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영혼의
낮잠 터 되는
사막의 수풀 그늘로서
파란 털의
고양이가 내 고적한
마음을 바라다보면서
(이 애, 너의
온갖 오뇌(懊惱), 운명을
나의 끓는 샘 같은
애(愛)에 살짝 삶아 주마.
만일에 네 마음이
우리들의 세계의
태양이 되기만 하면,
기독(基督)*이 되기만 하면.)
(『폐허』 창간호, 1920.7.)
* 기독 : 『기독교』 ‘그리스도’의 음역어.
* 황석우 : 서울 출생(1895),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에서 수학, 『폐허』 동인으로 참여, 『폐허』에 「애인의 인도(引渡)」, 「벽모의 묘」, 「태양의 침몰」 등을 발표하며 등단(1920), 『장미촌』 창간에 관여(1921), 『조선시단』 주재, 중앙일보사 기자 역임, 사망(1960)
◈ 해석
이 시는 우리 현대시사에서 최초의 난해시로 평가받고 있다. ‘벽모’는 파란 털, ‘묘’는 고양이를 뜻한다. 괄호로 묶인 7행 이후의 시행은 푸른 털의 고양이가 화자에게 속삭이는 내용이다. 이처럼 이 시는 특이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양이’와 ‘나’는 모두 화자의 분신으로서 ‘고양이’는 심성의 간교한 악마적 모습이고 ‘나’는 심성 본래의 선한 모습이다. 즉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악(惡)의 고양이가 본래적 자아이며, 현상으로 나타나는 나의 선(善)한 모습이 현실적 자아이다.
어느 날 영혼의 낮잠 터인 사막 위 숲 그늘에서 안식을 취하던 나는 고양이를 만난다. 영혼의 낮잠 터는 사막과 숲 그늘이 어우러진 곳으로, 악과 선이 함께 존재하는 화자 자신의 마음이다. 그때, 고양이가 화자에게 다가와 “내 삶의 태양과 기독이 되어 준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온갖 고뇌와 운명을 나의 끓는 샘 같은 사랑으로 구제해 주겠다.”고 속삭인다. ‘태양’과 ‘기독’은 삶(영혼)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양이가 시인에게 속삭이는 말은 “선하게 살아가는 데서 발생하는 모든 괴로움과 운명을 구제하여 강하고 철저한 삶으로 변모시켜 주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국어의 정수 > 현대시의 정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비 - 변영로 (전문/해석/원문파일) (0) | 2020.10.15 |
---|---|
방랑(放浪)의 마음 - 오상순 (전문/해석/원문파일) (0) | 2020.10.15 |
봄 - 황석우 (전문/해석/원문파일) (0) | 2020.10.14 |
오다 가다 - 김억 (전문/해석/원문파일) (0) | 2020.10.12 |
봄은 간다 - 김억 (전문/해석/원문파일) (0) | 2020.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