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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현대시의 정수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전문/해석/원문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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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시집 박인환시선집, 1955)

 

 

 

* 박인환 : 강원도 인제 출생(1926), 평양의학전문학교 입학, 해방을 맞으면서 학업 중단, 국제신문에 시 거리를 발표하며 등단(1946), 김수영·김경린·양병식·임호권과 함께 공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발간(1949), 시집 박인환 시선집발간(1955), 사망(1956)

 

 

해석

샹송 스타일의 곡을 붙여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는 낭만적 시의 정수라 할 만하다. 3년간이나 계속된 한국전쟁 속에서 도시는 온통 폐허가 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상실하고 철저하게 상호 무관심한 개인주의적 경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황폐한 분위기에서 시인은 따스한 인간애에 목이 말랐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유리창 밖 가로등 / 그늘의 밤여름날의 호숫가가을의 공원 / 벤치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황폐해 가는 전후 도시적 분위기에서 시인의 가슴은 점점 서늘해 진다. 그러나 화자는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와 입술은 언제까지나 그 서늘한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 애틋한 사랑 노래는 우리들에게 촉촉한 서정성을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