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
바다를 마음에 불러 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닷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오도다.
망망(茫茫)한 푸른 해원 -
마음 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와 향기
코에 서리도다.
(『동명』 18호, 1923.1.)
* 오상순 : 공초(空超). 상현(想絢). 선운(禪雲). 서울 출생(1894), 어의동학교에 입학(1900), 경신학교 졸업(1906), 일본 도시샤 대학 종교철학과 졸업(1918), 김억·남궁벽과 함께 『폐허』 동인으로 참가(1920), 사망(1963)
◈ 해석
이 시는 일제 치하라는 현실의 질곡을 벗어난 이상향을 그리워하며 정처 없이 떠도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상향은 ‘망망한 푸른 해원’으로 ‘눈을 감고 마음속에’ 그리는 바다이다. 현실의 모든 고뇌로부터 떠난 자유와 안식의 바다이다.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 깊은 바닷소리’는 내 몸 속으로 ‘피의 조류를 통하여 오’지만, 그곳으로 갈 수 있었던 ‘때를 잃고’, 다만 끝없는 그리움으로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발돋움하고 /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바라보는 그 바다는 시인이 식민지라는 민족적 고통을 안고 꿈꾸는 곳으로, 결국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젊은 시인의 ‘흐름 위에 / 보금자리 친’ 영혼이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푸른 해원’과 같은 곳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루 200개비의 줄담배를 피우며 일생을 독신으로 외롭게 살다 세상을 떠난 공초 오상순은 변영로와 함께 『폐허』 동인 활동을 하면서 기독교를 버리고 입산과 환속을 거듭하는 등 숱한 기행(奇行)으로 화제를 뿌렸던 시인이다. 그는 평생을 이 작품의 제목처럼 ‘방랑의 마음’으로 전국을 떠돌며 일제 식민지 치하의 삶을 ‘허무와 세속에의 일탈’로 영위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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