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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정수/현대시의 정수

빗소리 - 주요한 (전문/해석/원문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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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폐허이후창간호, 1924. 1.)

 

 

* 이즈러진 : 이지러진

* 주요한 : 평안남도 평양 출생(1900), 평양 숭독소학교 졸업(1912), 일본 메이지학원 중등부 졸업(1918), 에듀우드학우에 발표(1919), 문학 동인지 창조동인, 중국 상해 호강대학 졸업(1925), 동아일보사 편집국장·논설위원(1929), 조선일보사 편집국장·전무(1933), 해방 후 문단 활동 중단(1945), 사망(1980)

 

 

해석

1연은 시각과 청각이 교차한 감각적 이미지(뜰 위에 내리는 밤비의 모습), 2연은 시각과 촉각이 교차한 감각적 이미지(비가 오려는 조짐)가 잘 드러난다. 3연은 1·2연의 객관적 비유를 주관적 비유 감각으로 바꾸어 비 내리는 상태를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4연은 3연에서 다정한 손님같이내리던 비가 나의 가슴에내리는 것을 통해, 비와 화자와의 합일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사물을 더욱 선명하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영상 수법을 통해 선명하고도 구체적인 이미지 제시에 성공하고 있다. 관점에 따라 단순히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일 수도 있고, 조국 해방의 꿈을 표현한 상징시일 수도 있다. 서정시라면 동시풍의 정감 어린 서정과 섬세한 이미지가 돋보인다고 볼 수 있고, 상징시라면 식민지 현실에 처한 우리 민족에게 남모를 기쁜 소식을전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감각적 형상 능력의 우수성 외에도 일체의 한자어를 배제하고 순수한 우리말의 운율감을 살려 밝고 서정적인 감각을 노래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1930년대나 되어야 진정한 이미지스트 시인들이 등장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을 수작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폐허19207월 창간된 문예 동인지로, 고경상을 편집 겸 발행인으로 하여 창간되었다. 동인은 김억·남궁벽·이혁로·김영환·나혜석·김찬영·염상섭·오상순·김일엽·황석우·민태원·이익상 등이었다. ‘폐허라는 이름은 쉴러의 시대는 변하였다 / 내 평생은 폐허로부터 온다.”라는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19211월 통권 2호로 종간되었다.

폐허이후19241월에 창간된 문예 동인지로, 염상섭의 주재로 발간되었으나 창간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폐허의 뒤를 이은 동인지로, 동인은 오상순·염상섭·주요한·변영로·현진건·김형원·김명순·김억·조명희 등이었다.