐 대장이요 나려 굽어보니 숙정패로구나 심산맹호 운룡같은 용자붙인 군로사령이 이리 가고 저리간다. 그때여 박흥보는 숫헌 사람이라 벌벌벌 떨면서 있구나.

 

<아니리>

방울이 떨렁 사령이 예이 야단났지 흥보가 삼문군기를 들여다 보니 죄인들이 볼기를 맞고 있거날 흥보 숫헌 마음에 저 사람들도 자기모양으로 돈 벌로 온줄 알고 "내 앞에와 돈 수십냥 번다! 나도 볼기를 까고 업져 볼거나?" 삼문간에 볼기를 까고 업져노니 사령한쌍이 나오더니 "! 병영 배판지후에 볼기전 보는 놈 생겼구나" "아니 당신 박생원 아니시오?" "알아 맞혔구먼" "박생원 곯았소!" "곯다니 계란이 곯지 사람도 고나?" "아까 어떤 놈이 박생원 대신이라허고 곤장 열 대 맞고 돈 서른 냥 받아서 벌써 떠났소"

 

<창조>

흥보가 이말을 듣고 기가 맥혀 "아이고 이 사람아 그놈이 어떻게 생겼든가?" "키가 구척이나 되고 기운 좋게 생겼습디다." 흥보가 이말을 듣더니 마는 "어젯밤 우리 마누라가 가지요 못 가지요 밤새도록 울더니 옆집 꾀쇠애비란 놈이 발등거리 허였구나 "

 

<중모리>

"번수네들 그리헌가 나는 가네 나는 가네 수번이나 평안이 허소 내집이라 들어가면 엿달라고 우는 놈은 떡사주마고 달래이고 떡달라고 우는 놈은 밥해 주마고 달랬는디 돈이 있어야 말을 허지 " 그렁 저렁 당도허니

 

<아니리>

흥보 마누래가 막내를 받아 안고 흥보 오난 곳을 바라보며 "우지마라 너의 아버지 돈 많이 벌어가지고 온다." 흥보가 당도 커날 "여보 영감 얼마나 맞았소 장처나 좀 봅시다!" "날 건드리지 말어 요망한 계집이 밤새도록 울더니 아 그것이 와전되야, 옆전 한 푼 못 벌고 매 한 대를 맞았으면 내가 인사불성 쇠아들 놈이제"

 

<중중모리>

흥보마누래 좋아라 흥보마누래 좋아라 "얼씨구나 절씨구 ! 영감이 엊그저끄 병영 길을 떠날 때 부디 매를 맞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시라 하나님 전의 빌었더니 매 아니맞고 돌아오시니 어찌아니 즐거운가 얼시구나 절씨구 옷을 헐벗어도 나는 좋고 굶어 죽어도 나는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얼씨구 절씨구"

 

<아니리>

흥보도 절굿대춤을 한 번 추었겄다. "여보 영감 이러지 말고 건넌말 시숙한테 건너가서 죽게된 자식 사정을 여쭈어 놓면 다소간 전곡간에 줄것이니 한 번 건너가 볼라요? " "내가 만일 건너갔다가 쌀을 주면 좋지마는 보리를 주면 어쩌꺼나" "아이고 여보 영감 없이 사는 살림에 보리라도 많이만 주면 좋지요" "아 이사람아 먹는 보리 말고 몽둥이 보리 말이여" "형제간 윤기가 있는디 그럴 리가 없으니 한 번 건너가 보오" 흥보가 치장을 채리고 저의 형님댁을 건너 가는디

 

<자진모리>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치레를 볼작시면 철대 떨어진 헌 파립 버릿줄 총총매여 조새갓끈을 달아서 떨어진 헌 망근 발풀관자 종이당줄 두통나게 졸라매고 떨어진 헌 도포 실띠로 총총이어 고픈 배 눌러띠고 한 손에다가 곱돌조대를 들고 또 한 손에다가는 떨어진 부채들고 서리아침 찬 바람에 옆걸음쳐 손을 불며 이리저리 건너간다.

 

<아니리>

아 이러고 건너가다 놀보하인 마당쇠를 만났겄다. "아이고, 작은 서방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냐, 그래 그동안 마당쇠 너도 잘 있었으며 요새 큰서방님 성미는 좀 어쩌시냐?" "아이고 말씀마십시오. 작은 서방님이 계실적에는 제향을 모셔도 포군을 시키드니마는 서방님이 떠나신 후로는 그냥 대전으로 바칩니다. 접시에다 이것은 편육이라 이것은 제육이라 패지를 써 붙이지 이통에 들어가셨다가는 매만 실컷 맞고 갈 것이니 그냥 도로 건너 가시지요." "그러나 내가 여기까지 왔다가 형님을 아니보고 간대서야 인사도리가 아니지 안겠느냐." 흥보가 성큼 성큼 놀보 사랑앞을 들어서니 어찌 겁이 났던지

 

<창조>

"형님 소인 놈 문안이요" ", 거 성씨가 뉘댁이시오."

 

<창조>

"아이고 형님 흥보동생을 모르시오?" ", 나는 오대차 독신으로 아우가 없는 사람이요."

 

<창조>

흥보가 빌면은 될줄로

 

<진양>

두손합장 무릎을 꿇고 " 비나니다. 비나니다. 형님 전의 비나니다. 살려주오. 살려주오 불쌍헌 동생을 살려주오. 그제께 하루를 굶은 처자가 어제 점도록 그저 있고 어저께 하루를 문드러미 굶은 처자가 오늘 아침을 그저 있사오니 인명은 재천이라. 설마헌들 죽사리까마는 여러 끄니를 굶사오면 하릴없이 죽사오니 형님 덕택의 살거지다. 벼가 되거든 한 섬만 주시고 쌀이 되거든 닷 말만 주시고 돈이 되거든 닷 냥만 주옵시고 그도 저도 정 주기가 싫으시면 니명이나 싸래기나 양단간의 주옵시면 죽게된 자식을 살리겄소. 과연 내가 원통허오. 분하여서 못 살겄소. 천석꾼 형님을 두고 굶어 죽기가 원통헙니다. 제발 덕분의 살려주오."

 

<아니리>

과거를 꽉꽉 대놓니 뗄수가 없지 ", 니가 바로 그 흥보냐. 네 이놈 심심허던 판에 잘 왔다. 얘 마당쇠야 대문 걸고 아래 행랑 동편 처마 끝에 지리산에서 박달 홍두깨 헐라고 쳐내온 검목있느니라.이리 가지고 나오너라. 이런 놈은 그저 복날 개잡듯 잡아야 되느니라."

 

<자진모리>

놀보놈 거동봐라. 지리산 몽둥이를 눈우에 번듯들고 "네 이놈 흥보놈아! 잘 살기 내 복이요, 못 살기는 니 팔자, 굶고 벗고 내 모른다. 볏섬 주자헌들 마당에 두지안에 다물다물이 들었으니 너주자고 두지 헐며 전간 주자헌들 천록방 금궤안에 가득가득이 환을 지어 떼돈이 들었으니 너 주자고 궤돈 헐며 찌갱이 주자 헌들 구진방 우리안에 떼돼야지가 들었으니 너주자고 돛굶기며 싸래기 주자헌들 황계 백계 수백마리가 턱턱하고 꼭꾜우니 너주자고 닭굶기랴. " 몽둥이를 들어매고 "네 이놈 강도놈 !" 좁은 골 벼락치듯, 강짜싸움에 계집치듯, 담에 걸친 구렁이치듯 후닥딱 철퍽

 

<무장단>

"아이고 박 터졌소. !" "이놈!" 후닥딱, "아이고 형님 허리 부러졌오.!" 흥보가 기가 맥혀 몽둥이를 피하랴고 올라 갔다가 내려 갔다가 대문을 걸어놓니 날도 뛰도 못허고 그저 퍽퍽 맞는디 안으로 쫓겨 들어가며 "아이고 성수(형수)씨 사람 살려주오! 아이고 성수씨 날 좀 살려주오!"

 

<아니리>

아 이러고 들어가거들랑 놀보 기집이라도 후해 전곡간에 주었으면 좋으련만 놀보 기집은 놀보보다 심술보 하나가 더 붙었던 것이었다. 밥푸던 주걱을 들고 중문에 딱 붙어서서 "아니 여보, 아주뱀이고 도마뱀이고 세상도 귀찮아 죽겄네. 언제 나한테 전곡갔다 겼든가? 아나 밥, 아나 쌀, 아나 돈!"

 

<창조>

허고 뺨을 때려놓니,형님한테 맞는 것은 여반장이요. 성수한테 뺨을 맞어놓니 하날이 빙빙 돌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진양>

"여보 성수씨, 여보 여보 아주머니,성수가 씨아재 뺨치는 법은 고금천지 어디가 보았소.나를 이리 치지 말고 살지 중지 능지를 허여 아주 박살 죽여주오. 아이고 하나님, 박흥보를 벼락을 때려 주면 염라국을 들어가서 부모님을 뵈옵는 날은 세세원정을 아로련마는 어이 허여 못 죽는 거나" 매운 것 먹은 사람처럼 후후 불며 저의 집으로 건너간다.

 

<아니리>

흥보 마누래가 밖을 나와 보니 건넌산 비탈길에서 작지집고 절뚝 절뚝 오는 모양이 돈과 쌀을 많이 가져 오는 듯 하거날 흥보가 당도허니 "여보 영감 얼마나 얻었소. 어디 좀 봅시다." "날 건드리지 말어." "아니 또 맞었구료." "시끄러 그런 것이 아니라 형님댁을 건너 갔더니 형님 양주분이 어찌 후하던지 전곡을 많이 주시기에 가지고 오다가 요넘어 강정 모퉁이에서 도적놈에세 싹 빼앗기고 이렇게 매만 실컷 맞았네."

 

<창조>

흥보 마누래가 이말을 듣고 힘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중모리>

"그런대도 내가 알고 저런대도 내가 아요. 가빈에는 사현처요, 국난에는 사양상이라. 내가 얼마나 우준허면(의젓허면?) 중한 가장 못맥이고 어린 자식들을 뱃기겄오. 차라리 내가 죽을 라요." 밖으로 우루루루루루루 뛰어나가 석가래에 목을 매고 죽기로만 작정을 허니 흥보가 달려들어 "아이고 여보 마누라 ,그대가 죽고 내가 살면 어린 자식들은 어이 헐거나. 차라리 내가 죽을라네!" 둘이 서로 부여잡고 퍼버리고 앉아 울음을 우니 자식들도 모두 설리 운다.

 

<아니리>

이리 한 참 설리 울제, 그때여 흥보를 살리랴고 도승이 나려오난디

 

<엇모리>

중나려 온다. 중하나 나려온다. 저중의 거동을 보소. 허디헌 중 다 떨어진 송낙 요리송치고 저리송치고 호흠벅 눌러쓰고 노닥노닥 지은 장삼 실띠를 매고 염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어 소상반죽의 열두마디 용두새긴 육환장 채고리 길게 달아 처절철 철철 흔들 흔들 흐늘 거리며 나려올제 염불허고 나려온다. 아아 에 에 에 에에 으으 으으으으으 아아아아 아아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상내소수 공덕해요. 회양삼처 실원만 봉위 주상전하 수만세요. 왕비전하 수제년 세자전하 수천추 국태민안 법륜전 나무아미타불" 흥보문전을 당도허여 개 쿼겅컹 짖고나면 "이댁에 동냥왔오.!" 흥보가 깜짝놀래 "여보 마누라 우지마오. 밖으() 중이 왔으니 우지를 마오."

 

<아니리>

흥보가 나가보니 중이 왔거날 "여보 대사님, 내 집을 둘러보오. 서발 장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는 집이요." 저중이 대답허되, "소승은 걸승으로 댁 문전을 당도허니 곡소리가 낭자키로 생사가 미판이라 무삼 연고가 계신지요." 흥보가 대답허되 "권솔들은 다솔허고 먹을 것은 없어 죽기로 작정하고 우난 길이요." "불쌍하오. 복이라 허는 것은 임자가 따로 없는 것이니 소승 뒤를 따르시면 집터 하나를 잡아 드리리다."

 

<진양-빠른 진양:세마치>

박흥보가 좋아라고 대사뒤를 따러간다. 이모롱을 지내고 저고개를 넘어 서서 한곳을 당도허여 그 자리에서 우뚝 서더니마는 "이 명당을 알으시오? 천하지 제일강산 악양로같은 명당이니 이 명당에다 대강 성주를 허시되 임좌병향 오문으로 대강 성조를 허게되면 명년 팔월 십오일에는 억십만금 장자가 되고 삼대진사 오대급제 병감사가 날 명당이 적실허니 그리 알고 잘 지내오." 한 두 말을 마친후의 눈을 들어 사면을 둘러보고 손을 곱아 무엇을 생각터니 안홀불견 간 곳이 없다.

 

<아니리>

그제야 흥보가 도승인줄 짐작허고 있던 집을 헐어다가 자리에다 집을 짓고 살아갈 제 차차 차차 살림이 나아지거늘 하루는 흥보가 좋아라고 집터글자를 붙여본즉

 

<중중모리>

겨울동자 갈거자 삼월삼질에 올래자 봄춘자가 좋을시고 행화분분 도화요. 이화만지 불개문 허니 실실동풍의 꽃화자 나비접자 펄펄 춤출무자가 좋을시고 꾀꼬리 수리룩 날아 노래 가()자가 좋을시고 기난 건 짐생수 나는 것은 새조라 쌍쌍이 왕래허니 제비연자가 좋다.

 

<아니리>

하루난 제비 한쌍이 날아 들거날 흥보가 좋아라고 "반갑다 저 제비야. 고루거각을 다 버리고 궁벽강촌 박흥보 움막을 찾아드니 어찌 아니 기특허랴." 수 십일만에 새끼 두 마리를 깟는 디, 먼저 깐 놈은 날아가고 나중 깐 놈이 날개공부 힘을 쓰다 뚝 떨어져 다리가 작각 부러졌것다. 흥보내외 어진 마음으로 명태껍질을 얻고 당사실을 구하여 부러진 다리를 동여 매여 제집에 넣어주며 "부디 죽지 말고 살아 멀고 먼 만리 강남을 평안히 잘 가거라" 미물의 짐승이라도 흥보 은혜 갚을 제비거든 죽을 리가 있겠느냐.수 십일만의 부러진 다리가 나아가니 하로난 날개공부 힘을 써보는 디

 

<진양>

떴다 보아라 저 제비가 둥그렇고 둥그렇기 구만장천의 높이 떠 거중으로 둥둥 펄펄 날거날 흥보가 보고서 좋아라고 "반갑구나 내 제비야 부러진 다리를 원망을 말어라 고자의 손빈이도 양족이 없었어도 진나라가서 대장이 되고 초한적 한신이도 일지수가 없었으되 대장단 높은 집이 일군개경을 하였으니 멀고먼 만리 강남을 부디 평안히 잘 가거라." 제비 저도 섭섭하여라고 빨래줄에 가 내려 앉더니마는 무엇이라고 대답을 허고 구만장천의 높이 떠서 이리 저리 노니난 거동은 아름답고 반가워라. "잘 가거라 내 제비야 만리 강남을 훨훨 날아 들어간다."

 

<아니리>

강남 두견은 촉종지망제라 백조들을 점고를 하는디 미국 들어갔던 분홍제비, 독일 들어갔던 초록제비, 중원 나갔던 명맥이,만리 조선 나갔던 흥보제비 나오

 

<중중모리>

흥보 제비가 들어온다. 박흥보 제비가 들어온다. 부러진 다리가 봉통아지가 져서 전둥거리고 들어와 "~~~~!" 제비장수 호령을 허되 "너는 왜 다리가 봉통아지가 졌노?" 흥보제비 여짜오되 "소조가 아뢰리다. 소조가 아뢰리다.만리 조선을 나가 태어나 소조운수 불길허여 뚝 떨어져 대반에 다리가 작각 부러져 거의 죽게 되었으나 어진 흥보씨를 만나 죽을 목숨이 살었으니 어찌허면은 은혜를 갚소리까 제발 덕분의 통촉허오."

 

<아니리>

"그러기에 너의 부모가 나의 영을 어기고 나가더니 그런 변을 당하였구나. 너는 명춘에 나갈적에 출행날을 받어 줄터이니 그 날 나가도록 하여라." 삼동이 다 지나고 춘삼월이 방자커날 하로난 흥보제비가 보은표 박씨를 입에에다 물고 만리 조선을 나가는디 꼭 이렇게 나오든 것이었다.

 

<중중모리>

흑운 박차고 배운 무릅쓰고 거중의 둥둥 높이 떠~~~두루 살펴보니 서촉 지척이요 동해 창망 허구나 충융봉을 올라가니 주작이 넘논다. 상익토 하익토 오작교 바라보니 오초동남 가는 배는 북을 둥둥 울리며 어기야 어야 저어가니 원포귀범이 이아니냐.수벽사명 양안태 불승청원 각비래라 날아오난 저 기러기 갈대를 입에 물고 일점 이점이 떨어지니 평사낙안이 이 아니냐 ,백구백로 짝을 지어 청파상에 왕래허니 석양천이 거있노라.회안봉을 넘어 황릉묘 들어가 이십오현 탄야월은 반죽까지 쉬어앉어 두견성을 화답허고 봉황대 올라가니 봉거대공에 강자류 황학루를 올라가니 황학일거 불부반 배운천재 공유유과 금릉을 지나여 주사촌 들어가 공숙창가 도리개라 낙매화를 툭쳐 무연의 펄렁 떨어지고 이수를 지내여 계명산을 올라 장자방은 간곳 없고 남병산 올라가니 빈터요 연제지간을 지내여 장성을 지내여 갈석산을 넘어 연경을 들어가 황극전에 올라 앉어 만호 장안 구경허고 정양문 내달아 천안문지내 동문을 들어가니 사미륵이 백이로다. 요동칠백리를 순식간 지내여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다달아 영고탑 통군정 올라앉어 안남산 밖남산 석벽강 용천강 좌우령을 넘어 부산파발 환마고개 강동다리 건너 평양은 연광정 부벽루를 구경허고 대동강 장림을 지나 송도를 들어가 만월대 관덕정 박연폭포를 구경허고 임진강 시각에 건너 삼각산에 올라앉어 지세를 살펴보니 천룡의 대원맥이 중령으로 흘리쳐 금화금성 분개허고 춘당영춘이 휘돌아 도봉 망월대 솟아있고 삼각산이 생겼구나 문물이 빈빈허고 풍속이 희히하야 만만세지 금탕이라 경상도는 함양이요 전라도는 운봉이라 운봉함양 두얼품에 흥보가 사는지라 저 제비 거동을 보아 박씨를 입에 물고 거중에 둥둥 높이 떠~~~ 남대문밖 썩내달아 칠패 팔패 배다리 지나 애고개를 얼른 넘어 동작강 월강 승방을 지나여 남타령 고개넘어 두쭉지 옆에 끼고 거중에 둥둥 높이 떠~~~ 흥보집을 당도, 안으로 펄펄 날아들제 들보위에 올라 앉아 제비말로 운다. 지지지지 주지주지 거지연지 우지배요 낙지각지 절지연지 은지덕지 수리차로 함지표지 내지배요 빼드드드드드드드득!

 

<중모리>

흥보가 보고서 좋아라 "반갑다 내 제비 어디를 갔다가 이제와" 당상당하 비거비래 편편이 노난거동은 무엇을 같다고 이르랴 북해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으로 넘논 듯 단산봉황이 죽실을 물고 오동속으로 넘논 듯 지곡청학이 난초를 물고 송백간으로 넘노난 듯 안으로 펄펄 날아들제 흥보 보고 고이여겨 찬찬히 살펴보니 절골 양각이 완연 오색 당사로 감은 흔적이 아리롱 아리롱 허니 어찌 아니가 내 제비, 저 제비 거동을 보아 보은표 박씨를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거닐다 흥보양주 앉은 앞에 뚝 떼그르르르르르 떨쳐놓고 백운간으로 날아간다.

 

<아니리>

흥보 마누라 줏어 들고 "여보 영감 제비가 연씨를 물고 왔소" "그게 연씨가 아니라 박씨로세." 동편처마끝에다 거름주고 심었더니 수십일 만에 박 세통이 열렸는디 팔월 추석은 돌아오고 먹을 것이 없어 어린 자식들을 앞에두고 가난 타령으로 울음을 우난디

 

<중모리>

가난이야 가난이야 원수년의 가난이야 복이라 허는 것은 어이 허며는 잘타는고? 북두칠성님이 복마련을 허시는가? 삼신지왕님이 짚자리의 떨어질적의 명과 수복을 점지 허느냐? 몹쓸년의 팔자로다. 이년의 신세는 이어허여 이지경이 웬일이란 말이냐! 퍼버리고 앉아 설리운다.

 

<아니리>

이리 한참 설리 울제 흥보가 들어오며 "여보 마누라 아, 이렇게 우지만 말고 저 지붕에 있는 박을 따다가 박속일랑 끓여먹고 바가질랑 부자집에다 팔어다가 아 어린 자식들을 살리면 될 것 아니요." "아이고, 그럽시다. 여보 영감 좌우간에 박을 따다가 우리 한 번 타봅시다." 그때여 흥보내외가 박 세통을 따다놓고 우선 한 통을 타는디

 

<진양>

"시리리리렁 실건 당거주소 에이여로 당겨주소 이박을 타거들랑은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밥한통만 나오너라 평생의 포한이로구나 에이여루 당그여라 톱질이야 여보게 마누라 톱소리를 어서 맡소." "톱소리를 내가 맡자고 헌들 배가 고파서 못 맡것소" "배가 정 고프거들랑은 허리띠를 졸라를 매소, 에이여루 당거주소 작은 자식은 저리가고 큰 자식은 내한트로 오너라 우리가 이박을 타서 박속일랑 끓여먹고 바가질랑은 부자집에다 팔어다가 목심보명을 살아나세. 당겨주소. 강상의 떴난 배가 수천석을 지가 싣고 간들 저희만 좋았지 내 박 한통을 당할 수가 있느냐, 시리리리렁 실건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실건 당그여라 톱질이야"

 

<휘모리>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씩싹 톡캐

 

<아니리>

박을 딱 쪼개놓고 보니 박속은 휑~ 무복자는 계란에도 유골이라 하더니 박속은 어떤 도둑놈이 쏵 다 집어먹고 난데없는 궤 두짝이 나오거날, 흥보내외 기가맥혀, "아이고 이것이 뭔 일이요? 여보 영감, 좌우지간에 우리 한 번 궤짝을 열어봅시다. " 흥보가 한 궤를 가만히 열고 보니 돈이 하나 가뜩, 또 한 궤를 열고 보니 쌀이 하나 수북,흥보 내외 좋아라고 궤 두짝을 한번 털어비어 보난디,

 

<휘모리>

흥보가 좋아라고, 흥보가 좋아라고 궤 두짝을 떨어붓고 나면 도로 수북, 톡톡털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도로 하나 가뜩허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쌀과 돈이 하나 가득, 돌아섰다 돌아보면 도로 하나 가득허고,돌아섰다 돌아보면 쌀과 돈이 하나 도로 가뜩, "아이고 좋아 죽겄다. 일년 삼백 육십일을 그저 꾸역 꾸역 나오너라"

 

<아니리>

어찌 털어비어 놨던지, 돈이 일만 구만 냥이요, 쌀이 일만 구만석이라 흥보 내외 좋아라고 돈 한 궤를 들고 잠깐 노난디

 

<중중모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돈 봐라 돈 봐라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 둥글 생긴 돈 생살지권을 가진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여보아라 큰 자식아 건넌말(마을) 건너가서 너의 백부님을 모셔 오너라 경사를 보아도 우리 형제 보자 얼씨구 절씨구 여보시오 여러분들 나의 한 말 들어보소 부자라고 자세를 말고 가난타고 한을 마소 엊그저끄까지 박흥보가 문전걸식을 일삼더니 오늘날 부자가 되었으니 이런 경사가 어디가 있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불쌍하고 가련헌 사람들 박흥보를 찾아오소. 나도 오날부터 기민을 줄란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좋구나 지화자 좋네 얼씨구 절씨구

 

<아니리>

흥보내외 아 이렇게 돈을 들고 놀더니마는 "여보 마누라 우리가 밥을 안먹어도 배가 많이 부르요 그러니 둘째 박을 타 봅시다." "아이고 그럽시다."

 

<진양>

"시리렁 시리렁 당겨주소 헤여루 당그여라 톱질이야 이 박을 타거들랑은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은금보화만 나오너라. 은금보화가 나오게 되면 형님 갖다가 드릴란다." 흥보 마누래 기가 맥혀 "나는 나는 안탈라요, 여보 영감 형제간이라 잊었소 엄동설한 치운날의 구박을 당하여 나오던 일은 곽속의 들어도 못 잊겄오." 흥보가 회를 내며 "갑갑허구나 이 사람아, 계집은 상하의복이요 형제는 일신수족이라 의복은 떨어지면 해입기가 쉽거니와 형제 일신수족은 아차 한 번 뚝 떨어지면 다시 잇지를 못허는 법이라, 시리렁 실건 시리렁 실건 시리렁 실건 당그여라 톱질이야

 

<휘모리>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쓱싹 톡캐

 

<아니리>

박을 딱 쪼개놓고 보니 이 박통속에서는 왼갖 비단이 나오는디 꼭 이렇게 나오든 것이었다.

 

<중중모리>

왼갖 비단이 나온다. 왼갖 비단이 나온다. 요간 부상의 삼백척 번떳다 일광단, 고소대 악양루 적성아미가 월광단, 서왕모 요지연의 진상하던 천도문, 천하주구 산천초목 그려내던 지도문,등태산 소천하의 공부자의 대단, 남양초당의 경좋은데 천하영웅 와룡단, 사해가 분분 요란허니 뇌고함성에 영초단, 풍진을 시르르릉 치니 태평천곤 대원단, 염불타령 치워놓고 춤추기 좋은 장단, 큰방 골방 가루다지, 국화새긴 완자문, 초당전 화계상의 머루다래 포도문,화란춘성 만화방창 봉접분분의 화초단, 꽃수풀 접가지에 얼그러졌다 넌출문,통영칠 대모반의 안성유기 대접문, 강구연월 격양가의 배부르다 함포단,알뜰사랑 정든님이 나를 버리고 가거주, 두손길 덥뻑잡고 가지말라 도리불수, 임보내고 홀로앉아 독수공방의 상사단, 추월적막 공단이요, 심산궁곡 송림간의 무섭다 호피단,쓰기좋은 양태문, 인정있는 은조사,부귀다남 복수단, 포식과객에 궁초단,행실부족의 객초단, 절개있난 송죽단, 서부렁섭적 새발낭능, 노방주 청사홍사 통견이며,백랍능, 흥랍능, 월하사주, 당포, 융포, 세양포, 수주, 통오주,경상도 황저포, 매매 흥정의 갑사로다. 혜주 원주 공주 옥구 자주 길주 명천세마포, 강진 나주 극상 세모시며, 한산 세모시, 생수삼팔 값진 고사관사,청공단, 홍공단, 백공단, 흑공단, 송화색까지 그저 꾸역꾸역 나오는디

 

<아니리>

흥보내외 어찌 좋던지 "여보 마누라, 마누라는 나한테 시집 온 이후로 비단옷을 한번도 못 입어 보았으니 이렇게 많이 나온 김에 뭔 색이 좋은가 한 번 골라 보소이." "여보 영감 나는 송화색 삼호장 저고리가 제일 좋습디다. 영감은 뭔 색이 좋습디여?" "나는 검지 않는 흑공단이 좋데." "그럼 영감이 먼저 꾸며 보시오." 흥보가 흑공단으로 한 번 꾸며 보는디

 

<중중모리>

흑공단 망건 흑공단 갓끈 흑공단 저고리 흑공단 두루막 흑공단 바지 흑공단 행전 흑공단 버선 흑공단 다님 흑공단으로 수건을 들고 "어떤가 날보소" 흥보 마누라도 꾸민다. 송아색 댕기 송아색 저고리 송아색 허리띠 송아색 초마 송아색 단의 송아색 꼬쟁이 송아색 속속곳 송아색 버선 송아색으로 수건을 들고 "어떤가 날보소"

 

<아니리>

"그러고 보니 마누라는 하릴없는 꾀꼬리같네." "영감은 그렇게 채려놓고 보니 꼭 까마귀 같소." "여보 마누라 셋째 박을 마저 타 보세. 이속에서 무엇이 나올란가 보게."

 

<중모리>

또 한통을 들여놓고 시리렁 실건 톱질이야 시리렁 시리렁 러렁 실건 실건실건 톱질이야.이 박속에서 나오는 보화는 김제만경 오백미들을 억십만금을 주고사자 충청도 소새뜰을 수만금을 주고 사면 부익부가 되겠구나 시리렁 실건 톱질이야

 

<휘모리>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박이 반쯤 벌어진다. 박통속에서 사람소리가 수근수근 대짜고 든놈 소짜고 든 놈 끌든 놈 호미든 놈 몽치든 놈 가래든 놈이 그저 꾸역 꾸역 나오더니 흥보집을 짓난디

 

<진양>

동산앞 넓은 터에 임좌병향 터를 다져 팔괘를 놓아 왼담을 치고 주란 화각을 좌우로 세웠난디 안팎 중문 소슬이 대문 풍경소리가 더욱 좋다. 천석지기 밭문서와 만석지기 논문서와 백가구 종문서가 가득 담뿍 들어있고 안방치레 볼작시면 큰 병풍 작은 병풍 샛별같은 순금대와 다문담숙 놓였으니 흥보가 보고 좋아헌다.

 

<중모리>

사랑치레 볼작시면 가장장판 소래반자 완자밀창의 화류문갑 대모책상까지 놓여있고 시전 서전의 주역이며 이백두시 어어어 통사략을 좌우로 좌르르르 별렸난디 박흥보가 좋아라고 "여보아라 큰 자식아 건넌 말 건너가서 너의 큰 아버지를 오시래라 경사를 보아도 우리형제 볼란다. 얼씨구나 좀도좋네. 이리렁성 저리렁성 흩트러진 근심일랑 마누래와 같이 모여 앉아서 거드렁 거리고 놀아 보자."

 

<아니리>

이리 한 참 놀릴적에 놀보가 저의 동생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흥보집을 딱 건너 갔겄다. "아니 이놈이 별안간 거부가 되었나? 네 이놈 흥보야" 흥보가 저의 형님 소리를 듣고 나와 "아이고 형님 건너 오시었습니까?" "그래 대관절 이 집이 뉘집이냐?" "예 제 집이올습니다." " 야 그집 참 좋다. 내집허고 바꾸자." "형님 처분대로 허옵시오." "야 흥보야 내가 요세 니 소문을 가만히 들어보니 니가 요새 밤이슬을 맞고 다닌다는구나." "형님 별안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어째서 영문 포졸들이 너를 잡으로 다니느냐? 이러지 말고 농문열쇠, 광문열쇠 나한테 맞기고 저 만주로 들어가서 한 오년만 있다 오너라 이 집은 내가 잘 지켜줄게." "형님 그런 것이 아니오라 하루는 제비 한쌍이 날아들어 새끼 두 마리를 깠는디 먼저 깐 놈은 날아가고 나중 깐 놈이 날개공부 힘을 쓰다 뚝 떨어져 다리가 작각 부러졌지요.아 그래서 명태껍질을 얻고 당사실을 구하여 부러진 다리를 동여매어 제 집에 넣어 살려 주었더니 그 이듬해 강남을 들어갔다 나오면서 박씨를 물어다 주어 그 박씨를 심었드니 박 세통이 열려 팔월추석은 돌아오고 먹을 것이 없어 박속이나 먹을 양으로 박을 타보았더니 아 그속에서 이렇게 은금보화가 많이 나왔지 제가 무슨 도적질을 했단 말씀이요." 이 놈이 가만히 듣더니마는 "야 거 부자되기 천하에 쉽구나. 너는 한 마리 분질러서 부자가 되었거니와, 나는 한 열댓마리 분질러 보내면 거부장자가 될 것이야." 사랑으로 모시고 안으로 들어가 "여보 마누라 건넌말 형님이 건너오시었으니 나와 인사를 드리오."

 

<창조>

흥보 마누래가 시숙왔단 말을 듣고 구박당하던 일을 생각허니 사지가 벌렁 벌렁 떨리나 가장의 명령을 거영치 못하여 나오난디

 

<중모리>

흥보 마누래가 나온다. 흥보 마누래가 나온다. 전일에는 못 먹고 못 입고 굶주리던 일을 생각허니 지금이야 비단이 없나 돈이 없나 쌀이없나 은금 보화가 없나 녹용 인삼이 없느냐 며느리들을 호사를 많이 시키고 흥보 마누라도 한산 세모시다가 당청아물을 포로소롬허게 놓아 주름은 잘게 잡고 말은 널리 달아 아장거리고 나오더니

 

<아니리>

시숙께 다소곳이 인사를 드리니, 아 이놈이 제수가 인사를 하거든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야 흥보야 제수가 쫓겨날 때 보고 지금 보니까 미꾸라지가 용되었구나." 흥보 마누라가 들은 체도 아니허고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차리는디

 

<자진모리>

음식을 차리는디 안성유기 통영칠판 천은 수저 구리저 집리서리 수벌리듯 주루루루 벌려놓고 꽃그렸다 오족판 대모양각 당화기 얼기 설기 송편 네귀번 듯 정절편 주루루 엮어 삼피떡 평과 진청 생청놓고 조락산적 웃찜쪄 양회간 천녑 콩팥 양편에다가 벌여놓고 청당수단 잣백이며 인삼채 도라지채 낙지연포 콩기름에 갖은 양념 모아놓고 산채 고사리 수근 미나리 녹두채 맛난 장국 주루루루 들어붓고 청동화로 백탄숯 부채질 활활 계란을 톡톡 깨 웃딱지를 떼고 길게 느리워라 꼬꼬 울었다 영계찜 오도독 포도독 매초리탕 손뜨건데 쇠저말고 나무저를 드려라 고기 한 점을 덤벅뭍혀 맛난 기름 간장국에다 풍덩 디리쳐 피시이

 

<아니리>

과하주 좋은 술을 화잔에 가득부어 "옛소 시숙님 박주허나 약주 한 잔 드시지요." 이놈이 제수가 주는 술이거든 그대로 받아 먹는 것이 아니라 "야 흥보야 너는 형제간이라 내 속을 잘 알제. 내가 남의 집 초상 마당에 가서도 술잔 끝에 권주가 없이 술 안 먹는다. 제수 곱게 차려 입은 김에 권주가 한 자리 시켜라."

 

<창조>

흥보 마누래가 이말을 듣고 기가 맥혀

 

<진양>

"엇소 시숙님, 여보 여보 아주버님 제수더러 권주가 허란 말씀 고금천지 어디가 보았소 지성이면 감천이라 나도 이제는 돈과 쌀이 많이 있소 전곡자세는 그만허오, 엄동설한 치운날의 자식들을 앞세우고 구박을 당하여 나오던 일은 나는 죽어도 못 잊겄소 보기 싫소 어서 가시오 속을 채리면 뭣하러 내 집에 왔소 안 갈라면 내가 먼저 들어갈라요" 떨쳐버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니리>

놀보가 가만히 듣더니마는 "야 흥보야 니 계집 못 쓰겄다. 썩 버려라 내 다시 좋은 데로 장가 들여 주마." "형님 처분대로 허옵시오." "그리고 저 웃목에 벌근 것이 무엇이냐?" "예 그것이 화초장이올시다." "화초장이 무엇이냐?" "예 그안에는 은 금 보화가 가득 들어 있지요." "그러면 그것 날 도라." "형님 좋아하시면 내일 아침 하인지어 보낼테니 건너가십시오." "에이 씩씩치 않은 놈 보물은 밤새 다 빼내고 빈 괘만 보낼라고 그러지야.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날 보고만 도적놈이라고 헐 것이다. 아서라 매사는 불여 튼튼이라 하였으니 내가 짊어지고 갈란다." 이놈이 끌방을 늦이간 하게 짊어지고 잊어버릴까봐 화초장 석자를 한 번 외우고 가는디

 

<중중모리>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얻었네 얻었네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또랑을 건너 뛰다 "아차! 내가 잊었다. 초장초장 아니다 방장 천장 아니라 고초장 된장 아니다 송장 구들장 아니다 " 이놈이 거꾸로 부르면서도 모르겄다. "장화초 초장화 아이고 이거 무엇이냐 갑갑허여서 내가 못살것다 아이구 이것이 무엇이냐" 저의 집으로 들어가며 "여보게 마누라! 집안 어른이 어디 갔다가 집안이라고서 들어오면 우루루루 쫓아 나와 영접허는게 도리 옳지 좌이부동이 웬 일인가 에라 이 사람 몹쓸사람" 놀보 마누래 나온다. 놀보 마누래 나와 "영감 오신 줄 내 몰랐오 영감 오신 줄 내가 몰랐소 이리 오시오 이리와 "

 

177

<아니리>

놀보가 화초장을 지고 저의 문앞에서 저의 마누라를 한 번 불러 보는디 "여보 마누라." "어찌 그라요?" "여 이리 나와서 내 등에 짊어진 것이 무엇인가 한 번 알아 맞춰 볼란가?" "영감은 그것이 무엇이요?" "아 글세 나는 알고 있지만 임자가 한 번 알아 맞춰 보란 말이여." "저어 서울 친정서 그라는데 그걸 화초장이라 합디다." "아이구 내 딸이야." "아니 여보 영감 마누라보고 딸이라는 데가 어디 있소." "아 급할 때는 이리도 쓰고 저리도 붙여 써 보세." "그란디 여보 영감 이 좋은 화초장을 어디서 가져 왔소?" "좌우지간에 내가 흥부집을 건너 갔드니 이 놈이 제비다리를 분질러 가지고 거부장자가 되었네 그려. 그 놈은 한 마리 분질러 부자가 되었거니와 나는 한 이십 마리 딱 분질러 보내면 거부장자가 될 것이여." 그날부터 제비 딱지를 수 천개 만들어서 삼지사방에 붙였드니 집이 동편으로 쓰러졌것다. 놀보가 아무리 기다려도 제비가 안오니 죽을 제비가 들올 리가 있으리요. 하루는 기다리다 못하여 그물을 매어 드러메고 제비를 한 번 후리러 나가는디

 

<중중모리>

이때 춘절삼각 하사월 초파일 연자나부언 펄펄 수양버들에 앉은 꾀꼬리 제 이름을 제 불러 복희씨 맺은 그물을 에후리쳐 드러매고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방장산으로 나간다. 이편은 우두봉 저편은 좌두봉 건넌봉 낮은 봉 좌우로 칭칭 둘렀난디 아아 이루워 덤풀을 툭쳐 후여 어어허 허차 저 제비 방장산의 집늘러 덤불을 툭쳐 후여 어어어어어어 떴다 저 제비 어느 곳으로 행하나 연비여천에 소로게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 남비오작에 까치만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 춘일황앵에 꾀꼬리만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 층암절벽에 비둘기 보아 도 제비인가 의심 "저기가는 저 제비야 그 집으로 들어가지 마라, 천화일에 지은 집이로다 화급동량이라 내 집으로 들어오너라 이이이이리워!"

 

 

 

 

 

 

 

 

 

 

 

 

 

 

 

 

 

 

 

 

 

 

 

 

 

 

 

 

 

 

 

 

 

 

 

 

 

 

 

 

 

 

 

 

 

 

 

 

 

 

 

 

 

 

 

 

흥보가(=박타령)

- 동초제 (동초 김연수) -

 

<아니리>

아동방이 군자지국이요 예의지방이라 십실지촌에도 충신이 나고 칠세지아도 효제를 일삼으니 어찌 불량헌 사람이있으리오마는 요순시절에도 사흉이 났었고 공자님 당시에도 도척이가 있었으니 아마도 젊은 예기를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우리나라 경상도에는 함양이 있고 전라도에는 운봉이 있는디 운봉함양 두얼품에 중년의 박씨 형제가 있었으되 놀보는 형이요 흥보는 아우인디 같은 부모 소생이나 성품은 각각이라. 사람마다 오장이 육보로되 놀보는 오장이 칠보던 것이었다. 어찌하여 칠보인고 허니 심술보 하나가 외약갈비밑에 장기궁짝만허게 병부줌치 찬듯이 딱 붙어가지고 이놈이 사철을 가리지 않고 한도끝도 없이 나오는디.

 

<자진모리>

대장군방 벌목시키고 오귀방에다 이사귄키 삼살방 집지과허기 불난집에 부채질 아벤부인은 배통이 차고 오대독자불아까고 수절과부는 겁탈허기 다큰 큰애기 무암잡고 초란이 보면 딴낯짓고 의원보면 침도적질 거사보면 소구도적 지관보면 쇠감취기 똥누는놈 주?? 히고 꼽사동이는 뒤집어놓고 앉은뱅이는 택겨나기 엎더진놈 꼭지치기 닫는놈 앞장치고 내점든놈 정갱이훑고 삼거름길에다 허방파기 삼신든데 개잡기와 다된혼인 바람넣고 혼대사에 싸개치기 상여멘놈 몽둥이질과 기생보면은 코물어뜯고 제주병에다 가래침 뱉고 옹기전에 팔매치기 비단전에다 물총놓고 고추밭에서 말달리기 가문 논에 물기파고 장마논에다 물기막고 애호박에다 말뚝받고 다펜곡식 모뽑기 촌장보면 빗질허기 군방보면 관을 찢고 소리허는데 잔소리허기 풍류허는데 나발불기 된장그릇에 똥싸기와 간장그릇에 오줌싸기 우는애기는 집어뜯고 자는애기 눈거러벌씨고 남의제사에 닭울리기 면례하는데 뼈감추기 일년머슴 외상세경 농사지어서 추수허면 옷을 벗겨 쫓아내기 봉사보면 인도허여 개천물에다 집어넣고 길가는 과객양반 재울듯이 붙들었다 해가지면 쫓아내기 이놈 심술이 이러허니 삼강을 알으랴 오륜을 알겄느냐 오륜도 모르는 놈이 형제윤긴들 알겠느냐.

 

<아니리>

놀보놈은 이러허나 그동생 흥보는 마음이 착한지라.

 

<중모리>

부모님께 효도허고 형제간에 우애허고 일가친척 화목허기 노인이 등짐지면 자청허여 져다주고 길가에 빠진물건 임자를 찾어 전해주고 고단헌놈 봉변보면 한사모피 말려주고 타향에서 병든사람 본가에다 소식전코 집을잃고 우는아이 저희부모 찾어주기 개칩불살 방장부절 지어미물 짐승까지 구원허기 힘을쓰니 부귀를 어찌 바랄소냐.

 

<아니리>

하로난 놀보놈이 이런 착한 동생을 내쫓을양으로 공연한 생트집을 걸어 강호령을 내어 놓는디 네인놈 흥보야. 흥보 깜짝놀라 앞에와 끊어 앉으니

 

<자진모리>

내이놈아 말들어라 부모양친생존서에 너와나와 형제라도 등분있게 기르던 일을 너는 응당 알터이라. 우리부모 야속허여 나는 집안 장손이라. 선영을 맡기면서 글도 한자 안칼키고 주야로 일만 시켜 소부리듯 부려먹고 네놈은 차손이라 내리사랑 더하다고 당초 일을 안시키고 주야로 글만 읽혀 호의호식 허던일을 내오는 생각허니 원통허기 짝이없다. 네놈은 부모때에 세도를 허였으니 나도 이제는 기를펴고 세도좀 해볼란다. 또 이 집안 살림살이 내가 말끔 장만했고 논과 밭과 수만도락 나혼자 장만허여 네놈 좋은일 못허것다. 네놈의 권속들이 여태까지 먹은것을 값을쳐 받을테나 그는 다 못할망정 더 먹이던 안헐테니 오늘은 너희 처자를 모두다 앞세우고 당장 집에서 떠나거라.

 

<아니리>

흥보가 뜻밖의 이말을 들어놓니 산벼락이 내리는듯 천지가 아드허여아이고 형님 부모님 생전시 허신일은 제가 철을 몰랐으니 어찌 허신줄 모르오나 제가 죄가 있사오면 형님분이 풀리시도록 종아리를 치시던지 둔장을 치시던지 죄를 주고 이러시지 이말씀이 웬일이시요. 이놈아 우선 네식구들을 생각해봐라 이놈아 자식새끼만 돼지새끼처럼 줄줄이 퍼낳아놓으니 더 먹일수도 없거니와 네놈 밥만 먹고나면 구렁이 돌듯 집안에서 슬슬 돌다가 주막에 나가 외상술이나 먹고 넉동사니 윷이나 놀고 골패나 허고 다니는 꼴 보기 싫으니 잔소리 말고 썩 나가거라.

 

<중모리>

흥보가 기가맥혀 아이고 형님 웬말씀이요 형제는 일신이온바 한쪽각을 버리시면 둘다 병신이 될것이요. 애어귀모 어찌허며 제신세는 고사허고 젊은아내 어린자식을 뉘집에다 의탁허며 무얼 먹여 살리리까 옛날에 창공애는 구대동거 허였는디 아우하나 있는것을 나가라고 허옵시니 이엄동 설한풍에 어느곳으로 가오리까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태백산으로 가오리까 백이숙제 주려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놀보가 듣고 홰를내어 이놈 내가 너를 갈곳까지 일러주랴 잔소리말고 나가거라 불쌍허구나 흥보신세 설움이 복바치어 목메이게 우는 양을 사람의 일륜으로 볼수가 없네. 아이고 아이고 내신세야 부모님이 살어 생전에는 네것 내것이 다툼없이 평생의 호의 호식 먹고 입고 쓰고남어 세상 분별을 몰랐더니 흥보놈의 신세가 일조에 이리 될줄 귀신인들 알겠느냐. 여보소 마누라 우리가 이렇게 나가면 어느곳으로 가서 사잔 말이오. 여보 영감 그말마오. 광대헌 넓은천지 사람 살데 없으리까. 아무데라도 가옵시다. 살기좋은 서울로 갑시다. 우리가 경우를 모르니 서울 가서도 살수 없고 함평양도 가자헌들 말소리 몰라서 못가겄소. 이도저도 다버리고 산중으로 가옵시다. 산중에가 사자헌들 백물이 귀하여 못살테니 어느곳으로 가잔 말이요. 형님 앞에 다시 엎드러져서 아이고 형님 동기일신 처분으로 한번만 통촉을 허옵소서.

 

<아니리>

놀보 듣더니 네가 정 갈곳이 없어 그렇다면 내가 네 갈곳을 일러주마. 다른데로 가지말고 꼭 내가 시키는 대로 찾어가거라.

 

<자진모리>

일원산 이강경이 삼포주 사법성 오개도 육도듬에 파시평을 찾어가서 삼사월 긴긴해에 수많은 자식들을 생선엮기를 가르치고 제수는 인물곱고 탯가락이 장히 좋아 삼패기생 체격이니 노름방을 꾸며놓고 술상끼고 앉었으며 호기있는 잡기꾼들 서로 보기를 원하여 물쓰듯 돈 쓸테니 이삼년만 그리허면 거부장자가 될것이다.

 

<아니리>

시키는말 잊지말고 꼭 그렇게 헐것이지 애당초 나는 믿지 말어. 네 만약 떠난 후에 다시 이문전에 들어서면 살육지환이 날것이다. 이놈.

 

<중모리>

흥보 듣고 하릴없이 처자들을 앞세우고 제형전에 하직헐제 형님 갑니다. 부디 안녕히 계옵시오. 저는 형님을 못 받들고 선영을 못모시고 정처없이 가거니와 마음 상치 말으시고 선영을 모시옵고 부귀공명 수명장수 유방백세 허옵소서. 통고하며 떠날적에 심지어 하인들과 동리남녀 노소없이 눈물로 하직허니 가련한 그 정상을 목석인들 보겄느냐.

 

<아니리>

그때의 흥보가 처자들을 앞세우고 정처없이 다니다가 하로난 복덕촌이란 곳을 당도허니 인심도 거룩허고 농장도 수근이 튼튼허여 사람살기 좋은지라 그때 마침 촌전으로 집 한채가 비어있어 집주인 찾어 사정한바 집을 영구히 허락커늘 동리 솟하나 얻어 걸고 근근히 살어갈제

 

<중모리>

집형상을 볼작시면 뒷벽에는 왜뿐이요. 앞창은 살만남고 지붕은 다 벗어져 추년는 들어나고 석가래는 꾀를벗어 밖에서 세우오면 방안에는 큰비오고 부엌에 불을 때면 방안은 굴뚝인디 밥을 하도 자조허니 아궁이에는 풀이났네. 멍석자리 꺼적문에 부엉치로 이불삼어 춘하추동 사시절을 품을팔어 연명헐제 상하전답 김매기 전세 대동방아찧기 한시 반때 놀지않고 이렇듯 품을 팔아 생불여사로 지내는구나.

 

<아니리>

흥보가 이렇게 가난하게는 살어도 자식은 부자였다. 자식들을 풀풀히 났는디 일년에 꼭 한배씩을 낳되 의례껏 쌍동이요 간혹 셋씩도 낳고 그렁저렁 보태놓은 자식들이 깜부기 하나 없이 아들만 꼭 스물아홉을 조롯이 났겄다. 하로난 이놈들이 제각기 입맛대로 음식타령을 내어 저희 어머니를 조르난디 한놈이 나앉으며 아이고 어머니 나는 설이 쌀밥에 육계장국 후춧가루 얼큰히쳐서 더운 김에 한대접만 주시요흥보 마누라 듣더니 아이고 이 자식들아 전에 먹던 입맛은 있다마는 죽도먹지 못허는디 턱없는 육계장을 어디있어 달라느냐또 한놈이 나앉으며 아이고 어머니 나는 술찌게미나 보릿겨나 제발 덕분에 배부른 것좀 주시오한참 이럴즈음에 흥보 큰 아들놈이 썩 나앉는디 수염에 가지가 돋힌놈이 고동부사리 성음으로 저희 어머니를 조르것다. 어머니아이고 이놈아 너는 어째 목에 시꾸가 많으냐어머니 아버지 공론하고 나 장가좀 보내주시오

 

<진양조>

흥보 마누라 기가맥혀 엇다 이놈아 야이놈아 말들어라. 우리가 형세가 있고보면 네장개가 여태 있으며 중한 가장을 못 멕이고 어린 자식을 벗기겠느냐 못먹이고 못입히는 어미 간장이 다 녹는다. 제발 덕분에 조르지를 말어라.

 

<아니리>

흥보 옆에서 가만히 듣더니 목이메어 허는 말이 여보 마누라 우지마오. 내읍내좀 갔다오리다. 읍내는 무엇허러 가실라요. 환자섬이나 얻어와야 어린자식들을 구원허지 안겄오. 아이고 여보 영감 그 모양에 환자 먹고 도망헌다고 안줄것이니 가지마시오. 흥보가 화를 벌컥 내며 무슨 일을 꼭 믿고만 다니는가. 구사일생으로 알고가지. 내 다녀오리다. 흥보가 읍내를 가려고 갓망 의복을 차리는디.

 

<자진모리>

흥보치레를 볼작시면 편자 떨어진 헌 망건 물렛줄 당줄에다 박조각으로 관자달어서 두통나게 졸라쓰고 절대 부러진 헌 파립 버릿줄 총총매어 노갓끈 달아쓰고 다 떨어진 고의적삼 살점이 울긋블긋 목만 남은 질버선에 짚대님이 별조로구나. 헐디헌 베도폭에 열두도막 이은 때 흉당눌러 고이 매고 한손에다가 곱돌 조대를 들고 또 한손에다 떨어진 부채들고 줄어도 양반이라고 여덟팔자 걸음으로 어싯버싯 내려간다.

 

<아니리>

흥보가 읍내를 당도허여 질청을 들어가니 호장이하 아전들이 우 나오며 아니여 박생원 아니시요. 여러분 본지 경세 우경연이로고. 박생원 어쩐 걸음이시요. 글쎄 권솔들은 많고 먹을것이 없어 환자섬이나 얻을까허고 왔지만 여러분 처분이 어쩔런지 모르제. 박생원 그러지말고 오신김에 매품을 좀 팔으시오. 아 돈생길 품이면 팔고말고 허여.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고을 좌수가 병영영문에 상사범을 당했는디 좌수대신 가서 곤장 열개만 맞으면 곤장 한개에 돈이 석량씩 열개면 설흔량은 굳은 돈이요. 누가 가든지 말타고 가라고 마삯 닷량까지 주기로 했으니 다녀 오실라요. 암 가고말고 허여. 내가 아니꼽게 말타고 갈것이 아니라 정갱이 말로 노자나 풍족이 쓰고 갔다 올라요. 그돈 닷냥 날 내어 주시오, 아 글랑 그리허오.

 

<중모리>

저아전 거동을 보아라 궤문을 절컥 열더니마는 엽전 닷냥을 내어주니 흥보가 받어 손에들고 여러분 내 다녀오리다. 예 평안히 다녀오오. 질청문밖 썩 나서서 얼씨구나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네. 지화자자좋을시구. 돈봐라 돈 돈봐라돈돈 도돈돈돈돈봐라 돈 얼씨구나 좋을시구. 오늘 걸음은 잘걸었다. 이돈 닷냥 가지고 가면 열흘은 살겄구나. 저희집으로 들어가며 여보 마누라 어디갔오. 대장부 한번 걸음에 엽전 설흔닷냥이 들어를 온다. 거적문 열소 돈들어갑네.

 

<중중모리>

흥보 마누라 나온다. 흥보 마누라가 나오며 어디돈 어디돈 돈봅시다 어디돈 이돈이 웬돈이오. 일수 월수변을 얻어왔오. 체계변전을 얻어왔오. 아니 그런돈이 아니로세 일수월수를 왜 얻으며 체계변전을 왜 얻겄나. 그러면 이돈이 웬돈이요. 길거리에 떨어진돈을 오다가다가 줏어왔오. 아니 그런돈이 아니로세. 이돈 근본을 이를진데 대장부 한번 걸음에 공돈같이 생긴 돈이로세 돈돈돈 돈봐라. 못난 사람도 잘난돈 잘난 사람은 더잘난돈 생살지권을 가진돈 부귀공명이 붙은돈 맹상군의 술레바퀴같이 둥글둥글 도는돈 돈돈돈돈 돈돈돈 돈봐라.

 

<아니리>

자 이돈 가지고 양식 팔어오오. 양식팔고 고기 사다가 자식들을 데리고 배부르게 먹었겄다. 그날밤 자식들을 다 잠들여놓고 흥보마누라 조용히 묻는말이 여보 영감 배부르게 먹고나니 좋기는 허요마는 대체 이돈이 어디서 났오. 여보 큰일 부터는 비불발설 해야하오. 그돈이 다른돈이 아니라 우리고을 좌수가 병영영문 상사범을 당했습니다. 좌수대신으로 가서 곤장 열개만 맞으면 한개에 석냥씩 열개면 설흔냥 아니오. 말타고 가라고 마삯 닷냥까지 줍디다 그리여. 만일 뒷집 꾀수아비란놈이 알면 발등걸이를 당헐테니 쉬-

 

<중중모리>

흥보마누라 이말듣고 펄쩍뛰어 일어서며 허허 허허 이것이 웬말인가. 마오 마오 가지마오 아무리 죽게된들 매품말이 웬말인가. 맞을일이 있다해도 가산방매헐지라도 그일 모면 헐터인디 번연히 아는 일을 매맞으러 간다허니 당신은 어쩐생각죽을라고 환장인가. 못가리다 못가리다 굶으면 그냥 굶고 죽으면 좋이 죽지 가긍한 저형상에 매란말이 웬말이요.

 

<아니리>

아이고 여보 영감 병영영문 곤장 한개만 맞어도 종신 골병이 든답디다. 제발 덕분에 가지 마시오흥보 듣더니 여보마누라 염려마오. 아 불기 이것 두었다가 엇다.(아디다) 언제 쓸것이오. 이렇게 궁한 판에 매품이나 팔어먹지 걱정마오. 내 다녀 오리다. 이렇게 옥신각신 허는통에 어느듯 동방이 히번히 밝었구나. 아침밥 지어 먹은 후에

 

<중모리>

흥보가 내려간다. 병영 일백 구십리를 허유 허유 내려가며 신세 자탄으로 울고간다. 아이고 아이고 내신세야 천지가 삼기고 사람이 생겨날제 별로 후박이 없건마는 박홍보는 박복허여 매품이란 말이 웬말이냐. 그렁저렁 길을 걸어 병영 영문을 당도허여 치어다보니 대장기요. 내려굽어보니 숙정패로구나 심산맹호 위엄같이 용자 붙은 군로 사령들이 이리가고 저리갈제. 흥보는 근본이 숱헌 사람이라 벌벌벌 떨면서 들어간다.

 

<아니리>

그날싸 말고 영문이 잔뜩 부풀어 죄인 잡어 드려라. 방울이 떨렁 사령이 예이. 흥보가 벌벌 떨며 아마도 내가 산채로 염라대왕을 보러 왔나부다. 흥보가 삼문간을 들여다보니 죄인들이 너댓씩 엎져 볼기를 맞거늘 흥보 마음으로는 그 사람들이 모두 돈버는 사람인줄 알었겄다. 아이고 저사람들은 먼저와서 돈 수백냥씩 번다. 나도 볼기를 까고 엎져볼까. 흥보가 삼문간을 들어가 가만히 엎졌을제 흥보 아는 사령 하나가 나오며 아니 여 박생원 아니시요. 알아 맞췄오. 아니 왜 이러고 엎졌소. 매맞으로 왔지. 저사령 알아듣고 박생원 곯았오. 곯아. 곯다니 그게 어쩐 말인가. 다른게 아니라 아가 조사후에 어떤놈이 흥보씨 대신이라고 왕서 곤장 열개맞고 돈 삼십냥 벌어 짊어지고 한 오십리는 갔을것이오. 아이고 그놈이 어떻게 생겼든가키는 조그만허고 모기눈 주걱턱에 쥐털수염 거사리고 곤장 열개를 맞는디 그놈 참 당차게 맞습디다. 아이고 이일을 어쩔거나. 어젯밤 우리 마누라가 우는 통에 뒷집 꾀수아비란 놈이 알고 발등거리를 허였구나

 

<중모리>

번수네들 나는 가네. 수번이나 잘들 허소. 저희집으로 돌아오며 팔자를 탄식헌다. 몹쓸놈의 팔자로다. 매품에도 손재가 있으니 이런복이 또 있느냐. 집이라고 들어간들 처자들이 묻거드면 무슨말로 대답을 헐거나. 설리 울면서 돌아올제 그때여 흥보 마누라는 흥보 떠나던 그날부터 매를 맞지 말게 허여 주시라. 하느님전 축수를 허며 눈물 끄칠날이 바이 없이 가던길을 바라보며 불쌍허신 우리영감 어찌 이리 못오신고. 어디만치 오시는가. 약한몸에 매를 맞고 전동전동 오시는가.

 

<아니리>

이렇듯 울고 서 있을제 흥보가 비틀거리고 들어오거늘 흥보마누라 달려들어 아이고 여보 영감 매 맞었소. 매 맞었거든 어디 상처나 좀 봅시다. 놓아둬 이 여편네야 여편네가 집구석에서 그 방정을 떨었으니 무슨놈의 재수가 있어 내가 매를 맞었으면 인사불성이여. 아이고 영감 정말 매를 안 맞으셨오. 아 글쎄 안 맞었당게.

 

<중중모리>

흥보 맘누라 좋아라 춤을 추며 노는디. 얼씨구나 절씨구 절씨구나 졸시구 영감이 엊그저께 병영길을 떠나신후 매를 맞지 말고 무사히 다녀오시라고 주야축수로 빌었더니 매아니 맞고 돌아오시니 어찌 아니 즐거운가 얼씨구나 절씨구 옷을 벗어도 나는 좋고 굶어 죽어도 나는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나 지화자 좋을시구.

 

<아니리>

여보 영감 이제는 그런 허망헌말 듣지말고 건너마을 시숙님댁에 건너가서 쌀이 되거나 벼가 되거나 양단간에 얻어다가 이 자식들을 구원헙시다. 글씨 나도 그런생각은 있었으나 만일 건너 갔다가 볼기나 맞고 오거드면 남의 말 잘하는 이세상에 형님 실덕 될터이니 그 일을 어찌 할일이요. 여보 영감 윤기박대는 없습니다. 빌어보고 아니주면 돌아오면 그만이요 천행으로 사정듣고 다소간 주시오면 한때 기근은 면할테니 헛일 삼어서 한번 가보시요. 그러며 그래 볼까.

 

<자진모리>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가 건너갈제 꼭 얻어 올줄 알고 큼직한 오장치를 평양가는 어둥이 본으로 등에다 짊어지고 서리아침 치운날 팔장끼고 옆걸음쳐 놀보 사랑을 건너간다.

 

<아니리>

이러고 건너가다 마당쇠를 만났겄다. 아이고 마당쇠야, 작은 서방님, 그동안 아씨 도련님들 다 무고허신지요. 오냐 마당쇠야 큰 서방님 문안 안녕하며 성정은 종어떠허냐. 아이고 말도 마십시요. 이제는 제사를 모셔도 대전으로 바친답니다. 아니 대전으로 바치다니. 제 말좀 들어보십시요.

 

<자진모리>

제향날이면 접시에다 엽전을 한주먹씩 가득 가득이 담어놓고 술이라 과실이라 어포육포 인절미라. 어전육전 편적산적 생선이라 오색탕이라 채소라 수정과라 말끔히 찌를 부쳐 어동육서 홍동백서 좌포우혜 분향재배로

 

<아니리>

파제날이면 쏵 닦어버리고 궤속에다 도로다 집어넣습니다. 만일 들어가셨다가는 몽둥이 찜질을 당헐테니 그냥 돌아가십시요.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다가 어찌 형님을 안뵙고 갈수가 있겠느냐. 사랑에를 들어가 제형이건만은 대청에는 올라가지 못허고 뜰밑에 엎지며 아이고 형님 동생 문안이요. 놀보가 듣더니 게 뉘시오. 흥보는 정말 몰라 그러는 줄 알고 아이고 형님, 형님 함자는 놀자 보자 이옵고 형님 동생 흥보 올시다. 오 네가 바로 그 흥보냐. 이 도적놈아. 어찌 또 왔느냐. 형님 안녕허신지 문안이나 알고져 왔습니다. 야 그놈 핑계한번 좋다. 나 편헌 속 알았거든 썩 돌아가거라. 그 말끝에 썩 나왔으면 허련마는 웬간헌 제주변에 놀보감동 시킬줄로 고픈배 틀어잡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허는디

 

<진양조>

흥보가 비는구나 두손 합장 무릎을 끊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전의 비나이다. 그제 저녁을 굶은 처자 어제 아침을 그져있고 어제 저녁도 굶은 처자가 오늘 아침도 못먹었으니. 만석군 형님두고 굶어죽기가 억울하오. 쌀이 되거든 한말만 주옵시고 벼가 되거든 두말만 주옵시고 돈이 되거든 한냥만 주옵시고 그도 정 못하시면 식은 밥이나 싸래기나 찌게미나 몽근겨나 한가지만 주시어도 여러날 굶은 처자들을 구원허여 살리겠네다. 형님 덕분의 살려를 주오.

 

<아니리>

놀보 듣더니마는 야 그놈 불쌍허다. 여봐라 마당쇠야 동편 곳간문 열고 지리산에서 도끼 자루 헐라고 건목쳐내온 박달 몽둥이 하나 이리 가져오고 대문 걸어라 오늘 한놈 식훌놈 있다.

 

<자진모리>

놀보놈 거동봐라 지리산 몽둥이를 눈위에 번듯들고 두눈을 부릅뜨고 엇다 이놈 흥보놈아 하늘이 사람낼제 제각기 정한분복 잘난놈은 부자되고 못난놈은 가난허니 내이리 잘사는게 하늘이 주신 내복이지 네복을 뺏었느냐. 쌀말이나 주자헌들 남대청 큰 두지에가 가득가득이 들었으니 네놈 주자고 뒤지헐며 볏말을 주자헌들 천록방 가리노적 태산같이 쌓였으니 네놈 주자고 노적헐며 돈냥이나 주자헌들 옥당방 용목궤에가 가득가득이 쌓였으니 네놈주자고 관돈헐며 찌게미나 몽근겨나 양단간에 주자헌들 궂고은방 우리칸에 떼 돼야지가 들었으니 네놈 주자고 돗 굶기며 식은밤이나 주자헌들 새끼난 암캐들이 퀑퀑짖고 내달으니 네놈주자고 개굶기랴. 몽둥이를 들어 메더니 강짜 싸움에 계집치듯 좁은 고을에 벼락치듯 후닥딱 뚝딱 아이고 이 굽살맞어 죽을놈아 어째서 나를 못살게 왔쌌냐. 후닥딱 아이고 흥보가 도망을 허자헌들 대문을 걸었으니 날도 뛰도 못허고 그저 퍽퍽 맞더니마는 중문을 차고 안으로 쫓겨 들어가며 아이고 형수씨 사람좀 살려주시요.

 

<아니리>

놀보 마누라는 독허기가 놀고보다 장리가 더허겄다. 밥을 푸다 밥주걱을 들고 나오며 아지뱀이고 동아뱀이고 한달도 서른날 돈달라 쌀달라 세상만사가 귀찮다. 아나돈 아나밥. 뺨을 짐짝치듯 치는구나. 흥보가 뺨을 맞고나니 형님한테 맞은것은 오히려 여반장이라.

 

<진양조>

곰곰 생각을 허니 하늘이 빙빙돌고 땅이 툭 꺼지는듯 분허고 원통허여 우루루루루- 형님앞에 가 엎드러져서 통곡으로 원정을 허는 디 아이고 형님 듣조시오. 형님이 저를 죽이시던지 살리시던지 그는 한이 없사오나 형수씨가 시아제 뺨치는법 고금천지 어디서 보았오. 차라리 아조 죽여주며 염라국을 찾어가서 부모님을 뵈옵는날 세세원정을 내가 아뢸라요. 지리산 호랑아 박흥보 물어 가거라. 굶주리기도 나는 싫고 세상살기도 귀찮허다.

 

<아니리>

흥보는 이렇듯 제형에게 매를맞고 울며불며 건너갈제 그때여 흥보마누라는 흥보 오는가 본다고 막둥이 업고 나갔다가 흥보가 절뚝거리고 들어 오거늘 흥보마누라 달려들어 여보 영감 어찌 이리 더디었오. 전곡간에 무얼 좀 얻어 오셨소. 흥보가 아무쪼록 마누라 듣기좋게 허는말이 여보 마누라 내가 형님 댁에를 건너갔더니 형님과 형수시께서 깜짝 반기시며 돈과 쌀을 많이 주시기에 어찌 좋아던지 쌀속에다 돈을넣어 몽똥그러 짊어지고 허둥지둥 건너오는디 요넘어 질모퉁이 고개를 막 당도허니 십여명 도적놈들이 나서더니 네 이놈 흥보야 전량이 크냐 목숨이 크냐 엎어뺨 한주먹에 대번에 쥐가나고 정신 차릴길이 었읍디다. 그래서 죄다 빼았기고 죽게 맞고 왔오.흥보 마누라 이말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쑥들어가 두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간신히 살가리운 고의뒷폭 툭 무너져 바싹 마른 볼기짝에 몽둥이 맞은 흔적 피가 곧 솟는지라.

 

<중중모리>

흥보 마누라 미친듯이 두손뼉 탕탕 허허 이것이 웬말인가 그런대도 내가 알고 저런대도 내가 아오 시숙님 속도 알고 동서속도 내다아오. 동냥은 못줄망정 박자조차 깬다더니 여러날 굶은 동생 안주면 그만이지 이모양이 웬일이여 방약무인 도척이도 이보다는 성현이요 춘추때 양주라도 여기대면 군자로세, 세상 천지간에 이런일도 또 있는가. 가기싫어 허시는걸 방정맞은 계집년이 궂이 가라고 우기었다. 이 지경을 당하였네. 국난에 사양상이요 가빈에 사현처라 내얼마나 음전허면 불쌍헌 우리가장 못멕이고 못입힐까 가장은 처복없이 내죄로 굶거니와 철모르는 자식정상 목이메어 못보것네 차라리 내가죽어 이꼴저꼴 안볼라네 초마끈으로 목을매어 죽기로 작정허니 홍보가 기가막혀 마누라 손을잡고 아이고 마누라 이것이 웬일이요. 부인의 평생시니세 가장의게 매었는디, 박복헌 나를 만나 이곳생을 당케허니 내가 먼저 죽을라네 허리띠를 끌러내어 석골에다가 목을 매니 흥보아내 깜짝놀래 와르르르르르 달려들어 흥보를 부여잡고 아이고 영감 내 다시는 안울테니 이리마오. 손목을 마주잡고 둘이 서로 통곡허니 초상난 집이 되었구나.

 

<아니리>

이렇듯 흥보내외 붙들고 우는 통에 자식들까지 따러 울어놓니 그야말로 흥보 집안이 뭍 초상난 집이 되었겄다. 그때 마침 흥보를 살릴 중이 하나 내려 오는디.

 

<엇모리>

중내려온다. 중하나 내려오는디 저중의 모양을 보소 헐디헌중 서리같은 두눈썹은 웬낯을 덮어있고 크다큰 두귓밥은 양어깨에 닿을듯 노닥노닥 지은장삼 실띠를 띠고 다떨어진 속락은 요리송 치고 조리송쳐 호옴뻑 눌러쓰고 동냥을 얻으면 무엇에다 받어갈지 목괴짝 바람등물 하나도 안가지고 개미하나 안밟히게 가만가만 가려딛고 염불허며 내려온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흥보문전을 당도허니 처량헌 울음소리가 귀에 얼른 들린다. 저중이 깜짝놀래 가만히 들어보니 사생이 미판이로 구나. 저중이 목탁을 치며 지나가는 걸승으로 어진댁을 왔사오니 동냥한줌 주옵시오.

 

<아니리>

흥보가 나가보니 중이 왔거늘 대사님 대사님이 오셨으나 제집을 둘러보오 서발장대가 거칠 문적이 없소. 후일에 많이 시주할테니 오늘은 다른댁에나 가 보옵소서. 소승이 걸승이오나 댁의 문전을 들어선즉 울음소리가 낭자하오니 어쩐 곡절로 우시나이까 대사님이 들으셨다니 어찌 기망하오리까 자식들은 많고 먹을것이 없어 우리내외 서로 죽엄을 다투어 우는 길이요. 가긍헌 말씀이요. 복이라 허는것은 임자가 없는 법이요. 무지무모헌 소승의 말을 믿고 명심할테면 집터 하나를 잡아 드리오리다. 소승의 뒤를 따르소서. 너무 감축 하여이다.

 

<진양조>

흥보가 좋아라고 중의 뒤를 따러가는디 저중이 가다가 우뚝 서더니마는 이명당을 알으시오. 배산임수 계곡허고 무림수죽이 두른곳에 집터를 제혈허는디 명당수법이 완연허구나 감계룡 간좌공향 탐랑득검은파 반월형 일좌안의 문필봉 창고산이 좌우로 높았으니 이터에다 집을 짓고 안번허고 지내오면 가세가 속발허여 도주이돈 비길테요. 자손이 장성허여 삼대진사 오대급제와 용지불갈 취지무궁허여 그릴것이 없으리다. 입주자리에 표목을 꽂아놓고 한두걸음 나가더니만 인흘불견 간곳이 없구나.

 

<아니리>

흥보가 그제야 도승인줄 짐작허고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헌 후 있던 움막을 뜯어다가 수숫대 절읍대로 그터에다 성조를 허여놓니 집조격은 볼 수 없으나 그터에 성조후로 첫째 집안에 우환이 없어지고 부자들이 병작이라도 논마지기씩 붙여주고 차차 좀 살기가 낳어지니 흥보가 신통허여 하루는 집터 글자를 붙여보던 것이었다.

 

<중중모리>

겨우동자 갈거자 삼월삼진 올래자 봄춘자 좋을시구 나비접자 펄펄날어 춤출 무자가 좋을시구 꾀꼬리는 노래허니 노래가자가즐겁다. 기는건 짐생수자 나는건 새금자 쌍거쌍래 제비연자 날비자 좋을시구 흥보가 보고 좋아라 얼씨구나 되었네 이터에 내명당이로다 얼씨구나 좋을씨구

 

<아니리>

이렇게 세월을 보낼적의 그해 겨울을 다 보내고 봄철이 다다르니 제비한쌍이 날아들어 처마안에다 집을 짓고 알을낳아 새끼를 쳐 밥물어다 먹이며 자모구구 즐기더니 하루는 천만의워 대명이가 들어와 제비를 다 잡어먹는지라.

 

<단중모리>

흥모가 보더니 깜짝놀래 경설허여 쫓는구나. 무상허다 저 대명아 네먹을것 많허구나 청초지당 처처와요 춘면불각처처조라 허다헌곳 다버리고 구태여 내집에 와서 제비새끼 먹단말가. 한고조의 적소검으로 네허리를 베고지고 남악사에 원정하여 신병을 몰아다가 네의 큰 목을 자르고져 급급히 쫓고보니 새끼땀에 못떠나고 어미제비도 죽었으며 여섯새끼 다섯먹고 겨우 하나가 남었구나. 다만 하나 남은것이 날기공부 힘쓰다가 대평상에 뚝 떨어져 발목이 질끈 부러져서 피흘리고 발발떠니 흥보양주 어진마음 제비새끼 주어들고 한없이 탄식헌다. 불쌍타 내제비야 가긍한 네목숨이 대명의게 안죽기에 완명인줄 알았더니 이지경이 웬일이냐 내집이 가난허여 사람은 아니찾아오나 너는 매양 찾어오니 가난박대 안허기는 아무리 머물이나 제비 너희 뿐이로다. 좋은집을 다버리고 궁벽산촌 박흥보집 험한곳에와 삼겼다가 절각지환이 웬일이냐.

 

<아니리>

명태껍질과 당사실을 구하여 부러진 다리를 칭칭동여 제집에 넣어주며제비야 죽지말고 멀고먼 만리강남 부디 수히 잘가거라.흥보 은혜를 갚을 제비어든 죽을리가 있으리오. 십여일이 지내더니 다리가 차차나아 날기공부 힘을 쓸제.

 

<진양조>

구만리 창공우의 높이 높이 날아도 보고 일대장강 맑은 물에 배를 쓱 씻어도 보고 평탄헌 너른 뜰에 아장아장 걸어도 보고 길게 매인 빨래줄에 한둘한둘 놀아도보고 세우에 홈초리 젖은 두날개 실근 실근 깃도 다듬어 보니 흥보가 보고 좋아라고 나갔다 들어와서 제비집을 만져보고 집안에 들어 있을때면 제비허고 소일을 헐제 칠월유화 팔월한위 이슬이 서리되고 금풍이 삽삽허여 구월구일 당도허니 동방의 실솔불어 깊은 수심 자어내고 창공의 홍안성은 먼데 소식 띄어온다. 용산의 술마시고 망향대에 손보낼적 섭섭타 내제비야 날버리고 가랴느냐. 강남이 머다는디 며칠이면 당도헐꺼나. 명춘의 나오거든 부디 내집을 찾아오너라. 제비 저도 섭섭허여 나갔다 도로와서 이별을 아끼는듯 지지주지 울고 노는양은 흥보보고 사례한듯 흥보는 원래 설움이 많은 사람이라 제비허고 이별을 허면서도 슬픈눈물로 이별을 마쳤더라.

 

<아니리>

제비가 강남을 들어가니 강남두견은 조종지 황제라 백조 점고를 받던 것이었다. 초산에 나갔던 분홍제비 나오. 노라라 들어갔던 초록제비 나오. 중원에 나갔던 명매기 나오. 조선에 나갔던 현조 조선에 왔던 제비 차례로 들어갈제

 

<중중모리>

흥보 제비가 들어온다. 박흥보제비가 들오는디 부러진 다리가 봉퉁이가져서 전동 전동 전동 전동거리고 들어오며 예 제비황제 호령허되 너는 왜 다리가 봉퉁이 졌는냐. 흥보제비 여짜오되 예 소조가 아뢰리다. 소조어미 조선땅의 박흥보집을 주인삼고 저희들 오류수를 까서 거의 날게 되었더니 뜻밖의 대명이가 어미까지 모두 다 잡어먹고 다만 저하나 남은것이 날개공부 힘쓰다가 대평상에 뚝 떨어져 대번에 다리가 찰칵 부러져 거의 죽게 되었더니 어진 흥보 덕택으로 소저하나로 살았으니 어찌허면 은혜를 갚소리까 깊이 통촉허옵시와 흥보씨 은혜를 갚어지이다.

 

<아니리>

어명을 어기면 그런 변을 당하느니라. 금년 이월 나갈적의 그날이 을사일이라 사불원행이기로 가지말라 허여도 너희어미 고집으로 나가더니 배암날 떠났기로 배암환을 당했구나. 그러나 흥보씨는 금세의 군자로다. 흥보씨 은혜를 갚으랴거든 보은표 박씨 하나만 갖다 신전하라. 삼동을 다 지나고 춘삼월이 방자커늘 각색 짐승들이 모두다 발정헐제 다리 봉퉁이 흥보제비도 황제전숙배허니 보은표 박씨 하나를 하나커늘 저제비 입에 물고 만리조선을 찾아 나오는디.

 

<자진 중중모리>

흑운 박차고 백운 무릅쓰고 거중의 둥실 높히 떠 두루 사면을 살펴보니 서쪽지척이요 동해 창망구나 중영봉을 올라가니 주작이 넘논다. 상익토 하익토 오작교 바라보니 오초 동남의 가는 배는 북을 둥둥 울리며 어기야차 어허어허 허어어야 어기야 히야 저어가니 원포귀범이 이 아니냐 수벽사명 양안택의 불승청원 각비래라 날아오는 저기러기 갈대를 입에다 물고 일점이점 떠러지니 평사낙안이 이아니냐 백구백로 짝을 지어 청파상에 왕래허니 석양촌이 여기로다. 회안봉을 넘어 황릉묘 들어가 이십오현 단야월의 반죽까지 쉬어 앉어 두견성을 회답허고 봉황대 올라가니 봉거태공 강자유라. 황학루를 올라가니 황학일거 불보반 백운 천재 공유요라 금릉을 지내어 주사촌 들어가니 공수창가 도리개라 낙매화를 툭쳐 무연의 펄렁 떠러지고 이수를 건너 종남산을 지나 계명산 올라가니 장자방 간곳 없고 남병산 올라가니 칠성단이 비던터요. 연제지관을 지내어 갈석산을 넘어 연경을 들어가 황극전에 올라앉어 만호장안을 구경허고 정양문 내달아 상달문을 지나 봉관을 들어가니 살미력이 백이로다. 요동 칠백리를 순식간의 지내어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다다라 영고탑 통근정 구경허고 안남산 밧남산 석병강 용천강 좌우령을 넘어들어 부산파발 할마고개 강동 다리를 건너 평양의 연광정 부벽루를 구경허고 대동강 장림을 지나 송도를 들어가 망월대 광덕전 선죽교 박연폭포를 구경허고 임진강을 시각에 건너 삼각산에 올라앉어 지세를 살펴보니 청룡의 대원맥이 중령으로 흘러져 금하금성 분개허고 도봉 망월대 솟았구나. 문물이 빈번허고 풍속이 희하하여 만만세지 금탕이라 경상도는 함양이요. 전라도는 운봉이라. 운봉 함양 두얼품에 흥보가 사는지라 저제비 거동을 보소 박씨를 입에다 물고 남대문밖썩 내달아 칠패팔패 청파 배다리 애고개를 얼른넘어 동작강을 월강 승방을 지내어 남퇴령 고개넘어 두쪽지 옆에끼고 거중의 둥둥

 

<중중모리>

흥보문전을 당도. 당상 당하 비거비래 편편히 노는 거동 무엇을 같다고 이르랴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으로 넘노난듯 단산 봉황이 죽시를 물고 오동속으로 넘노난듯 유곡청앵이 난초를 물고 송백상에서 넘노난듯 안으로 펄펄 날아들제 들보우에 올라 앉어 제비말고 운다. 지지지지 주지주지 거지연지 우지배요 낙지각지 절지연지 은지덕지 수지차로 함지표지 패지배요. 빼드드드드- 흥보듣고 괴이여겨 가만히 살펴보니 절골양각이 완연 오색당사로 감은흔적 아리롱 아리롱허니 어찌 아니가 내제비랴. 반갑다 내제비 어디를 갔다가 이제와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내제비 강남은 가려지라는디 어이허여 다버리고 누추헌 이내집을 허유허유 찾아 오느냐. 인심은 교사허여 한번가면 잊건마는 너는 어이 신의있어 옛 주인을 찾어 오느냐 원촌전촌 널보내고 욕향청산의 문두견 소식 적적 막연터니 네가 나를 찾어오니 천도지도 반갑다. 저제비 거동을 보소. 보은표 박씨를 흥보 양주 앉은 앞에 때그르르... 떨쳐놓고 들어갔다 나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이리 저리 넘는다.

 

<아니리>

흥보 양주 앉은앞에 뚝 떠러뜨려 놓은것을 흥보마누라 얼른 주워보더니 아이고 여보영감 제비가 뭔 씨앗을 물고 왔는디 글씨가 씌어있소. 흥보듣고 보더니 응갚을보 은혜은 박표 보은표라 보은표 보은표 아 이놈이 공주로 노성으로 은진으로 온것이 아니라 보은으로 옥천으로 연산으로 돌아온 놈이로구나 보은대초 좋다는 말은 들었어도 박 좋다는 말은 금시 초문인디 그러나 저러나 보은 박일러지 강남 박일러지 제가 이렇게 물고 온것이 기특해서라도 우리한번 심어 봅시다.

 

<중중모리>

을불 제중날을 가려 후원에 양지찾어 구덩이를 깊히 파고 신짝놓고 거름놓고 박씨를 또닥또닥 단단히 심었구나 수일만에 살펴보니 박순이 벌써 솟았는디 박넝쿨이 굵직굵직 중선배 닿줄만씩 곱게 뻗어 초막집을 꽉꽉 얽혀 놓았으니 천동지동 헌다해도 집이 짜그라질리 없고 박잎싸귀가 삿갓만씩 흥보집을 덮었으니 구년홍수 진다해도 비한점 샐 수 없이 되어 동내사람도 다모르게 흥보가 벌써부터 은근히 박덕을 보는구나.

 

<아니리>

이때는 어느땐고 팔월추석 가절이라. 다른 집에서는 떡을친다 술을 거른다 지지고 볶으느라고 이놈의 냄새가 코난간을 무너내는디 흥보집은 냉랭허여 군신풍이 들이 부는지라자식들은 밥을달라 떡을 달라 흥보는 가슴이 미어질듯마음 달랠 길없어 어디론지 나가 버리고(흥보마누라는 졸리고 앉었다가 설움이 북바치어 신세자탄으로 울음을 우는디) 흥보는 이렇게 가난하게는 살아도 자식은 부자였다. 흥보 열일곱째 아들놈이 유혈이 낭자해가지고 울고 들어오며 어머니 나 송편 세개만 해주시오아 이놈아 어째서 하필 떡을 세개만 해달라느냐, 동리로 놀러갔더니 얘들이 송편을 먹기에 내가 좀 달랬더니 가래속으로 기어나오면 송편을 주마기에송편얻어 먹을 욕심으로

 

<중모리>

엎저 기어 나갈적의 뒤엣놈 떨어져 앞에 와 서고 그 뒷엣놈 떨어져 앞에 와서고 다음담놈 떨어져 앞에와 서서 한정없이 기어 가자허니 무릎이 모다 헤어지고 유혈이 낭자 허였기로 내가 욕설을 좀 허였더니 송편일앙 고사허고 뺨만죽게 때려주니 송편 세개만 허여주면 한개는 입에 물고 두개는 양손에 갈라쥐고 조롱 허여 가면서 먹을라요. 흥보마누라 기가맥혀 목이메어 허는말이 내자식아 무엇허러 나갔드냐 천하 몹쓸 애들이지 못먹이는 이 어미는 일촌간장이 다 녹는디 굶어죽게 생긴 자식을 그리 몹씨 허드란 말이냐 우지마라 우지마라 불쌍헌 내새끼야 우리를 마라.

 

<아니리>

이렇듯 울고 있을 적에 그때여 흥보는 동내로 놀러 갔다가 친구 덕분에 술이 얼근히 취해 갖고흥보가 집안에 들어와보니 자기 마누라가 울겄다. 여보 마누라 이게 웬일이요. 마누라가 울어서 우리 집안 식구가 배가 부를 지경이면 권속대로 늘어앉어 한평생 허고라도 울어보지만은 남보기 챙피만허고 동내 사람들이 보면 어찌 흉볼 울음을 운단 말이요. 울지말고 우리는 있는 박이니 박이나 타서 박속은 끊여먹고 바가지는 부자집에 팔아다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목숨보명 살아갑시다. 흥보내외 박을 한통 따다놓고 자식들을 앉혀놓고 톱빌려다가 박을 탈제

 

<진양조>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에이여루 톱질이구나 몹쓸놈의 팔자로다. 원수놈의 가난이로구나 어떤 사람 팔자좋아 일대영화 부귀헌디 이놈의 팔자는 어이허여 박을 타서 먹고 사느냐 에이여루 당거주소 이박을 타거들랑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밥한통만 나오너라, 평생의 밥이 포한이로구나 시르렁 시르렁 당거주소 톱질이야 어허어어흐어 시르렁 실근 당거주소 톱질이야 여보소 마누라 톱소리를 맞어주소 톱소리를 내가 맞자해도 배가 고파서 못맞겄소. 배가 정 고프거든 허리띠를 졸라매고 에이여루 당거주소 시르르르르. 시르르...렁 시르렁 시르렁 실근 시르렁 실근 당기어라 톱질이야. 큰자식은 저리가고 작은 자식은 이리오너라 우리가 이박을 타서 박속일랑 끊여먹고 바가지는 부자집에가 팔어다가 목숨보명 허여 볼거나 에이여루 톱질이로구나.

 

<휘모리>

시르렁 실근 당기어라. 시르렁 실근 시르렁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툭탁-

 

<아니리>

박을 딱 타놓니 박속이 텡 비었거늘 흥보 기가맥혀 복없는 놈은 계란도 유골이라더니 어떤놈이 박속은 쏵 긁어다 먹고 남의 조상궤 훔쳐다 넣어놨구나. 흥보 마누라 보더니 아이고 영감 궤뚜껑위에가 무근 글씨가 씌여 있오. 흥보 보더니 박흥보씨 궤탁이라 날보고 열어보라는 말인디 그러면 한번 열어보시오. 그럼 그래 볼까. 한궤를 가만히 열고보니 쌀이 하나 수북이 들고 또 한궤를 딱 열고 본게 돈이 하나 가득 들었는디. 궤뚜껑 속에다가 이쌀은 평생을 두고 꺼내 먹어도 굴지않는 취지무궁지미라 씌였으며 또 돈궤에도 이돈은 백년을 두고 꺼내써도 굴지않는 용지불갈 지전이라 하였거늘 흥보가 좋아라고 궤 두짝을 떨어붓기 시작을 허는디.

 

<휘모리>

흥보가 좋아라고 흥보가 좋아라고 궤두짝을 떨어붓고 닫쳐놨다. 열고보면 도로 하나 그뜩허고 쌀과돈을 떨어붓고 닫쳐놨다 열고보면 도로하나 수북허고 툭툭 떨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도로하나 그뜩허고 떨어붓고 나면 도로수북 떨어붓고나면 도로 그뜩. 아이고 좋아 죽겄다. 일년삼백 육십일을 그저 꾸역꾸역 나오너라.

 

<아니리>

어찌 떨어 부었던지 쌀이 일만구만섬이요. 돈이 일만구만량이나 되던가 보더라. . 우리가 쌀본짐에 밥부터좀 히먹고 박을 타던지 궤짝을 떨어 붓던지 해보자. 우리 권솔이 모두 몇이냐. 자식놈들 스물아홉 우리내외 도통합이 설흔한명이로구나. 우리가 이렇게 굶주리다가 한앞에 쌀한섬씩 덜 먹겄냐. 쌀 설흔한섬만 밥을 지어라.” 동내 가마솥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밥을 꼬드밥찌듯 쪄서 삯군을 사다 져다붓고 져다붓고 헌것이 거짓말좀 보태면 밥더미가 남산뎅이만 허든 것이었다. 흥보가 밥먹으라는 영을 내리는디, “내이놈들 체헐라 조심히 먹으렸다. , 먹어라.”해놓니, 이놈들이 우 허더니 온데 간데가 없지. “아이고 이놈들다 어디갔느냐.” 흥보내외는 자식들을 찾느라고 야단이 났는디 조금 있다가 보니게 이놈들이 모두 밥속에서 튕겨쳐 나오는디 어찌허여 밥속에서 나오는고 허니 이놈들이 어떻게 밥에 환장이 되었던지 밥먹어라소리에 우 허고 밥속에가 총철환 백히듯 꽉 백혀가지고 저속에서 당창 벌거지 콧속 파먹듯 밥을 파먹고 나오던 것이었다. 흥보는 자식들 같이 그렇게 조백없이 먹을 수가 없어 밥보고 인사를 허는디 노담부터 나오든 것이었다. “밥님 너 참 본지 오래다. 네 소행을 생각허면 대면도 하기 싫지만은 그래도 그럴 수가 없어 대면은 하거니와 원 세상에 사람을 그렇게 괄세한단 말이냐. 에라 이손 섭섭타 섭섭혀.”

 

<자진모리>

세상인심 간사허여 추세를 헌다헌들 너같이 심할소냐. 세도집 부자집만 기여코 찾어가서 먹다먹다 못다 먹으면 도야지 개를 주고 떼거위 학두루미와 심지어 오리떼를 모두다 먹이고도 그래도 많이남어 쉬네 썩네 허잖더냐. 날과무삼 원수로서 사흘나흘 예사굶겨 뱃가죽이 등에붙고 갈빗대가 따로나서 두눈이 캄칸허고 두귀가 멍멍허여 누웠다 일어나면 정신이 아찔아찔 앉었다 일어서면 두다리가 벌렁벌렁 말라죽게 되었으되 찾는일 전혀없고 냄새도 안맞히니 그럴수가 있단 말이냐 에라 이 괘씸헌 손 그런 법이 없느니라. 한참이리 준책터니 도로 슬쩍 달래는디 흐흐 그것참 내가 이리 했다 해서 노여워 아니 오랴느냐. 어여뻐 헌말이지 미워헌말 아니로다. 친구가 조만없어 정지후박에 매었으니 하산견지 만만야호 떨어져 살지말자. 에게게 내밥이야 옥을 준들 널 바꾸며 금을 준들 바꿀소냐. 에게게 내밥이야 제발 덕분에 다정히 살자. 새정이 붙게 허느라 이런 야단이 없었구나.

 

<아니리>

한참 이리 노담을 허더니만 흥보가 밥을 먹는디 흥보집에 본래 숫가락은 본래 없거니와 하도 좋아서손으로밥을 뭉쳐 공중에다 던져놓고 죽 방울 받듯 입으로 딱 밥을 받어먹는디 입으로 받어만놓으면 턱도 별로 놀리것 없이 어깨주춤 눈만 끔적허면 목구멍으로바로 밀어닥치든 것이었다.

 

<휘모리>

흥보가 좋아라고 흥보가 좋아라고 밥을 먹는다. 밥을 뭉쳐 공중에다 던져놓고 받어먹고, 밥을 뭉쳐 공중에다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배가 점점 불러오니 손이 차차 늘어진다.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아니리>

흥보가 밥을 먹다 죽는구나.어찌 먹었던지 눈어덕이 툭 꺼지고 코가 뾰족허고 아래턱이 축 늘어지고 배꼽이 요강꼭지 나오듯 쑥 솟아나오고 고개가 뒤로 발딱 자드라지며 아이고 이제는 하릴없이 나죽는다 배고픈것 보담 훨씬 더 못살겄다. 아이고 부자들이 배불러 어찌 사는고. 흥보마누라 기가맥혀 아이고 이게 웬일이요 언제는 우리가 굶어죽게 생겨더니마는 이제는 내가 밥에 치어 과부가- 되네. 아이고 이자식들아 너희 아버지 돌아가신다 어서 와서 발상을 허여라.이대문에 이랬다고 허나 이는 잠시 웃자는 성악가의 농담이지 그랬을리가 있으리오. 여러날 굶은속에 밥을 먹어서는 않된다고 죽을 눌그럼허니 쑤어 한그릇씩 마시고 나더니 흥보도 생기가 돌아들어 돈 한뀌미를 들고 춤을 추며 노는디 이런 가관이 없든 것이었다.

 

<중중모리>

흥보가 좋아라 돈을들고 노는디. 얼씨구나 절씨구 절씨구나 좋을시구 돈좋다 돈봐라 돈돈돈 돈좋다. 살었네 살었네 박흥보가 살었네 이놈의 돈아 아나돈아 어디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돈봐라 못난사람도 잘난돈 잘난사람은 더잘난돈 생살지권을 가진돈 부귀공명이 붙은돈 맹상군의 술래바퀴같이 둥글둥글 도는돈 돈돈 돈돈돈돈돈 돈봐라 여보아라 큰자식아 건너마을 건너가서 너희 백부님을 모셔오너라 경사를 보아도 우리 형제보자 이런 경사가 또 있느냐 어그저께까지 박흥보가 문전걸식을 일삼터니 오늘날 부자가 되어 석숭위를 부러허며 도주공을 내가 부러헐까 불쌍허고 가긍헌 사람들 박흥보를 찾어오소. 나도 오늘부터 기미를 줄라네 이런 경사가 또있나 얼씨구 절씨구나 좋네 얼씨구 좋을씨구.

 

<아니리>

흥보자식들이 춤을 추재도 춤속을 몰라놓니 도구대 뛰듯 함부로 덤부로 뛰어다니더니만은 아부지 우리 춤 고만 추고 또 박탑시다. 그러자. 흥보가 또 한통을 들여놓고 박을 타는디. 이번에는 밥타령으로 앞소리를 메기던 것이었다.

 

<중머리>

또한통을 들여놓고 당기어라 톱질이야. 좋을씨구 좋을씨구 밥 먹으니 좋을씨구 수인씨 교인화식 날 위하여 마련했나 강구노인 함포고복 날만치나 먹었으며 엽피남묘 전준지희 날만치나 먹고 즐기던가 어허여루 당겨주소 만고의 영웅들도 밥없으면 살 수 있나 오자서 도망헐제 오시의 결식허고 한신이 궁곤할제 표모에게 기식이요 진문공 전간득식 한광무 오타맥반 중헌것이 밥뿐이라 실근실근 톱질이야 어여루 당기여라 시리렁 실건 당거주소. 강상의 둥둥 떴난 배가 수천석을 실었은들 내박 한통을 당할손가 이박을 타거들랑 은금보화만 나오너라 이박에서 나오는 보화는 우리 형님 갖다가 드릴란다. 시리렁 실근 시리렁 실근 어혀여루 당겨주소.

 

<아니리>

흥보 마누라 이말듣고 톱소리도 아니 맞고 그자리 버썩 주저 앉더니만은 뭣이 어째고 어째요.

 

<진양조>

나는 이박 안탈라요. 여보영감 형제간이라 다 잊었소. 섣달 치운날의 구박을 당허여 나오던 일을 곽속의 들어도 나는 못 잊겄소. 나는 이박 안탈라요. 나는나는 안탈라요. 흥보가 홰를 내어 타지마라 이사람아 타지마라 타지말어 너아니라도 나혼자 탈란다 답답허구나 이사람아. 형제는 불장노불숙원을 어이 그리 모르는가 계집은 만일에 죽더래도 다시 구하면 계집이요. 형제는 일신이라 우리 형님은 아차한번 돌아가시면 얼굴인들 다시 뵐수가 있겠느냐. 타지말어. 내몰랐네 내몰랐어 우리 마누라 속이 저리 답답헌줄 정녕 나는 몰랐었네 아이고 형님.

 

<아니리>

이렇듯 흥보가 이리 형님을 부르면서목을 놓고 울음을 우니 흥보 마누라 가만히 듣더니만 여보 영감 영감, 말씀을 듣고보니 내가 잘못 생각이요. 내 다시는 안 그럴테니 어서 박 탑시다. 마누라가 이렇듯 말을 허니 흥보가 속이 좀 풀렸건마는 짐짓 한번 탁 지르는 말이 이제는 내가 안탈라요. 마누라 혼자 타시요. 여보영감 내가 죽을때라 잘못 생각했소. 어서 탑시다. 흥보가 마누라를 뻔히 쳐다보더니 허허 참 이제야 잘못된줄 알었구만. 다시는 그런 복 못받을소리 허지말고 자 그럼 어서 박 탑시다.

 

<휘모리>

실근 실근 당기어라 시르렁 실근 시리렁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툭탁-

 

<아니리>

박을 딱 타 놓으니 이번에는 박속에서 비단이 막 나달아 오는디 비단 이름이 각각 있든 것이었다.

 

<중중모리>

요간 부상의 삼백척 번듯돋아 일광단 악양루 고소대의 적성마미 월광단서왕모 요지연의 진산허든 천도문 천하구주 산천 초목을 그려내든 지도문 적설이 만린곤헌디 장부기상의 송백단 등태산 소천하의 공부자의 대단 남양초당의 경좋은디 천하 영웅 와룡단 사해가 분분 요란허니 뇌고 함성의 영초단 큰방골방 가루닫이 국화새긴 완자문 초당전 화개상의 머루다래 포도문 화란춘성 만화방창 봉접분분의 화초단 꽃숲풀 곁가지의 얼크러진 넝출문 통영칠 자개반의 안성유기 대접문 강구노인 격양가 배부르다고 함포단 투계주마 호걸들은 행화춘풍의 장원추 알뜰사랑 정든님이 나를 버리고 가겨주 두손길 덥벅잡고 가지말라 도리불 수 임보내고 홀로 앉어 독수공방 상사단 추월적만 공단이요 심산궁곡 송림간의 어무섭다 호피단 쓰기좋은 양태문 인정있는 인조사요 부귀다남 복수단 걸식과객의 궁초단 행실부족의 꾀초단이요 절개있는 모초단 서부렁 섭적 새발랑릉 노방주 청사 홍사 통견이며 백낙릉 홍낙릉 월하사주 당포 윤포 세양포 수주 통오주 성천분주 경상도 황저포 매매 흥정의 갑사로다. 해주 원주 공주 옥구 자주 길주 명청 세마포 강진 나주 극상세목이며 해남포 도리마 장성모시 건산지 한산세모시 생수삼팔 갑진고사 관사 청공단 홍공단 백공단 흑공단 송화색까지 그저 꾸역꾸역 나오는구나.

 

<아니리>

흥보 마누라가 송화색 한필들고 얼른 허는 말이 아이고 그거참 좋기도허다. 흥보 허는말이 여보 마누라 마누라가 나한테 시집 온후로 한번도 잘 입어보지 못허고 항시 의복땀에 한이 되었으니 이제는 무슨 비단이든지 의복을 한번 해보시오. 마누라는 무슨 비단이 웃저고리 감으로 제일 좋습디여.”“나는 죽어도 노란 송화색 삼오장 저고리가 제일 좋습디다.”“촌 마누라라 어쩔 수 없다. 송화색이 좋다허니 그러면 송화색으로 해 입어보오.”

 

<중중모리>

흥보 마누라가 채린다. 흥보 마누라가 채리는디 의복을 지어 입고 차리자면 며칠이 될줄을 모르겠으니 우선 말로만 채린다. 나는 송화색으로 채린다면 송화색 댕기 송화색 저고리. 송화색 치마 송화색 단옷 송화색 속곳 송화색 속속곳 송화색 허리띠 송화색 주머니 송화색 보선에 송화색 당혜 송화색으로 수건을 들면 내 맵시가 어떻겠오.

 

<아니리>

흥보가 듣더니 그렇게만 채렸으면 거참 볼만 허겄소. 버드 나무속에 꾀꼬리 새끼 아니면 노란 메조밥 먹고 누어 놓은 똥뎅이 영락 없겄오.”“아이고 참 영감도 그러면 당신은 무얼로 의복을 해입을라요?”“나는 제비같이 한번 채려볼까?”“아니, 제비같이 차리다니요?”“제비 은덕을 생각해서라도 제비같이 새까많게 흑공단으로 한번 해입어 볼테니 내맵시가 어떻겠는가 들어보오흥보가 망건에서부터 보선까지 흑공단으로 내리 해내는디 말만 들어도 이런 가관이 없든 것이었다.

 

<중중머리>

흑공단 망건 흑공단 갓끈 흑공단 저고리 흑공단 바지 흑공단 허리띠 흑공단 대님 흑공단 행전에 흑공단 보선 흑공단 토수에 흑공단 배자 흑공단 도복에 흑공단 당혜 흑공단 부채를 손에들면 이내맵시가 어떻겠소.

 

<아니리>

흥보 마누라가 듣더니만그렇게 채려놓으면 당신이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겄소.”“내 뽄이 어떻게 되겠오?”“가마구오자 오첨지 아들이 아니면 영락없이 청국사람 뽄이겠소.”“하하하 그말밖에 할말 없을게요. 여보마누라 한통 남은것 우리 마저 탑시다.”또 한통을 타랴헐제 흥보마누라 속자미가 벗석 나서이통 탈 박소리는 내가 지어 먹일테니 당신은 뒷소리만 맞이시오흥보듣고 추는말이 가화 만사성이라니 자네 저리 좋아헌게 참 기물이 나오겄네 어데보소 잘먹이소.”

 

<중중모리>

실근 실근 당거주소. 어여루 톱질이야. 어화세상 사람들아 이내한말 들어보소. 천지간 좋은것이 부부밖에 또 있는가 어여루 톱질이야 우리부부 만난후에 설운고생도 많이 했네. 여러날 밥을 굶고 엄동에 옷이 없어 신세를 생각허면 발서 아니 죽었을까. 어여루 톱질이야. 가장하나 못 잊어서 오늘까지 살았더니 천신이 감동허사 박통속에 옷밥나와 만복좋은 우리부부 호의호식 즐겨보세 어여루 톱질이야 한상에서 밥을 먹고 한방에서 잠잘적에 부자서방 좋다허고 욕심낼년 많을테나 암개라도 얼른허면 내솜씨에 절단나리라. 어여루 톱질이야 시르렁 실근 당거주소.

 

<자진머리>

실근실근 박이 반만 벌어지니 뜻밖에 박통속에서 미인하나 나온다. 남녀 하인 백여명을 좌우로 거나리고 함교함태 나오는디 구름같은 머리털 낭자를 곱게허여 쌍용새긴 밀화비녀 늦으시 쩔렀으며 매아미 머리 나비눈썹 추파같은 눈동자 흑백이 분명허고 연짓밥 앵도입술 박속같이 고운이 삐비같은 두손길에 세류같이 가는 허리 응장성식 금수의상 외씨같은 발맵시로 아장 아장 아장 아장 아장 아장 아장 보보생향 나오는양 해당화 조으난듯 모로화 말허는듯 세옥성 맑은소리로 나짓이 묻는말이 이댁이 박흥보씨 댁이오니까?”흥보가 깜짝놀래 나 이럴줄 알었제 당치않는 세간살이 그리 많이 나올적에 만단 의심을 허였드니 임자아씨 오셨구나.- 납죽 엎저 절을 허며 호좁은 박통속에서 평안히 오시니까. 이세간 임자시면 어서 가져 가옵소서. 내가 죄라고는 반찬도 없이 쌀 서른 한섬 밥지어 먹고 죽을 뻔허다 살어난 죄밖에 없소. 요만끔이라도 거짓이 있으며 내가 벗긴 쇠자식이요.

 

<아니리>

저미인 대답허되 놀래지 마옵시고 내말씀을 들어 보시요. 당명황을 섬기옵든 양귀비라 허옵니다. 마외역 죽은혼이 천하에 주류허며 임자를 구허드니 흥보씨 적선행인 제비편에 듣사옵고 부자의 첩이되어 춘종춘유 야전야의 무궁행락 누려볼까. 바래고 왔사오니 버리지 마옵소서. 흥보가 저의 아내 흑각발톱 다목다리 이것만 보던터에 이런 일색을 보아놓으니 오죽이 좋겠느냐. 손목을 덥석쥐다 깜짝놀래 덕놓으며 어디 그것 다루겠느냐. 살이 아니라 우무 덩이로다. 저것 한참 좋을적에 잔뜩 껴 앉거드면 능개질까 무섭구나.

 

<중머리>

서로보며 농창치니 그때의 흥보아내 좋은 보물 나올줄로 소리까지 맥인것이 금은보화는 고사허고 못볼꼴을 보았구나. 부정탄 손님같이 불시로 틀리난디 손가락 입에넣고 고개를 외로틀며 뒤로 돌아 앉으면서 흥! 저것들 지라허제. 박통속에서 나온세간 뉘것인지도 채모르고 양귀비와 농창인고 당명황은 천자로되 양귀비께 정신놓아 망국이 됐다는디 박통세간 무엇이냐. 당장 열끼도 굶드래도 시앗꼴은 못보겄네 나는 지금 나갈테니 양귀비와 잘지내소. 흥보가 가난허여 계집손에 얻어먹어 가장값을 못했으니 호령이나 헐수 있나. 사정조로 허는말이 여보소 애기 엄마 이것이 웬말인가 자네방에 열흘자면 첩의방에 하루자지 이렇듯 양귀비가 날만사람 보랴허고 만리타국 나왔으니 도로 쫓아 보내겄나.

 

<아니리>

흥보마누라 이말듣더니 그럼 꼭 그리허겄다고 우리 서이 고름맺고 맹세 합시다. 양귀비도 웃고 흥보도 웃고 서로보고 박장대소 옷고름을 맺고나서 양귀비 박통을 바라보며 무엇을 허는고. 호령을 허여놓으니.

 

<휘모리>

뜻밖의 박통속에서 사람소리가 수근수근 두러두런 우근우근 방포일성이 꿍뚜두룽 탕. 흥보내외 질색허여 아이고 박통속이 이어쩐 접전속이냐. 여보 마누라 임자가 공연한 말을 허더니만 이제는 우리가 다죽었나 보오. 흥보마누라 벌벌떠고 양귀비 앞에가 엎드러지며 여보시오 강남댁 다늙어죽도록 내방에 한번 안오드라도 내 아무소리 안헐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소. 그때여 박통속에서 사람들이 나오는디 석수. 목수. 와수. 토수. 각색장인 수백명이 각기연장 짊어지고 돌과 나무 지아돌을 수레에 실고 썰매에 싣고 소에 싣고 말께 싣고 지게도 짊어지고 떼비로 줄로끌며 지레로 밀고 나오는디 그중에 목수들은 대짜귀든놈 소짜귀든놈 도끼들고 톱도들고 낫도들고 대패들고 끌도들고 변탕먹통 잣대든놈 도래송곳 활비비든놈 심지어 메둥이 든놈까지 꾸역꾸역 나오는디 흥보집을 짓느라고 우당탕 퉁탕 야단을 허는구나. 흥보내외는 눈도 뜨지홋허고 벌벌떨며 까투리꿩 숨듯 나붓이 엎졌을제 상량을 허느라고 올라간다. 여기여차아 방포일성이 쿵-

 

<아니리>

사면이 조용헌디 곁에서 양귀비가 허는말이 고만 정신들 차리시오.

 

허거늘 흥보가 눈을 가만히 뜨고 바라보니 그 사람들도 간곳 없고 초막집도 간곳없고 기와집 수백간을 대궐같이 지어놨는디 강남사람 재주들은 이렇듯 기이헌지 벽붙인 그 진흙을 어느 겨를에 말리워 도배장판 반자까지 훤칠허게 허였것다. 집형상을 가만히 살펴보니.

 

<진양조>

동산하 너른곳에 팔괘를 놓아서 왼담치고 네모기둥에 도리얹고 부연달고 채양달고 모년모월 모일모시 입주 상량이라. 뚜렷이 새겨놓고 쎄 걸고 산자얽어 암기와는 뒤집어놓고 숫기와는 엎었으니 와가장군이 내렸난듯 안벽치고 밖벽치고 장유지 굽도리 도배까지 고루거각에 기와집으로 안채를 살펴보니 간좌곤향 오문에다 좌향대로 앉혀놓고 사랑채 행랑 별당 초당 서당 곳간을 좌우로 빼뜨러 지었난디 안팎 중문에 소슬 대문이며 벽장 다락이 좋을시구.

 

<자진모리>

안방치레를 볼작시면 용봉장 괴두지와 까끼수리 반다지며 평양장농 의주장농에 원앙침 잣벼개 천은 요강의 순금대야가 좌우로 벌여있고 동편곳간 열고보니 칠첩오첩 금반상기 은반상기 놋반상기 대양판 소양판 대합소합 은수저 놋수저 왠갖기명의 갖은제기 주걱 국제 식칼 조리 함박쪽박 불가래 부짓댕이까지 첩첩이 쌓여있고 서편곳간 열고보니 일산우산의 사모관대 각대요대 수혜자며 말안장 은협등자 옥안금천 황금록 청홍사 고운굴레 홍영자공산 호편과 후거리 견랑 쌓여 있고 홍두깨 방맹이며 다디미독과 윤디대리미 바늘상자 바늘 실 골미 가위 부전 잣대이며 비단 서답까지 쌓여있고 북편 곳간 열고보니 여럿이 찧는 디딜방아를 뚜렷이 채려놓고 혼자찧는 절구방아 절구통 절구대 흩채 접채 치와 얼맹채며 베틀씨앗에 물래틀과 쟁기열채 써래 열둘 호미따부 쇠시랑 괭이 삿갓 도롱이 접살이며 도리깨 흘태 갈퀴 멍석 방석 씨오쟁이 메통맷돌 풀독이며 또르락 꼽박신골 방망이 지게발대 똥장군과 오줌항아리 개똥망태 거름친 거랭이 심지어 옻칠한 통시가래까지 차례 차례로 쌓여구나.

 

<아니리>

차소위지성이면 감천이라 흥보는 이렇듯 꿈속같이 부자가 되었겄다.

 

<평중머리>

원채에는 본처두고 별당엔 양귀비요 행랑에는 노속이라 흥보는 심심허면 양귀비와 손길잡고 후원에 화초구경 옥락간 밝은달에 둘이 마주 비겨앉어 우의곡 채련곡을 한가히 희롱허니 이러한 지상신선 어느 세상에 또 있을리.

 

<아니리>

이때에 놀보가 저의동생 부자되었단 말을 듣고 배를 앓고 있다가 하로난 묻고 물어 흥보집을 찾어가니 고루거각 기와집을 뻐드러지게 지었거늘 대문밖에 서서 네이놈 흥보야 허고 불러놓니 흥보 사라에 누웠다가 저희형 음성을 듣고 버선발로 뛰어나와 저희형께 절을하며 형님 제가 건너가 뵈어야 할일인디 형님께서 먼저 이리 오시오니 하정에 황송 하옵니다. 놀보가 흥보를 뻔히 보더니만은 너같은 부자들이 나같이 가난한 사람 찾어오기 쉽겄냐. 그런데 이게 뉘집이냐 형님 이게 제집 이올시다. 아 이것이 네집이여. 강산지 괴변이로다. 그러면 들어가자. 흥보가 앞을서고 놀보가 뒤를 따러 들어가며

 

<중머리>

흥보집을 살펴보니 찬란허고 웅장허구나 대문안을 들어서니 연못안에 석가산을 대대층층 무었난디 연못속에 백거위는 저희끼리 짝을지어 둥덩둥덩 떠서 놀고 화계상 각색화초는 손을 보고 반기는 듯 사랑에를 들어서서 방안치레를 살펴보니 각자장판 능화도배 소래반자 완자밀창 모란자 오색보료 청담홍담 백담요와 밀화쟁반 호박대야 청유리병 황유리병 유리등 양각등 면경채경 옷거리며 문체좋은 대모책상 화류문갑 비취연상 산호필통 마노연적 용지연 봉황필과 왜필당필 당두지며 시전주지 서전주지 금책지한테 말아서 시부편에다 접쳐놓고 서책을 쟁였는디 사서삼경 예기춘추외 자서전집이며 통감사략 소학명심보감 연주시 당률 동몽선습 만물집 천자귀초까지 좌우로 모도다 쌓였구나.

 

<아니리>

전후에 보지도 못하든 것이 이렇듯 쌓여 있거늘 놀보가 장석으로 턱 앉으며 야 거 네사랑 장히 좋다. 흥보가 저희형을 사랑에 모셔놓고 안으로 들어가 여보마누라 형님이 건너 오셨으니 어서 나가 인사 여쭙도록 허시요. 흥보 마누라 놀보 왔단 말을 들으니 사지가 벌렁벌렁 떨리건마는 가장의 영을 어기지 못하여 나오는디

 

<중중모리>

흥보 마누라가 나온다. 흥보 마누라가 나오는디 전일에는 가난허여 못먹고 헐벗었지만 이제는 돈이 없나 비단이 없나 은금보화가 없느냐 비취옥잠에 가진패물 굴레같은 은가락지를 손에 끼고 한산세모시다가 당청에 물을 포로소롬허게 들여 주름은 잘게 잡고 말은 넓게 달아입고 며느리들을 앞세우고 아장아장 나오더니 시숙님 그간 안녕 하셨습니까 제수가 이렇듯 절을허니 우리네 같으면 마땅히 일어나서 제수씨 그간 어린자식들을 데리고 어찌 고생을 허셨습니까 허련마는 저 때려죽일 놈이 제수가 절을 허는디 발을 당그랗게 개고앉어 제수를 보더니 들판에 잘된 곡식 추듯허든 것이었다. 그것참 잘 되어 먹었다. 쫓겨날때 보고 지금 본게 미꾸라지가 용 되었는걸. 흥보 마누라 들은 척도 아니허고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장만 허는디 잔치집 존장치게 채리던 것이었다.

 

<자진머리>

음식을 채리는디 안성유기 통영칠반 천은수저 구리저의 집리서리 수벌리듯 주루루 벌여놓고 꽃그렸다 오죽판 대모양각 당화기 얼기설기 송편 네귀번듯 정절편이며 주루룩 엮어 산빈덕과 평과진청 생청놓고 조락산적 웃김쳐 양회간 천엽콩팥양편에다가 벌여놓고 정단수단의 잡박이며 인삼채 도라지채 낙지 연포 콩기름에다 시금채로 웃짐을 쳐 갖은양념?아놓고 편적거적 도적이며 절창볶기 매물탕수 어포육포 갈라놓고 천엽쌈 벙거지꼴 갈비찜 양지머리 차돌배기를 듸려놓고 가진실과 다괴았다 생률 황률 은행대추 고산참배 임실준시 호도백잣 곁들이고 끌끌우난 생치다리 호두득 포두둑 매초리탕 꼬끼요 영계찜 어전육전 지지개며 수란탕 초포채에다 겨자고초 생강마늘 문어 전복 봉을오려 나는듯이 괴어놓고 전골을 들여라 전골을 들이난디 청동화로 백탄숯불 부채질을 활활 고초같이 이뤄놓고 살찐소 반짝고기 반환도 드는칼로 점점편편 오려내어 꾀소금에다 참기름쳐 부수수 불려 채워내어 대양판 소양판 예도담고 졔도담고 산채고사리 수근미나리 녹두채 맛난장군 주루루루 듸려놓고 계란을 톡톡 깨어 웃딱지를 떼고 길게 늘이워라. 손 뜨건디 쇠저말고 나무저를 들여라 고기 한점을 덤벅 집어서 맛난기름의 간장물에다 풍덩 들이쳐 덤벅 피시

 

<아니리>

이렇듯 상차려다 놀부앞에 들여놓고 흥보가 술을 부어 권허며 형님

 

약주 드십시오. 허거들랑 이놈이 썩 받어먹는것이 아니라 여봐라 흥보야 내가 남의 초상마당에서도 권주가 없이는 술 안먹는 속 너 잘알지야. 네 계집 곱게 꾸민김에 권주가 한꼭대기 시켜 보아라.

 

<진양조>

흥보 마누라 기가막혀 흥보든 술잔을 앗어다 후닥딱 방바닥에다 부닥치더니마는 여보시요 시숙님 여보여보 아주버님 제수더러 권주가 허라는법 고금천지 어디서 보았소. 전곡자세를 고만 허시오. 나도 이제는 돈과 쌀이 많이 있소. 엄동설한 치운날의 구박을 당허여 나온던 일과 처자들을 굶겨놓고 찾어간 동생 피가 솟도록 쳐보낸 일을 곽속의 들어도 나는 못잊겄소. 보기싫소 어서 가시요. 속을 차리면 뭣허러 내집을 찾어왔소. 어서가오 보기싫소. 안갈라면 내가 먼저 들어 갈라요. 떨떠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니리>

놀보란놈이 공연한 재 저질러놓고 제손수 무안허여 허는말이 더 괘씸허겄다. 요망스럽게 여봐라 흥보야 네가 형제간 윤기를 알거든 네 계집 버려라. 내가 새장가 들여주마. 계집이 집구석에서 내주장을 허면 그놈의 집구석은 망허는 법이니라. 당장 버려라 버료. 그건 그렇고 또 네게 헐말이 있어. 형님 무슨 말씀 이신지요.

 

<자진머리>

내가 근래 듣자허니 네놈이 밤낮으로 자식들 앞세우고 도적질을 잘헌다니 네 이말이 분명허지 흥보 기가 맥혀 형님 이게 웬 말씀이요. 선영에서 시키지않고 배우쟎은 도적질을 어찌 헌단 말씀이요. 네 이놈아 듣기싫다. 그러면 이 가산과 이재물이 일조일석에 다 어디서 났단 말이냐. 네놈을 잡으랴고 오영문 출사들이 벌떼같이 나섰다니 그 아니 딱헌 일이냐. 사의지차 허였으니 네놈은 잔말말고 천지 누설 헐것 없이 세간과 전답 문서이며 돈괘 곳간 쇠때까지 내게다 맡겨두고 처자를 거나리고 멀리 도망가서 십년만 한정허고 잠자코 피신허다 이곳이 무사타고 내가 기별을 허거들랑 그때 돌아오도록 하여라.

 

<아니리>

십년 아니라 백년을 있다 오더라도 네 세간에다 내가 손을대면 네 아들놈이다. 흥보가 저희 형 속을 아는지라 형님 그런것이 아니옵니다. 흥보가 그 부자된 내력을 낱낱이 말을 허니 놀보가 듣더니만 아니 그래 제비다리를 부지르면 박씨를 물어와. 부지른 것이 아니오라 그놈이 날기공부 허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런진것을 그래동여 살려줬어요. 그래서 그 제비가 물어온 박씨를 심어가지고 부자가 된것이옵지 무슨 도적질을 했사오리까. 놀보가 가만히 듣다가 허는말이 거 안떨어지면 어쩔것이냐. 다리를 부질러야지. 그런디 가만 있거라. 저 웃목에 벌건헌 장롱이 저게 무슨 장롱이냐. 그게 화초장이 올시다. 화초장이요. 거 이름한번 좋다. 그속에 뭐 들었냐. . 은금보화가 가뜩 들었습니다. 그럼 그것 하나도 꺼내지 말고 저장롱 나 도라. 예 그리 허옵지요. 그러지않아도 형님 드릴라고 따로 몫지어 놨습니다. 그럴 것이다. 내가 어려서 너를 얼마나 이뻐했다고야. 내놔라 온짐에 짊어지고 갈란다. 흥보가 명주 한필을 꺼내다가 질빵거려 내놓으니. 놀보란놈이 화초장을 짊어지고 잊어버릴까봐 주워섬기며 가든 것이었다.

 

<중중모리>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얻었네 얻었네 화초장 하나를 얻었네. 오늘 걸음은 잘 왔구나. 대장부 한번 걸음에 화초장이 하나가 생겼구나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또랑 하나를 건너뛴다. 여기가 솔찮이 미끄럽단 말이여 가만있자. 옳지 간신히 건넌후에 초화장 아아 장화초 어어윗다 이것을 잊었다. 허허 이것을 잊었구나.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갑갑허여서 내가 죽겄구나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이놈이 이것을 뒤집어 붙이면서도 모른던 것이었다. 초화장 아니다. 장초화 아니다. 화장초 아니다. 초장화 아니다. 장화초 아니다. 다 이것이 무엇이냐. 천장 방장 구들장 아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 아니다. 고초장 고초장 이것은 비슷허면서도 아니로다. 이것이 무엇이냐.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에라 내가 우리집으로 가서 우리 마누라를 닥달헐 수밖에 저희집으로 돌어가며 여봐라 여편네야 집안 어른이 어디 갔다가 집이라고 들어오면 우루루루루루 쫓아나와 영접허는게 도리옳지. 좌의대사가 웬일이냐. 에라 이년 요망허다. 놀보 마누라 나온다. 놀보 마누라 나와 영감 오신줄 내몰랐소. 내잘못 되었소 들어갑시다. 이리오시오 이리와.

 

<아니리>

너 목쓸라 말고 내 짊어진것 이것이 무엇이냐 아이고 무거운디 위선 거 좀 내려나 놓으시오. 다 이 급살맞은년아 갑갑혀 나죽겄다. 얼른 가르켜라. 우리 친정 아버지가 서울가서 그런 장롱을 사왔는디 화초장이라고 헙디다. 놀보가 진을 키든 꿈깬듯이 어찌 반갑든지 그래 그래 화초장 이제. 아이고 내딸이야. 에이 여보시요. 원세상의 그것이 무슨 소리요. 다 바쁠때는 그리도 허고 저리도 허지 어찌여. 그런데 이장이 어디서 났소. 흥보가 과연 부자가 됐어. 참으로 부자가 됐어요. . 그런디 아 제비다리를 부질러 갖고 부자가 됐다니 나도 제비를 좀 많이 길러야 되겄어.

 

<자진머리>

그날부터 차비헐제 신 잘삼는 사람들을 십여명 골라다가 매일 삯전 석냥씩 삼시먹고 술담배 착실히 대접허여 외양덕음에 쟁여놓은 신삼을 찰볏짚을 여러짐 들여다가 제비집 수백개를 밤낮으로 만들어 안채 사랑채 행랑곳간 서당 별당 뒷간이며 앞뒤처마 들보 석글 빈틈없이 달어놓고 그래도 부족허여 제망건 당혜에다가 풍잠달듯 달어쓰고 아무리 기다려도 제비가 아니오니 제비땀에 환장되어 상사병이 일어나서 만물을 사랑해도 제비짜 드는것만 꼭 사랑허는구나. 길짐생은 끝이 같어 쪽자만 떼고보면 바로 이름이 제비라고 쪽제비만 사랑허고 마른 그릇은 다버리고 모제비만 사들이고 음식은 칼제비나 수제비만 허여먹고 종이란 눈에띄면 간제비만 접어놓고 제비땀에 화가나면 동인들과 두제비와 목제비만 허는구나.

 

<아니리>

아무리 생각해도 백계무책 도리없어 하로난 그물을 맺어들고 제비를 후리러 나가는디. 제비를 어떻게 후리느고 허니 옛날 우리나라 팔명창이 계실 시절에 팔명창중 권삼득 선생님 더늠인디 이 더늠을 후에 감찰 송만갑 선생님 전통으로 우리나라 인간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계시다가 이미 고인이 되신 동초 김연수 선생님께서 저를 가르쳐 주셨는바 도저히 저희 선생님같이 헐수는 없지마는 되던지 안되던지 흉내라도 한번 내보던 것이었다.

 

<중중모리>

이때 춘절 삼각의 연자 나비는 펄펄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복희씨 내신 그물을 에후리쳐 들어메고 망당산으로 나간다. 이편은 우두봉 저편은 좌두봉 건넌봉 맞은봉 좌우로 칭칭 둘렀난디 아 이리와 덤불을 툭쳐 후여 허허허쳐 저 제비 어느것으로 향헌다. 연비 여천에 소래기보아도 제비인가 의심허고 남비오작에 까치만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허고 춘일황앵의 꾀꼬리만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허고 저기가는 저 제비야 그집으로 들어가지를 마라. 천화일에 지은 집이로다. 화급동량이라. 내집으로 들어 오너라. 이이이루워.

 

<아니리>

날만새면 밝에나가 제비 몰기로 일삼을제 하로난 신수 불길헌 제비 한쌍이 놀보집을 들어오니 놀보가 어떻게 반갑든지 소반에다 정화수를 받쳐 처마밑에 차려놓고 두손 합장 절을 허며 제비님 오시나이까 어찌 이리 행차가 더디시어 내간장을 녹이시요.

 

<자진모리>

앞뒤에다 금줄치고 부정을 가리면서 알낳기를 기다릴제 여섯개 낳았는디 마음 바쁜 놀보놈 주야로 어찌 만졌던지 다섯개를 조독이 올라 모도다 곯아 버리고 다만 한개 겨우 까서 날기 공부헐제. 제비 새끼 날라허고 제집에 발 붙이고 날개를 발발떨면 놀보놈 바라보고 떨어집소사 떨어집소사 손을 싹싹 부벼도 종시 떨어지지 않고 아무리 대문간을 눈빠지도록 돌아보아도 구렁이는 아니오니 허어 이놈의 구렁이 기다리기가 제비 기다리기보다 훨씬 더 힘이 드늘걸. 구렁이는 오지않고 제비는 날게되니 저것 날러 가버리면 십년공부 허사로다. 에라 내가 구렁이 노릇을 헐밖에 수가 없다. 혀를 널름널름허면서 구렁이 형용을 허고 엉금 엉금 엉금 엉금 엉금 기어들어가 제비새끼 집어내 두다리 질끈 부지르더니 미루어 선뜻 던져놓고 모르는체 돌아서 뒷지미지고 거닐면서 목소리 크게 내어 풍월 한귀를 읊는구나.

 

<창조>

황성에 허조 벽산월이요. 고목은 진입창호운을

 

<아니리>

앞으로 돌아서며 제 손수 깜짝놀래 생침맞는 된 목소리로 여보소 마누라 놀보마누라 뛰어 나오니 여보소 내가 잠시 거니노라 미처 보들 못했더니 구렁이가 물어 제비새끼 떨어져 절각이 되었으니 불쌍허여 볼수 없네. 어서 동여 살려주세. 흥보는 명태껍질로 싸 주었다지만 나는 더 튼튼한 민어껍질로 싸주리라.

 

<중머리>

민어껍지리과 당팔사로 중선배 닿줄감듯 칭칭감어 집에넣고 행여나 촉풍헐까 큰 두대 멍석으로 여러겹을 둘렀구나. 어미제비 들어와서 그 정상을 살펴보고 자모지정 슬픈마음 한없이 탄식헌후 무슨 괴변 또 있을까. 밤이면 잠 안자고 주변을 살피면서 두쭉지로 싸서안고 낮이면 번갈아서 밥을 물어다 구원헌다.

 

<아니리>

놀보 망헐 제비어든 죽을리가 있으리오. 십여일을 지나더니

 

<진양조>

부러진 다리가 완골되어 앉어도 보고 날어도 보고 무수히 공부를 허더니만 구월구일 당도허니 거중에 높이떠서 제비말로 지지지지 주지주지 아느냐 주인놈아 에이 몹쓸 놀부놈아 날과무삼 원수되어 생다리 꺽어 이 병신이 되었으니 만리강남 먼먼길을 어데가 쉬어 가잔 말이냐 속 못차린 놀보놈은 제비를 바라보며 반갑다 내 제비야 네 아무리 미물인들 재생지은을 잊겠느냐. 수히 강남을 들어갔다가 명년 삼월 나올적에 부디 박씨를 물고 오너라.

 

<아니리>

놀보 제비 세마리는 강남으로 들어가 제비왕께 현신후에 놀보놈 전후내력 낱낱이 말을허니 제비왕이 분을 내어 원수구자 바람풍자 쓴 박씨 하나를 내어주며 이걸 갖다 놀보 주어 원수를 갚게하라. 저제비 받아물고 제처소에 돌아가 명춘을 기다릴제

 

<중중모리>

그해 겨울을 다 보내고 입춘 우수 경칩 춘분을 지내어 삼월삼질이 당도허니 나무나무 속잎나고 가지가지 꽃필적의 놀보제비 거동보소. 박시를 입에다 물고 거중의 둥실 높이 떠 촉나라 사천리 촉산도 이천리 팽성도 오백리를 넘어 하루밤 쉬인후에 아방궁을 얼른지나 월하성 일만 이천리를 순식간에 지냈구나. 게서 잠깐 쉰후 주야로 펄펄날어 놀보집을 당도허니. 놀보보고 좋아라고 반갑다 내제비야 어디를 갔다가 이제와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내제비 소호시절 이조기관 벼슬하러 네 갔더냐 유소씨 귀목이소 집배우러 네갔더냐 어이 그리 더디와서 내간장을 다 녹이느냐 박씨 물어 왔거들랑 어서 급히 나를 다오. 손바닥을 쩍 벌리고 제비에게 절을허며 박씨 주기만 기다릴제. 저제비 거동을 보소. 물었던 박씨를 놀보손에다 뚝떨어치고 거중에 둥실 높이 솟아 백운간으로 날어간다.

 

<아니리>

놀보 받아들고 여보소 마누라 살림밑천 여기왔네 놀보마누라 달려나와 박씨를 들고 보더니 아이고 이것 바삐 갖다버리시요. 놀보 깜짝 놀래 애잉 아니 어째서 원수구짜 바람풍자가 씌었으니 원수갚을 풍파란 말 아니요. 놀보가 대답허되 무식헌 여편네가 무엇을 안다고 이래 모르면 물어라도 볼것이제.

 

<중중모리>

구자 내력을 들어보소. 구자 내력을 들어봐 원수구라 허는글자 군자호구란 짝구자와 꼭같은 글자이니 흥보박에 양귀비 나오듯 이박에선 서시가 나와 내짝이 된다는 말이로세. 놀보계집 들어보니 사람죽을 말이로다. 못심게만 허는말이 그는 그러허다 치고 바람풍자가 웬일이요. 바람풍자가 더욱좋네 옛날 태호 복희씨는 풍성으로 왕허시고 순인군 오현금 남풍시를 화답허고 문무성왕의 장헌성덕 천무열풍 허였고 주공은 성인이라 빈풍시 지으시고 한태조 수수풍과 광무황제의 곤양풍 와룡선생의 적벽풍 백이숙제의 고절청풍 엄자릉의 선생지풍 도정절의 북창청풍 만고에 많었으니 그아니 좋을손가. 우리도 이박을 심어 슬슬 동풍의 입묘허여 사월남풍에 고이 자라 우순풍조 좋은시절 꽃피고 박이열려 팔월금풍따서 켜면 보물이 풍풍나와 왼집안이 풍덩풍덩 근래 퐁속에 좋은 호사 감사풍채 호박풍잠 학슬풍안 떠 괴이고 네귀에 풍경달고 방안에는 병풍치고 선풍도골 이내몸이 주야풍류 놀거드면 그아니 풍족헌가 그런풍간을 허지마소.

 

<아니리>

아무말 말고 어서 심어보세 동편처마 담장밑에 구덩이를 깊이파고 일년농사 지을 거름 한꺼번에 져다붓고 단단히 심었겄다. 아적때 심은것이 저녁때 돌아가본즉 발서 박순이 수종난놈 수퉁 다리만 허게 솟았는지라 놀보계집 깜작놀라. 아이고 영감 저것 아마도 무슨 재변이 생기겠소 바삐 뽑아 버리시요. 놀보듣고 화를내어 여편네가 또 방정맞은 소리를 허여. 나물 될것은 떡잎부터 안다지 않어. 이박 넝출이 날마다 갑절씩 쭉쭉 뻗어 나가는디 옆에서 순이나고 순이 더욱 굵게뻗어 어데가 턱걸치면 모도다 무너질제 사당에 걸치더니 사당이 무너져서 신주가 깨어지고 곳간에 걸치더니 곳간이 무너지고 왼동네로 다 뻗어서 이 넝출이 뉘집이고 턱 걸치면 무너지고 무너지면 값을 물고 헌것이 삼사천량이 훨씬 넘었겄다. 놀보가 벌써부터 박땀에 이렇게 손재를 당헐적에 박 여섯통은 놀보 집후원에가 열고 박 한통은 뒷집 울밑에 가 열렸는디 밤중만 되면 박통속에서 장고소리 소고소리 징 꽹꽈리 소리가 나니 이밖은 초라니 패 든 박이었다. 이때는 어느땐고 추팔월 망간이라. 금풍이 소슬허니 희면서도 누르스름허게 익은박이 완연히 금빛이었다. 놀보놈이 좋아라고 저 박빛이 누런것은 분명히 금들었제. 책력을 펼쳐놓고 갑자일로 택일허여 삯군 삼십여명을 사가지고 박을 타는디. 놀보가 설소리를 먹이되 금이 꼭 나올줄로 금말만 가지고 먹이던 것이었다.

 

<진양>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어유와 톱질이로구나 어와세상 사람들아 금의 내력을 들어보소 초한적 진평이는 범아부를 잡으랴고 황금 사만근을 초군중에다 흩었으며 소진이는 구변좋아 많이얻어 실어갔고 곽거는 효성으로 묻힌금을 파내었네 시르렁 시르렁 당기어라 톱질이야 나도 이박을 어서타서 금이 많이 나오거드면 이 동리를 동명갈아 말경에는 금곡동이라 부를란다. 에여루 당기어라.

 

<자진머리>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박이 활짝 벌어지니 뜻밖에 박통속에서 노인한분 내닫는디 차린 복색 괴짜로구나 다떨어진 헌베바지 깊은살이 다보이고 삼승마포 적삼우에다 개가죽 묵은배자 무릎까지 털렁털렁 구녁뺑뺑 중치막은 아랫단 황토묻고 떨어진 체뿔관에다 석자가옷 헌베줌치 일가산을 넣어차고 곱돌조대 중둥쥐고 놀보놈 안방으로 제집같이 들오는디 토깽이 얼굴에다가 빈대코가 맵수있고 뱁새눈 병치입에 목소리는 장히 크다. 두눈을 부릅뜨고 놀보놈을 바라보며 네 이놈 놀보놈아 네 할애비 덜렁쇠 네할미 허천덕이 네아비 껄덕쇠 네어미 빨닥네가 모다 댁에 종일터니 병자팔월 과거보랴고 서울올라 간지후로 댁사랑이 비었을제 흉악헌 네아비놈 가산모다 도적허여 부지거쳐 된연후의 종적을 몰랐더니 제비에게 소식듣고 불원천리 예왔노라. 네 가솔 네세간을 박통속에다 급히담아 댁에 가서 시종하라.

 

<아니리>

놀보가 들어보니 사람 상헐 말이로다. 아니라고 떼자해도 삼대가 되었으니 증인세울 사람없고 송사를 허자허니 좋지 못헌 이근본을 읍과촌이 다알테요. 싸워나 보자헌들 저양반 생긴뽄이 장작불에다 집어넣어도 안타질 모양이라. 어찌허면 무사헐고 저혼자 궁양헐제 저양반 호령허되 네이놈 놀보야 이놈 구상전이 와계신데 네계집 네자식들 문안도 아니허니 이런법이 있단말이냐. 강남하인 이리 오너라.

 

<중머리>

박통속이 관문되어 수십명 대답소리 동학이 으근으근 귀꼴허고 보기도 겁난 번쾌같은 하인들이 몽치들고 졸바들고 꾸역꾸역 퍼나오니 놀보가 하릴없어 복지애걸허는구나. 여보시요 상전님 이동리가 반촌이요. 삼대조부 객반으로 이고장을 살려와서 모모헌 양반댁이 모도다 사돈이온바 이손문이 나거드면 소인은 고사허고 그양반들 우세오니 방장부절 처분으로 아무말씀 마옵시면 섭전으로 바치오리니 속량허여 주옵소서.

 

<아니리>

네아비 죄상을 생각허면 기어코 잡어다가 조금만 잘못허면 사랑앞 마줏대어 거꾸로 메어달고 대추나무 방맹이로 두발목 복숭씨를 꽝꽝 우려 때려가며 부려먹을 일이로되 차역인자라 그래 공돈 속돈 바칠테면 지체말고 곧 바쳐라. 놀보 여짜오되 얼마나 바치리까 너만놈을 다리고 다소를 다투겠느냐. 허드니 조금만 헌주머니 하나를 내어주며 너야 전곡간에 뭘로 채우던지 이 주머니만 가뜩채워 오너라. 놀보놈 속마음으로 저양반 저억지에 많이달라 허거드면 이일을 어찔헐꼬 잔뜩 염려허였다가 주머니만 채우라니 마음에 하도 기뻐 예- 그리 허오리다. 주머니를 받아들고 제방으로 들어가 엽전 가득 담긴 주머니를 그 주머니에다 대고 조르르르르 부어놓니 놀보주머니는 홀쪽허여 없어졌는디 센님이 준 주머니는 여전히 암시랑토 않고 가뿐헌지라 놀보 어이없어 마- 요런 잡것보소 여 허더니 돈궤를 턱 열어놓고는

 

<자진모리>

돈뀌미를 풀어내어 한줌을 넣어도 간데없고 두줌을 넣도 간데없고 석줌을 넣도 간데없고 닷줌을 넣도 간데없다. 싸돈이라 이러헌가. 양돈으로 넣어보자. 한냥을 넣도 간데없고 석냥을 넣도 간데없고 닷냥을 넣어봐도 아무흔적 없어지니 괫돈으로 넣어보자. 스무냥씩 묶은돈을 한다발 넣도 간데없고 열다발 넣도 간데없고 주머니 생긴뽄이 무엇을 넣으랴허면 주둥이를 쩍벌리고 산덩이로 들어갈듯 넣고보면 삼키는듯 아무흔적 간곳없네. 아이고 이게 무슨 주머니냐. 날 죽일것이 생겼구나. 주머니를 들고 와서 양반 앞에가 엎드러지며 아이고 여보시요 양반 앞에가 엎드러지며 아이고 여보시요 상전님 이게 무슨 주머닌지 사람죽일 주머니요. 아무리 집어넣도 한강투석 되고마니 이게 어쩐 일이니까.

 

<아니리>

저양반 호령허되 에라이놈 간사허다. 공돈 속돈 받자허면 몇만냥이 되겠으나 수만리 먼먼 길에 연거허기 괴롭기로 양쪽 폐를 생각허여 주머니를 채오라니 아무것도 넣지않고 이소리가 웬 소린고. 네 저놈 매어달고 방맹이로 우리어라. 좌우에서 대답소리 놀보 정신이 아득허여 그자리에 다시 엎어지며

 

<중머리>

비나이다 비나이다. 상전님 장헌덕택 살려주오 비나이다 살려주오 살려주오 공돈 속돈 다 바치제 정녕 주머니는 챌수없소. 네 소원이 그렇다면 네 할애비 양주부터 네 아비 내외허며 너의 연놈 자식까지 매명하에 삼천냥씩 이만천냥을 곧 바쳐라. 만일 잔말 하여서는 네놈마저 여기다 넣으리다. 주머니를 쩍 벌리니 놀보가 질색허여 목을 딱 움츠리며 예 분부대로 바칠테오니 제발 그 주머니좀 넣십시요놀보가 밖에나가 헐가로 전답을 잡혀다가 이만천냥을 바쳤구나.

 

<아니리>

놀보가 속량터니 상전이라 아니허고 생원으로 부르난디. 여보시요 생원님 기왕작처 헌일이니 그 주머니 이름이나 좀 가르쳐 주옵소서. - 이걸 능청랑이라 허느니라. 능청광이요. 그 주머니가 사람 여럿 죽일 주머니요. 이 주머니가 아 사람을 죽이는 주머니가 아니라 사람 아닌놈만 꼭 죽이는 주머니다. 이놈 똑똑히 들어 보아라.

 

<평중머리>

천지가 개벽헌 연후의 불충불효 허는놈들 무의무도 모은재물 뺏어가는 주머니다. 뉘해 뉘해 뺏어갔소. 어찌 다 세겠느냐. 한나라 양기세간 밥그릇 수저까지 몽땅 모도다 뺏어갔지. 그 세간은 전곡간에 얼마나 되더이까. 돈만해도 오억만냥 쌀과 보리가 오억만석이나

 

한편귀도 못채웠고 또 당나라 원자세간 큰 부자라 허였지만 모도다 쓸어넣어 보아도 반주머니도 못되더라. 그 세간은 도통 합이 얼마나 되더니까. 돈은 조가 훨씬넘고 쌀만 오천오백만석 벼가 오천백만석이요. 보리가 칠천만석 콩팥이 합쳐 이십만석 참깨가 이만오천석에 들깨가 이만석 차조 메조가 삼십만석 옥수수가 삼만석이요. 피가 육만오천석 지장이 구만석에 수수가 칠만석 호추가 가루로 팔천석이제. 그렇게 뺏어다가 어데다 써 계시요. 인군에게 충성허고 부모님께 효도허고 형제간 우애허고 친구구제 허는사람 형세가 가난허면 그 재물 나눠주어 부자되게 허였지야

 

<아니리>

너도 이놈 그 맘보를 질게 개과않거드면 한장동안 한번씩을 큰비가 올지라도 무장허고 올것이니 그리알고 지내렸다. 저양반 돈을집어 주머니에 넣더니만 두어걸음 나가더니 인흘불견이었다. 박타던 역군들이 모도다 무색허여 가기로 작정허니 놀보가 만류허며 여보소들 아까 나온 그노인이 상전이 아니라 은금이 변화허여 나를 시험헌것이니 아무말 말고 박타세. 둘째통을 타랴 헐제 놀보계집 달려들어 여보영감 이박을 또 타다가는 집도 터도 안남겄오. 제발 이박 타지 맙시다. 놀보가 홰를 내어 여편네가 방정맞인 소리를 꼭 헌단 말이여. 잔소리 말고 가만히 닥틀고 있어. 자 어서 타세.

 

<중중머리>

실근 실근 당거주소 에여루 톱질이야. 여보소 역군들 말을 듣소. 계집년의 방정땀에 나올 보물도사가 되겄구나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정녕코 좋은 보물 이박통에 있을테니 일락서산 덜 저물어 어서급히 당거주소. 어여루 톱질이야. 박이반만 버러지니 상여한채가 나오는디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어넘차 너화너 어너어넘차 어이가리 넘차 너화너 북망산이 머다더니 놀보 집터가 북망이로구나 어너 어넘차 어이가리 넘차 너화너 여보소 상여군들 우리도 죽어서 이길이요 놀보도 죽으면 이길이로구나 어넘차 너화너 상제하나가 나오면서 아이고 아이고 서룬지고 가난이 원수로다 삯 백냥에 몸이팔려 헛울음에 목이 쉬었구나 어너어너 어넘차 어이가리 넘차 너화너

 

<아니리>

관음보살 관음보살허더니 상여를 턱 내려 놀보 안방에다 영구를 모셔놓고 사아제 오백명이 울면서 꾸역꾸역 나오는디 어찌허여 상제가 오백명이나 된고허니 제비왕이 놀보를 망해줄랴고 북망산에서 제일 가난헌 귀신만 말끔 삯을주고 사서보낸 상제들이었다. 상제들은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우는디 허저같은 상여꾼들 설흔두명은 눈을 딱 부릅뜨고 벽력같은 큰 소리로

 

<자진모리>

쥔놈 놀보 어데갔나. 병풍치고 젯상놓고 촉대에다 밀초켜고 향로에 향피워라. 제물먼저 올린후에 상식상 곧 차려라. 방더울라 불때지말고 괴들어갈라 굴뚝을 막어라. 만일에 지체허다는 죽고남지 못하리라. 놀보가 황겁허여 대강 거행한 연후에 상제전 문안허고 공순히 여짜오되 어떠하신 상행차인지 내력이나 아사이다. 상제가 대답허되 우리댁 노생원님 너를 찾어 보실량으로 첫박통 행차허셔 너를 속량허여 주시고 환행차 허신후에 네정성 극진허여 자식보다 낫더라고 매일 자랑허시더니 노인의 병환이라 병환나신 하로내에 별세를 허셨난디 놀보의 안방터가 장히 좋은 명당이라 찾어가 내말허면 반겨 허락을 헐것이니 갈길이 머다말고 게가서 장사허되 만일 의심을 허거들랑 이것을 보여주면 신적이 될것이다. 재삼유언 허시기로 상행차 모시옵고 불원처리 찾어왔다. 어서바삐 집 뜯어라.

 

<아니리>

이 야단을 허면서 산적이란게 다른것이 아니라 노생원님이 평생 애지중지 허시든 바로 이것이다 허며 소매속에서 능청랑 주머니를 실금히 내놓는디 놀보가 이것을 보니 송장보다 더 징헌지라 질겁하야 꿇고 엎져 상제님 살려주옵소서 노생원님 허신유언 임종시 정신없어 혼미중에 헌 말씀이요. 이놈아 정신없는 말씀허실 노생원님이 아니시다. 아이고 아이고 하관시각 늦어질라. 지체말고 집 뜯어라. 아이고 놀보 기가막혀 상제님 산세 이치로 말한대로 이터가 명당이면 일조에 이렇게 폐가가 되오리까. 이터는 벌써 김나가 버린 터이옵고 내집보다 더 좋은 명당이 얼마든지 있사옵니다. 이놈아 네집보다 더좋은 명다이 어데 있단 말이냐 아이고. 놀보가 그통에 명당을 이르는디 거기에도 불타져 죽을 심술이 들었던 것이었다.

 

<중머리>

명당을 이를게 들으시오. 명당을 이를테니 들어보오. 강원도 금강산은 복호농구혈이 명당이요. 경상도 태백산은 장군출두혈이 명당이요. 전라도 지리산은 노서하전혈이 명당이오니 그리로 가시기 바랍니다. 이놈 그곳을 멀어 어찌갈꼬. 그러면 가까운 복덕촌에 박흥보집이 그터 성조후로 일조에 억십만금 부자되온 천하에 제일가는 명당이오니 그리로 운상을 허옵소서.

 

<아니리>

음 흥보집이 그렇게 좋은 명당이여. 그러면 흥보집으로 갈터이니 너는 이터 값으로 상제 오백명과 상여군 설흔두명 매명에 백냥씩만 내놔라. 놀보 어이없어 묵묵부답 앉었으니 상제 오백명이 상정막대 치켜들고 우박매질로 두드리며 주머니에다 넣기로 작정허니 놀보질겁허여 예예 바치오리다.

 

<중모리>

놀보놈이 밖에나가 절반금에 전답을 팔어 오만삼천 이백냥을 갖다주니 상여군들 돈을받어 상여에 집어싣고 어넘차 소리허며 아이고 무거워 못가겄다. 노생원님 분부대로 충효지댁에 주고가자. 두어걸음 나가더니 인흘불견 간곳 없네 이때에 동리 구경군들은 물밀듯이 달려드니 놀보 더욱 부끄럽고 화가나서 박한통을 간신히 들어 울너머에다 던져 버린것이 박통이 와지끈 깨어지며 돈이 마구 쏟아져 나온것을 구경군들이 모도다 주어가지고 뿔뿔히 도망을 허였구나.

 

<아니리>

놀보 기가 막히고 화가 나면서도 한편은 또 좋아라고 그러면 그렇지 선흉후길이요. 고진감래라니 자 또 박타자. 넷째 통을 또 탔더니 줄봉사 갖은 병신떼들이 나와 놀보놈 재산을 또 털어가고 이번에는 다섯째 통을 타는디. 박이 건짐 벌어지니 사당패 솔대패 등물들이 꾸역꾸역 나오는디 사당패가 앞을 서 나오며

 

<중머리>

난심아 죽절아 채선아 옥남아 소고진놈 장고진놈 꾸역꾸역 나오더니 놀보집 앞마당에다 구경석을 벌여놓고 뭇사당 거사들이 흥을내어 노래헌다. 구경을 가자 구경을 가잔다. 한라산도 백두산도 지리산도 지쳐 들어가니 초당삼간을 지었구나. 왼갖 화초를 다 심어었드라 맨드라미 봉선화며 왜철쭉 진달래라 여기도 넌출 심었고 저기도 넌출 심었구나 강원도 금강산으로도 구경을 가잔다. 에루화 매화로구나. 놀보놈이 기가막혀 좋다 잘나왔다. 나오던중 제일이다. 돈은 기왕 쓰는 돈이니 나온 걸음에 잘들놀아 보아라. 이때 또다시 솔대패 한패가 나오는디 광대섬 진놈 까치발 진놈 솔대멘놈이 나오더니 놀보앞에다 대를 세우고 훨씬 널리 터를 잡고. 각색 제비가 늘어서더니 해금 소리는 고개고개 퉁소소리는 띠루디 타령장단 검무춤에 번개소고는 똥글똥글 징광쇠 북장구를 신명내어 짓두드리니 구경군이 만장이라.

 

<아니리>

이렇듯 뛰고놀제 이웃집에 열렸던 박한통이 몹시도 바빴던지 구사월 알밤 벌어지듯 저절로 딱 벌어지더니 각설이패 풍각쟁이 초라니패가 또 나오는디 각설이 패가 앞을서서 장타령을 허며 나오던 것이었다. 뜨르르르- 들어왔소 구름같은 댁에 신선같은 나그네 들어왔소.

 

<자진모리>

각설이라 먹설이라 동서리를 짊어지고 죽지도 않고 또 찾아왔소. 뜨르르르 몰아 장타령 흰오얏꽃 옥과장 누른버들 김제장 부창부수 화순장 시화연풍에 낙안장 쑥 솟았다 고산장 철철흘러 장수장 삼도도회 금산장 일색춘향의 남원장 십리오리 장성장 에고데고 곡성장 오늘가도 진안장이요 코풀었다고 흥덕장 술은 있어도 무주장 술은 싱거도 전주장 물을타도 원주장 탁주를 먹어도 청주장 돈을내도 공주장 맨술을 안주장 어서가자 어서가 오란곳은 없어도 우리갈길은 바뿌요. 품바품바 잘헌다 놀보 센님 수이가게 헙시요.

 

<아니리>

한참 이리 노닐적에 또 방정맞인고사 초란이가 구실상모 담벙기지에 되게 매운 통장구를 턱밑에다 바짝메고 이놈이 방정을 떨고 나오는디.

 

<자진머리>

꽁구락 꽁꽁 꽁구락 꽁꽁 꽁구락 꽁구락 꽁구락 꽁꽁 헛쇄 통영 칠 도리반에다 쌀이나 서너말 떠다놓고 귀가진 저고리 당가진 초마에 명실복실 다늘이고 나전 천냥만 바쳐놓고 신수재수 고사나올 니고액이나 한번 막어 봅시다. 정월이월 드는 액은 삼월삼질에 막어내고 사월오월 드는액은 유월유두에 막어내고 칠월팔월에 드는액은 구월구일에 막어내고 시월동지 드는액은 납월납일에 막어내고 매월매일 드는액은 초라니 장구로 막어 봅시다. 꽁구락 꽁꽁 꽁구락 꽁꽁 꽁구락 꽁구락 꽁구라 꽁꽁

 

<아니리>

놀보 듣고 기가막혀 야이놈아 고사액이 무엇이고 모도다 귀찮다. 다들 물러 가거라

 

<자진모리>

귀찮단 말이 웬말이요. 귀자 근본을 들어보소 네발돋힌 당나귀 세발돋힌 퉁노귀 두발돋힌 까마귀 외발돋힌 돌쪼귀 각씨네 입은 치마귀 치마귀 밑에는 단속것귀 단솟것 밑에 속겉귀 앉으면 네귀요 서면은 두귀라 꽁구락 꽁공 꽁구락 꽁꽁 꼬공꽁꽁 꽁구락 꽁꽁 꽁굴닥 꽁굴닥 꽁구락 꽁꽁

 

<아니리>

초란이패가 한참 이방정을 떨고 난후 사당패 솔대패 풍각쟁이 각설이패까지 각각 천냥씩 오천냥을 내놓으라고 놀보르 잡지는디 놀보 하리없이 집문서까지 다 잡히어 오천냥을 갖다주니 문밖에 나서면서 인흘불견이라 놀보가 억에 받혀 무엇이 나오던지 한통 남은것 또 타보자. 마저 한통을 타려할제 놀보계집 달려들어 박통우에 걸터엎져. 제발 이박 고만타소. 삼도유명 우리성세 일조탕진 되었으니 이박을 탈테거든 내허리마져 같이 켜소. 방성통곡 울음을 우니 놀보도 무안허여 여보소 역군들 양줄풀어 톱지우고 그박통 들어다가 대문밖에 내다 버리소.

 

<자진모리>

톱질역군 대답허고 양줄풀어 톱지울제 뜻밖에 박통속에서 개문포 일방허라. 예 방포일성이 꿍 박통이 딱 벌어지며 일원대장이 나오는디 신장은 팔척이요. 얼굴이 먹장같고 표범머리 제비턱에 고리눈 다박수염 황금투구 쇠짜 갑옷 장팔 사모장창을 눈위에 번뜻 들고 우뢰같은 큰소리를 벽력같이 뒤지르며 네이놈 놀보놈아 네가 나를 모르리라. 천하가 말세되어 삼국시절이 분분헐제 유..장 세영웅이 도원에 결의허고 한실을 바로잡자 천하에 횡행허든 삼형제중에 말째되고 오호대장에 둘째되던 탁군따 장익덕을 아느냐 모르느냐 목을 늘여 창받어라. 이렇듯 호통허니 벼락이 떨어진듯 박타던 삯군들은 창자터져 죽은놈이 여러명이 되는 판이요. 놀보는 혼비백산 기절허여 장군앞에가 뒤쳐 지는구나. 네이놈 놀보야 천하에 중헌것이 형제밖에 또 없거늘 네놈은 웬놈으로 친 골육인 네동생을 구박축출 허였으며 평생에 행헌일이 남에게 못할일만 가려가며 허여왔고 더구나 비금중에 백곡에 해가 없고 사람을 별로 따라 죄없는 제비어든 무지헌 욕심으로 생다리를 꺾어 놓고 공받고져 원했으니 그죄 어찌 용납허랴.

 

<아니리>

내본시 생긴모양 제비턱을 가졌기로 항상 제비를 사랑터니 그말을 들은즉시 불꽃같은 내성미에 제비왕께 자원하고 네죽이려 예 왔노라. 제비다리 꺽어놓듯 네목도 오늘 꺾으리라. 장창을 번뜻 들었으나 놀보는 이미 뻗어버려 송장에 침주기로 아무대답 없는지라 그때여 마당쇠가 진즉 흥보에게 달려가 이말을 전했겄다. 흥보가 이소식을 듣고 천방지축 달려와서 장군 앞에가 엎더지며 아이고 장군님

 

<중머리>

비나이다. 비나이다. 살려주오 살려주오 장군님전 비나이다. 형의죄가 만사무석 죄주심이 마땅하오나 형제는 일신이온바 형이 만일 죽고보면 한조각 병신몸이 살어 무엇 허오리까 흥보놈도 마져 죽여 형의 뒤를 따르게 허옵소서. 장군이 이말듣고 흥보를 바라보더니 시름없이 창을 내리며 눈물짓고 허는말이 흥보씨 감격허오 한종실 유황숙과 늠름한 관공님과 우리 삼인이 도원결의 한실을 회복허려다 우리중형 관공께서 여몽간계에 별세허심이 나죽은 혼이라도 철천지 한일러니 오늘날 흥보씨는 블측무도 그형에게 시종여일 공경허니 나도 중형을 생각허매 눈물 감장헐바를 모르겠나이다. 흥보 손길을 부여잡고 못허겄소 못허겄소 욕투서이 기기라더니 흥보씨의 덕행앞에는 차마 이분을 풀수 없네 체읍허며 작별허고 두어걸음 나서더니 인흘불견 간곳없네.

 

<아니리>

장군은 떠났으나 놀보는 영영죽어 꽝꽝 얼은 동태 뽄으로 전신이 이미 굳었는지라 흥보가 방성통곡하며 정신없이 저희집으로 달려가 환혼주를 가져다가 놀보입에 떠 넣어놓니 살살 맥이 돌아들어 다시 회생 허였구나. 놀보 간신히 정신차려 가산을 둘러보니 초상친 뒤도 아니요. 이루말할 길이 없고 조석걸이 쌀 한줌과 엽전 한푼이 없는지라. 놀보와 놀보 마누라가 그제야 사람마음이 들었든지 얼굴을 바로들어 흥보 내외도 못바라 보고 다시 그자리에 엎더지더니 저의 죄를 섬기면서 방성 통곡을 허는구나.

 

<엇중모리>

놀보가 그날부터 쾌히 개과천선허여 언충신 행독경으로 대인접물 진실허고 흥보의 착헌마음 극진히 형을 위로허며 저의 세간 반분허여 형우제공 지내는양 뉘아니 부러허며 뉘아니 칭찬허리. 도원의 남은의기 천고에 유전 빛났더라. 그뒤야 뉘알리요 언재 무궁이나 고수팔도 아프실테요. 오정숙이 목도 아플 지경이니 어질더질.

 

 

 

1. 요점 정리

작자 : 미상 (민중의 공동작, 적층 문학, 구전 문학)

연대 : 미상

근원설화 : 방이 설화, 박 타는 처녀설화, 동물 보은 설화

갈래 : 판소리 사설

문체 : 가사체(3·4, 4·4), 율문체, 만연체

성격 : 해학적, 희극적, 풍자적, 평민적, 교훈적, 운문적

배경 :

시간적 배경 : 조선 후기

공간적 배경 : 전라도 운봉과 경상도 함양 경계(지금의 전라도 남원)

구성 : 추보식 구성

인물(성격) :

흥보 : 농토가 없는 농촌 빈민이지만 선량하고 정직하며 우애와 신의가 있는 인물

흥보의 처 : 흥보처럼 선량하나 현실 인식이 더 빠르고 고난을 억척스럽게 이겨내고자 하는 인물

놀보 : 부를 축적한 농민이자 수전노,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는 악인의 전형적 인물

갈등 구조 : 흥보가의 기본 갈등 구조는 흥보로 대표되는 농촌 빈민층과 놀보로 대표되는 반사회적 지주층과의 갈등이다. 흥보가 놀보에게 쫓겨난 것은 토지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놀보에게 빼앗겼음을 의미한다. 이는 빈농과 부농으로 농민층이 분해되고 있음을 뜻한다. 동시에 당시의 사회가 공동 사회에서 이익 사회로 전환됨에 동반된 현상으로 흥보가는 당시의 농민 현실을 심각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의 이중성 : 표면적 주제는 형제 간의 우애와 권선징악(勸善懲惡), 인과응보이고, 이면적 주제는 신흥 부농과 유랑 빈농 사이에 벌어지는 경제적 갈등. 또는 빈부 갈등(빈농층과 반사회적 지주층 간의 갈등)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표현상 특징 :

3·4 또는 4·4조 운문과 산문이 혼합됨

언어의 이중성(양반의 한문투, 평민의 일상어·비속어)

일상적 구어와 현재 시제를 사용하여 사실적 표현과 전라도 사투리의 구사를 통해 향토색을 드러내었다. / 현재형 시제를 사용하여 극중 세계의 사실감을 높여 사실적인 표현 기법을 취하였다.

조선 후기의 몰락하는 양반의 실상과 평범한 서민들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드러내었고, 평민적 취향이 가장 강함.

대조, 과장하는 수법을 통해 해학적 골계미를 풍부하게 표현하였다.

문학의 세 유형인 노래하기, 이야기하기, 보여주기의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다.

'장면의 극대화'로 인하여 각 장면의 독자성이 강화되고 있다 판소리에서 말하는 '장면의 극대화'란 어떤 장면에서 기대되는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문학적 형상화 수법의 하나로 주어진 장면에서 기대되는 효과를 최대화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서술자의 의도에 관계되는 것이다. 예컨대 기쁜 장면이라면 그 기쁨을 최대화하고, 열등한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서라면 앞뒤에 행동에 상관하지 않고 그 주어진 장면에서 열등함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서술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면을 극대화하다 보면 해당 장면이 인물의 앞뒤 행위와 일관성을 잃는 경우도 있다. , 이것을 장면의 독자성이 강화된다고 말한다.

 

줄거리 : 경상·전라·충청 3도의 접경에 심술 사나운 형 놀부와 착하고 순한 아우 흥부가 살았는데, 놀부가 부모의 재산을 독차지하고 흥부를 내쫓자, 아내와 여러 자식을 거느린 흥부는 온갖 어려운 일을 다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 해 봄 제비가 흥부집에 집을 짓고 살다가 새끼 1마리가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 마음씨 착한 흥부가 제비다리를 고쳐 주자 이듬해 봄에 박씨 하나를 물어다 주었다. 흥부가 박씨를 심어 그해 가을 큰 박을 거두어 켜 보았더니 그 속에서 금은보화가 나와 큰 부자가 되었다. 놀부가 이 소식을 듣고 일부러 제비다리를 부러뜨린 뒤 치료하여 날려 보냈더니 이듬해 역시 박씨 하나를 물어다 주었다. 놀부도 박씨를 심어 가을에 박을 거두어 켰는데, 그 속에서 온갖 몹쓸 것이 나와 집안이 망해버렸다. 흥부가 재물을 나누어 주어 다시 잘살게 하자 놀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형제가 화목하게 살았다는 내용이다.

화해의 매개자, '제비''' - '흥부전'에 나오는 '제비'''은 초현실 세계의 전령사로서, 청빈하고 도덕적인 인간 흥부에게 재물로써 이를 보상하고, 부자이면서 부도덕한 놀부를 벌해 재산을 몰수 한다. 이것은 놀부같이 부도덕한 부자에 대한 서민 독자들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초자연적 힘에 의해 놀부는 잃어 버렸던 도덕성을 회복하고, 대립 관계였던 흥부와 화합을 이루게 된다. , 놀부는 부도덕한 재산을 탕진함으로써 도덕성을 회복하고, 흥부는 그의 도덕성 때문에 부자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형제 간의 우애라든지, 권선징악과 같은 도덕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적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이해와 감상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 ‘박타령이라고도 한다. 가난하고 착한 아우 흥보는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그 제비가 물고 온 박 씨를 심어 박을 타서 보물들이 나와 부자가 되고, 넉넉하고 모진 형 놀보는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 제비가 물고 온 박 씨를 심어 박을 타서 괴물들이 나와 망한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엮은 것이다.

사설이 우화적이기 때문에 우스운 대목이 많아 소리 또한 가벼운 재담소리가 많다. 사설의 길이는 짧은 편이며 한 마당 모두 부르는 데 대개 3시간 가량 걸린다. 조선 중기에 이미 불렸으며 송만재(宋萬載)관우희 觀優戱, 이유원(李裕元)관극팔령 觀劇八令과 같은 조선 후기 문헌에 처음 보인다.

정조 때의 명창 권삼득(權三得)흥보가를 잘하였고,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이 그의 더늠이라고 한다. 순조 때의 명창 염계달(廉季達문석준(文錫準)흥보가로 이름을 떨쳤는데 그는 박통 속에서 돈과 쌀을 정신없이 퍼내는 휘모리 대목을 더늠으로 전하고 있다.

철종 때에는 한송학(韓松鶴정창업(丁昌業)흥보가를 잘하였다 하며, 고종 때에는 최상준(崔相俊김창환(金昌煥)이 잘하였다 한다. 김창환은 제비노정기를 더늠으로 내었던 바, 오늘날 제비노정기는 그의 더늠을 첫손으로 꼽고 있다.

전승되고 있는 흥보가바디에는 박녹주(朴綠珠)와 박봉술(朴奉述)이 보유하고 있는 송만갑(宋萬甲) 바디, 정광수(丁珖秀)가 보유하고 있는 김창환 바디, 오정숙(吳貞淑)이 보유하고 있는 김연수(金演洙) 바디가 있으며, 박동진(朴東鎭)이 짜 부르고 있는 바디 흥보가는 김창환 바디에 가깝다.

그 밖의 흥보가바디는 거의 전승이 끊어진 상태이다. 흥보가는 바디마다 사설과 소리가 얼마쯤 다르게 짜여 있으나, 흔히 초앞’·‘놀보심술’·‘흥보 쫓겨나는데’·‘매품팔이’·‘매 맞는데’·‘집터 잡는데’·‘제비노정기’·‘흥보 박타령’·‘화초장’·‘제비 후리러 나가는데’·‘놀보 박타령등 뒤풀이로 짜인 바디가 많다.

앞과 뒤에는 재담소리가 많고 가운데에 좋은 소리가 많다. 흥보가에서 이름난 소리 대목은 중타령’(엇모리-계면조)·‘집터 잡는데’(진양-우조)·‘제비노정기’(중중모리-평조 또는 계면조)·‘박타령’(진양-계면조)·‘비단타령’(중중모리-평조 또는 계면조)·‘화초장’(중중모리-계면조)·‘제비 후리러 나가는데’(중중모리-설렁제)를 들 수 있다.

흥보가는 우스운 재담 대목이 많이 들어 있고 끝에 놀보 박타는 대목에는 잡가(雜歌)가 나오기 때문에 해학적인 마당으로 꼽힌다. 소리도 잘해야 하지만 아니리와 너름새에 능해야 흥보가명창으로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朝鮮唱劇史(鄭魯湜, 朝鮮日報社, 1940), 판소리 小史(朴晃, 新丘文化社 出版部, 197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보충 자료 (1)

'흥부가'는 형제간의 우애를 다룬 작품이다. 그리고 조선 후기 사회 서민들의 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체줄거리에 흐르는 소재는 '제비와 박'이 중심이 되며, 선량한 아우와 심술궂은 형을 등장시켜, 유교의 근본 사상의 하나인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윤리적인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제는 다양하게 잡을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빈궁의 문제이다. 작품을 창작할 당시의 사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조선 후기 사회는 격심한 사회 변동의 와중에서 토지를 잃은 농민들의 수가 급증하였다. 그런데 이 글에서 흥부가 밥을 너무 많이 먹고 잠시 죽는 모습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당시 사회의 현실과 관련시켰을 때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박을 타 보니 금은보화와 쌀이 나오고, 그 쌀을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어 본다는 것은 당시 서민들의 꿈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는 창자인 광대와 고수가 성립시키는 소리판에 청중이자 관객인 감상자들의 참여로 연행되는 예술 양식이므로, 그 삼자가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해 가며 연희할 수 있다. 위의 창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창자는 발랄한 속어, 재담 등을 구사하거나 상황을 여실히 나타내기 위하여 반복하거나 의성, 의태어로 사실감을 높이 기도한다. 이 작품 속에는 당시 만중들의 웃음과 해학이 들어 있으며, 조선 후기 사회의 사회 현실도 엿볼 수 있다.

'흥부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앞 부분은 흥부가 고난을 겪다가 제비 다리를 치료해 주는 내용이며, 뒷 부분은 흥부가 박을 켜서 복을 받고 이를 흉내 낸 놀부는 박을 켜화를 당한다는 내용이다. 흥보가는 일명 박타령이라고 하는데 그 박은 바로 조선 시대의 민중 다시 말해서 일반 서민들의 가장 열망하는 것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박 속에서 온갖 비단과 보물이 나왔다는 상상력은 비현실적이지만, 당대 민중들이 직면하고 있던 절대적 빈곤과 그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부()에 대한 염원의 역설적 표현이라고 볼 경우, 오히려 강한 현실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4. 보충 자료 - 흥보가 '박 사설'의 기능

(1) 심리적 보상 기능

심리적 보상 기능의 하나로서는 흥보박 사설이 착한 흥보가 복을 받게 되는 내용으로 엮어져 있고, 놀보박 사설이 악한 놀보가 벌을 받게 되는 내용으로 엮어짐으로써 청중의 기대감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에는 흥보박 사설이 창자(唱者)와 청중의 현실적 소망을 언어적 형상 속에서 간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구실을 맡고 있다는 점을 들어볼 수 있다. 한편, 놀보와 흥보가 형제의 윤기(倫紀)를 되찾아 화해하게 되는 놀보 박 사설의 결말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결될 수 있고,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돌이킬 수 있다는 낙관적, 긍정적 신념을 회복시키는 구실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여러 기능이 복합되어 소리판 속의 청중이나 독서물 앞의 독자를 감동시키고 만족시키게 된다.

(2) 오락적 기능

청중이나 독자를 즐겁게 해 주는 오락적 기능은 흥보 박 사설과 놀보 박 사설 전체에 넘쳐 흐르는 희극미에서 나타나고 있다. 흥보 박 사설에서 흥보가 밥을 먹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대목에서 이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전략) 이놈아 밥판이고 무엇이고 느그 아버지 밥 자시다 세상 버리신다. 밥먹다가 죽는 걸 뉘 내 아들놈이 안단 말이요. 어디 아부지 궁둥이 좀봅시다. 아부지 궁둥이에 밥이 환히 비였소. 강아지 한 마리 들여 보내지요. 아이고 이놈아 강아지가 들어가 어쩌게야. 강아지가 들어가서 밥을 팍팍파먹을 게 아니요, 아이고 이놈아 밥은 파먹는다 하고 강아지는 어디로나오게야. 그러기에 호랑이 한 마리 몰아 넣지요. 호랑이가 들어가 어쩐다냐. 강아지를 콱 잡아먹을 게 아니요. 이놈아 강아지는 잡아먹는다고 하고호랑이는 어디로 나오게야. (후략)

위의 사설에서는 오래 굶주린 끝에 밥을 먹다 기절한 흥보의 처지가 슬픔을 주기보다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서술되고 있다. 이것은 기절한 흥보를 두고 흥보의 아내와 아들이 말장난 같이 주고받는 대화가 일으키는 희극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박 사설이 지니는 오락적 기능은 놀보 박 사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놀보 박사설을 잘 살펴보면 박 속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놀보를 처벌하기 위해서 등장하고 있다기보다는 놀이판을 벌이기 위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 놀보 박 사설은 사당패·초라니패·푸악쟁이패 등의 등장과 이들의 예능과 놀이판의 묘사로 사설이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은 오락적 기능을 강화시켜 주면서 한편으로는 판소리의 현장성을 보완하는 구실을 맡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3) 판소리의 공연의 현장성 보완

흥보 박 사설과 놀보 박사설은 한 사람의 창자가 한마당의 소리판 전체를 재연해야만 되는 구연 방식의 제약 조건을 보완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흥보 박 사설에는 비단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들려 주는' 소리를 통하여 '보여 주는' 효과를 내고 있고, 놀보 박 사설에서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색을 눈앞에 보여 주듯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의 언행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창자 한 사람이 인물을 묘사하고 수많은 장면을 전환시켜야 하는 판소리의 구연 방식의 제약 조건 아래서 소리판 재연의 현장성을 보완하는 구실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특히, 박 사설에서 박 한 통 한 통이 장면 전환의 구실을 맡고 있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자료 출처 : 서종문의 '흥보가 박 사설의 생성과 그 기능')

 

5. 보충 자료 - 흥부·놀부의 인물 평가

조동일은 '흥부전의 양면성'이라는 글에서, 우선 '흥부전'이 판소리계 소설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 작품이 구조적 양면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한 면은 설화적 모태 구조로서의 견고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판소리의 구조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의 독자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장면의 확장과 수축이 자유자재로울 뿐 아니라, 각 장면과 장면 또는 부분과 부분은 긴밀한 연계성이 없이 독자적으로 설정되고 또 연행될 수 있는데, 그 구체적인 사례를 흥부와 놀부의 상이한 신분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 같은 형제간이지만 흥부는 양반 출신, 놀부는 천인 출신이라는 상반되는 신분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당연히 논리적 자가당착으로 지적될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이 그러나 판소리 양식의 구조적 특징인 '부분의 독자성'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흥부는 몰락 양반의 표상으로, 놀부는 신흥하는 천부(賤富)의 표상으로 보았다. 따라서, 흥부와 놀부 사이의 갈등은 이미 있어 온 사회·문화와 앞으로 있어야 할 사회·문화 사이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구질서의 표상인 흥부와 새로 신흥하는 질서의 표상인 놀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일련의 진단을 내리고 있다.

…… 금전을 최대한 숭배하고, 재산이 무한히 확장되어나갈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놀부식 사고가 새로운 힘을 가지고 있어 현실적 승리를 구가한다.

…… 선량한 군자이되 고생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흥부는 긍정되고 해학의 대상이 된다면, 탐욕스럽게 악하다는 점에서 놀부는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풍자된다. 이러한 관점은 새로운 현실 관계의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기는 해도 보수적인 견해라 할 수 있다.

…… 흥부가 지닌 몰락 양반의 무능을 조롱하며 놀부의 진취적인 능력에 친근감을 갖는 관점은 상인을 중심으로 하는, 대두하는 새 세력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진술을 통해 볼 때, 비록 가치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시 흥부 쪽보다는 놀부 쪽에 편향되고 있는 연구자의 심정적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더구나 흥부의 인간상에서 연역된다고 할 수 있는 도덕률, 특히 유교 도덕률을 대변하는 것이 표면적 주제임에 반하여, 놀부의 인간성에서 연역되는 바로서의 천부의 대두로 가난해진 양반과 모든 기존 관념이 얼마나 심각한 곤경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 이면적 주제라고 할 수 있고, 표면적 주제보다는 이면적 주제에서 보다 깊은 역사적 함의를 찾고 있는 연구자의 자세에서 이러한 사실은 더욱 명백해진다.

이러한 조동일의 견해에 대하여 이론(異論)을 제기한 이는 임형택이다. 그는 '흥부전의 현실성에 관한 연구'에서, 우선 놀부, 흥부의 신분 관계에 관하여 놀부와 흥부가 같은 서민층에서의 양면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파악하였다. , 놀부는 ' 상승된 경영형 서민 부농'으로 파악하였다. 또 그는 이 글에서 조선조 후기 농촌사회가 공동 사회에서 이익 사회로 이행됨에 따라 제기된 모순과 역리 현상에서 흥부전의 주제 의식을 파악하려고 하였으며, 특히 '흥부라는 인물은 피나는 노력에도 굶주려야 되는 반면에 놀부라는 인물은 악질적인 행위에도 부자로 잘 살고 있는 현실의 모순'에서 날카로운 문제 의식이 제기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임형택 역시 사회 경제사적 시각에서 작품을 투시하고, 또 문제를 풀어 가고 있음은 조동일의 경우와 다를 바 없지만, 작품 구조를 일정한 통일원리에 따라 바라보고 있다는 점과 놀부·흥부의 신분을 동일한 서민 계층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은 두 연구자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차이점이다. 차이점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놀부·흥부의 인물을 평가하는 시각에서도 두드러진다. 두 인물에 대한 임형택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놀부는 철저히 반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이었다. 물론 놀부의 이러한 반도덕적, 반사회적 성격은 봉건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서 역사적으로 일정한 진보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역사의 변환 과정에서 나타난 암이며, 배제되어야 할 요소이므로 놀부는 부정적인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는 이익 추구열이 지나쳐 배금주의자가 돼 버린 것이다. 돈벌이 그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그러나 결국 놀부는 무한한 이익 추구열 때문에 자멸한다.……

우리는 흥부를 봉건 사회 말기의 보수적이고 반시대적인 낡은 유형으로 처리해 버린 점에 반대한다. 흥부를 무기력하며 게으르고 현실에 어두운 자로 보아 넘긴 태도에 대해서도 수긍할 수없다. ……흥부는 양심을 잃지 않고 근면으로 가난을 극복하려는 서민적인 인간상을 극복하려는 서민적인 인간상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다. 이 점에서 흥부는 긍정적인 인물로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임형택은 놀부가 철저히 반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배금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역사 진보 과정에서 나타나는 암적 요소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흥부는 봉건 사회 말기의 반시대적인 낡은 유형이 아니라, 오히려 양심을 잃지 않고 근면으로 가난을 극복하려는 서민적인 인간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했다. 그는 진취적이고 능률적이면서도 비양심적인 배금주의자보다는 비록 가난하고 비능률적이지만 양심을 잃지 않고 성실히 살아가려는 인간상에 기울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임형택의 글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는 놀부·흥부의 신분 관계에 관해서이다. 그는 두 사람이다 동일한 서민층이라고 하였지만, 아무래도 작품 실상에는 부합되기 어려운 주장으로 보인다. 작품에서 흥부는 문자 쓰기를 좋아하는 식자층일 뿐 아니라, 관습적으로 생활규범을 준행(準行)하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상택은 '고전소설의 사회와 인간'에서 놀부·흥부의 신분관계를 '획득 신분'의 차원에서 풀이한 바 있다. , 흥부전의 작가군이 신분을 풀이한 바있다. , 흥부전의 작가군이 신분을 설정함에 있어서, 부모로부터 선험적으로 물려받은 귀속 신분이 양반인가 천민인가 여부는 별반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사회 변동이 그만큼 심화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양반 중에도 정치·경제적인 몰락으로 말미암아 현실적으로는 빈민에 속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천민 중에도 부를 축적하여 고대 광실에서 풍요를 누리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획득 신분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부의축적에 성공한 놀부는 말할 것도 없이 특권층에 해당되는 것이고, 온갖 품팔이꾼으로 영락하여 심지어 매품까지 팔아야 했던 흥부는 오갈 데 없는 극빈 천민에 해당된다. , 획득 신분 차원에서 보면, 놀부가 상층에 해당되고 흥부가 하층에 해당되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 의식의 심부에 자리한 놀부·흥부의 신분은 그러한 시각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놀부가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흥부의 유산권을 탈취한 것과 같은 극악한 반윤리적 행위는 지탄되어 마땅하다. 그렇기 때문에 '흥부전'의 역사적 함의는 일차적으로는 반도덕적인 수탈 계층과 도덕적인 피수탈 계층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찾아야 한다. (출처 : 이상택의 '흥부 놀부의 인물 평가')

 

6. 보충 자료 - 판소리의 표현상 특징

일상어를 구어체로 사용

창 부분은 운문체(율문, 3·4 또는 4·4조의 가사체). 아니리 부분은 산문적 표현

) "가난이야, 가난이야, 원수년으 가난이야. 잘 살고 못 살기는 묘쓰기으 매였는가?"

"어떤사람 팔자 좋아 고대 광실 높은 집에 호가사로 잘 사는 데 이년의 신세는 어찌하여 밤낮으로 벌었어도 삼순구식을 헐 수 없고"

동일 어구나 유사 어구의 반복을 통한 운율감의 조성

) 비어 내고, 비어 내고, 비어 내고.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등

하나의 국면을 확장적으로 그려 냄

) 박 타는 장면을 확장하고 부연하여 흥미를 조성함

현재 시제를 사용하여 독자와의 거리감을 좁힘

) 열것다, 붓것다 등

의성어와 의태어를사용하여 현장감을 살림

) 시르르르르르르르르, 실근실근, 번쩍, 수북, 가뜩 등

상투적인 비유와 관용어구가 많이 나타남

) 구년지수, 석숭, 도주공

서술어의 생략을 통한 압축적 표현

) 박을 툭 타 놓고 보니 박통 속이 훼엥. 궤를 찰칵찰칵, 번쩍 떠들러 놓고보니 어백미 쌀이 한 궤가 수북.

 

7. 보충자료 - 흥보가의 근원(根源) 설화(說話)

지금까지 근원설화에 대하여는 첫째, 고유설화 둘째, 고유 설화와 외래 설화와의 혼합 셋째, 몽고 설화 넷째, 불교 설화의 네 가지 갈래로 추론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몽고의 '박타는 처녀 설화''흥보가'와 내용이 비슷하여 가장 가까운 설화로 지목되어 왔다. 그러나 '흥보가'의 설화적 구조와 유형을 추출하여 악하고 착한 형제가 등장하는 선악(善惡)형제담, 동물이 사람에게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한다는 동물(動物)보은(報恩), 박 속에서 한없이 물건이 나오듯 어떤 물건에서 한없는 재물을 쏟아내는 무한재보담(無限財寶譚)의 세 유형으로 나누어 이에 해당하는 구비 설화를 대비함으로써 '흥보가'의 설화적 원천은 명확하게 밝혀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중심을 이루는 설화는 선악형제담으로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흉내내다 실패한다는 모방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혹 떼러 갔다 혹 붙이고 온 영감'·'소금장수'·'부자 방망이'·'금도끼 은도끼'·'단 방귀 장수'·'말하는 염소' 등의 구전(口傳) 설화가 동일 유형의 설화에 해당한다.

또 동물보은담에 해당하는 설화로 '육도집경''방구보은설화', '삼국유사''자라토주설화', 그밖에 구전설화인 '새보은설화'·'사슴보은설화' 등이 있으며 무한재보담으로는 구전설화 '이상한 남' 등이 있다. 결국, 선악형제담·동물보은담·무한재보담이 '흥부전'을 구성하는 3대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세 가지 이야기가 불교적 색채를 지녔다는 점에서 '흥부전'의 근원 설화에 해당하는 불전설화로서 '현우경''선구악구설화', '잡비유경''파각도인설화' 등을 들 수 있다.

결국, '흥부전'은 어느 하나의 근원 설화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설화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흥부전'은 조선 후기 서민사회에서 광대·가객 등 서민 예능인들에 의하여 형성된 작품이므로 당시 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작품을 생성시키고, 향유했던 서민 계층의 의식이 잘 투영되어 있다. 특히, 두 주인공인 흥부와 놀부는 당시 서민 사회의 일정한 신분적 특징과 유형을 반영하는 전형적 인물로 투영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흥부와 놀부는 같은 형제이면서도 양반과 천인으로, 그 사회적 신분이 상이하게 설정되었다고 보아, 그 이유를 판소리계 소설의 중요한 특징인 부분의 독자성에 기인한다고 보며, 작품의 사회사적 의미를 화폐 경제의 발달, 천부(賤富)의 대두와 물질적 가치관의 성행에서 파악하는 견해가 있다. , 이와는 달리 흥부와 놀부의 신분관계를 같은 서민층에서의 양면성을 반영했다고 보고, 놀부는 상승된 경영형 서민부농의 반영인 반면에, 흥부는 소작인의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모든 생산 수단을 상실하여 품팔이꾼으로 전락한 영세농민을 반영한 인물로 보는 경향도 있다. 이처럼 견해차가 있어도 '흥부전'이당시 서민 사회의 양상을 잘 반영하고 있고, 서민 계층의 삶과 생각을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흥부전'은 대체로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윤리소설로서 인과응보적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주제와 사상을 지닌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교적 윤리도 덕을 내세우는 것만이 '흥부전' 주제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그 이면에는 당시의 급변하는 현실 사회에서 몰락한 양반과 아직도 위세를 부리려는 기존 관념이 허망한 것이라는 현실주의적 서민의 새로운 세계관의 제시에도 '흥부전'의 주제는 발견된다.

 

8. 보충 자료 - 방이 설화

신라에 방이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방이는 가난하여 의식을 구걸해서 살아가는 형편이었고, 아우는 부자였다. 어느 해 방이는 아우에게 가서 누에 알과 곡식의 종자를 구걸했다. 동생은 매우 나쁜 사람이었으므로 알과 종자를 삶아서 주었다. 이를 모르는 형은 그대로 받아 왔으나, 알 중에서 누에 한 마리가 생겨 나더니 황소만큼 자랐다. 동생은 샘이 나 찾아와서 누에를 죽이고 갔다. 그랬더니, 백리 사방에서 뭇 누에가 모여들어 실을 켜 주었다. 종자도 역시 한 줄기밖에 나지 않았는데 이삭이 한 자나 자라자, 어느 날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것을 물고 달아났다. 그는 새를 따라 산 속으로 갔다가 밤을 맞았다. 이윽고 난데없이 아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금방망이를 꺼내서 이리저리치는데 그때마다 부르는 것이 나타났다. 그들은 술과 밥을 차려서 한참 먹더니 어디론지 가 버렸다. 방이는 이 방망이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아우는 시기심이 나서 그도 역시 형이한 바와 같이 해서 새를 따라가서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그를 보자, 이놈이 전에 방망이를 훔쳐 간 놈이라 하면서 갖은 부역을 시킨 후 코를 뽑아 코끼리처럼 만든 후 집으로 보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해 속을 태우다가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방망이는 방이의 후손에게 전해졌는데, 어떤 후손이 "이리 똥 내놓아라."고 희롱했더니 갑자기 벼락이 치더니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9. 보충 자료 - 방이 설화 줄거리 요약

1) 신라 시대 어느 고을에 김방이라는 인물이 살았는데, 그 동생이 악독하여 동생에게 재산을 다 빼앗겼다.

2) 어느 해 동생에게 보리를 꾸어다 밭에 심었는데, 동생이 나쁜 보리만 골라 주어 싹이 거의 트지 안았다.

3) 밭 한가운데 꼭 하나의 보리싹이 나와 정성껏 가꾸었는데 어느 날 노랑새 한 마리가 날아와 쪼아 먹고 말았다.

4) 방이가 슬퍼하자 노랑새는 방이를 데리고 가, 원하는 물건을 무엇이든 나오게 하는 금방망이를 선물하였다.

5) 방이가 부자가 되자 동생이 시샘하여 방이가 한 대로 따라 해서 금방망이를 얻었다.

6) 그러나 동생의 금방망이에서는 온갖 나쁜 것들이 나와 동생을 해쳤다.

7) 동생이 재산을 다 잃고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방이가 와 구해 주었고 동생도 잘못을 뉘우쳤다.

 

10. 보충 자료 - 박 타는 처녀 (몽골 설화)

옛날 어느 때 처녀 하나가 있었다. 하루는 바느질을 하고 있노라니까, 무슨 서툰 소리가 들리는데, 나가 본즉 처마 기슭에 집을 짓고 있던 제비 한 마리가 땅으로 떨어져서 버둥거리며 애를 쓴다. 에그 불쌍해라 하고 집어 살펴본즉, 부둥깃이 부러졌다. 마음에 매우 측은하여, '오냐 네 상처를 고쳐 주마' 하고, 바느질하던 오색 실로 감쪽같이 동여매어 주었다. 제비가 기쁨을 못 이기는 듯이 날아갔다.

얼마 뒤에 그 제비가 평소와 같이 튼튼한 몸이 되어서 날아오더니, 고마운 치사를 하는 듯이 하고 날아간다. 우연히 날아간 자리를 본즉, 무엇인지 씨앗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이상한 일도 있다하고, 무엇이 나는가 보리라고 뜰 앞에 심었다. 그것이 점점 커지더니, 그 덩굴에 가서 커다란 박이 하나 열렸다. 엄청나게 크니까, 희한한 김에 굳기를 기다려 하루바삐 타 보았다. 켜자마자 그 속에서 금은 주옥과 기타 갖은 보화가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그 처녀가 금시에 거부가 되었다.

그 이웃에 심사 바르지 못한 색시가 하나 있었다. 이 색시가 박 타서 장자 된 이야기를 듣고, 옳지 나도 그 색시처럼 제비 상처를 고쳐 주리라 하였다. 그래서 제집 처마 기슭에집 짓고 사는 제비를, 일부러 떨어뜨려서 부둥깃을 부러뜨리고, 오색실로 찬찬 동여매어 날려 보냈다. 얼마 지나니까 과연 박씨 하나를 가져왔다. 너무나 기뻐서 얼른 뜰에 심었더니, 여전히 커다란 박이 하나 열렸다. 오냐, 금은 주옥 갖은 보화가 네 속에 들었느냐 하고 그 박을 탔다. 뻐개어 본즉 야단이 났다. 그 속에서 무시무시한 독사가 나와서 그 색시를 물어 죽였다.

 

11. 보충 자료 - 박 타는 처녀 줄거리 요약

1) 어떤 처녀가 제비 다리를 치료해 주었다.

2)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주어, 심었더니 큰 부자가 되었다.

3) 이웃집 처녀가 이를 부러워해서 제비 다리를 꺾어서 치료해 주었다.

4) 제비가 역시 박씨를 물어다주어, 심었으나 망하고 말았다.

 

12. 보충 자료 -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 이야기 줄거리 요약

1) 어떤 혹 달린 사람이 도깨비들에게 노래를 해주고는 혹에서 노래가 나온다고 했다.

2) 도깨비들이 혹을 떼어 갔다.

3) 이웃의 혹 달린 사람이 이를 탐내서 자기도 도깨비에게 노래를 했다.

4) 도깨비들이 혹 하나를 더 붙여 주고 두들겨 주었다.

 

13. 보충 자료 - 부자 방망이 이야기

1) 어떤 사람이 도깨비 집 천장에서 개암을 깨물었다.

2) 도깨비들이 그 소리에 놀라 부자 방망이를 둔 채 도망쳐, 그 사람은 부자가 되었다.

3) 욕심 많은 이웃 사람이 이를 탐내, 자기도 도깨비집 천장에서 개암을 깨물었다.

4) 도깨비들이 그 사람을 찾아 내어 두들겨 주었다. (자료 출처 : 한국사전연구사간 국어국문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