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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고전시가의 정수

광대가 (전문/해석/원문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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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가

 

고금(古今)에 호걸문장(豪傑文章) 절창(絶唱)으로 지어내여

후세에 유전하나 모두 다 허사로다.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와 조자건(曹子建) 낙신부(洛神賦)

그 말이 정녕한지 뉘 눈으로 보았으며

와룡선생(臥龍先生) 양보음(梁甫吟)은 삼장사(三壯士)의 탄식(歎息)이요

정절선생(靖節先生) 귀거래사(歸去來辭) 처사(處士)의 한정(閑情)이라.

 

이청련(李靑蓮)의 원별리(遠別籬)와 백낙천(白樂天)의 장한가(長恨歌)

원진()의 연창궁사(連昌宮詞) 이교(李嶠)의 분음행(汾陰行)

다 쓸어 허황사설(虛荒辭說) 차마 듣겠느냐.

인간의 부귀영화 일장춘몽 가소롭고

유유한 생리사별(生籬死別) 위 아니 한탄하리.

거려 천지(廬天地) 우리 행락(行樂) 광대 행세 좋을씨고.

 

그러나 광대 행세 어렵고 또 어렵다.

광대라 하는 것은 제일은 인물치례(人物致禮)

둘째는 사설치례(辭說致禮) 그 지차(至次) 득음(得音)이요

그 지차 너름세라. 너름새라 하는 것은

귀성 끼고 맵시있고 경각(頃刻)에 천태만상(千態萬象)

위선위귀(爲仙爲鬼)천변만화(千變萬化) 좌상(座上)에 풍류호걸(風流豪傑)

구경하는 노소남녀 웃게하고 울게하니

어찌 아니 어려우며 득음(得音)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률(六律)을 변화하여

오장(五臟)에 나는 소리 농락(籠絡)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색색이 금상첨화(錦上添花)

칠보단장(七寶丹粧) 미부인(美婦人)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삼오야(三五夜) 밝은 달이구름밖에 나오는 듯

새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인물은 천생(天生)이라 변통할 수 없거니와

원원(遠遠)한 이 속관이 소리하는 법례(法禮)로다.

영산초장(靈山初章) 다스림이 은은(隱隱)한 청계수(淸溪水)

얼음 밑에 흐르는 듯 끌어 올려내는 목이

순풍(順風)에 배 노는 듯 차차(次次)로 들리는 목

봉회노전(烽廻路轉) 기이하고 돋우어 올리는 목

만장봉(萬丈峰)이 솟구는 듯 툭툭 굴러 내리는 목

폭포수가 쏟치는 듯 장단고저(長短高低) 변화무궁(變化無窮)

이리 농락 저리 농락. 아니리짜는 말은

아리따운 제비 말과 공교(工巧)로운 앵무(鸚鵡)소리

중몰이 중허리며 허성(虛聲)이며 진양조를

달아두고 놓아 두고 걸리다가 들치다가

청청(淸淸)하게 도는 목이 단산(丹山)의 봉()의 울음.

청원(淸遠)하게 뜨는 목은 청전(靑田)의 학()의 울음

애원성(哀怨聲) 흐르는 목 황영(皇英)의 비파(琵琶)소리

무수(無數)히 농락 변화 불시에 튀는 목이

벽력(霹靂)이 부딪친 듯 음아질타(音啞叱咤) 호령소리

태산(泰山)이 흔드는 듯 변화하여

낙목한천(落木寒天) 찬바람 소슬하게 부는 소리

왕소군(王昭君)의 출새곡(出塞曲)과 척부인(戚夫人)의 황곡가(黃鵠歌).

좌상(座上)이 실색(失色)하고 구경군에 낙루(落淚)하니

이러한 광대 놀음 그 아니 어려우냐.

 

우리나라 명창 광대 자고로 많건마는

기왕은 물론하고 근래 명창 누구누구

명성이 자자하여 사람마다 칭찬하니

이러한 명창들은 문장으로 비길진대

송선달 흥록(興祿)이는 타성주옥(唾成珠玉) 방약무인(傍若無人)

화란춘성(和蘭春城) 만화방창(萬化方暢)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李太白)

모동지(牟同知) 홍갑(興甲)이는 관산만리(關山萬里) 초목추성(草木秋聲)

청천만리(靑天萬里) 학 울음 시중성인(詩中聖人) 두자미(杜子美)

권생원(權生員) 사인씨(士仁氏) 천층절벽(千層絶壁) 불쑥 솟아

만장폭포(萬丈瀑布) 울렁출렁 문기팔대(文起八代) 한퇴지(韓退之)

신선달(申先達) 만엽(萬葉)이는 구천은하(九天銀河) 떨어진다.

명월백로(明月白露) 맑은 기운 취과 양주(醉過楊州) 두목지(杜牧之).

 

황동지(黃同知) 해청(海靑)이는 적막공산 밝은 달에

다정하게 웅창자화(雄唱雌和) 두우제월(杜宇啼月) 맹동야(孟東野)

고동지(高同知) 수관(秀寬)이는 동아부자(同我婦子) 엽피남묘(彼南)

은근 문답하는 거동 권과농상(勸課農桑) 백낙천(白樂天)

김선달(金先達) 제철(齊哲)이는 담탕(淡蕩)한 산천영기

명랑한 산하영자(山河影子) 천운영월(川雲嶺月) 구양수(歐陽修)

주랑청(朱郞聽) 덕기(德基)는 둔갑장신(遁甲藏身) 무수변화(無數變化)

농락하던 그 수단이 변화불측(變化不測) 소동파(蘇東坡)

이러한 광대(廣大)들이 다 각기(各其) 소장(所長)으로

일세천명(一世擅名)하였으나 각색 구비 명창 광대

어디 가 얻어 보리 이속을 알건마는

알고도 못 행하니 어찌 아니 답답하랴.

 

 

1. 이해와 감상

조선 말기에 신재효(申在孝)가 지은 단편가사이다. 70여 구. 광대 판소리에 대한 미학적 이론을 제시한 유일한 가사이다. 판소리를 부르기 전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단가(短歌)의 사설로 쓰였다. 신재효 만년의 작으로 여겨지나, 작사연대는 불분명하다. 이 가사는 도리화가와 더불어 신재효의 판소리이론을 정리한 가사로 내용상 네 부분으로 분류되어 있다.

첫째 부분에서는 중국 송옥(宋玉)고당부 高唐賦를 위시하여 유명한 시인들과 작품을 열거했다. 인간의 부귀영화가 일장춘몽처럼 가소로운 것과 같이 이들 호걸 문장들의 절창(絶唱)들이 모두 허사라고 했다. 이어서, 당시 서당에서 읽고 있는 선부(選賦)고문진보 古文眞寶류의 교습에 일침을 놓으면서, 우리 국속 가창의 전달자인 광대의 판소리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둘째 부분은 광대치례라 하여 광대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조건을 들었다. 인물치례·사설치례·득음(得音너름새로 순서를 매기고 있다. 그러면서 이 네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인물치례에서는 광대는 단순히 외모만 잘날 뿐만 아니라 예술적 수업 속에 갖추어지는 인품이나 기품 같은 것이 좋아야 한다고 하였다.

사설치례에서는 광대는 극적인 내용을 잘 그린 문학성이 좋은 사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광대의 시어 구사 능력을 말한 것 같은데, 현존 판소리 대본에 담긴 한문성구·가사(歌詞사설시조·속담·민요·수수께끼 등 과거의 민속문예를 모방, 차용하여 구사할 수 있는 배열능력을 말한다.

여러 어휘를 구사하는 사설치례는 광대 자신이 연출하는 기본적인 바탕 위에 양반이나 아전의 손이 미쳤다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소재를 암송하면서 노래로 부르는 데 있어서 광대의 문학적 능력이 요구된 것으로 보인다.

득음은 음악적 입신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광대는 음악을 알아야 하며, 작곡 능력도 있어야 하고, 노래를 다만 기교로 부를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불러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소리를 잘 배워서 판소리 대목마다 나타나는 여러 발성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름새는 판소리 사설에 나타난 극적인 내용을 노래나 말과 몸짓으로 잘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너름새는 시어로 형성된 사설을 어떻게 배열하느냐는 기술적인 측면이다. 단순한 판소리에 광대의 창작역량이 들어가 창을 하다가 재담으로 권태를 느낀 청중의 흥미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춘향전의 기생점고장면에서 기생의 호명을 전통적 방식이 아니라 눈 앞에 있는 기생의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신재효는 여기서 구성지고, 구수하고, 맵시있게판을 짜 가면서 관중의 의표(意表)를 찌르는 변화를 일으켜 관중으로 하여금 울고, 웃게하고자 했다. 이는 비장과 우미(優美) 위에 다시 골계로써 관중을 사로잡게 판소리를 짜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계속적인 극적 형상의 창조로 관중들에게 예술적 쾌감을 주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金東旭

셋째 부분은 광대의 소리하는 법례이다. 광대는 판소리의 낮은 소리로 끌어가는 선율인 끌어내는목’, 여러 가지로 변화를 주는 선율인 돌리는목’, 높이 솟구치는 선율인 올리는목’, 위에서 아래로 굽이치는 내리는목과 같은 특이한 선율형에 따른 발성을 잘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여러 가지 좋은 발음으로 아니리(말로 하는 것)’를 잘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중모리·진양조와 같은 여러 장단을 잘 알아서 소리해야 한다.

이른바 달아두고 노와두고 거닐고하는 여러 가지 리듬 변화를 잘 구사해야 하며, 슬픈 느낌을 주는 애원성(哀怨聲)’, 웅장한 느낌을 주는 호령소리와 같은 여러 조(調)를 잘 구사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넷째 부분에는 신재효 당시의 뛰어난 명창으로 권삼득(權三得송흥록(宋興祿모흥갑(牟興甲신만엽(申萬葉황해천(黃海天고수관(高壽寬김제철(金齊喆송광록(宋光祿주덕기(朱德基)를 꼽고, 그들의 장점을 들어 중국 당송대의 유명한 문인들의 개성적인 특징과 비교하여 논하고 있다.

 

* 출처 : 한국민족문학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